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01화
대암흑기, 많은 것이 사라졌다.
역사와 학문, 문화와 문물. 그리고 사람까지 다양한 것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그렇게 점차 회복된 문명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잊은 채, 그렇게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학자가 머리를 맞대어보았지만, 여전히 대암흑기 이전의 시대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때의 문명이 얼마나 발전해 있던 것인지, 혹은 지금보다 뒤떨어진 것이 아닌지, 그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하나.
단언컨대, 이것 하나만큼은 그때의 그 시절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고 믿는 이들이 있었다.
마법사.
사라진 수많은 것 사이에서도 마법은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남겨진 유일한 유산이자 인간 재능의 결합체였다.
많은 마법이 사라진 만큼, 많은 마법이 생겨나고, 그 빈자리를 조금씩이나마 채웠지만, 마법사들은 여전히 이전의 시대와 현격한 격차가 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목표를 향해 어느 학자들보다 많은 것을 공부하고, 연구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법사 중에 이전 시대의 마법을 복구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이는 없었다.
룬 마법.
그것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자 근간인 그 능력을 발휘할 중요한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체 사라졌던 이게, 마법의 근간을 이루는 이게 왜 여기에……. 아, 아니, 워프 게이트가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이 갸웃하였다.
“사라졌던 마법의 근간이라니요? 마법은 지금도 잘 쓰잖아요?”
“예, 사용하죠. 하지만 조금, 아니, 많이 달라요. 우리가 사용하는 마법은 머리로 수많은 것을 계산해서 정확한 답을 내놓는 수식 마법이니까요.
“수식 마법?”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갸웃하는 것은 주안만이 아니라 같은 마법을 사용하는 세냐도 마찬가지인 듯 귀를 쫑긋 세우며 소니아의 말에 집중했다.
“잊혔던 고대 마법을 어떻게든 복구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수식 마법이거든요.”
실전이 될 뻔한 마법은 그렇게 다시 복구되어 현재의 마법이 되었지만, 그렇다 해서 완벽하게 다시 복구되었다고 인정하는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은 바로 고대의 마법의 근간을 이루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룬.
룬 문자가 없는 마법이란 진정한 마법이라고 보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진정한 마법은 룬 문자를 통해 발현되는 룬 마법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이것이 마법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기억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소니아는 조용히 주안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현재는 수식을 통해 머리로 수많은 수학적 계산을 하고, 답을 얻어 결과를 내는 것이라 복잡하고 느리고 어려워요.”
마법사는 마나를 느끼는 것으로 첫 번째 재능을 인정을 받은 후 마법에 입문하지만, 그 수많은 인재는 다시 수많은 수식과 계산 속에 묻혀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마법 이전에, 계산을 먼저 하고, 수많은 수식을 머릿속에 욱여넣은 뒤 그것을 통해 마법을 발현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법에 입문하는 이가 모두 다 똑똑한 이유도 바로 그곳에 있었다.
일일이 메모장을 꺼내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는 멍청한 짓을 할 수가 없으니, 암산하여 답을 내놓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전란의 시대, 마법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이렇게 굳어져 현재까지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니아는 주안뿐만이 아니라 이 룬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냐와 마냐, 아냐를 보며 말했다.
“예를 들어, 수십 가지의 수식을 가지고 계산을 하여 마법을 발동해야 하는 지금의 마법과 달리, 룬 마법은 두 가지, 세 가지의 룬을 조합해서 똑같이 발현할 수 있다고 보면 돼요.”
“그거, 엄청 편하겠는데요?”
“편한 것만이 아니라 비교가 불가능하죠.”
마법의 발현 속도에서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의 수식을 가지고 계산하여 답을 내놓는 것과 두 가지, 세 가지의 글자를 조합해서 하나의 뜻을 만들어 발동하는 것의 속도가 같을 수가 없다.
물론 점점 더 많은 룬 문자를 조합하여 올바른 뜻을 나타나게 하는 것은 분명 어렵지만, 적어도 현재의 마법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룬 문자가…… 룬 마법이 지금 이 자리에, 내 눈앞에……!”
소니아는 엄청나게 흥분한 모습으로 테라스의 벽에 볼까지 비벼대며 손으로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조금 다가가기 싫은 그 모습이긴 하였지만,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저 한발 물러나 그런 소니아를 보며 주안이 말했다.
“속성력도 비슷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더 대단해 보이는데.”
“전혀 달라요.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재능이지만, 그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 중에서도 선택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속성력을 쓰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룬은 보편적이란 말이에요. 누구나, 마법사라면 아무나 쓸 수 있으니까요.”
“헤에…… 그렇구나. 이렇게 보니 누나도 진짜 마법사 같네요.”
주안의 이런 농담에 헬렐레, 하며 룬 문자가 쓰려진 테라스의 벽에 볼을 비벼대던 소니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진짜 마법사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마법사거든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도 마법사란 정말 특별한 존재였고, 반대로 마법사들 속에선 속성력을 가진 이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룬 문자로 이루어진 마법은, 마법사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보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보면 되었다.
현재의 수식 마법을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겠지만, 다시 주류로 떠오를 것이며 오히려 수식과 룬을 조합한 새로운 마법이 탄생할 수도 있는 엄청난 일이자 기회인 셈이었다.
주안으로선 여전히 이런 반응을 보이는 소니아를 모두 다 이해를 할 수는 없었고, 그것은 세냐나 마냐, 아냐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리고 이런 소니아를 보며 세냐 역시 조금 놀란 모습으로 소니아에게 물었다.
“룬 문자가 정말 사라졌단 말이에요?”
“응, 사라졌지. 대암흑기 때 완벽히 소실되었거든.”
“그런데도 마법을 사용하다니……. 난 마법을 사용하기에, 그래도 여전히 룬 문자를 쓴다 생각했는데.”
세냐는 단지 마법적 능력이 엄청나게 퇴화하여 현재의 떨어지는 마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설마 고대 마법의 근간을 이루던 룬 문자가 통째로 사라졌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 없다면 솔직히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여겼으니 말이다.
“……인간들은, 정말 이상한 쪽으로 괴상한 방식을 통해 발전해 나가는 특이한 종족이에요.”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 결과였어. 선배 마법사분들 역시 이대로 마법이 사장되면 안 된다고, 노력한 결과이니까.”
“노력 이전에 대단한 거란 말이에요. 마법을 그런 식으로 새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생존본능이란 어떤 생명체라도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도, 마법사에게도 살아남기 위해서 발휘되었던 능력이기도 하였다.
아니, 그것을 배우고 지키고자 하였던 이들의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일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세냐는 인간이 싫지만, 이 점은 정말 대단하게 생각하였다.
마법은 보통의 학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마법은 드래곤에게서 유래되었으며, 엘프에게 전해져 인간에게 흘러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태초에서부터 시작된 마법은 룬 마법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굳어져 있었다.
룬이 사라졌다면, 마법도 사라졌어야 하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마법을 지켜내고 이어나간 인간들의 저력이 정말 대단했고, 세냐는 솔직히 조금 오싹하기까지 하였다.
“……인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지긋지긋한 존재네요.”
“그거 욕 아니야?”
“진심에서 우러나는 칭찬이에요.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세냐의 칭찬에 소니아도 활짝 웃으며 세냐에게 말했다.
“응. 고마워, 세냐. 고마우니까, 룬 마법 좀 가르쳐 주지 않을래?”
“……넉살 좋네요. 바로 가르쳐 달라니…….”
작게 한숨을 내쉰 주안이었지만, 그 심정이 이해되었기에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주안 역시 현재의 마법에 그런 비밀이 감추어져 있을 줄은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글쎄요. 이건 정말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인간에게 룬 마법이 사라지고, 그렇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힘으로 마법을 사용한다면 오히려 우리에겐 이득이라 말이죠.”
“우리?”
생각해 본다는 세냐의 말에 소니아가 금세 울상이 되었지만, 이내 우리라는 그 말에 갸웃한다.
소니아는 아직 세냐의 요정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존재인 아미엘에 대해서도 아직은 전혀 몰랐으니까.
그렇기에 주안이 조심스레 나서며 소니아에게 말했다.
“아, 실은 소니아 누나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이 계시거든요. 개인적으로 부탁도 드리고 싶고요.”
“부탁이라니요?”
잠시 갸웃하던 소니아도 마법사답게 복잡하던 머릿속을 금세 정리한 듯 금세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안을 보며 말했다.
“저도 주안 도련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이에요.”
“아하하…… 역시, 그렇죠?”
무엇을 물어 볼 것인지 어느 정도는 주안 역시 알 수는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 곤란한 듯 멋쩍은 미소를 지었지만 말이다.
“그 모든 것을 다 말씀을 드리려고 소니아 누나를 부른 거예요. 그리고 소개해 드릴 분을 통해서 소니아 누나의 궁금증 대부분이 해결될 거니까요.”
주안이 이 자리에서 소니아에게 말을 해주는 것보단, 아미엘이 있는 그 자리에서 설명해 주는 것이 훨씬 더 빠를 것이다.
소니아가 궁금해하는 것이야 마법사로서의 순수한 궁금증이라 할 수 있는 워프 게이트의 정체와 룬 문자에 관한 것일 터이니, 주안이 설명해주긴 매우 곤란한 사실들이었다.
전문성이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주안의 생각과는 달리 소니아는 지금 당장 답을 바라는 듯 진지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제게 알려 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도련님.”
“워프 게이트나 룬 문자는 제가 말씀드리기는…….”
“아뇨, 그게 아니라. 아까부터 정말 궁금하던 게 있었어요.”
사뭇 진지한 표정의 소니아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주안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소니아의 눈은, 평소 주안이 보던 소니아의 눈과는 많이 달랐다.
그 모습, 그 행동.
그렇기에 주안은 조금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며 소니아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소니아는 이런 주안을 보며,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주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등 뒤에 비치는 그거 뭐예요?”
“…….”
워프 게이트도, 룬 문자도. 세냐의 정체나 만남을 원한다는 이에 대한 궁금증보다 주안의 등 뒤로 비치는 후광에 대해서 더욱 의문스럽다는 소니아.
하지만 주안은 그런 소니아의 의문에 시원하게 답해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주안도 이게 뭔지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