공작가의 마마보이 222화
“그보다 주안 공자, 집으로 돌아갈 때 대밀림에서의 그걸 써서 갈 생각이야?”
워랜의 그 말에 주안이 잠시 흠칫했지만, 담담히 자신을 보는 워랜의 모습에 이내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고 계셨어요?”
“그야 뻔하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나, 주안 공자가 자신 있게 금방 돌아간다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나 답은 그거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
“하하……. 워랜 경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도 눈치는 정말 빠르세요.”
“그거 왠지 욕 같은데?”
“칭찬이에요.”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미소를 짓는 그 여유로운 모습에 주안 역시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워랜은 아스란 왕국에 가기 전과 후가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
느긋함은 여전했지만, 그것은 이유 있는 여유로움이었다.
그러한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만한 실력을 갖추게 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진정한 강자가 보여주는 그러한 모습 말이다.
‘뭐, 그래도 솔을 괴롭힐 때나 소니아 누나 곁에 있을 때의 모습은 또 다르겠지만.’
그가 자신의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가족들 외에는 소니아와 솔의 앞에서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주안의 앞에서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조금 섭섭함도 있었다.
다만 언젠가 자신도 그 속에 포함될 날이 왔으면 했다.
“그런데 솔은 내버려 두고 갈 거야?”
“네? 저를요?!”
뜬금없는 워랜의 그 말에 솔이 큼지막한 파이 한 조각을 들고 한입에 먹으려다 화들짝 놀라 워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워랜은 마치 본능처럼 솔의 두툼한 턱살을 손으로 죽죽 늘려주며 말했다.
“그런 게 있어서 그래.”
워랜이 이렇게 말을 하니, 솔도 뭐라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봐오고 곁에서 함께 해서 그런지 워랜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가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짓을 할 때가 있긴 해도, 지금처럼 나름 진지할 땐 그대로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솔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신뢰 가득한 모습에 주안이 잔잔한 미소를 짓다, 힐끗 토미를 흘겨보았다.
“……왜요.”
“너 요즘 반항이 좀 심하다?”
“아우우……?!”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지켜보는 토미의 빨간 눈과 마주치자, 주안은 괜히 심통이 나서 토미의 볼때기를 두 손으로 붙잡고 죽죽 늘려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그리고 한동안 토미를 괴롭혀주다 그 볼에서 손을 놓자, 빨개진 볼을 매만지며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주안을 노려보는 토미와 잠시 눈싸움을 해준 후 고개를 돌려, 자신과 마찬가지로 솔의 볼때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 워랜에게 말했다.
“일단 솔도 함께 갈까 생각 중이긴 하지만, 워랜 경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
어떻게, 그리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어떤 방식으로 도울 것인지는 이미 다 안다는 듯 워랜이 솔의 볼에서 손을 놓고는 주안에게 말했다.
“괜찮겠어?”
“괜찮아요. 솔도 알아야죠. 이미 소니아 누나도 알고 계시는데, 솔만 모르면 안 되잖아요.”
“언제 소니아에게 알려 준 거야?”
“뭐, 어쩌다 보니…….”
얼마 전에 집에 갔다가 소니아를 만나 또 엄청난 곳에 가면서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을 모두 설명을 할 수가 없어 주안은 그저 어색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그리고 워랜 역시 딱히 더 이상 물어보거나 하지 않은 채 말했다.
“이미 그렇게 결심을 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워랜 경이 솔을 잘 관리 해주셔야 해요. 그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워랜 경이랑 토미에게도 알려 줄 생각이니까요.”
“다른 것?”
“예. 다른 것이요. 이건, 어떻게 보면 저희 가문의 가장 큰 비밀과도 같은 거니까요.”
“……그런 걸 주안 공자 멋대로 가르쳐줘도 괜찮은 거야? 공작님이나 벡브란 전대 공작님의 허락은?”
“당장은 비밀이에요.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을 안겨드릴 것이니 크게 혼나지는 않을 거예요.”
“결국, 혼난다는 건 변하지 않나 보네?”
“으음……. 조, 조금만 혼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는…….”
“그거야 주안 공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으…….”
혼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주안의 도움 요청에도 워랜은 깔끔하게 거절한 채 차를 홀짝였다.
그러한 냉정한 모습에 주안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내쉬었지만, 토미도 이번만큼은 주안을 위로해주지 않았고 솔은 오히려 괜히 불안해져서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 * *
사실 주안에게 헥사빌 백작 가문은 매우 낯선 가문이었다.
이전 삶 속에서도 그들과는 거의 만나 보지 못 했었고 3대 백작 가문 중 마를렌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있다고 해도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던 매우 폐쇄적인 가문이기도 했다.
‘신중하다고 할까, 대세를 잘 보던 가문이라고 할까…….’
주안은 방으로 돌아가면서 작게 웃어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녁이 되어 3대 백작 가문과 함께 할아버지와 자를 가진 주안은 그 자리에서 3대 백작 가문의 가주들과 만남을 가졌지만, 역시나 로마니아 백작가나 소벡 백작 가문과는 달리 헥사빌 백작가의 가주를 대하는 건 참 어려웠다.
“뭐, 어쩔 수 없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접점이 될만한 건 없으니까.”
차차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니, 주안으로선 너무 급하게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예전과는 달라진 자신이었으니, 이러한 시간만 지나면 결국 헥사빌 백작 가문도 주안, 자신을 달리 생각해줄 것이니 말이다.
지금은 그저 3대 백작 가문이 주안을 달리 봐주고,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따라주는 것에 만족하는 게 나을 듯하니, 당장 급한 일들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을 하며 주안은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응? 세냐 너, 그건 다 뭐야?”
주안은 방에 놓여 있는 테이블 위에 커다란 보따리와 함께 매우 수상쩍은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는 세냐의 모습에 갸웃하였다.
주안이 요상한 시선을 보내며 다가오자, 세냐가 이런 주안을 돌아보며 당당하게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뭐긴 뭐에요. 내일 집에 간다면서요? 미리 짐 챙기고 있는 거죠.”
“……너한테 짐이 어디 있어? 그보다 이게 짐이라고?”
주안이 황당하다는 듯, 손을 뻗어 세냐가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는 짐 중 하나를 집어 든 후…… 입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아?! 그걸 왜 먹어요! 내가 어떻게 훔쳐온 건데!”
“……훔쳐 온 거였냐. 이 많은 벌꿀 과자를 대체 어떻게 안 들키고 훔쳐온 건데.”
게다가 너무나 당당한 그 말에 주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세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도둑치고는 너무나 작고 귀여우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한 점 부끄러움 따윈 없다는 듯 세냐는 매우 당당하고 새초롬한 표정으로 주안을 노려보며 말했다.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대단한 방법 같기는 한데, 도둑질치고는 좀…….”
“흥! 도둑질이 아니거든요. 당당하게 돈도 놓고 왔거든요.”
“식당에서는 난리가 났겠네. 그리고 그거 안 훔쳐 와도 됐었던 거야.”
“네? 왜요?”
“그야 내가 준비하라고 부탁을 해놓았던 거니까.”
“……네?”
갸웃하는 세냐를 보며 주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도 그거 좋아하고 해서 세계수에 있는 아이들한테도 선물해주려고 했던 거니까.”
“…….”
사실 세냐가 이 벌꿀 과자를 좋아하는 만큼, 그 입맛이 비슷한 마냐나 아냐, 더 나아가 세계수의 요정들까지 생각해서 주안이 잔뜩 준비한 선물이기도 했다.
“먹을 사람이 있다 해도 이렇게 많은 걸 준비했을 리가 없잖아. 그것도 이 야밤에.”
“으윽…….”
“뭐, 그래도 세냐 네가 요령 좋게 가져왔으니, 하인들은 수고를 덜어서 다행이네.”
작게 웃어주며 주안이 의자에 앉자 세냐는 그 자리에 주자 앉더니 이내 뒤로 벌렁 드러누워 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며 소리쳤다.
“으아, 내가 이걸 어떻게 훔쳐 온 건데!”
“애초에 훔쳐오질 말라고…….”
“돈 놓고 왔다고 했잖아요!”
“돈을 놓고 와도 허락 없이 가져오는 건 도둑질이야.”
“으으으으!”
아무래도 이것을 몰래 가져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던 듯했다.
“그보다 오빤 준비 안 하세요?”
“올 때도 거의 빈손이었는데 뭐.”
“……갈 땐 엄마 선물 잔뜩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세냐가 벌떡 일어나 뚱한 표정으로 주안을 보며 그렇게 말하자, 주안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 시선을 피할 수밖 없었다.
세냐 말대로 올 때는 빈손이긴 했지만 갈 때는 그래도 선물이 한가득했다.
대부분이 엄마의 선물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차피 자주 오갈 수 있으면서 그런 건 왜 잔뜩 사시는 거람.”
주안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인해서 개인적 일을 잔뜩 처리했다.
그리고 그 일 중 대부분이 선물을 사는 거였다.
바깥 외출을 하면서 도리안도 만나고, 그 아들인 하마르를 위해서 준비한 반지를 하나 선물을 해주기도 하였다.
이전처럼 엄청나게 빛나는 목걸이가 아닌, 조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은반지였지만 주안이 신성력을 잔뜩 불어 넣는 바람에 성유물처럼 되어버린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음이라는 게 있잖아.”
“흐응~ 마음이라…….”
“내일도 시간은 조금 있으니까, 마냐랑 아냐. 그리고 아미엘 님 선물이라도 사지 않을래?”
“인간들의 물건을 선물이라고 주는 것도 조금 웃긴 일인데요.”
“뭐 어때. 인간들의 술은 또 엄청 좋아하시는 아미엘 님이신데.”
“풋!”
주안의 말에 세냐가 웃음을 터뜨려버렸고, 이내 그 행동에 볼을 발갛게 물들이더니 고개를 황급히 가로저었다.
“수, 술은 어쩔 수 없는걸요. 그건 기호품, 그런 거니까!”
“……술이 언제부터 기호품이 된 건데. 아니, 그 정도로 술을 사랑하셨어?”
달란트 부족의 지독할 정도로 독한 술도 좋아하시는 듯했는데, 술을 좋아하는 것도 모자라 술이 상당히 센 듯했다.
“좋아. 아미엘 님에게는 이 동부의 독한 술을 선물해드려야지.”
사실 동부, 그것도 해안가와 항구도시에서 판매하는 술들은 동방 대륙의 술이 들어올 만큼 다양하고 특이한 술들이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뱃사람들이 많다 보니 독한 술은 달란트 부족에게 전혀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특히나 동방 대륙은 그 술의 종류가 다양한 것도 모자라 특이하고 이상한 것도 많았다.
뱀을 넣어 담그는 뱀술이라거나, 영약 중의 영약이라는 산삼을 넣어 만든 약술이라 불리는 산삼주 등등, 황당한 것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우음……. 그러면 마냐랑 아냐한테는 뭘 주지…….”
“아미엘 님의 선물은 술로 결정이지?”
“뭐, 어쩔 수 없잖아요.”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는 세냐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비단이라는 것으로 만든 무지막지하게 사치스러운 인형 옷이면 어떨까?”
“인형 옷이요?”
“직접 만드는 것은 힘드니까, 만들어져 있는 거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야 그렇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옷이야 아무리 작다고 해도 세냐나 마냐, 아냐가 입을 수도 없다 보니 가능한 것은 바로 인형 옷 정도라는 것이다.
황도였다면 세라타가 만들어주었겠지만.
“내일 아침에 같이 나가서 찾아보자. 여기 인형가게도 많아서 마음에 드는 것 잔뜩 있을 거야.”
“흠흠, 사주시는 거라면.”
“그래, 그래. 남는 거라면 돈밖에 없는 내가 사줄게. 자랑은 세냐 네가 하고.”
“흐흥~ 뭐, 그러시다면.”
주안의 말에 세냐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짐이 잔뜩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