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06화
“여긴……?”
밝은 빛으로 인해 감았던 눈을 뜨니, 이번에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나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차가움에 주안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이내 따뜻함과 포근함이 그러한 서늘함과 차가움을 몰아내며 주안의 몸을 채워 나갔다.
“괜찮으냐?”
“아, 네.”
어둠이 물러나자 아미엘의 차분한 모습이 보였고, 아미엘은 주안이 많이 놀란 것에 상당히 미안해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부드럽게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고는 주안에게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구나. 나 역시 그에게 이 장소를 전해 들었을 뿐, 오는 것은 처음이라 이러한 장소라는 사실을 몰랐구나.”
“아미엘 님도 처음이세요?”
“그러하구나.”
아미엘의 말에 주안이 갸웃하며 묻자, 아미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 조차 이곳이 처음이라는 것에 주안은 솔직히 조금 놀랐다.
하지만 곧 그녀가 왜 이곳을 방문하지 않은 것인지, 처음이라는 것인지 그 이유가 대충 무엇인지, 눈치챘다.
조용히 자신의 왼손을 들어 그 손바닥에 새겨진 성흔을 바라보자, 그 모습에 아미엘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를 알고, 들어오는 방법은 알아도 시도를 하지 못 하는 이유.
그리고 방문할 이유가 사라졌기에 아미엘은 이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열쇠가 없다면 크세니아가 잠든 그 장소,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었으며,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그 땅의 남겨진 이종족에게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찾아오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을 그녀는 여전히 새겨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종족의, 아니, 인간들마저 그 위험에 내던져져 있었기에 아미엘은 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지금 이곳을 방문한 것이니 말이다.
이런 심각함을 이해하고 아는 것은 아미엘 혼자겠지만, 그만큼 심각하고 비장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데 한 가지 너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있느니라.”
“네? 저한테요?”
그녀의 사뭇 진지한 표정에 주안은 침을 꼴깍 삼키며 아미엘의 시선을 마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모습을 보며, 아미엘이 말했다.
“……네 다리에 매달려 있는 그 아이, 그만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어떠하느냐.”
“…….”
아미엘의 말에 주안이 조용히 시선을 내려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누나, 그만 눈 뜨세요.”
“으, 으으…….”
쪼그려 앉아 주안의 다리에 매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니아의 모습을 보니, 주안은 자신이 놀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듯했다.
게다가 이런 소니아의 모습을 보니, 이제는 아미엘이 당황한 듯하였다.
“마, 많이 놀란 것이더냐. 정말 미안하구나.”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아미엘은 소니아의 그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아미엘을 대신하여 세냐나 마냐, 아냐가 소니아의 머리와 어깨 등에 올라가 소니아를 달래줄 정도였다.
주안 역시 이런 소니아를 조심스레 일으켜 세우며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깜깜한 거 무지 무서워하셨나 보네요.”
“어, 어쩔 수 없는걸요. 어렸을 때, 소금 창고에 밤새도록 갇힌 일이 있었었단 말이에요. 그때도 얼마나 무서웠는데…….”
“……대체 뭘 하다가 거기에 갇히신 건데요.”
아무리 소니아의 부모님이 나름 엄하고 시집을 빨리 가라고 잔소리를 하여도 그렇게 무지막지한 이들이 아님을 주안은 기억하고 있었다.
솔 남작이나, 그 남작 부인에 대한 것은 좋은 기억들밖에 없었기에, 소니아를 소금 창고에 가두어둘 그런 사람들로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이런 주안의 의문에 소니아가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며 말했다.
“언니들이랑 숨바꼭질하다가, 거기 숨어들어 갔는데…… 숨어 있다가 그대로 잠드는 바람에 밤새도록 갇혀 있었거든요.”
“……트라우마 이전에 무진장 혼나셨겠네요.”
“차라리 그대로 소금 창고에서 소금에 절여지는 게 나았다고 생각이 됐어요.”
“그건 좀 끔찍한데요. 그래도 혼날 만하셨잖아요.”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혼난 것에는 전혀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소니아의 행동이었다.
오히려 크게 놀랐을 솔 남작 부부와 소니아의 언니들이 더욱 불쌍해질 지경이었으니까.
이런 주안의 말에 공감이라도 하는 듯, 이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세 요정 꼬맹이 역시 소니아를 위로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아미엘의 곁으로 날아가 버렸다.
주안도 생각 같아서는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어둠을 무서워하는 누나를 떼어내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보다 여긴 어디예요?”
여전히 주안의 팔에 꼬옥 매달려 있던 소니아였지만, 그래도 정신을 조금 차린 듯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저도 정확한 장소는 잘…….”
주안 역시 그것을 모르기에 소니아의 말에 답해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답을 아는 아미엘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아미엘은 그저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었다.
“알려줄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설령 안다고 하여도 올 수 있는 장소도 아니란다.”
그것을 주안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니아는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는 호기심 가득한 마법사였지만, 아미엘의 엄숙한 분위기에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억지로 이렇게 참아내는 것을 그대로 보이는 소니아의 모습에 아미엘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소니아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다시 소개하마. 나는 최후의 드래곤, 크세니아의 친우이자 요정들의 여왕, 아미엘. 이종족들을 지켜내기 위해 이 땅에 초대된 존재이니라.”
날개를 펼치고, 허공에 떠오른 채 소니아와 눈높이를 맞춘 아미엘의 차분한 소개에 순간 소니아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뻔하였다.
그만큼 그녀는 작은 체구와 아이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그녀의 앞에 서면 그 어떤 존재라도 한없이 작아지고 고개를 숙이게 만들 그러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아미엘의 소개에, 소니아는 자신도 무언가 소개를 다시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했지만 이내 그녀의 소개 내용에 있던 말에 흠칫 놀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드래곤…… 이종족……?”
“아미엘 님……. 다 말씀해 주실 생각이세요?”
세냐가 할 말을 오히려 주안이 대신 하자, 아미엘이 조용히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네가 저 아이를 나에게 소개해 주고자 하였을 때,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더냐.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였기에 초대한 것이니라.”
속성력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함에 그녀의 지식이 필요하였고, 그렇기에 주안의 조언과 바람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초대를 해준 것이다.
그런 만큼,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알려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받는다는 것이 아미엘의 생각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작은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주안이 믿는 존재가 소니아였고, 그런 주안을 믿었기에 허락해 줄 수 있던 것이 아미엘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너를 이곳에 초대한 이유는 저 아이의 조언에서였다.”
아미엘의 말에 소니아가 주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괜히 머쓱해져 그런지 주안은 소니아의 시선을 피한 채 딴청을 피웠지만 말이다.
“너에게 속성력이라는 것을 듣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한 나의 호기심…….”
그리고 아미엘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너의 호기심을 채워줄 때인 듯하구나.”
룬 문자나 룬 마법이 아니다.
이곳에 온 이상, 그리고 초대한 이상.
이미 한 배를 탔다는 것에서 아미엘은 소니아에게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 그리고 이종족과 인간들의 이전 삶, 잊힌 역사의 일부분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이미 마음을 굳힌 듯, 아미엘의 그 모습에 주안 역시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주안 역시 소니아를 아미엘에게 소개해 주고자 했을 때부터,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아미엘은 조심스럽게 소니아의 의중을 물었다.
“무엇보다 너는 마법사,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며 많은 것을 공부하는 이. 하지만 네가 아는 세상과 나의 세상, 이 세계의 현재와 과거의 차이로 인하여 크게 혼란이 올 수 있느니라.”
하지만 이런 아미엘의 진지한 말에도 소니아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진실을 외면하고 피할 정도로 마법사들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에요. 그게 설령 감당하지 못한다 하여도, 반드시 알아내려는 존재들이죠.”
마법사란 그렇다.
호기심이 없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대성할 수가 없다.
무언가를 끝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모두 이 호기심에서 나오는, 세상을 알고자 하는 것에서부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소니아의 당당한 말에, 주안 역시 그녀가 천생 마법사라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푼수 같고 옆집 누나 같았는데, 정말 마법사는 마법사구나.’
언제나 팽팽 놀 것만 같은 소니아지만, 그래도 할 일을 다 한 뒤에는 자신의 방에서 많은 것을 공부하고 늦은 밤까지, 혹은 새벽까지 잠을 청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녀 역시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많은 것을 연구하고 공부하던, 마법사였다.
이런 소니아의 모습에 아미엘 역시 소니아를 보는 눈빛이 조금 변하였다.
“그래, 그렇구나. 그러한 마음가짐이라면 나 역시 안심하였다.”
그리고 아미엘이 싱긋 웃으며 소니아를 보며 말했다.
“너는 진실을 들을 자격이 있는 아이로구나. 저 아이가 가족이라 칭할 만한 아이로다.”
“가족?”
아미엘의 말에 잠시 갸웃한 소니아였지만, 이내 주안을 보며 밝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주안을 꼬옥 안아주었다.
“누, 누나?!”
“그럼요. 가족이죠. 그렇죠? 도련님?”
“으…….”
소니아에게 꼬옥 안겨서 그런지 얼굴이 뜨거워지고 빨갛게 변해 버린 주안이 당황하는 바람에 그 품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괜히 행복해하는 소니아를 떨어뜨려 놓기도 조금 미안하였기에, 지금은 양보해 주자고 생각하며 그저 그 품에 안겨 있을 뿐이었다.
“전 있죠, 이런 말을 하면 무례할 수 있지만……. 진짜 안젤라 님이 제 언니였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럼 저한테는 이모네요?”
“……나이 많아 보여서 그건 좀 싫은데요.”
참 따지는 것도 많은 누나 같은 이모님이셨다.
하지만 주안 역시 이런 소니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엄마인 안젤라의 곁에서 함께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곁을 지켜주었다.
그것은 보통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아니었고, 주안은 그런 소니아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니아를 진심으로 가족 같은, 아니,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이로 생각을 하였으니까.
“그래, 가족. 피가 이어져 있지 않다고 해도 마음이 통하고, 뜻이 맞으면 그것이 가족이지.”
주안과 소니아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던 아미엘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주안과 소니아에게 말했다.
“너에게 해줄 진실은, 이러한 가족의 이야기이니라.”
이종족이라는.
그녀에겐 가족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