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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00화 (200/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00화

“이 세상은 확실히 어그러져 있고,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아미엘은 비어버린 찻잔을 매만지며 그렇게 조용히 말을 하였다.

투명한 그 눈에 비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아미엘은 눈앞의 것을 보는 것이 아닌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세냐가 찻잔을 채워주는 것에 맞춰 시선을 주안에게 향하며 말을 이었다.

“나타나선 안 되는 몬스터……. 인간이 손을 댈 수 없는 의지의 마법인 속성력.”

속성력은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의지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마법.

그것은 한정된 것이라고는 하나 인간이 가져서는 안 되는 드래곤의 유산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나는 크세니아가 잠든 무덤으로 향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크세니아가 잠든 무덤을 잠긴 문을 열어줄 열쇠를 가진 존재, 자애의 성흔을 지닌 주안이 필요했다.

갑작스럽긴 하였지만, 주안도 이제는 이해가 된 듯 아미엘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주안 역시 곰곰이 생각하다 그것을 정리한 뒤 아미엘에게 말했다.

“혹시 그 장소를 저 외에는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곳인가요?”

“음? 혹 누구를 데리고 가고 싶은 것이더냐?”

아미엘이 갸웃하자, 주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속성력에 대해서 잘 알고, 현재의 마법에 대해서도 박식한 소니아 누나를 함께 데리고 가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 아이를 지금?”

“예.”

주안은 혹시 아미엘이 곤란해하지 않을까, 지금 자신이 괜한 말을 꺼낸 것이 아닐까, 고민되었지만 일단 자신이 생각을 말하였다.

“저는 마법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그리고 속성력 역시 마찬가지예요. 사실 제가 같이 가도, 그 문을 열어준다는 역할 외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아미엘 역시 그 부분만의 도움을 바랄 뿐, 그 이상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안은 아미엘에게 그 이상의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미엘 님이 궁금해하시는 것에 대해서 저는 전혀 알려 드릴 수가 없어요.”

“흠…….”

몬스터가 어떤지, 마법이 어떤지, 속성력이 무엇인지.

주안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안은 적어도 이 세상의 마법과 속성력이 무엇인지 알려줄 사람은 알고, 그 사람을 소개시켜 줄 힘은 있었다.

그것을 통해 아미엘이 궁금해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그곳은 아미엘 님에게도, 그 드래곤이라던 크세니아 님에 대해서도 실례가 되는 일일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소니아 누나 역시 인간이니까요.”

아미엘에게도, 드래곤인 크세니아에게도, 인간은 적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들.

그렇기에 주안은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곳은 밝혀져선 안 되는 장소일 수도 있었고, 그녀에겐 친한 이가 잠든 장소였기에 아무나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닐 터이니 말이다.

“이건 물론 그저 제 생각일 뿐이에요. 아니면 소니아 누나를 먼저 만나서, 마법과 속성력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셔도 괜찮겠지만…… 그건 시간이 조금 걸리는 일이니까요.”

그저 주안은 아미엘을 돕고 싶었기에 꺼낸 말이었고, 이게 꽤 무리한 일이며, 어떻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조언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이러한 말을 꺼낸 것은 모두 아미엘의 궁금증,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조바심에 대한 해결해 주고 싶어서이니 말이다.

번거로움을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나 소니아를 데리고 가면서 마법과 속성력에 대해서 알아가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생각하는 그 용언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장소, 크세니아의 무덤이라는 곳은 결국 드래곤의 무덤이었고 그와 관련된 장소이니.

용언과 속성력의 연관성을 얻고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가장 빠른 방법은 곁에 그 속성력을 가진 이를 두고 알아보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일 테니까.

그리고 이런 주안의 배려를 느낀 아미엘이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그러하구나. 그래, 어차피 그 연관성을 알기 위하여 가야 하는 장소이니라. 그 아이를 데리고 같이 가도록 하자.”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가 신뢰하는 이라면 괜찮다. 무엇보다…….”

아미엘이 차분한 어투로 주안을 바라보며 간단히 말을 이었다.

“안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간다고 해서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도 아니니라.”

“아하하…….”

이것은 자신감일 수도 있었다.

만약 이전 세대의, 아미엘이 알던 그 당시의 인간이라면 아무리 주안의 부탁이라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대의 인간이란, 너무나 나약하고 마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잃었으며, 그렇기에 그들에 대해 지금 당장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 듯했다.

무엇보다 인간은 더 이상 이종족의 적이 아니었다.

이미 이종족은 잊힌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그 언니라면 꽤 괜찮은 언니고, 좀 푼수 같기는 하지만 현재의 마법에 대해선 상당히 잘 아시는 분이셨어요. 재능도 있어서 아미엘 님이 궁금해하시는 걸 어느 정도는 알려줄 수 있을 거예요.”

“호오, 그러하느냐. 네가 인간을 그런 식으로 높게 말을 해줄 줄은 몰랐구나.”

“뭐,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저 오빠네 집 사람들이 특이한 건지 몰라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세냐가 그저 워프 게이트를 만들러 주안을 따라나선 것임을 주안도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세냐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고 냉정하게 판단한 것을 아미엘에게 전달하는 입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이런 세냐의 눈에 비친 자기 집안사람들의 평이 나쁘지 않다는 것에 주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모든 인간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주안의 집안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간에 대해서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는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럼 소니아 누나를 먼저 데리고 올게요. 아마 엄청 놀라고 또 좋아하실 거예요. 호들갑을 떨어도 조금 이해해 주세요, 아미엘 님.”

주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미엘의 곁에 있던 세냐를 손바닥 위에 올라타게 만든 뒤 그렇게 말하자, 아미엘 역시 살풋 미소를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란 호기심이 없다면 이미 마법사가 아니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마법사이기 이전에, 그냥 호기심 많고 밝은 누나라서요.”

“매우 유쾌한 아이인가 보구나.”

마법사로서의 호기심 이전에 그저 천성이 그런 것이 바로 소니아였고, 그러한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반기는 듯 아미엘이 답해주었다.

“그러면 금방 갔다 올게요.”

“그래도 집안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조심히 다녀 오거라. 아직 너는 너의 할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지 않느냐.”

“아, 참. 그렇지.”

갑자기 집에 불쑥 나타나 소니아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주안을 본 집안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미엘의 그 말에 주안도 그제야 깨달은 듯 달려 가려던 것을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곰곰이 생각에 빠지며 고민을 하는 주안의 모습에 세냐가 간단히 말했다.

“그거 그냥 제가 가서 데리고 오면 되지 않을까요? 뭐, 저야 눈에도 잘 안 띄잖아요.”

“아, 그러면 그렇게 해줄래?”

자신의 방이라면 함부로 들어오는 사람이라고는 엄마인 안젤라 정도밖에 없으니, 그곳에서 기다린다 해도 들킬 염려는 전혀 없었다.

세냐의 말대로 세냐만 몰래 나가서 소니아를 데리고 온다면 집안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할 필요도 없을 것이며, 소니아는 워프 게이트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이니, 소니아 역시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니 말이다.

“음……. 그래도 조금 아쉽네. 집에 가는데, 엄마한테 인사도 못 하고 다시 와야 한다니…….”

이러한 주안의 작은 중얼거림에 세냐와 아미엘의 시선이 주안에게로 향했다.

“……농담이에요. 농담이라고. 웃지 마, 세냐.”

“맨날 엄마, 엄마. 오빠 대체 몇 살이에요?”

“아, 아냐. 맨날 그러는 거 아니라고.”

“잠잘 때도 잠꼬대로 그러는 건 아세요?”

“…….”

세냐의 그 말에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 때문에 세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 버렸다.

“…….”

하지만 고개를 돌린 곳에선 아미엘 역시 미묘한 미소와 눈웃음을 지은 채 주안을 보고 있었기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뜨거워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 * *

집으로 온 주안은 예상대로 자신의 방 안에 그 누구도 있지 않은 것에 안심하며 조심스레 테라스 문을 열고 세냐가 소니아를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온 집과 자신의 방을 느긋하게 둘러보며 기다리기를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과 함께 세 요정 꼬맹이가 쏜살같이 들어오고는 순식간에 방문을 소리도 없이 닫아 버린다.

“……엄청 달려오셨나 보네요. 여기, 손수건이요.”

아쉽게도 물은 없어서 건네지는 못했지만, 주안의 방으로 들어온 소니아는 주안이 건네는 손수건을 받아 들고는 헉헉거리며 땀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요령 좋게 자신의 속성력을 이용해 시원한 바람을 쐬며 숨을 고른 뒤 소니아가 말했다.

“그거 어디 있어요, 그거!”

“오랜만에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근데 그게 뭐예요?”

“슝 하고 와서 짜잔 하고 오는 거요!”

“……?”

무슨 말인지 몰라 갸웃하는 주안이었지만 어느새 날아온 마냐가 방실거리며 주안의 어깨에 앉아 말했다.

“마냐가 언니야한테 자랑했어! 오빠야랑 언니야랑 슝 하고 와서 짜잔 한다고 했어!”

“그게 대체…….”

도통 알 수가 없는 마냐의 말이었고, 소니아도 그 말에 물들기라도 한 듯 주안의 손을 붙잡고는 퀭한 눈으로 주안을 올려다본다.

마법을 써서 금세 올 수 있었을 것임에도 직접 달려온 것을 보니, 그럴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급하게 달려온 것임을 주안도 느끼곤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어리바리한 모습에 세냐는 소니아가 매우 안타까웠던 것인지 소니아의 머리 위에 앉아 주안에게 말했다.

“워프 게이트요, 워프 게이트. 이 언니 눈이 돌아간 거 보면 딱 떠오르지 않아요?”

“눈이 돌아갔다니……. 말이 너무 험하잖아, 세냐.”

아니, 그렇게 보이긴 하여도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본인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례라고 주안은 주의라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콧방귀만 뀔 것임을 알기에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소니아가 꼬옥 붙잡고 있는 손을 부드럽게 다시 잡아준 후 조심스레 테라스 쪽으로 이끌었다.

“오빠야, 또 어디 가는 거예요?”

주안의 곁으로 날아온 아냐가 주안의 어깨에 앉으며 그렇게 묻자, 주안이 싱긋 웃으며 아냐의 볼을 간질거리며 말했다.

“응, 오늘은 잠깐 들린 거야. 아, 그리고 아미엘 님한테 갈 건데 아냐랑 마냐도 갈래?”

“네!”

“응!”

주안의 말에 아냐와 마냐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치 핑크빛의 알콩달콩 한 주안과 두 요정 꼬맹이들의 모습에 세냐가 입술을 삐죽였지만, 소니아는 여전히 퀭한 눈으로 주변을 바쁘게 둘러보며 워프 게이트를 찾는 듯했다.

“자, 여기예요.”

“여기?”

하지만 주안이 안내한 곳은 테라스의 문이었고, 그저 활짝 열린 채 기분 좋은 바람만이 흘러들어 오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이 부드럽게 웃어 주며 조심스레 소니아의 손을 놓았다.

이런 주안의 손을 다시 붙잡거나 하지 않은 소니아였지만, 그 눈은 주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

주안이 테라스의 벽면을 살며시 쓰다듬자, 성흔에서 흘러나온 빛이 글자를 새기듯 묘한 문장이 벽면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다.

“워프 게이트…….”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지며 기쁨에 찬 환한 표정을 짓던 소니아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워프 게이트를 이루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의 배열에 소니아의 눈이 점차 크게 떠지더니 이내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듯 놀라서 소리쳤다.

“루, 룬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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