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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09화 (20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09화

주안은 거대한 문을 보며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을 채워 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냐, 이건…….’

그것은 성흔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성흔 스스로가 저 문에 반응했다.

게다가 마치 주안의 몸, 팔을 자신의 것처럼 움직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주안은 그것에 공포를 느끼거나 하지 않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성흔에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르겠어. 난 왜…….’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의 몸이 어떤 것에 지배당하고 의지와 상관이 제멋대로 움직일 때 큰 공포를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주안은 오히려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미엘이 등지고 있는 거대한 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주안 도련님?”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주안을 보는 것은 소니아였다.

아미엘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저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듯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곧 주안의 손바닥에 새겨진 성흔에서 흘러나온 빛이 문을 감싸더니 서서히 문에 기묘한 글자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워프 게이트…… 그거랑 비슷해.’

자주 보았기에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워프 게이트의 문과 비슷했고, 그 문에 새겨진 글자들과도 흡사했다.

마치 물감을 채우듯 회백색의 글자가 서서히 주안의 성흔의 빛으로 채워지더니 거대한 문 전체를 감쌌다.

그리고 이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느릿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이게 아미엘 님이 말씀하셨던, 제가 열어 주어야 하는 문이에요?”

“그러하다.”

“왜 이걸 아미엘 님이 아니라 제게, 이 성흔에게 열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만든 거예요?”

사실 주안은 이게 가장 궁금했다.

이종족들, 엘프라던 마를렌의 성흔에 그러한 기능이 있다고는 하나 드래곤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자물쇠를 만들어 문을 걸어 잠글 방법이 없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아미엘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안전하지 않았을까.

“아미엘 님이 가지고 계셨다면, 훨씬 안전하고 편했을 것인데…….”

이종족이 아닌, 그 이종족을 보호해야 할 아미엘에게 열쇠가 주어졌다면 당시의 인간들에게서 보다 안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주안, 자신이라는 유약한 사람이 아닌 아미엘에게 이것이 있었다면 보다 안전하게 소유하며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나의 역할은 바라보며, 지켜주고, 일으켜 세우는 역할이다. 그것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역할은 이종족, 그리고 너의 역할이다.”

“하지만…… 저보단 아미엘 님이 좀 더 바르게 사용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성흔은 분명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교단에서 그렇게 바라마지 않는 힘이며, 아픈 이를 치료하고 보듬어주는 그 힘은 확실히 사람의 힘이 아닌 신의 힘이라고도 주안 역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좀 부담스럽긴 했다.

과연 이것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자격이 되는지, 그저 그 핏줄로 인해서 가지게 된 것이 아닌지…….

“너는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말을 하는구나.”

“으음, 앞으로도 그렇게 사용을 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러한 주안의 고민에 소니아가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었고, 아미엘은 살풋 미소를 지어주었다.

“주안 도련님은 그 성흔을 가지고 무슨 못된 짓이라도 저지르셨어요?”

“글쎄요. 딱히 그런 적은 없는 듯한데…….”

“네, 맞아요. 술 마시고 멋대로 사용한 것도, 따지고 보면 여성들을 여럿 행복하게 해주었으니 괜찮았고요.”

“……술 마신 건 또 왜 언급하시는 건데요.”

술 이야기만 나오면 주안이 움찔 놀라 얼굴이 빨개졌다.

그 때문인지 세 요정 꼬맹이나 아미엘이 묘하게 눈을 반짝이며 주시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여성들을 어떤 방향으로 행복하게 해준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해 보여 주안을 잔뜩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니아는 주안의 작은 투정에도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 힘을 주안 도련님이 가졌을 땐, 저도 좀 그렇긴 했어요. 저 마마보이가 저걸 가지고 무슨 짓을 저지를까, 하고 말이죠.”

“……저 싫어하시죠?”

“예전에는 그랬죠. 그래도 지금은 좋아하거든요.”

“솔직하시네요.”

별다른 고민도 없이 그렇게 말을 하며 생긋 웃으니 딱히 상처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주안도 예전에는 소니아가 자신을 싫어하고 탐탁지 않아 했던 것을 잘 알기에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다.

과거는 과거고, 그 과거의 행동에 대해 주안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보다는 지금이라는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가 더 중요했다.

“그 성흔이 저 문을 여는 열쇠인지 뭔지, 그딴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 성흔을 써온 주안 도련님은 확실히 그것을 가지고 있을 자격은 된다고 생각해요.”

소니아는 담담히 그 말을 하며 주안을, 아니, 아미엘과 세 요정 꼬맹이들에게도 들으라며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스란 왕국에서 많은 사람을 돕고 살렸고 그들의 삶과 터전을 지켜 주었어요. 주안 도련님이 그 성흔을 이용해서 그러셨죠.”

어떻게 보면 그것은 순수한 선의라기 사절단의 임무를 완수하고, 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다.

다른 이들은 칭찬을 마다치 않지만, 사실을 알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신관들을 설득시켰고, 주변 사람들을 움직였고, 아스란 왕가와는 척을 지고 있는 이들까지 모조리 끌어들여 그것을 해결했잖아요. 맞죠?”

“그거야…….”

“그 성흔도 성흔이지만, 도구는 다루는 사람이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하지만 주안 도련님은 훌륭하게 그 도구를 사용했어요.”

“도구라…….”

성흔을 도구에 빗댄 소니아의 말솜씨에 솔직히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마법사란 그렇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뛰어난 머리도, 특별한 존재만 가진다는 속성력도.

그들에게 그것은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쓰는 것인지에 따라 자신의 역량이 갈리는 그러한 세계에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마법사의 관점에서 본 주안은 도구를 훌륭하게 잘 사용했던 사람이었다.

“마를렌에 와서도 도련님은 도리안 경의 아들인 하마르를 치료해 주셨어요. 훌륭한 목걸이도 만들어주셨고요.”

“그건 그냥 도리안 경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고, 하마르가 안쓰러워서 한 거였어요.”

앞으로 가문의 기사로서, 훈련교관으로서 삶을 살아가게 될 도리안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고 하마르에 대한 연민으로 인한 치료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니아는 이런 주안의 말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도련님은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정말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리고 소니아는 이런 멋쩍어하는 주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치료하고 고쳐주고, 살려주고 싶다는 헛된 망상을 가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주안 도련님은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거야 전 성자도 뭐도 아니잖아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할 뿐이에요.”

“그게 중요한 거죠. 사람은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하고 주안 도련님은 그 주제를 잘 안다는 것이니까요.”

“…….”

주제를 안다는 말이 참 미묘하긴 했지만, 칭찬 같아서 조금 낯이 뜨거워졌다.

“그 주제를 모르고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들은 많아요. 자신의 주제와 분수만 알아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다, 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말도 있어요?”

“네, 방금 제가 생각해 낸 말이에요.”

“…….”

해맑게 웃으며 그런 말을 하는 소니아를 황당하다는 듯 주안이 바라보았지만,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아미엘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말이 틀리지 아니하다. 인간의 욕심도 그 주제와 분수를 모를 때 폭주하는 법. 너에게 그 성흔이 전해진 것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열쇠의 아이로 선택받은 것도 모두 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미엘은 주안을 보며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성흔은 말이다,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도, 그렇다고 그것을 전해줄 수도 없단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성흔 그 자체가 하는 것이니라.”

“성흔이요?”

“그래.”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인 아미엘이 주안과 소니아를 보며 말했다.

“오크들에게는 더 이상 성흔을 가진 이가 없단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냐?”

“그거야…….”

확실히 오크, 달란트 부족원 중 성흔을 소유한 이는 없었다.

대신 그들이 지키고 어머니의 나무라 부르는 세계수에 성흔이 자리를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아미엘은 이런 주안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오크들, 달란트 부족에겐 더 이상 지켜줄 가족, 엘프와 드워프가 없었기에 성흔은 자연스럽게 세계수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지킬 힘이 있고 자긍심이 있었기에, 더 이상 성흔이 필요치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달란트 부족의 초대 대족장, 달란트가 가졌던 성흔은 이종족들을 지켜주기 위한 성흔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지켜줄 가족이 사라지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자긍심, 그리고 힘을 믿기에 성흔은 그들에게서 떠났다.

이미 자립을 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이 힘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마를렌이 가졌던 성흔 역시 마찬가지이겠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존재……. 사랑을 하고 받고 싶은 그러한 존재……. 그러한 강한 바람을 가진 너였기에 성흔은 너를 선택한 것이겠지.”

“저는…….”

주안은 아미엘의 그 눈동자를 바라보다 흠칫 놀라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모습에 제대로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랬지. 난…….’

사랑을 받고 싶었다.

누구에게?

엄마에게.

사랑해 주고 싶었다.

누구에게?

엄마에게.

분명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렇게 바랐다.

삶의 끝에서 원망했지만 결국 자신이 바라던 것은 다시 한번 엄마를 만나고, 잘못되었던 것을 바로잡고,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해 주던 사람들에게 속죄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주안은 엄마를 여전히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고, 사랑해 주고 싶었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래를 바로잡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다.

자신으로 인해 어그러졌던 그 모든 것을 바로잡고 그들의 삶을, 행복을, 사랑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아마 마를렌과 비슷했겠지. 그렇기에 다른 이도 아닌 너에게만, 네 가문에서 오직 너만 그것을 가지게 된 것일 터이니.”

“마를렌 님과 같다, 라…….”

그때의 그분의 마음은 어땠을까.

확실히 초대 공작이신 힉스 마르티네스와의 사랑 이야기는 가문의 자랑이기도 할 정도로 두 사람은 행복하고 사랑했을 것이라 주안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전, 이 성흔을 가지게 되었을 당시에는 또 어땠을까 했다.

그녀는 그만큼 많은 이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보듬어주었기에 선택된 이 힘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네가 그것을 가졌다 하여 부담스러워 하지 말거라. 그것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말거라, 주안 마르티네스.”

그리고 아미엘은 주안을 보며 싱긋 웃어주며 말했다.

“너는 그것을 가져도 될, 열쇠를 가지고 있어도 될 훌륭한 아이이니라.”

“아미엘 님…….”

아니, 아미엘뿐만이 아니다.

소니아 역시 이런 주안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주안을 품에 꼬옥 안아주기까지 했다.

마치 고민이 많았던 동생을 위로해 주듯, 그렇게 안아주며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

“고마워요, 누나.”

주안은 아미엘의 말이, 소니아의 이 행동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 성흔은, 이 힘은, 자신에게 전혀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은 힘이라 늘 생각했고 고민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위로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자격이 있다는 그 말, 그리고 응원.

‘나도 조금은, 달라진 거겠지.’

누군가에게 비난만 받던 그때의 자신은 더 이상 없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위로도 받고, 응원도 받으며 의지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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