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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07화 (207/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07화

아미엘은 차분한 목소리로 세상의, 이전 시대의 진실을 이야기했다.

그 역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소니아는 뭐라 말하지 못했다.

세상을 진실을 알아내려는 마법사가,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였을 때.

소니아와 같이 침묵을 지키는 이와 반발하는 이로 나누어지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아미엘이 해준 이야기, 주안과 워랜, 토미와 메데아 대족장과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만났을 때 알려준 역사적인 진실.

그 당시의 삶을 살았던 아미엘이 보고 듣고 피부로 느꼈던 시대상을 전해 들은 소니아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이종족이 존재한다는 것이야 학계에선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지만, 요정이니, 드래곤이니……. 거기다 그 시대의 인간들이나 몬스터까지는…….”

“이해한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는 남겨진 것도 거의 없으며, 그 시간 역시 너무나 길기에 어쩔 수 없는 일으니까.”

드문드문 남겨진 자료들로 이전 시대의 아주 단편적인 역사적 자료들 모으고, 그것을 종합하며 인간의 상상력을 더해서 그 시대에는 이러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것이 현재의 학계 자료였다.

그것을 모두 신뢰할 수 없을 만큼, 빈 자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알아본다고 했지만, 허술한 것도 많고 전혀 다른 것도 있었지.’

주안 역시 아미엘의 부탁으로 아스란 왕국의 왕궁에 위치한 도서관을 이용해 보기도 하였고 황도 저택의 서재, 황실의 서재, 여러 학자를 초빙, 자료 수집…….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다 해보았다.

게다가 주안 정도라면 영향력도 대단한 가문의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인지라, 그 어떤 이들보다 많은 것을 알아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큰 소득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현재의 역사적 자료는 부실했고, 남겨진 것들 역시 많은 것이 빠져 있는, 제대로 된 자료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확실히 많이 혼란스러운 일이긴 해요. 알려지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사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도 힘들겠죠.”

주안 역시 이것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좀 힘들었다.

자신의 선조가 이종족, 엘프였다는 것이며 그런 자신이 인간과 엘프가 섞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대로 납득하는 것은 주안에겐 너무나 큰 일이었다.

게다가 주안만이 아니라 메데아 대족장은 자신들 자체가 이종족, 오크라는 것에 오히려 크게 반발하였을 정도다.

지금에도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보단, 스스로를 그저 위대한 선조인 달란트의 후예이며, 달란트 부족의 존재라는 자긍심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는 모두 믿어요. 확실한 증거가 남겨져 있는 이상, 그 시대를 살았고 보았고 겪었다는 것을 믿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정말이더냐?”

“진짜요?”

조금 혼란스러워했지만, 그것을 정리하고 금세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소니아의 모습에 아미엘 뿐만이 아니라 주안마저 꽤나 놀랐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그리고 상큼하고 개운한 미소를 지으며 소니아가 말했다.

“첫 번째 증거, 워프 게이트와 워프.”

“네? 그게 왜…….”

“역사적 자료로도 아주 단편적인, 짧은 문장만으로 오래전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을 뿐, 확인도 안 된 마법이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버젓이 사용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워프는 고사하고 근거리, 장거리용 이동 마법은 현 대륙 내의 마법 학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들이었다.

“현시대, 아니, 최소 800년 이전까지 그러한 마법을 사용한 이는 없었어요.”

그러한 마법을 너무나 손쉽게 사용하고, 만들어주었기에 소니아는 적어도 아미엘이 이러한 고대 마법에 능통한, 그 시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룬 문자와 룬 마법. 이것도 비슷하다 할 수 있죠. 이건, 어떻게 보면 더 엄청나고 가치가 있는 살아 있는 역사적 자료예요.”

룬 마법은 엘프에게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마법이라는 것이 매우 신빙성 있는 주장이었다.

드래곤에게서부터 엘프로, 엘프에게서 인간으로 마법이 전해져 왔다는 것은 가설이 아니라 정설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을 가장 높은 곳에 두는 이들에겐 꺼림칙한 주장이지만, 마법사들에겐 그딴 것은 소용이 없다.

항상 진실을 탐구하는 그들은 인간이 무슨 괴악한 짓을 했건, 그것을 숨기려 하건, 그것을 밝혀내고 자료를 남기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앞으로 확인할, 저에게 확인시켜 줄 드래곤의 흔적. 그것만으로도 그동안 이 대륙의 모든 역사적 자료들을 쓰레기통에 버려도 될 정도의 엄청난 발견이자 자료예요.”

무엇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욱 많다는 것이다.

바로 드래곤.

그 어떤 자료도, 주장도 소용이 없어질 이 엄청난 자료는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낼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소니아는 당당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죠. 합리적인 이유 아닐까요?”

“……그게, 합리적이에요?”

“합리적이거든요?”

주안만은 영 납득하지 못했지만, 소니아는 그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주안의 입장에서야 그렇지만 소니아나 다른 마법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먼저 믿을 수 있는 발판을 깔아두고 시작한 이야기였고, 이후 또 다른 진실을 알려줄 존재다.

아득히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마법사의 발언은 그만큼 힘이 있었고, 진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마법사의 생태.

소니아 역시 그러한 마법사였으며 아미엘의 마법적 힘을 이미 겪었기에 아미엘이 보여준 능력과 진실에 가까운 증거,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역사적 자료.

그 모든 것을 종합하면 아미엘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 소니아의 답이었다.

매우 합리적이고 깔끔한, 그러한 마법사의 답에 아미엘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말 특이하고 이상하구나. 항상 거짓으로 얼룩져 있지만, 진실 어린 눈으로 놀라게 하는구나.”

“거짓을 일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일 수도 있어요. 못생긴 사람에게 ‘너 못생겼다’라고 하는 것보다, ‘너 정말 착하게 생겼다’라는 말이 기분이 좋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게 더 기분 나쁜데요.”

주안의 작은 중얼거림에도 소니아는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다.

분명 인간은 거짓으로 삶을 살아간다 할 정도로 아미엘의 입장에선 평이 극도로 나쁜 존재들이다.

하지만 소니아의 말대로 항상 그 거짓말이 상처를 주기 위한 거짓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을 위한 배려의 거짓말 역시, 인간들은 항상 입에 달고 산다.

사랑하는 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소중한 이가 아프지 않도록, 약한 이에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이러한 선의의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이었고, 어찌 보면 본능과도 같았다.

그것을 이해한 아미엘은 인간들의 다른 면을 다시 깨달았다는 듯 표정이 조금 변하였다.

“항상 새로운 것을 알아가게 되는 듯하구나. 내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워나가는 기분이니라.”

“현자는 세 살배기 아이에게도 배움을 청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 그렇구나. 그렇기에 인간들은 끝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나아가는 것이겠지.”

이종족과는 달리 현실에 절대 안주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절망의 끝에 있는 허무라 하여도 인간들은 기꺼이 그곳으로 달려가 파멸을 맞이한다.

다만, 선의의 거짓말처럼 그것을 막고자 하는 이도 있으며 다른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 역시 있었다.

“우리가 단순히 빼앗기고 힘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안주한 채 서 있었기 때문에 달려가는 인간에게 뒤처진 것이겠지.”

그것이 설령 욕심이라 하여도, 욕심을 부리는 것도 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함을 이종족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가족이니까.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경쟁에서 밀려난 것일 뿐이었다.

“그것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씁쓸한 미소를 짓는 아미엘을 보니, 주안이나 소니아도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사라진 이종족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지켜야 할 이들은 사라진 후에야 그들이 살아갈 의미를 깨달아 버렸다.

“그래도 아직 달란트 부족이, 아미엘 님의 요정들도 남아 있잖아요.”

그리고 주안은 아미엘과 세 요정 꼬맹이들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에요. 과거의 일에 매달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멍청한 일은 없을 거예요.”

주안은 그렇게 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저는 있죠, 과거의 일을 후회하더라도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잊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이 한 멍청한 짓을.

잊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적어도 그 곁에는, 지켜줘야 할 이들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나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과거의 일을 반성하고 고쳐 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아미엘에게 해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아미엘이 과거의 일들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하였다.

‘적어도 나와 같은, 그런 멍청한 분은 아니시니까…….’

주안은 단 한 사람도 이끌지 못했던 거대 가문의 수장이었지만 아미엘은 달랐다.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따르던 수많은 이가 있었다.

또한 그녀의 잘못으로 인해서 이종족들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후회하는 것이 아닌, 좀 더 자신을 제대로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우와, 주안 도련님이 그런 어른스러운 말을 다 하시다니……. 저는, 저는……, 도련님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머리 쓰다듬지 마세요. 그리고 우는 척하지 마세요.”

일부러 훌쩍이며 주안의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고 칭찬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이 살짝 찌푸리며 한마디 해주었다.

‘정말, 사람이 조금 진지해져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런 모습 그 자체가 소니아다웠기에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주안 역시 웃을 수 있었다.

“네 주변의 아이들만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모두 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하구나.”

“제 주변 분들이 다 이상하긴 하죠.”

“그건 좀 그러네? 어째서 절 보면서 콕 집어 말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착각이세요.”

“흐응…….”

하지만 영 의심스럽다는 듯 그 시선을 거두지 않는 소니아의 눈빛이 따가워 주안이 애써 그 시선을 피했다.

다만, 그저 이런 주안과 소니아의 남매 같은 그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인지 아미엘의 어두웠던 표정이 사라진 채 살풋 미소를 지었다.

“그래, 변해야지. 나 역시 그래야 할 듯하구나.”

그것은 작은 변화였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매우 개운한 표정의 아미엘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감정을 가지게 만든다.

수많은 요정을 이끌던 여왕.

이종족들의 수호자.

드래곤의 친우.

그 모든 것을 다 떼어도, 아미엘은 그 곁에 함께 서서 나란히 걷고 싶은 존재였다.

적어도 주안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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