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12화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아미엘 님을 쫓아낸 게, 그 문을 닫아버린 게 크세니아 님이라는 말씀이세요?”
“뭐,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아니, 절반 정도일까.”
장난 가득 미소를 지으며 고민하는 그를 보며 주안이 발끈하였다.
“대체 왜……!”
주안은 그의 친근하던 행동이나, 그 미소를 잊고,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버릇없는 행동에도 크세니아는 별달리 화를 내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글세, 그땐 그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최선이라니요. 그게 어째서 최선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갑작스럽게 가족과도 같았던 이들과 헤어졌던 그 고통, 그 충격은 당해보지 못한 이들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주안은 그러한 고통을 절실히,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아미엘에 대해서 많은 공감을 하였고, 그렇기에 그녀를 돕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단순하게 자신이, 그녀가 가족으로 생각했던 이종족들, 마를렌의 후손이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가족과 떨어지고, 그 생사를 모르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자신이 알던 모든 이가 이미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는 그 절망감을 잘 알기에 그녀의 곁에 있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일으켰다는 이가 바로 눈앞에 있었고, 그는 너무나도 당당했으며, 부끄러움도, 사죄도, 미안하다는 그 감정도 전혀 내비치고 있지 않았다.
크세니아의 그러한 모습에 주안은 발끈하며 나섰지만, 오히려 소니아가 황급히 이런 주안의 팔을 붙잡고 말렸다.
“차, 참으세요, 도련님.”
“누나, 하지만……!”
주안과 달리 소니아는 꽤 냉철했고, 그렇기에 주안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그녀는 잘 생각해야 하였다.
아직 눈앞의 남성이 정말 드래곤인지, 그 실체에 대해서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큰 거부감과 함께 위기감이 저 남성에게서 느껴졌다.
무엇보다 소니아는 자신의 본능이 알려주는 경고는 결코 무시해선 안 되었다.
“지금은 조금 냉정해지셔야 해요. 도련님이 이렇게 화낸다고 해서 무언가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 않아요.”
“그래도…….”
주안은 자신을 말리는 소니아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미엘 님이 이곳에 다시 돌아오시고 느꼈던 그 외로움을, 쓸쓸함을……. 누나는 몰라요.”
“예. 몰라요. 저는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도련님이 저분을 위해서 화를 내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큰 위로가 되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소니아는 주안을 더더욱 막아 세우며 말을 이었다.
“도련님이 나섰다가 다치시기라도 하면, 그게 저분에게 더 큰 상처가 되지 않겠어요?”
“…….”
주안도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새삼 깨달은 듯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크세니아를 바라보는 눈은 결코 좋지 못했다.
적대심에 가까운, 그러한 분노가 주안의 가슴 속을 가득 채워 나갔고 그러한 감정에 따라 성흔 역시 처음으로 위협적인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모습에 아미엘이 살풋 미소를 지어주었다.
다만, 크세니아는 조금 질투라도 나는 듯 주안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넌 예나 지금이나 주변에 널 위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라……. 하나 크세니아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았더냐?”
아미엘의 말에 크세니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봐야 나는 뭔가 빼먹을 게 잔뜩 있는 돈 많은 아저씨 같았을 뿐이지. 너야 기댈 수 있는 엄마 같은 존재였잖아.”
“엄마는 내가 아니라 마를렌이었다. 나의 역할은 그저 마를렌을 도와주는 역할, 그뿐이다.”
“마를렌, 마를렌……. 정말 너도 변하지 않아.”
“변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보다…….”
조용한 어투로, 크세니아를 보며 미소를 짓던 아미엘이 말했다.
“언제까지 내게 반말을 할 생각이더냐?”
순간 주변의 공기가 착 가라앉으며 차가워졌다.
그것을 느낀 주안과 소니아가 흠칫 놀랐지만 크세니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퉁명스레 답했다.
“왜? 옛 생각이 나고 좋지 않아?”
“옛 생각이라……. 그때를 생각하면 딱히 상관없겠지.”
“화난 거야? 내가 널 집으로 쫓아내서? 내가 한 것은 맞지만, 내가 모두 다 한 것은 아니라고. 나도 도움만 살짝 줬을 뿐인데.”
자기변호라도 하고 싶은 듯 크세니아가 아미엘을 달래듯 그렇게 말했지만 아미엘의 표정은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차가운 그 눈동자에 크세니아의 모습을 담아내며 아미엘이 말했다.
“참으로 건방지구나.”
그리고 아미엘의 주변으로 위협적인 마법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곁으로 세냐와 마냐, 아냐마저 크세니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위험해.’
순간 그렇게 느낀 주안은 소니아를 품에 안으며 신성력을 잔뜩 끌어올렸다.
사람을 보호하고 치료해 주는 신성력이란, 때론 그 어떤 위협적인 것에서도 막아설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힘이, 아니, 자신이 가진 성흔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주안은 아직 제대로 파악을 못 하였지만 적어도 이 힘은 신의 힘.
자신의 몸,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이의 몸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의지에 따라 주안과 소니아의 몸을 감싸는 신성력의 빛이 더욱 빛나더니 활활 타오를 정도였다.
이러한 주안의 모습에 크세니아나 아미엘마저 적잖이 놀란 듯했다.
“저 아이, 마를렌의 후손이기 이전에 제대로 선택을 받은 아이가 맞구나.”
“그 입으로 마를렌을 더 이상 입에 담지 말거라.”
그리고 아미엘이 손을 들고 크세니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껍질을 쓰고 있다 하여 네가 진짜 크세니아라 생각하지 말거라, 그림자여.”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잖아. 나 역시 크세니아라고.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남겨진 것인데.”
“그렇다 하여 네가 크세니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냉정한 아미엘의 말에 크세니아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 채 아쉬워하였다.
눈앞에서 아미엘이 무시무시한 마법을 겨누고 있음에도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말에 오히려 놀란 것은 주안이었다.
“그림자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이니라. 이곳은 크세니아의 무덤. 이미 크세니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이이다.”
“하지만 저분은…….”
눈앞에는 분명한 그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주안과는 달리 소니아는 무언가 눈치라도 챈 듯, 놀란 눈으로 크세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그림자라는 게…….”
애초에 드래곤이라는 그 존재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일반인들에겐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며 마법사들에게만은 단편적인 자료만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단편적인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 본 크세니아는, 아니, 이곳에 있는 이의 정체를 소니아는 대충 파악할 수가 있었다.
“다시 소개하지요.”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 전혀 모르고 있는 주안을 위해서인지, 크세니아가 싱긋 웃으며 주안을 보며 과한 몸짓과 행동으로 고개를 숙여 절도 있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모든 드래곤의 아버지이자 가장 마지막에 눈을 감은 고룡, 크세니아 델 마르스…… 의 잔존사념이자 이곳에 남겨져 묶여 있는 존재. 그림자입니다, 엘 하임 마를렌의 후손, 주안 마르티네스.”
그의 행동은 일편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주안은 그보다 그가 한 말에 흠칫 놀랐다.
“제 이름은 어떻게…….”
“여기 묶여 있다 해서 세상을 전혀 못 보는 것은 아니지.”
고개를 들고 주안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마치 주안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하여, 주안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그의 눈은 주안을 집어삼키려는 뱀과도 같았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크세니아는 주안에게서 금세 시선을 옮겨 아미엘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그림자라 해도 그가 눈을 감기 전까지의 모든 지식과 기억, 경험은 나에게 있어. 내가 곧 그이고, 그가 곧 나라고. 그러니 그림자니 뭐니 하면서 날 아래로 보는 건 그만두는 게 어때?”
“크세니아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다. 그러니 그가 눈을 감았던 그 순간이 바로 그의 최후이고 그라는 존재의 마지막이었느니라.”
“하아…… 정말 그런 고지식함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아.”
작게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쉰 크세니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뭘 물어보려고 이곳까지 다시 오셨나, 엘 하임 아미엘.”
“엘 하임……?”
엘 하임이란 마를렌의 성과도 같았으며, 그것은 엘프들에게 내려진 것이기도 하였다.
아미엘에게 그런 성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에 주안은 몰라 갸웃하자, 그에 대한 답을 지금 당장 해주긴 힘든 듯했다.
다만,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낸 크세니아의 행동에 아미엘이 살짝 찌푸렸다.
“말하라. 너는 어이해서 나를 밀어낸 것이더냐.”
그리고 한 걸음, 크세니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말하라. 드래곤들의 봉인이 왜 풀리고 있는 것이더냐.”
그리고 그에게 정말 그 답을 구하려는 듯, 아미엘이 일갈했다.
“말하라! 이 세상에 속성력을, 용언을 뿌린 것은 네 녀석이더냐!”
자신을 이 세상 밖으로, 고향으로 억지로 밀어내고 그 길을 끊고 문을 닫아버린 것에 대한 분노.
신의 명령 아래, 인간과 이종족들을 위해 펼쳐놓았던 몬스터를 격리한 세상과의 봉인이 풀린 이유에 대한 의문.
그리고 세상에 나타나선 안 되는 속성력이라는 이름의 용언의 힘이 흩어져 있는 것에 대한 이유.
아미엘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을 크세니아의 바로 앞에 서서 그를 올려다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행동에 크세니아는 오히려 당당하게 아미엘을 보며 싱긋 웃어 주었다.
“첫 번째는, 부탁을 받아서 들어 준 것.”
“부탁?”
“그래, 부탁. 너도 알잖아? 나는 그림자. 이곳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크세니아의 잔존사념이기도 해. 나의 활동무대는 어디까지나 이 장소, 이 무덤 안일 뿐이니까.”
그리고 크세니아의 잔존사념, 그림자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말했다.
“너를 밀어낸 것은, 아니, 밀어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이기에 내가 원인이지.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 너도 알잖아? 알면서도 내게 그 답을 확인하러 왔다는 것은, 아니길 바라서였던 것 아니야?”
“…….”
“그런데 아쉽게 되었네?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걸?”
크세니아의 능글맞은 그 미소에 아미엘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어느 정도 의심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되어선 안 되는 일이었고, 그러면 안 되는 일이니까.
아미엘은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했지만, 주안의 눈에는 억지로 그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아이로만 보였다.
그렇기에 주안은 소니아에게서 벗어나 아미엘에게 다가갔다.
“아미엘 님…….”
그리고 다가오는 주안에게 크세니아가 말했다.
“열쇠의 아이, 네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여는 역할을 하였지?”
“……예.”
“그럼 과연 그 이전에 그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답을 구하려던 이는 누구였을까? 아미엘을 저 멀리 쫓아낼 방법을, 내게 얻기 위해 찾아온 이는 누구일까? 응?”
“설마…….”
주안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크세니아는 오히려 더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아미엘에게, 주안에게, 아니, 이곳에 있는 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엘 하임 마를렌.”
그 짧은 말에, 아미엘의 주변에 퍼져 있던 마법들이 사라지고, 허공에 떠 있던 그녀가 조용히 지상으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디뎠다.
마치 큰 충격을 받으면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것처럼, 그러한 모습에 주안이 황급히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하지만 크세니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미엘을 차가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아미엘, 네가 아끼고 사랑하던 그 엘 하임 마를렌이 너를 쫓아내 주길 바라며 내게 찾아왔었다.”
크세니아의 그 말이 아미엘의 가슴만 아프게 찌른 것이 아니라, 주안마저 찔러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