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02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몰라 주안은 일단 워프 게이트를 통해 소니아를 데리고 아미엘이 있는 세계수의 방으로 이동했다.
워프 게이트를 통과하면서도 마법적인 부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던 소니아였지만, 순식간에 이동되어 오니 꽤나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소니아는 워프 게이트를 통해 도착한 장소를 둘러보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여기가 대체 어디예요? 공작성은 아닌 것 같은데.”
“이곳은 나의 집, 세계수이니라.”
“응?”
주안의 후광과 워프 게이트, 그리고 금세 넘어온 이 장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조금 늦은 듯, 조용히 앉아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고 있던 아미엘의 말에 소니아가 흠칫 놀라며 그곳을 돌아본다.
“누구……?”
이곳은 자신이 알던 장소가 아님을 파악하고, 낯선 아이가 반겨주는 것에 놀랐지만, 경계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소니아는 아미엘의 그 모습에, 아직 어린 소녀의 모습에도 무언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은 것인지 아미엘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주안은 이런 소니아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뭔가, 제대로 된 실력자들은 다들 아미엘 님을 보면 경계를 하는구나…….’
주안이 느끼지 못하는 그런 것을 느끼는 듯, 메데아 대족장에서부터 마누엘 전대 대신관, 그리고 워랜과 토미까지.
그 모든 이가 아미엘을 보고 잔뜩 긴장했었다.
주안이 보기에는 조금 특이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일 뿐인 아미엘임에도 그들에겐 다르게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아미엘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니아는 기어이 주안의 팔을 살며시 붙잡은 채 아미엘을 주시했다.
이런 모습의 소니아의 모습은 낯설고 생소했지만, 이대로 두어선 안 되었기에 주안이 재빨리 나서서 소니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안심시킨 뒤 말했다.
“저분은 세냐랑 마냐, 아냐가 모시는 아미엘 님이세요. 이곳, 세계수를 지키고 계시는 분이시기도 해요.”
“세계수라니요? 그 아이들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그 큰 나무 말이에요.”
“뭐, 비슷하긴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소니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아미엘을, 그리고 주안을 번갈아가며 보며 갸웃한다.
이런 소니아에게 조금 더 설명해 주었다.
“무엇보다 워프 게이트를 만들어주신, 아니, 만들게 허락해 주신 분이세요. 만든 건 물론 세냐였지만.”
“워프 게이트?!”
깜짝 놀라는 소니아에게 아미엘이 ‘만들어주었다’라고 말을 꺼내려다 세냐가 노려보기에 잽싸게 말을 바꾸었다.
그래도 그런 순발력이 도움이 된 것인지, 세냐가 뚱한 표정으로 주안을 노려보던 표정을 풀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주안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세냐와 마냐, 아냐가 모시는 분이라는 것에서 사라진 고대 룬 문자를 이용한 마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소니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거기다 자세히 보니 조금 크다는 것뿐이지, 세 요정 꼬맹이와 마찬가지로 특이한 날개를 가진 것에서 소니아는 아미엘 역시 요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정…….”
“예, 요정이세요. 그것도 요정들의 여왕님이시죠.”
“여, 여왕……?!”
요정이라는 것이야 소니아도 말하지 않아도 대충 파악을 끝낸 상태였지만, 여왕이라는 말에는 크게 놀란 듯했다.
얼마나 놀랐던 것인지, 순간 무릎을 꿇고 절을 할 뻔했으니까.
그것을 겨우 말린 주안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할 뻔한 소니아는 황급히 엉거주춤 서 있던 것에서 주안을 보며 말했다.
“대, 대체 주안 도련님은 어디서 뭘 하시고 다니시는 거예요? 공작성에 갔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어요? 아니, 아스란 왕국에 갔던 것도 전부 거짓이었어요?”
“아스란 완국도, 공작성이 있는 마를렌도 제대로 다 갔어요. 단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소리치는 소니아의 잔뜩 흥분한 얼굴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은근슬쩍 피하며 주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스란 왕국도, 마를렌의 공작성에도 다 갔다가 이곳에 온 것이지만.”
“여기가 대체 어디인데요? 세계수라는 나무가 진짜 있어요? 하지만 그런 나무나, 지명은…….”
소니아가 이상하다는 듯 갸웃하며 주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비록 그녀가 마법을 대충대충 배우는 것 같았지만 그 재능을 가지고 충분한 실력을 발휘하였고, 공부 역시 뒤떨어지지 않게 하였기에 지식은 웬만한 학자들보다도 나았다.
마법사란 똑똑하지 못하면 되지 못하는 직업이었고, 기억력과 빠른 두뇌 회전은 그 어떤 이들보다 뛰어났다.
주안처럼 무척이나 비싼 마법 아이템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재능인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기억력 역시 좋아 책들은 한번 읽으면 웬만해선 잊어먹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읽었던 지명과 식물에 관한 책들을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세계수라는 것은 그저 옛날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이런 소니아에게 뭐라 설명해 주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는 듯 주안이 곰곰이 생각에 빠졌지만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소니아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부터 말씀드린다면, 남부 대밀림의 깊숙한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남부, 대밀림……?”
“예, 남부 대밀림. 정확히는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 그 지도자 격 부족인 달란트 부족이 머물고 있는 땅이에요.”
차분한 주안의 말에도 소니아의 혼란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남부 대밀림이라는 주안의 말이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자신은 황도에서 이곳까지 단 한 걸음 만에 왔다는 것이다.
남부 대밀림이라고 하면 황도에서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릴 거리였으니까.
그런 엄청난 거리와 한 걸음에 왔다는 그 괴리감에 혼란스러워하던 소니아도 순간, 남부 대밀림과 원주민이라는 말이 정리되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서, 설마 주안 도련님이 만나서 친분을 쌓았다는 그 실력자가 있다는, 남부 대밀림 원주민들의 땅?!”
“음…… 그렇죠. 거기예요, 거기.”
주안이 아스란 왕국으로 갔던 그 사절단의 일.
그리고 그곳에서 뜬금없이 터진 전염병으로 인해서 남부 대밀림에 방문했던 일.
황도로 되돌아왔을 때, 처음 보는 요정이라 칭한 아이들과 함께 있던 일.
복잡하게 엉켜있던 실타래 같았던 것들이 하나둘 풀어지며 정리가 되자, 그제야 소니아도 이 모든 일이 대충 파악된 듯 고민스러워하던 표정이 조금은 풀리며 주안에게 말했다.
“이미 남부 대밀림으로 처음 갔었던 그때부터 이곳을 알고, 저 요정 아이들을 만나고, 저분을 만났다는 거네요.”
“미리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해요. 일단 비밀로 해야만 해서…….”
“……워랜도 아는 사실이죠? 같이 왔었잖아요.”
“예…….”
워랜뿐만이 아니라 토미도 마찬가지였지만, 언급만 하지 않았을 뿐 소니아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함께 남부 대밀림으로 전염병 치료의 목적으로 방문했다는 것을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기에, 동행했던 이들 모두가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제는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사절단에 소니아 역시 포함되었었으며, 거기다 주안 때문에 토미와 함께 가출까지 했던 전력이 있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늦게나마 저한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주안 도련님.”
“아니에요. 조금 더 일찍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하아…… 정말이지, 도련님은 어딜 나가면 뭔가 큰일을 하나씩 가져와서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것 같아요.”
“아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조금은 심통이 난 것인지 소니아가 볼을 살짝 부풀리며 주안을 노려보자, 주안 역시 이런 소니아를 달래며 어색하게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일은 아직 엄마나 아빠도 모르는 일이에요. 아니, 할아버지도 모르세요.”
“예? 정말요?”
“네, 나중에 알려 드릴 생각이긴 하지만, 아직은 모르세요.”
“그분들도 모르는데, 왜 저한테는…….”
“사실 소니아 누나에게도 나중에 알려드리고 싶었지만, 물어볼 게 있어서요.”
“물어볼 것이요?”
대체 뭘 물어보고 싶기에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에게도, 가족인 아빠와 할아버지에게도 알리지 않은 지금의 이 일을 자신에게 알린 것인지 소니아가 의아해하였다.
소니아가 갸웃하자, 주안이 싱긋 웃으며 소니아를 살며시 돌려세우며 아미엘을 보게 만든 후 말했다.
“아미엘 님이 소니아 누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래도 제가 아는 분 중에서는 소니아 누나가 세 번째로 마법 지식이 뛰어나잖아요.”
“세 번째요?! 제 앞에 대체 누가 있는데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소니아를 보며 주안이 장난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마이스터 모레노 님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위체니아 양. 그리고 세 번째가 소니아 누나죠.”
“모레노 스승님이라면 몰라도 위체니아 언니한테 뒤떨어지는 건 인정 못 하거든요?!”
사실 소니아보다 더 뛰어나고 연륜과 지식들을 가진 사람들이 제국 내에는 꽤 있겠지만, 이 나이대의 사람 중에서는 위체니아와 소니아, 이 두 사람을 손에 꼽을 수 있었다.
다만, 소니아는 스승인 마이스터 모레노에 대해선 애초부터 논외인 존재라 생각하지만 위체니아보다 아래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주안의 입으로 듣는 것에 매우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듯했지만 말이다.
“네, 네~ 그렇죠. 그래서 우열을 가릴 수 없었기에 소니아 누나를 데리고 온 거니까 화 풀어요.”
“우음…… 진짜 그래서 데리고 온 거 맞아요?”
영 아닌 듯, 불신 어린 소니아의 시선을 피한 채 주안은 조심스레 소니아의 등을 밀며 아미엘에게 향하게 하였다.
여전히 주안의 말에 불만족스러운 듯 소니아가 주안을 지그시 바라보았지만, 이래 고개를 돌려 아미엘에게 시선을 옮겼다.
조금은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아미엘을 보다 편하게 바라보자,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그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이러한 차분한 마음으로 아미엘을 마주 보니, 왜 그런 생각을 하며 긴장했던 것인지 오히려 자신이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이곳에 이런 식으로 초대하여 미안하구나. 주안, 그 아이에게서 너라면 나의 의문에 답을 내려줄 수 있다는 말에 이런 무례를 저질렀느니라. 이해를 바라마.”
“아, 아니에요. 저희 도련님이 분명 이상한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서 이런 짓을 저질렀겠죠. 다 이해해요.”
“…….”
완전 장난꾸러기 막냇동생을 대하는 듯한 소니아의 말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게 다 애정 표현이었다.
소니아로서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 방법임을 알기에 이해하고 넘어 가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소니아는 기품 넘치는 아미엘의 말과 행동에 조금 놀란 듯했다.
안젤라에게서도 보지 못하였던 기품이었고, 조용히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는 손짓과 행동에 소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따라 자리에 앉을 정도였다.
그리고 맞은편에 아미엘이 앉고, 곁으로 주안과 세냐가 앉자 겨우 대화다운 대화를 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저기, 그런데 저도 몇 가지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아미엘에 무언가 말을 꺼내기 전, 소니아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허락을 구하는 아이처럼 굴자, 아미엘이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초대한 것도 나고,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하는 것도 나다. 너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 답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해주마.”
아미엘의 그 말에 소니아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금세 표정이 바뀌는 이런 소니아의 모습에 아미엘은 이전에 주안과 함께 온 세냐를 떠올린 듯 작게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