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05화
“진짜 대단한 언니라니까요.”
“…….”
세냐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아미엘은 주안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시선을 슬쩍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그만큼 소니아에게 크게 놀랐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지만, 이런 아이를 처음 상대해서 그런지 참으로 당황스러워하는 듯했다.
“정말 괜찮겠느냐?”
“상관없어요.”
“실수로라도 말을 잘못 꺼낸다면 네게 큰일이 일어날 수가 있느니라.”
“동방 대륙의 말로, 그건 다 제 업보라 생각할게요.”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 네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단다.”
“술은 안 마셔요. 앞으로도 마실 일도 없을 거예요. 누구 덕분에.”
슬쩍 주안을 흘겨보니, 그런 소니아의 시선에 따라 아미엘과 세냐의 시선도 주안에게로 향했다.
그 때문에 주안은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버럭 소리쳤다.
“왜, 왜 날 보는 건데요?!”
“그야, 술주정 하면 이미 제국에서도 유명해진 주안 도련님이라…….”
“술주정?! 이제 저도 술 안 마실 거거든요!”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렸던 것이더냐?”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술버릇이 나쁜 오빠셨네요.”
아미엘의 안타까운 시선에 주안이 당황하며 어버버하자, 그 곁에 있던 세냐가 눈매를 좁히고는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때문에 주안이 항변하듯 크게 소리쳤다.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었다고?! 오히려 좋은 술주정이었단 말이야!”
“세상에 좋은 술주정이 어디 있어요?”
“있거든요? 술을 마시고 청소하는, 굉장히 칭찬받을 술주정도 있다고요.”
“흐응…….”
전혀 믿지 못하는 세냐의 모습에 그 증거라도 대고 싶었지만, 그것은 먼 훗날 유명한 젊은 귀족의 아름다운 미담으로까지 소개되었던 일인지라 확인시켜 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아미엘이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을 반짝이며 주안을 주시하자, 진심으로 식은땀이 다 날 정도였다.
‘이분이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던 거야?!’
반쯤은 속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미엘의 표정은 이전과는 꽤나 달랐다.
어떻게 보면 소니아의 영향 같기도 한데, 사람들을 금세 자신의 분위기로 만들어 버리는 그 능력이 너무나 대단해 감탄이 다 나올 정도였다.
“나중에 주안 도련님이 어떻게 술주정을 부렸는지 말씀드릴까요?”
“그걸 왜 말해준다는 건데요?!”
“어이해서 지금이 아니라 나중인 것이냐.”
“지금도 안 되고, 나중도 안 돼요!”
“그야 지금 말하면 주안 도련님이 필사적으로 막으실 거니까요. 그건 좀 귀찮거든요.”
“사람 말 좀 들어요! 아니, 그보다 귀찮아?!”
주안을 무시한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주안은 화가 잔뜩 났지만, 그마저도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시해 버리는 두 사람이었다.
‘대체 갑자기 왜 친해진 거야…….’
뭔가 매우 억울했고, 하소연할 곳이라고는 세냐 정도뿐이었지만, 세냐 역시 흥미롭다는 듯 소니아를 주시하고 있어서 그마저도 무리였다.
게다가 다른 두 요정 꼬맹이, 마냐와 아냐마저 여전히 과일을 오물거리면서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정도였으니, 도움을 바랄 수도 없었다.
“으…….”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앓는 소리를 내는 것 정도뿐이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아이로구나. 이런 너에게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이니라.”
“괜찮아요. 어디에 묶여서 속박당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 거 좋아하지 말라고요.”
수십 년을 묶여서 한 사람의 곁을 지키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소니아였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도 여전한 것에 주안은 정말 우울해질 지경이었다.
정말 저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을 듯했다.
* * *
마법사에겐 어기지 말아야 할 맹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 어길 수 없는 계약, 말할 수 없는 것…….
중요한 것에 대해서 서로 정할 때 특정한 마법의 연결고리와 족쇄를 채워, 약속을 어길 시 큰 불이익을 안겨다 주는, 마법사로서 할 수 있는 신뢰의 증표 같은 것이었다.
사실 신뢰의 증표라기보단 엄청난 위약금에 가깝지만 말이다.
“이게, 끝이에요……?”
소니아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었던 아미엘이 그 손을 떼자 갸웃하며 그렇게 물었다.
“그래, 끝이니라.”
“진짜요? 겨우 이게요?”
하지만 복잡하고 쓸데없는 절차와 부담스러운 공증인 등을 모두 배제한 채 그저 아미엘이 소니아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맹약이 끝났다는 것에 소니아는 적잖이 당황한 듯하였다.
그리고 이런 소니아를 보며 아미엘이 살풋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나를 신뢰하였고, 나는 너에게 신뢰의 증표를 건넸다. 그 외에 더할 게 있더냐?”
“우음…….”
“맹약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서로 약속을 어기지 말자는 진심이 있다면, 맹약의 마법은 더없이 간단하고 단단하게 맺어질 수 있느니라.”
신뢰가 없는 인간들이기에 여러 부가적이고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만 예전의 이종족들 같은 경우는 이처럼 간단하였다.
이렇게 간단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소니아가 진심을 보였기에 가능하였다.
그것을 알기에 아미엘은 소니아를 조금 더 살갑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맹약의 힘은 더욱 강하게 발동되니, 주의하거라. 이것은 절대 농이 아님을 잊지 말고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절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을게요. 우리 도련님만 조심한다면야 전혀 문제가 없어요.”
“……저도 아무 말 안 할 거거든요?”
“술 마시지 말고요.”
“안 마신다고요.”
투덜거리는 주안의 모습에 소니아나 아미엘이 작게 웃어주었다.
“룬 문자와 마법은 저 아이와 함께 있을 세냐가 알려줄 터이니, 열심히 배우거라.”
“세냐가요? 우음…….”
“신뢰가 가지 않느냐?”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잠시 고민하던 소니아가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세냐한테 선생님이라 불러야 하는 거예요?”
“고민하던 게 그거였어요?”
“네.”
“……정말 쓸데없는 부분에서만 진지해지시네요.”
성격이 참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기에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나한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싫어요?”
“싫다기보단, 아무래도 나보단 어려 보이고…… 그동안 나한테 언니라고 하던 애한테, 선생님이라고 하려니…….”
고민이 깊다는 듯 중얼거리는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이 뭐라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이런 주안보다 세냐가 먼저 말했다.
“저 언니보다 나이 많은데요?”
“응?”
“저 언니보다 나이 많다고요.”
“…….”
새침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허리춤에 손까지 올린 채 소니아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하는 세냐.
작은 몸과 함께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 삐죽 튀어나와 불만을 그대로 표시하는 입술에, 째릿 노려보는 눈까지.
“……어디를 봐서?”
“익?! 사람, 아니, 요정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요.”
“우음…….”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신의 나이를 애써 주장하는 세냐의 모습도 참 안쓰럽다.
아무래도 나이란 여성에게 가장 민감한 부분 중 하나였다.
그것을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란 보통의 용기로는 힘들다는 사실을, 주안은 주변의 감당 못 할 여성들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엄마였고, 두 번째는 소니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니아는 세냐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주안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진짜예요?”
주안은 그러한 소니아의 말과 시선을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도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적어도 저희보다는 훨씬…… 아, 아니. 적당히 많긴 할 거예요.”
“……?”
잽싸게 말을 바꾸며 고개를 돌리는 주안의 모습에 소니아가 갸웃했지만, 주안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세냐가 노려보는 시선이, 참 무섭다는 그 말을 하기에는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대체, 세냐나 아미엘…… 님이라는 이분의 정체가 뭐예요?”
“그게…….”
“그러려니 하며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제가 아는 상식을 이미 한참 벗어난 듯해요, 주안 도련님.”
계속해서 비밀로 하긴 좀 그랬다. 나중에 말해주기로 했지만, 소니아에겐 갈수록 더 이해되지 않는 일들만 일어날 것이다.
그녀를 데리고 드래곤의 무덤, 크세니아가 잠들었다는 장소까지 함께 갈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주안의 곤란함을 이해한 듯 아미엘이 조용히 나서서 말했다.
“이 세상에는, 현재 요정이라는 것에 대한 그 어떤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들었다. 맞느냐?”
“학술적인 내용이라면 전혀 없죠. 아이들의 동화나, 어디 지방의 전설과 신화, 옛 이야기라면 모를까.”
그러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이종족들.
엘프와 드워프, 오크와 요정.
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소니아의 말대로 학자들이 연구하고, 그에 대한 학술적인 자료들을 남겨놓고, 끝없이 논쟁하여 알아가려는 것은 오직 엘프와 드워프, 오크에 관한 것들이지, 거기에 요정은 없었다.
요정은…… 그저 허구이며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 나오는 존재들일 뿐이었으니까.
“그에 관한 이야기는 저 아이보다, 나의 입을 통해 알려주는 것이 쉬울 듯하구나. 너라는 아이는 똑똑해 보이니, 우리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금세 이해할 수 있을 듯하구나.”
“뭐, 주안 도련님보다야 훨씬 똑똑하지만…….”
“……사람을 옆에 두고 그런 소리는 실례예요.”
“흐흥~ 그런가요.”
싱글싱글 웃는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이 불만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런 주안과 소니아의 친남매 같은 투탁거림에 아미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으니, 이만 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자꾸나.”
“네? 가면서?”
소니아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웃하자, 주안이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
“실은 누나를 데리고 함께 갔으면 하는 장소가 있었거든요. 사실 그 속성력이랑 관련이 있는 곳이라…… 누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거였어요.”
“아하…….”
그제야 이러한 비밀을 꼭꼭 숨기고 있던 주안이 직접 나서서 자신에게 밝히고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를 알겠다는 듯 소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이 속성력이랑 관련이 있는 장소라는 게 어디예요?”
그녀 역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힘인 이 속성력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없지는 않았다.
여전히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이 되지만, 정확한 답이 나온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런 소니아의 말에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무덤이에요.”
“웬 무덤?!”
주안의 말에 흠칫 놀라는 소니아.
그리고 이런 소니아를 보며 주안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입을 열었다.
“드래곤의 무덤이거든요.”
“…….”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주안의 말에 그저 멍하니 주안을 바라보며 말이 없는 소니아였지만, 이내 그녀의 몸이나 주안의 몸.
그리고 아미엘과 세냐와 마냐, 아냐의 몸까지 밝은 빛이 감싸기 시작하였다.
“가도록 하마.”
조용하고 차분한 아미엘의 말이 끝나자, 어느새 빛과 함께 아미엘의 방에 있던 모두가 사라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