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99화
“혹 지금 갈 수 없다면 나중에라도 시간을 내어주지 않겠느냐.”
“음…….”
아미엘의 말에 주안이 팔짱을 낀 채 조금 고민하였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잠시였을 뿐,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미엘에게 말했다.
“아미엘 님의 힘이라면 금방 갈 수 있는 장소겠죠?”
“다른 이들에게는 먼 곳이 될 수 있겠으나, 나에게 거리는 무의미하다. 그곳은 내가 아는 장소이며, 방문을 허락받은 존재이니 말이다.”
‘하긴…….’
주안은 아미엘의 힘, 워프의 능력을 이미 겪었고, 어떠한 것인지 잘 알기에 가는 것과 오는 것에 시간적 제약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가서 확인만 할 것이기에, 네가 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족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걱정을 안다는 듯, 아미엘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며칠이나 머물고 그런 것만 아니라면 저도 크게 상관은 없어요. 오기 전에 미리 말해두었고, 저쪽은 이제 밤이라 제 개인적인 시간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러하느냐. 그러면 다행이구나.”
아미엘 역시 주안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이런 주안의 말에 안심하였다.
그리고 주안 역시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일러두고 온 탓에 자신의 방에 누구도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질 확률은 매우 낮았다.
밝혀진다 해도, 적당히 둘러댈 수 있으니, 그 역시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저도 조금 호기심이 일어서, 가보고 싶기는 해요.”
그것은 전설이기도 하면 신화이기도 한 존재였다.
아니, 비록 그 존재가 현재는 없다 하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로 간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일일 것이다.
만약 이것을 마법사들이 알게 된다면,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였고, 크게 환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마법이란 학문이자 인생의 전부였고, 그 마법을 최초로 탄생시켰다고 여전히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바로 드래곤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이러한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확인하고자 하였겠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호기심을 끌 만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소니아 누나를 데리고 올 걸 그랬나.’
만약 그랬다면 엄청나게 좋아했을 것이지만, 이것은 그냥 생각으로만 하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소니아가 워프 게이트에 대해서 눈치챈 듯하여 무언가 말해주어야 할 듯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말하려면 요정이나 아미엘, 세계수에 관한 일까지 모두 말해야 하는 상태라 쉽게 할 수가 없었다.
‘하아, 집에 가면 또 엄청 시달리겠는데…….’
애써 부정하며, 나중에 설명해 주겠다 말하였지만 그 이후가 문제이니, 주안으로서도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아미엘 님.”
“음? 무언가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
주안의 물음에 아미엘이 조용히 찻잔을 기울이다가 갸웃하며 바라보았다.
“혹시 말이에요……. 워프 게이트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걸 허락하신 아미엘 님에 대해서 엄청나게 궁금해할 사람에게, 이걸 좀 설명해도 괜찮을까요?”
“너와 가까운 사람이더냐.”
“음, 가깝다고 하면 가깝다고 할까……. 누나 같은 분이라고 할까…….”
좀 푼수 같으면서도 엄마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친구 같은 소니아를 떠올리니, 그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소니아를 떠올리자, 그 감정을 그대로 느낀 듯 아미엘이 살풋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하면 되었다. 네가 신용할 수 있는 이라면 알려 주거라. 그이도 너에게 가족의 범위 내에 해당이 된다면 말이다.”
어차피 이것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주안뿐이었고, 워프 게이트에 대해서 조사한다고 해도 주안이 아니라면 발동 자체를 시킬 수 없기에 아미엘로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재의 마법의 수준은 너무나 낮았다.
자신이 상상하던 것 그 이상으로 마법의 발전은 없었고, 오히려 퇴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언가 이상한 이질적인 힘이 끼어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네가 알려주고자 하는 이가, 너와 가깝다는 그 마법사이더냐.”
“아, 네. 소니아 누나라고 엄마랑 친구 같은 분이시죠.”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정신연령은 비슷하다고 말씀드렸던 푼수 언니예요, 아미엘 님.”
“…….”
언제 그렇게 소개한 것인지, 세냐의 잽싼 추가 설명에 아미엘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너는 이미 나를 집으로 초대한다 하지 않았느냐? 적어도 너의 가족이라면 나 역시 크게 개의치 않으니 마음을 쓰지 말거라.”
소문이 날 가능성도 있겠지만, 아미엘의 겉모습만 보면 10대의 어린 소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날개와 그 외모가 있다지만, 아미엘의 능력이라면 날개는 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저 주안의 초대로 온 손님이라고 집안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설명할 수가 있으니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저 부모님, 그리고 할아버지에겐 그 정체를 밝힐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가문의 시조 어르신과도 가장 가까웠던, 친척과도 같으니까.’
시조, 초대 공작 부인인 마를렌 마르티네스 공작 부인이 엘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부모님이나 할아버지는 어떻게 반응할지 솔직히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것에 대해서 알려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아미엘을 초대할 때 말을 맞춰봐야겠지만 말이다.
“그보다 그 소니아라는 아이, 혹 나중에 나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겠느냐.”
“소니아 누나를요?”
“그래.”
아미엘이 먼저 나서서 누군가와 만나고 싶다는 말하는 것이 처음인지라 주안이나 세냐도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의 마법이 대체 어떻게 변질된 것인지 매우 궁금하구나. 세냐에게 들었지만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어서 말이다.”
“아…….”
아미엘이 살던 그때의 마법과 현재의 마법은 무언가 많이 다른 듯했다.
특히 세냐를 통해서 주안도 그것을 느끼고 실감하였다.
마법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마법 물건 사용하는 주안의 입장에서 세냐의 마법이 현재의 마법과는 많은 실력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엄청난 값을 주고 고랭크의 마법사가 만든 마법 물건을 간단하게 조작하며 더 뛰어난 성능으로 만들어 버리던 세냐였으니 말이다.
세냐가 특별하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마냐나 아냐 역시 이와 비슷하였다.
‘요정 중에서 확실히 실력이 있는 세 아이이니 아미엘 님이 내게 보낸 것이겠지만, 다른 요정들도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을 거야.’
죄다 애들 같기는 하지만 그 겉모습에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주안은 아직도 기억한다.
아미엘과 처음 만났을 당시, 호수 위 하늘에 떠올라 조각배에 올라타고 있던 메데아 대족장, 마누엘 전대 대신관, 워랜과 토미, 그리고 주안을 포위한 채 적대시하며 노려보던 그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평범한 자신이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마법들을 발동한 채 겨누고 있던 그 아이들을.
‘……메데아 대족장님이나 마누엘 전대 대신관님도, 워랜 경마저도 잔뜩 경계했어. 아니, 토미도…….’
주안은 큰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러한 주안의 감정과 제대로 실력을 쌓은 실력자들이 느낀 두려움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그 힘의 차이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눈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을 것이니 말이다.
다만, 그런 무시무시한 요정 꼬맹이들이 현재는 자신의 편이라는 것은 매우 든든하였기에 지금은 웃을 수가 있었다.
이런 주안을 보며 아미엘이 조용히 말했다.
“……그 속성력이라는 것이 매우 궁금하더구나. 소니아라는 아이는 속성력을 가지고 있다지?”
“음? 속성력이요?”
이 세상의 마법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고 주안 역시 생각은 하였지만, 다른 마법들이 아닌 콕 집어 속성력이라는 것에 주안이 갸웃하였다.
“아미엘 님의 시대에는 그게 없었나요?”
“없었다.”
“예? 진짜요?”
아미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안은 조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웃하였다.
속성력 역시 조금 특이하긴 하나 마법의 일부였고, 현재의 세상에서는 이러한 마법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아미엘이 그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주안에게 확답을 내려주듯 아미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은 분명 다채롭다. 하지만 복잡하고 수많은 문자와 조합이 필요한 힘이다. 특히 자연의 힘을 다루는 것에서는 단순한 마법적 지식이 아닌 그 힘을 느낄 수 있는 재능과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따로 주어져야 하지.”
세냐가 사용하던 마법과는 확실히 달랐다.
타인이 이미 만들어놓은 마법을 보고, 금세 파악한 뒤 허점을 밝혀내고 그것을 보완하거나 훔쳐서 쓰던 것과 없던 것을 새로이 만들어내고 발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속성력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발동하는, 그것을 매일, 매번 실행이 가능한 이상한 힘이었다.
아미엘은 그것을 세냐에게서 듣고는 크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속성력이 무엇인지, 너는 혹 아느냐?”
“그게, 저도 잘…….”
아무리 세냐라고 하여도 단시간 내에 그러한 것을 알아내긴 조금 힘들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더 오래 살고 지내온 주안이라면 혹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않을까, 아미엘은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주안 역시 마법에 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라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였다.
“아, 그래서 소니아 누나를 만나고 싶어 하신 거였어요?”
그제야 왜 굳이 소니아를 만나고 싶다 한 것인지 주안도 이해하였다.
가문 내에는 사실 소니아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들은 많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통한다면 믿을 수 있는 고랭크의 마법사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아미엘 역시 그러한 주안의 가문의 힘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니아를 만나고자 한 것, 그것이 속성력에 있었다는 것을 주안도 깨달았다.
“제가 아는 것이라면, 속성력은 말 그대로 세상을 구성하는 여러 속성의 힘을 깨닫고, 별다른 계산과 수식 없이 그저 의지와 생각만으로 발동을 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자연의 힘을 끌어다 그 의지와 생각만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마법사들에게 매우 큰 힘이었다.
복잡한 계산을 하고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긴 시간이 필요한 일반적인 마법과는 달리, 이 속성력에 관한 마법은 그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에는 마법사가 된다는 것보다 더 큰 선택받은 재능이 필요하였기에 이 속성력의 힘에 눈을 뜬 이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계산과 수식?”
잠시 갸웃하던 아미엘이었지만 이내 주안의 말뜻, 속성력에 대해 듣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을 단지 의지만으로 실현시킨다는 것은, 나의 시대에 존재하던 그 대단하고 특별한 인간들조차 하지 않았던, 아니, 못 하였던 일이었다.”
한때 이종족들을 밀어내고 아미엘을 긴장시켰던 강력한 힘을 소유하였던 인간들, 그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들조차도 사용하지 못하던 마법.
속성력은 아미엘로서도 의문의 힘이었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본능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특정한 힘을 가진 마법을 발동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가능하긴 하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는 인간이 될 수가 없었다.
“그 힘은 마치…….”
그리고 아미엘은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드래곤의 힘……. 용언처럼 느껴지는구나.”
그저 의지만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마법을 항시 사용할 수 있는 존재.
드래곤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