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19화
“그러면 누나, 엄마 잘 부탁드려요.”
마를렌의 공작성으로 돌아가기 전, 워프게이트 앞에 서서 소니아에게 그렇게 한 마디를 해주자 이러한 주안의 말을 듣고는 소니아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런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이 갸웃하며 물었다.
“……왜 웃는 건데요.”
“아뇨. 결국, 마지막은 엄마구나 싶어서요.”
“으…….”
이것은 마치 본능 같은 것이라고 할까, 몸에 각인이 되어버린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러지 말겠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 이건 정말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서 고치려고 하겠지만, 고쳐질지는 솔직히 확신하지 못하겠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니아는 깊은 고민에 빠져버린 주안을 보다가 그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워프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돌아오실 땐 저걸로 바로 올 생각이시죠?”
“그렇게 해야겠죠. ……엄마랑 약속도 했으니까, 빨리 와야죠.”
또다시 엄마를 언급하는 주안을 소니아 뿐만이 아니라 이번에는 세냐마저 묘한 눈웃음을 지으며 주안을 빤히 바라본다.
그 때문에 주안의 볼이 빨갛게 변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오실 때 분명 벡브란 전대 공작님이 배웅도 해주실 텐데……. 이 워프게이트는 마를렌 공작성 바깥에 있는 거예요?”
“아뇨. 집에 있는 것처럼 공작성의 제 방에 있어요.”
“네? 그러면 더 큰 문제 아니에요? 혹시 바로 말씀을 드릴 생각이세요?”
벡브란 전대 공작도 이 워프게이트라는 것에 대해선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소니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장 알게 된다면 이곳에 있는 주레인 공작이나 안젤라가 조금 곤란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소니아의 걱정에 주안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아니에요. 일단 황도로 오셨을 때, 가족들이 다 모인 장소에서 알려드릴 생각이에요. 물론 그땐 아미엘 님 역시 초대를 해드릴까 생각 중이기도 하고요.”
주안은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로 황도로 올라왔을 때, 그때 아미엘도 집으로 초대를 한 뒤 가족들만이 모인 그 장소에서 알려 줄 생각이었다.
물론 아미엘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이긴 하지만 그 부분은 아미엘에게 물어본 뒤 그녀의 의사에 따를 생각이었다.
물론 아미엘이 숨기고 싶다면 그 정체에 대해선 숨겨둘 필요가 있겠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면 주안의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을 테니 그 부분은 고민할 필요도 없을 듯했다.
“그러면 어떻게 사용하시려고…….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공작성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도 문제인데, 그대로 이것을 이용하는 것도 문제 아니에요?”
“그 부분은 다 생각해둔 게 있어요.”
“네? 생각해둔 부분이요?”
갸웃하는 소니아에게 말을 해줄까, 고민이 되긴 했지만 이내 그녀에겐 딱히 비밀로 할 필요도 없었기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공작성에서 바깥을 오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어요. 그걸 이용할 생각이에요.”
주안은 모두에게 배웅을 받든, 할아버지에게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떠나든 어쨌든 공작성을 떠날 생각이었다.
단지, 밤에 몰래 다시 들어갈 생각이었으며 그때 사용할 것이 바로 공작성을 오갈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사용해 되돌아와서 워프게이트를 이용할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소니아가 흠칫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안에게 물었다.
“네? 그런 게 있었어요……?”
“있어요. 직계 가족에게만 알려진 것이거든요. 물론 정확한 위치는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알고 싶지도 않거든요?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만으로도 이건…….”
소니아 그녀를 주안이 얼마나 신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부분인지라 소니아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워프게이트든, 룬 문자든, 혹은 이종족이나 드래곤이든 그런 것보다 이 사실이 소니아를 더욱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가족들만 알 수 있는 그러한 마지막 보루를, 그런 장소를 알려준 것은 아니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임에도 알려 준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소니아의 기뻐하는 그 순수한 모습에 주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이 비밀 통로로 날 밀어 넣고, 도망치게 만든 분이 소니아 누나였는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엄마인 안젤라의 곁을 지키며 주안을 비밀 통로를 이용해 마를렌을 벗어나게 해준 것은 소니아와 피터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배웅, 아니, 쫓아낸 것은 소니아였다.
‘도망치라는 엄마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던 나니까…….’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지, 그리고 그런 엄마를 두고 도망친 주안을 안내하던 소니아의 기분은 어땠을지 그땐 몰랐지만…….
‘지금이야 너무나 잘 알지…….’
그 비밀 통로를 이번에는 도망치는 것에 이용하는 게 아니라 다시 들어가는 것에 이용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였다.
“뭐, 어차피 곧 워랜 경이나 토미, 솔도 알게 될 거예요.”
“그거 이용하고 곧바로 장소를 바꾸세요.”
“그렇게 말씀 안 해주셔도 그럴 생각이에요.”
“아무리 신뢰를 하시고 믿는다 해도 사람은 언제 변할지 몰라요. 그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위협이 될 수 있어요. 알려주신 것은 기쁘지만, 그래도 주의하실 건 주의하셔야만 해요.”
“예. 그렇게 할게요.”
소니아가 진지한 모습으로 신신당부를 하자, 주안 역시 그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거짓 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런 말을 해주는 것도 고마웠고, 주안 역시 그녀의 말대로 소니아나 워랜, 토미나 솔을 신용하긴 하여도 이것은 마르티네스 가문에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혼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또 혼자 멋대로 일을 벌였다는 것에 크게 꾸지람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워프게이트라는 오히려 더 훌륭한 위협을 피할 장치를 만들었으니 조금 덜 혼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주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안은 소니아를 보며 다시 한번 조용히 인사를 해주었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누나.”
“얼른 오셔서 세냐를 저한테 빌려주셔야 해요, 아셨죠?”
“제가 무슨 물건이에요?!”
“물론이죠. 얼마든지 빌려드릴게요.”
“익?!”
뭐 때문에 빌려달라는 것인지 잘 알기에 주안도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을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세냐는 발끈하며 도끼눈을 뜬 채 주안과 소니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러한 세냐를 깔끔하게 무시하며 주안이 말했다.
“물론 오자마자 벌꿀 과자를 잔뜩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야겠지만 말이에요.”
“…….”
벌꿀 과자라는 말에 정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세냐였고, 그것을 보고 소니아 역시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료는 제 사비를 털어서라도 잔뜩 준비해 놓을게요. 벌꿀도 다양한 벌꿀로 준비해서 말이에요.”
“다, 다양한……”
어떤 꽃의 꿀을 모으는 것에 따라 꿀의 향기와 맛이 완벽히 달라진다.
꽃은 다양했고, 그만큼 다양한 꿀도 많았다.
“저 먼 북부에서 특별하게 채취한다는 꿀이라도 준비해 놓을게요. 알겠지? 세냐.”
“으윽……. 이, 인질이 좀 센데요?”
“흐흥~ 기대하라고.”
먹을 것에 혹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그런데도 기대할 수밖에 없는 탓인지 세냐가 갈등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이내 눈까지 반짝이며 소니아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 교육은 엄하니까 마음 단단히 잡고 있으세요.”
“응! 엄한 교육 좋아해! 주입식 교육이 최고의 교육이니까!”
오히려 방긋 웃으며 기뻐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세냐가 오히려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세냐가 아무리 엄한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를 잡아봐야 아이의 귀여운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지라, 그것을 간과한 세냐의 탓도 있지만 소니아의 성격 자체가 원채 밝아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자,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며칠 뒤에 봐요, 누나.”
“네. 조심해서 갔다 오세요, 도련님.”
소니아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를 해주자 소니아 역시 손을 흔들어 주며 주안을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소니아의 배웅을 받으며 주안은 조심스레 워프게이트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 * *
아미엘과 소니아와 함께 크세니아의 무덤으로 갔다 온 지 삼 일째가 지난 뒤, 마를렌에 모였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가신들 역시 슬슬 자신들의 영지로 되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링베르가 공작가에 대응할 방도와 황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이 정해진 이상, 주요 가신들 역시 조만간 다시 모여 벡브란 전대 공작과 함께 황도로 올라올 것이니 각자의 가문으로 돌아가 준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주안 역시 돌아갈 준비를 하였고, 요즘은 늘 함께 하는 할아버지와의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러한 말을 꺼내었다.
“인제 그만 너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네, 할아버지.”
주안의 말에 식사를 멈춘 채 잠시 주안을 빤히 바라보던 벡브란 전대 공작이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할아비가 가르치는 공부가 많이 지겨웠나 보구나.”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좀 더 있고 싶기는 하지만 그게…….”
잠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아버지에게 밉보이지 않는 답을 내릴 수 있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북부에 자리 잡은 교단의 성도, 다예프에 관한 것을 알아보기 위함이 컸다.
드래곤의 결계라는 부분은 전적으로 아미엘에게 맡긴 상태이긴 하나, 주안 역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있었기에 일단은 황도로 돌아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빠르게 해결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마를렌 내에서는 할 수 없는, 그러한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할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기에 잠시 머뭇거리던 주안은 자신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눈과 마주치는 바람에 황급히 말을 꺼내었다.
“……엄마한테 일찍 가겠다고 약속을 해서…….”
“…….”
다만, 그게 진실이든 뭐든 간에 엄마 이야기를 꺼낸 순간 할아버지의 인상이 팍 구겨진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때문인지 주안이 식은땀을 흘리며 잽싸게 말을 이었다.
“그런 것도 있지만, 얼른 황도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그래요.”
“해야 할 일이라니?”
“먼저 남부 대밀림에 계시는 메데아 대족장님과의 일정조율을 할 필요가 있어요.”
“흠……. 확실히…….”
그와 연결되어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물이란 주안밖에 없다는 것을 벡브란 전대 공작 역시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또 워랜 경이나 토미, 그리고 록산느 경 등등……. 이들을 가르칠 아스란 왕국의 풍신 경과도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해야 할 듯해요.”
“직접 만날 생각이더냐?”
“예.”
“그럴 필요가 있더냐. 네가 아니더라도 적당한 이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워랜 녀석에게 말을 전하면 되지 않느냐.”
그런 할아버지의 말에 주안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