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16화
무언가를 속 시원하게 알아내고 풀어냈다기보다는 오히려 짐을 하나 더 가지게 된 기분이었다.
그 때문인지 애써 기운을 내며, 아미엘을 다독인 주안이었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참으로 무거웠고 머릿속이 매우 복잡해졌다.
몬스터의 등장이야 그 해결 방법을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알려 주었으니 그 과정이 어떨지는 몰라도 일단 답을 구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속성력 역시 사실상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 안심이었다.
‘하지만 마를렌 님이 아미엘 님을 이 세상에서 쫓아낸 원인이라니.’
모두와 함께 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도 주안은 다른 어떤 일보다 마를렌과 아미엘, 이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충격이 크시긴 하실 텐데……. 억지로 밝은 척이나 하시고 말이야.’
주안의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아미엘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세 요정 꼬맹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주안이 보기에는 그것은 그저 현재의 우울한 기분을 잊기 위한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그건 차차 생각하기로 하자.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 나가는 거야.’
아직도 마를렌이 왜, 어떤 연유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 명확해진 것은 없었다.
크세니아가 아미엘의 억압이 싫어서 행한 행동이라 하지만, 주안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가 가진 아미엘에 대한 묘한 감정이나 인간에 대한 악의적인 감정을 느낀 이상…… 그가 순수한 의도로 그 사실을 알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알리지 않아도 될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한 말을 조금은 믿어야 하는 것은, 결국 이종족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희망 정도뿐인가.’
마를렌에 대하여 보다 자세히 알려면 결국 현재까지 남아 있을 이종족인 엘프와 드워프, 특히 엘프를 만나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이 대륙에 존재한다는 것과 어디에 있는지까지 알아낸 이상 아미엘이 걱정하던 큰 짐을 하나는 덜어낼 수가 있었기에 그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내가 교단 쪽과는 인연이 깊다는 게 다행이긴 해.’
그동안 엄마로 인해서 꾸준하게 교단 쪽과 인연을 쌓아 오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 이렇게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날 줄은 솔직히 예상을 못 했다.
그저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에 아빠인 주레인 공작이 썩 달가워하지 않았고, 주안 역시 최근에는 돈을 쓰는 것에 조금 인색했었는데 말이다.
‘집에 가면 곧바로 기부금을 잔뜩 가지고 가서 대신관님을 만나봐야겠어.’
다른 것은 몰라도 돈으로 황도 대신관을 구슬리는 것은 정말 일도 아니기에 교단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정말 은밀한 것까지 그의 입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을 게 확실했다.
‘그런데 어떻게 교단의 최고위직에 그들이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들이 왜 인간들을 위해서 일어난 교단의 안에, 그것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숨기 쉬운 장소가 바로 인간들의 사회 속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게 동방 대륙의 말로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그런 건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왜 하필 교단이지.’
인간을 위해서, 대암흑기를 종식시키고 인류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 교단이었고 그런 만큼 적어도 북부에서는 교단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도 집중이 되기에, 이종족들이 몸을 숨길 만한 장소라고는 주안은 생각하지 않았다.
‘드워프가 가진 성흔을 이용했다 해도, 가능한 일일까…….’
성흔을 가진 이상, 교단이 내세운 신의 목소리를 보여주고 신의 힘을 나타낸다는 확실한 증거이자 증표가 있긴 했지만 그게 위험을 감수할 만한 것인지는 솔직히 주안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아, 모르겠다. 일단 알아보면 되겠지.’
오크라던 달란트 부족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몸을 지키고, 자신들의 집단을 일으켜 세우려던 그들의 생각을 한낱 어리숙한 인간인 자신이 어떻게 알겠나, 하는 생각에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고민하는 모습을 느낀 듯, 소니아나 아미엘, 세 요정 꼬맹이도 주안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방해하지 않은 것이 맞았다.
다만, 이런 주안을 다른 의미로 주시하고 있는 크세니아의 그림자에 대한 것마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 * *
“자, 그러면 잘 가라고. 나중에 또 와줬으면 좋겠어.”
“두 번 다시 오고 싶지는 않구나.”
“어이구, 말이라도 좀 좋게 해주면 어디 잘못되기라도 하시나.”
크세니아의 그림자를 상대한 것 자체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한 듯, 아미엘은 문의 앞에 서서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의 행동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미엘에게 말했다.
“하지만 분명 찾아오게 될 거야. 반드시.”
“…….”
마치 예언이라도 하는 듯, 그게 아니라면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는 듯 크세니아는 싱긋 웃으며 당당하게 그렇게 말을 했다.
이런 그의 행동에 주안도 영 꺼림칙하였고 빨리 이 이질적인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본능과는 달리 생각은 반대였기에, 자신들을 배웅하는 크세니아를 보며 말했다.
“크세니아 님은 계속해서, 앞으로도 쭈욱 이곳에 남아 있으시게 되는 건가요?”
“아마도? 하지만 뭐, 시간이 지나면 여기도 결국 없어질 거야.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으니까.”
지금도 충분히 오래되었고,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결계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이곳이 성흔의 힘으로 지탱되고 있는 장소라고는 하나 영원한 것은 없었다.
이런 주안의 말에 답해주며, 크세니아는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활짝 웃으며 주안에게 살갑게 말했다.
“너, 그러고 보니 성흔의 그 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지?”
“예? 아, 예.”
“그러면 여기에 한 번 쫙~ 뿌려주고 가지 않을래?”
“그건 좀 싫네요. 안녕히 계세요.”
“아?!”
아미엘에게 대하는 그의 태도나 주안이나 소니아에게 보여주었던 그 좋지 않은 감정을 주안은 잊지 않았기에 냅다 그에게 고개만 살짝 숙여주며 인사를 한 후 소니아를 데리고 성큼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이거 참, 미움받았나 보네.”
“미움받을 짓을 충분히 하였느니라.”
“하하, 그런가.”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는 듯 그저 조용히 걸어나간 주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이내 아미엘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들의 결계 자체를 고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너라면 보는 순간 깨닫겠지.”
“…….”
“아니,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나 보구나?”
크세니아의 그림자의 이런 능글맞은 미소와 태도에 아미엘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고는 세 요정 꼬맹이들도 주안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크세니아의 그림자를 마주한 채 말했다.
“네가, 아니, 네 이전의 그가 왜 이런 감정을 남기게 된 것인지 모른다. 하나, 그것이 순리라면 그 순리에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이니라.”
“그놈의 순리……. 잘못된 순리라면 바로 잡을 생각을 했어야지.”
“그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하는 일이다.”
“너란 녀석은 정말 답답해.”
마치 벽과 대화를 하는 듯, 아미엘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조용히 아미엘을 흘겨보며 이번에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듯 그녀에게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말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어, 아미엘.”
“나는 이게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런데도 아미엘의 대답은 냉정했고 또한 차가운 말을 그에게 해주었다.
“너나 나나 과거의 존재. 이 세상에 우리는 더 이상 필요 없느니라.”
“그렇다고 인간들의 세상이 되어서도 안 되지.”
“헛된 희망이고 이미 이 세상은 그들의 것이다.”
더 이상 인간들을 위협하는 몬스터는 없다.
앞으로도 없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사랑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그저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오크들의 후손을 위한 행동이었고 남아 있는 엘프와 드워프들을 위해서 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그리고…….
“저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마를렌의 후손이 있는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 그리고 주안을 위해서라도 아미엘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크세니아의 그림자에게 말하였다.
이런 그녀의 고고한 태도에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정말 오랜만에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며 웃어 주었다.
“뭐, 열심히 하도록 해.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스스로 불구덩이로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은 존재이니까.”
그의 말대로 아미엘 역시 인간들이란 어리석고 스스로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채 끝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는 그런 존재로 생각이 되었다.
“그런 위험한 행동을 곁에서 붙잡아주는 것 역시 인간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그 행동을 반성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며, 지금에까지 온 것은 모두 그들이 한 일이니라.”
하지만 인간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은 정말 어리석고 멍청하며 같은 일을 계속해서 반복해왔다.
“어쩌면 신께서 그들을 가장 아끼시던 이유도 가장 위태롭지만, 그 위태로움을 극복하고 발전해나가며 미래를 향해 걸어갔기에 그러하였던 것이겠지.”
다른 이종족들과는 달리 정말 불과 같이 활활 타오르는 인간들은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런데도 무언가를 끝없이 하며 발전을 멈추지 않았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가장 앞서 나갔고, 넘어져도 금세 일어났다.
“흥. 인간들을 얼마나 봐왔다고…….”
“얼마 보지 못 하였지만, 적어도 인간들의 좋은 부분만은 너보다 많이 보았다 생각이 된다. 그렇기에 희망을 가지는 것이니 말이다.”
“쯧.”
이미 인간에게 불신과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기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본 이 세상과 인간들은 호의적이지 않은 모습으로만 비추어졌다.
하지만 반대로 아미엘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 주안과 세냐를 통해 그 주변의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의 좋은 점만을 항상 전해 들었다.
그렇기에 서로 느끼는 인간에 대한 감정은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뭐, 알아서 하라고. 어쨌든 다음에 올 때는 선물이라도 좀 사 오고.”
“다시 말을 하지만,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잘 있거라.”
“하하…….”
주안과 마찬가지로 아미엘은 크세니아의 그림자에게 냉정하게 인사만을 해준 후 그대로 돌아서서 문의 바깥으로 향해버렸다.
“너는 분명 다시 오게 될 거야.”
그리고 그런 아미엘을 보며, 서서히 닫히는 문의 틈으로 주안을 보며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 성흔의 아이와 함께,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어. 엘 하임 아미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