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17화
“그럼 아미엘 님. 일단 교단 쪽의 일은 제가 바로 알아볼게요.”
크세니아의 무덤에서 아미엘의 방으로 돌아온 주안은 곧바로 소니아를 황도의 저택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아미엘이 열어준 워프포탈 앞에 서서 아미엘에게 인사를 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 너에게 계속 짐만 전해주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하구나.”
“그런 소리 마세요. 이제는 아미엘 님의 일이 제 일이 된 것이기도 했잖아요.”
아미엘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들을 주안에게 계속해서 떠넘기는 것 같아 표정이 썩 좋지 않았지만, 주안은 그런 아미엘을 달래듯 가슴을 쭉 편 채 싱긋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저도 관계자잖아요. 어떻게 보면 가족이기도 하고요.”
“가족이라……. 좋은 말이로고.”
그녀에게 가족이란 이제 요정들밖에 남지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해주는 주안의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때문인지 조심스레 주안을 한 번 꼬옥 안아 준 후 아미엘이 말했다.
“그래도 무리하지 말거라. 네가 몸을 상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니 말이다.”
“제가 몸 상할 일이 뭐 있나요. 어차피…….”
“……돈을 잔뜩 써서 아랫사람들을 마구 부리니, 그 사람들이 상하는 거죠.”
“…….”
주안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세냐가 주안의 말을 잽싸게 가로챈 히죽 웃으며 그렇게 말을 해버렸다.
때문에 주안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지만, 사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지라 뭐라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소니아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동의를 해주고, 아미엘 역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탓에 얼굴이 화끈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세냐, 넌 오늘 여기서 안 자고 가도 돼?”
“오빠가 할아버지네 집에 가서 이상한 짓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제 일이니까요.”
“이상한 짓이라니…….”
말을 그렇게 하니 정말 이상해지는 바람에 주안이 살짝 찌푸려졌다.
마냐나 아냐는 오랜만에 아미엘을 만나서 그런지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인 듯 아미엘과 함께 주안과 소니아를 배웅을 해주었지만, 세냐는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주안이 왠지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자, 세냐 역시 이런 주안을 눈을 가늘게 뜬 채 흘겨보며 말했다.
“왜요? 저도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끔은……?”
“흐응~ 저 없이 대체 뭘 하시려고 그러시나~ 만나는 여자도 없으신데.”
“……뭘 물어보고 싶은데?”
“별로~”
말을 묘하게 늘어뜨리며 마찬가지로 묘한 미소를 지으며 쿠후후, 웃어주는 세냐의 모습에 주안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통통한 볼을 살며시 붙잡고 주욱 늘려 주었다.
“싸우자는 의미죠?”
“설마. 연약한 내가 우락부락한 우리 세냐에게 어떻게 싸움을 걸겠어? 얻어터지는 건 내가 될 텐데.”
“흥……!”
실실 웃으며 주안이 세냐에게 그런 말을 해주자, 세냐의 표정이 새침하게 변하며 볼을 붙잡고 있던 주안의 손가락을 요령 좋게 발로 걷어차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아미엘 역시 쿡쿡거리며 작게 웃어주었다.
“너희는 정말 남매처럼 잘 어울리는구나.”
“그런 끔찍한 말씀을…….”
“실례예요, 아미엘 님!”
주안이 질색하고, 세냐 역시 발끈하며 소리치자 아미엘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주안이나 세냐나 불만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크세니아의 무덤에서 만난 크세니아의 잔존사념인 그림자와의 대화로 조금 울적해 보였던 그녀가 기운을 차렸다는 것에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잠시 다시 서로를 흘겨보며 눈싸움을 하던 주안과 세냐가 이내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면 어서 가보도록 하거라. 저 아이도 그만 집에 가야 하고, 너 역시 얼른 가봐야 하지 않느냐.”
“예. 다음에는 좀 더 시간을 내서 찾아오도록 할게요. 아니, 제가 집에 돌아갔을 땐 정식으로 아미엘 님을 초대하도록 할게요.”
“그래, 그때를 기대하도록 하마.”
주안의 약속에 아미엘 역시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안 역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이내 아미엘과 마냐와 아냐에게도 간단하게 인사를 해준 후 발걸음을 돌려 아미엘이 열어준 워프포탈 안으로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 * *
“후우…….”
언제나 생각하지만, 이 워프포탈이라는 것을 이용하면 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이용할 때마다 찾아오는 울렁증에 속이 참 좋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주안을 곁에 있던 소니아가 조심스레 부축해 주며 소니아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괜찮으세요, 도련님?”
“그냥 조금 어지러웠을 뿐이에요. 아, 그보다 그걸 안 물어봤네…….”
“네? 뭘요?”
갸웃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빛나는 성흔이 담긴 왼손을 들어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후광에 대해서요.”
“…….”
요즘은 성흔을 쓸 때마다 나오는 이 후광이 사람들의 이목을 자꾸 집중시켜서 기분이 묘했기에, 이게 왜 나오나 싶어 성흔에 대해서 잘 아는 아미엘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주안이었다.
“뭐 어때요. 딱히 나빠 보이는 것도 아니고, 완전 반짝반짝 빛나서 안젤라 님은 엄청 좋아하시겠는데.”
“그야 엄마는 화려하고 빛나는 건 뭐든 다 좋아하시잖아요.”
화려한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주안의 엄마인 안젤라의 성격상, 주안의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만 아니라면 이 후광이라는 것도 매우 좋아할 게 분명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들이라니.
보석으로 잔뜩 꾸며도 좋지만,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빛나는 아들의 모습에 반색할 엄마를 생각하니 주안 역시 조금 아찔할 정도였다.
“엄마 앞에서는 당분간 신성력은 쓰면 안 되겠어요.”
“흐흥~ 과연 그러실 수 있으실까요.”
“절대 무리죠.”
주안의 다짐에도 소니아와 세냐가 실실 웃으며 주안의 기분을 팍 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주안 역시 확신이 없었기에 그저 한숨을 포옥 내쉴 수밖에 없었다.
“뭐, 나중에라도 물어보면 되니까……. 몸에 별로 문제도 없고, 오히려 신성력만 강해진 것이니 별일은 아니겠죠.”
“대신관 할아버지가 보면 이제는 아주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커서 뭐라 할 말은 없네요.”
성흔을 처음 보았을 때도, 주안 때문에 쓰러지고 깨어나자마자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다가왔던 황도의 대신관이었기에, 소니아의 말이 거의 백 퍼센트 맞을 거라 주안 역시 생각을 했다.
“어쩜 제 주변에는 정말 정상적인 사람이라고는 세라타밖에 없는 거 같아요.”
“뭐에요? 그럼 우리도 비정상이라는 거예요?”
“오빠가 더 비정상이거든요?!”
발끈하며 마치 자매처럼 화를 버럭 내는 소니아와 세냐.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주안이 재차 한숨을 내쉬자, 소니아와 세냐도 기분이 팍 상해버린 것인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주안을 노려보았다.
“뭐, 어쨌든 공작성으로 가서 최대한 빠르게 황도로 다시 올 수 있도록 할게요. 어차피 거기서 할 일은 다 끝났거든요.”
공작성에 워프게이트를 만든다는 것을 목적으로 갔었기에, 그것을 만든 지금은 그곳에서 할 일을 모두 끝낸 것과 마찬가지였다.
단지 예상 못 한 일로 일정이 조금 꼬였을 뿐, 그 역시 모두 해결된 이상 마를렌의 공작성에 더 이상 머물 필요는 없었다.
“남은 일은 할아버지가 모두 다 해주시겠지만…….”
모두 떠넘기는 것 같아 조금 그렇긴 했지만, 주안에겐 주안의 할 일이 있었고 가문은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이끌어갔기에 그런 할아버지가 주도해서 이끌어가야 하는 일도 있다.
이제는 주안이 끼어들어 참여하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완벽하게 주도해서 이끌어가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관여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음……. 그러면 오실 때도 이 워프게이트를 이용하실 생각이시죠?”
“네. 일단 그럴 생각이에요.”
“다들 놀랄 텐데……. 설마 이걸 집안사람들 모두에게 알릴 생각은 아니시죠?”
“당연히 아니죠. 일단 부모님에게는 확실히 말씀을 드려야겠고, 그 외에는 조금 생각해 봐야겠지만 일단 피터 아저씨에게도 알려드릴 생각이에요.”
아빠인 주레인 공작의 최측근들에게도 알릴 생각이 없었고, 근거리 호위기사인 에밀리 경은 물론이고 부관인 이리엄 경이나 저택경비대장인 아르센 경 등등, 가족들과 저택을 지키는 이들 모두에게도 알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여기서 피터는 이미 어느 정도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예외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세라타는 이미 주안이 알린 상황이었다.
“일단 이걸 알게 될 집안사람은 부모님과 할아버지, 소니아 누나와 피터경. 그리고 토미와 세라타, 워랜 경과 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예요.”
“딱 그 정도가 주안 도련님이 생각하는 가족의 범주 내인가 보네요.”
“그런 게 아니라…….”
하지만 소니아의 그 말에 주안은 뭐라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고, 주안에겐 정말 그 정도가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족과도 같이 생각하는 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전 삶 속에서, 가장 미안해하였던 인물들이었기에 그들을 품고 말고의 문제 이전에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참 좋네요. 저도 그 가족에 포함해 주시고 말이에요.”
그리고 소니아로서는 이런 주안의 가족이라는 범위 속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언제나 안젤라의 곁에서, 그녀의 가족으로 지내고 싶었던 그 마음과 바람을 조금은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녀에겐 더없이 좋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솔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으려나.”
“솔이 왜요.”
“그 뚱땡이, 의외로 입이 싼데…….”
“괜찮아요. ……워랜 경이랑 누나가 있잖아요.”
“쿠후후. 하긴…….”
사실 솔에게도 말을 할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적어도 솔은 워랜을 절대로 배신할 인물도 아니었고 그에게 역시 워랜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컸기에 따로 떼어 놓는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워랜이나 소니아가 나서면, 솔은 절대로 이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시무시한 미소를 지으며, 어떻게 솔을 괴롭혀줄까 생각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은 괜히 솔을 포함해 불행하게 만들었나, 고민했다.
‘뭐, 그건 솔의 사정이니까.’
그리고 솔에 대한 생각은 거기까지만 하며 깔끔하게 접은 뒤 주안은 여전히 솔을 괴롭혀줄, 아니, 협박할 생각을 하고 있는 소니아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누나는 뭔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네? 뭐가요?”
주안의 말에 소니아가 갸웃하자, 오히려 주안이 더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야, 이종족이니, 드래곤이니, 몬스터니……. 그런 걸 잔뜩 들었잖아요. 혼란스럽지는 않으세요?”
“헤에, 지금 저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그거야, 뭐…….”
걱정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였고, 이런 주안의 말에 소니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뭐, 혼란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제겐 제 일이 더 급하니까요.”
“네? 누나의 일이요?”
“어머, 앞으로 세냐에게 룬 문자와 마법을 잔뜩 배워야 할 제게 이종족이 뭐니, 드래곤이 뭐니, 그것에 신경을 쓸 틈이 전혀 없는걸요. 그치?”
“그렇죠. 마법이라는 학문을 배우는 상황에서 쓸데없는 공부는 사치이죠.”
소니아가 즐거워하며 그 말을 하자, 세냐가 그대로 받아주며 히죽거렸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마주한 채 서로 주먹을 내밀어 마주하는 것으로 한마음 한뜻이 된 것을 환영하였다.
그 다정한 모습에 주안은 왠지 심기가 불편해서 입술을 삐죽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