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21화
“자, 그런고로. 집에 돌아갈 날짜가 잡혔습니다.”
주안은 워랜과 토미, 그리고 솔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간단하게 그렇게 말을 해주자, 다들 그다지 놀랄 것도 없다는 듯했다.
그 때문인지 주안이 잠시 갸웃하며 말했다.
“별로 놀라는 눈치는 아니시네요.”
“오히려 조금 늦은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야.”
“그런가요.”
워랜이 다과로 나온 과일을 우물거리며 시큰둥하게 말하자, 오히려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토미가 조심스레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러면 언제쯤에 황도로 가는 거예요, 도련님.”
“응. 내일.”
“……네?”
주안이 주스를 홀짝이며 간단히 답하자, 이번에는 토미가 갸웃하며 잠시 주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일 갈 거야. 점심 먹고 오후쯤에 출발하면 어떨까 싶어.”
“빠, 빠르네요…….”
“그래도 하루의 여유는 주었으니까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인사를 해. 특히 너는 록산느 경한테.”
“우음…….”
이제는 아침뿐만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토미나 워랜과 함께 검을 휘둘러대던 록산느 경이었기에, 이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간다면 상당히 외로워 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건 록산느뿐만이 아니라 토미 역시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요즘은 록산느 경이랑 검을 맞대는 거, 재미있어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록산느 경이 너한테 배울 것도 있었겠지만, 너도 록산느 경에게 많은 걸 배웠지?”
“……네.”
우락부락한 남자들, 특히 서방 대륙 기사들의 딱딱한 검술을 주로 상대했던 토미였지만 록산느의 검은 조금 달랐기에 토미에게도 상당한 공부가 되었다.
워랜처럼 동방 대륙의 검에 가깝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몸에 맞게끔 검을 휘둘렀고 그 결과보다 부드러우며 힘도 강한, 상당히 독특한 검이 되어있었다.
그러한 검은 토미를 만난 뒤 더욱 도드라졌다.
토미는 그녀의 검의 원류인 로마니아 백작 가문의 검을 직접 보고 맞대며 스스로 익혀 나갈 수 있었다는 것에서 어떻게 보면 록산느보다 더욱 많은 것을 얻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알기에 주안 역시 토미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로마니아 백작가의 검은 상체보다 하체에 더욱 집중된 검이기도 해. 어떻게 보면 워랜 경의 노밀 가문과 비슷하지만, 노밀 가문은 말을 타기 위한 하체의 단련인 반면 로마니아 가문은 검을 쓰기 위한 하체의 단련이니까.”
서방 대륙의 검이 획일적이고 무식하게 몸만 단련한다 해도 그 몸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단련하는 것인지는 가문마다, 사람마다 다 달랐다.
상체에 집중하는 가문도 있고, 로마니아 백작 가문처럼 하체에 더 무게를 실은 가문도 있으며, 팔의 단련이라거나 체력을 좀 더 단련한다거나…….
이처럼 육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유명한 가문들은 이렇게 중심을 잡고 자신들의 특징을 키웠으니 말이다.
“도련님은 검을 안 쓰시면서, 그런 건 정말 잘 아시는 것 같아요.”
“검을 안 써도 가신들의 가문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니까.”
“헤에, 공부라…….”
“너도 공부해서 얼른 글자를 다 뗐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록산느 경을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으윽……. 그, 그래도 이제 많이 배웠어요.”
“자기 이름 겨우 쓰는 걸 많이 배웠다고 하는 거냐?”
“……세라타 이름도 쓸 수 있다고요.”
“자랑이다, 자랑이야.”
미래의 검성이라던 녀석이, 토미를 본 기사들이나 귀족들, 아니 일반적인 사람들마저도 그 미친 재능을 탐낼 정도로 뛰어난 천재성을 보이던 녀석이 어쩜 이렇게 공부를 못 하는 것인지 주안은 정말 이해가 안 됐다.
모든 재능이 검으로만 간 것인지 토미는 지독하게 공부를 못 했다.
정말 무식할 정도로 몸 쓰는 것 하나만큼은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감도 좋았으며 한 번 본 것은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몸에 맞게 바꾸어버려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천재성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나, 아직 글자도 못 뗀 멍청이인데.’
주안은 집으로 돌아가면 검도 검이지만 가장 먼저 제대로 된 선생님을 구해서 토미에게 글자를 완벽하게 익힐 수 있게끔 만들 생각이기도 하였다.
‘뭐, 아니면 세라타에게 부탁을 해야지. 세라타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는 바보니까.’
의욕을 가지고 스스로 하는 공부도 좋지만 역시나 강제로 시키는 주입식 교육이 최고라는 소니아의 생각에 동의하기에, 주안 역시 이런 부분을 본받아 그대로 토미에게 해주려 하였다.
이런 주안의 핀잔에 토미가 부끄러운 듯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자신의 앞에 놓인 주스가 담긴 컵을 들고는 단번에 들이켜 버렸다.
“어쨌든 내일 돌아갈 거니까, 그동안 록산느 경이나 로마니아 백작님, 스타크 경에게 특히 고맙다고 말씀을 드려. 어떻게 보면 가문의 소중한 비밀을 네게 공짜로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무리 단순한 검이고, 무식한 육체단련이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알려 준다는 것은 사실 좀 힘든 일이긴 했다.
그래도 대부분을 공유한다는 점은 서방 대륙의 특이한 부분이긴 해도 유력한 검의 가문을, 기사의 가문을 만든 중요한 부분까진 공유하진 않는다.
그 점에서는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매우 특이하긴 하였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오를 수 있는 검의 끝에 오른 뒤 동방 대륙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과 후학의 양성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뭐, 그렇다 해도 그것은 정말 고위 랭크에 오른 기사들에게나 도움이 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주안의 말에 토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가끔 로마니아 백작님께서 직접 지도도 해주셨거든요.”
“……진짜?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님이 직접 너한테?”
“네.”
“…….”
그 말에는 주안도 적잖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멍하니 토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날 붙잡고 괴롭히더니, 록산느 경이랑 대련하는 것을 본 뒤로는 토미한테 완전히 빠지신 듯하더라.”
“그럴 만도 하지만……. 이거 참…….”
토미도 쑥스러운 듯 몸을 움츠렸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왜 그런지 주안도 잘 알기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인기도 인기지만, 질투도 많았겠지. 토미로서는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일 테니까.’
황도 저택에서도 토미는 재능이 있는 아이로 통하지만, 그 실력을 제대로 보여준 일이 없었기에 아직 토미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는 제대로 모른다.
그저 피터의 제자이며, 주안이 아끼는 재능 있는 아이, 정도라고 할까.
하지만 이곳, 마를렌에서는 달랐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보여준 것도 문제였나…….’
그 점은 주의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다행히 그러한 질투보다도 토미를 아끼는 이들이나 토미를 자신의 가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어차피 헛된 욕심을 부리기에는 토미의 뒤에 버티고 있는 인물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인 주안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고 그 곁에는 워랜도 있었으니, 욕심에 대한 대가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 역시 잘 알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토미에 대해서 조용히 과자와 과일들을 먹어대던 솔마저 통통한 볼때기를 푸들거릴 정도로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
“이미 다른 귀족들이나 기사들 사이에선 토미는 진짜 유명인이 다 됐어요, 공자님. 저희 할아버지도 저희 누나들이 결혼만 하지 않았으면 토미랑 맺어주고 싶다고 하셨다니까요.”
“우와 그 정도씩이나?”
자신들의 가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 중 가장 간단한 것은 결국 혈연으로 맺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혼인. 결혼이다.
‘하긴, 토미도 내년이면 성인이니까. 귀족이었으면 벌써 혼담이 오가도 서른 번은 더 오갔을 나이이니……’
주안이야 거대한 가문의 후계자치고는 마마보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절망적일 정도로 혼담이 오고 가지 못하였지만, 귀족이라면 이미 혼담이 오가고 약혼도 했을 나이였다.
“하지만 결혼은 허락 못 해.”
“네? 왜요?”
토미도 갸웃했지만, 솔은 주안의 말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의아해한다.
솔은 토미가 유력 귀족가에 들어가면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에도 큰 이득이 될 것이며 토미 역시 자신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을 터이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주안은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나보다 일찍 결혼하는 건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완전 악취미네.”
주안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 그 말에 워랜이 황당하다는 듯한 마디를 해주었다.
하지만 주안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혼인 없어도 이미 토미는 가문 내에서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라고요. 저 녀석의 뒤를 봐주는 게 저라는 걸 잊은 건 아니죠?”
“뭐, 그건 그렇지.”
귀족가의 혼담? 다 좋은 말이지만 그것으로 얻는 이득 보다는 주안의 곁에 있는 것이 더 큰 이득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이대로 실력만 쭉쭉 늘어난다면 작위 정도는 내가, 아니, 아빠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내려 줄 수 있는 것인데 뭐.’
신분 따윈 사실 토미에겐 큰 의미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오히려 그게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워랜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솔 역시 대충 주안의 말에 담긴 의도를 파악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토미는 아니었다.
“저, 저 그러면 도련님 허락 없이는 결혼도 못 하는 거예요?”
“응.”
“너무하세요!”
“나보다 먼저 결혼하는 꼴은 절대로 안 해. 허락 못 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네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는 것은 절대로 못 봐. 결혼하기만 해봐. 가문의 기사단을 보내서 파투를 내줄 테니까.”
“우와! 최악이세요!”
“최악이든 뭐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난 네 결혼은 절대 허락 못 해. 안 해!”
“으으……!”
애들처럼 아옹다옹하는 주안과 토미의 그 모습에 솔이 꽤 황당해했지만, 워랜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차를 홀짝이다가 말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내일 출발할 거면 주안 공자도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인사를 해야겠네.”
“모두를 다 만날 수는 없겠지만, 삼대 백작 가문의 가주님들은 모두 만나 봐야겠죠.”
주안 역시 자신의 위치를 이제는 제대로 파악하였기에, 가문의 주요 가신이라 할 수 있는 삼대 백작 가문을 만나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보여주며 그들과 사이를 돈독히 만들 필요가 있었다.
특히 헥사빌 백작가와는 이전 삶에서도 이번 삶에서도 인연이 거의 없었기에 한 번쯤 만나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다.
뭐, 그래 봐야 인사 정도만이 오가겠지만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그리고 그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만 말이다.
이미 소벡 백작 가문이야 위체니아로 인해서 주안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동방 대륙과의 차 무역으로 인한 거대한 이득도 안겨주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전 삶에서도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을, 주안을 지지했던 유일한 백작 가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로마니아 백작 가문 역시 토미로 인해서 주안에 대해 조금 더 달리 보는 계기가 되었고, 주안을 통해 풍신과 연결되는 소중한 기회까지 생겨 주안에 꽤나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이미 두 백작 가문은 주안에게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소벡 백작 가문과는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관계로 황도로 떠나기 전 할아버지에게 부탁해서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