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98화
드래곤은 환상의 동물이다.
그 모습과 서식지, 능력과 힘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엘프와 드워프, 오크라는 이종족은 그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어, 그들이 한때 대륙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드래곤은 실존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흔적을 하나 남겨 두었다.
드래곤 하트.
그들의 심장이었다.
마법사라면 목숨을 걸고 그것을 취하려 하지만, 세상에 남겨진 드래곤 하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서방 대륙의 제노폴 제국에 부서진 반쪽짜리 드래곤 하트 조각이 하나.
동방 대륙의 슌 제국 황실의 상징으로 남겨진 드래곤 하트 조각으로 만들어진 목걸이가 하나.
단 두 개뿐이다.
‘그 반쪽짜리를 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먹을 뻔했지만.’
애가 감기 좀 걸렸다고, 그런 엄청난 보물을 먹이려고 한 할아버지나, 그것을 먹이자고 한 엄마나, 다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전설일 뿐이고, 그게 진짜 드래곤 하트인지도 의견은 분분하다.
그저 영약의 하나가 아닐까, 혹은 어느 마법사가 만들어낸 잊혀진 고대의 마법 물품이 아닐까, 그런 소리는 아직까지 여전히 학계에서 주장되어 온 이야기였다.
물론 주안 역시 과거라면 드래곤은 그런 상상 속의 동물이자 너무나 먼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 그 드래곤의 무덤이라는 곳에 저를……?”
주안이 놀란 눈으로 아미엘을 보며 묻자, 아미엘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하지만 주안으로서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그런 곳에 저를 왜…….”
“네가 아니면 안 되느니라.”
“예? 제가 안 되면 안 된다니요?”
갸웃하는 주안을 보며 아미엘은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크세니아는 성흔을, 열쇠의 역할을 하는 자애의 성흔으로만 열 수 있는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놓았다. 하여, 방문하고자 하여도 자애의 성흔이 없다면 들어가질 못하느니라.”
“아…….”
그 문이 무엇이고, 열쇠가 무엇인지, 주안은 여전히 알지 못하였다.
단지 이 성흔이 그 모든 것의 연결고리이자 중요한 열쇠라는 점만은 안다.
오랜 선조인 마를렌에게 맡겨져 먼 훗날의 자손인 주안에게 나타난 이것은, 이전 삶 속에서는 없던 것이었으며 이번 삶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이런 게 대체 왜 나한테…….’
분명 이전 삶과는 달랐다.
모든 것을 다르게 가려 하였고, 변화하려 하였고, 지키려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것은, 자신이 왜 다시 이 삶을 살게 된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이 성흔은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주안은 여전히 그 의문을 풀지 못하였다.
‘아미엘 님에게, 내가 다시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씀드려 볼까. 어쩌면 아미엘 님이라면 왜 그런 것인지 아실 수도 있으실 텐데…….’
신이 어떻고 드래곤이 어떻고, 주안과는 달리 아미엘은 그 모든 것을 아는 존재다.
그렇기에 주안의 이러한 비밀을 알게 된다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답을 내려주거나 힌트라도 알려줄 수 있을 듯했다.
주안이 자신의 왼 손바닥을 지켜보다, 꽉 움켜쥐며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하지만 주안은 자신을 지켜보는 아미엘의 두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자, 꺼내려던 말을 순간 집어삼켜 버렸다.
그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실패했던 자신의 이전 삶을, 부끄러웠던 그 과거를, 아미엘에게 말을 하기 힘들었다.
그저 다시 입을 꾸욱 다문 채, 애써 그런 아미엘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왜, 그 크세니아라는 분은 그런 무덤을 남겨놓으신 거예요? 게다가 이 성흔에만 문을 열 수 있다는 것도 조금 이해가 안 되어서요.”
“만약을 대비한 크세니아의 안배였구나. 혹여 이 땅마저 인간들에게 침범당한다면, 크세니아는 신의 말씀을 어겨서라도 이종족을 도울 안배해 놓았으니 말이다.”
만약이라…….
주안은 아미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이종족들의 보호에 힘을 썼던 드래곤이, 그런 만약의 일까지 걱정할 만큼 당시의 인간들이 강성했던 것인지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동방 대륙에서는 그러한 전설에 버금가는 현재의 전설적인 동물은 여전히 존재하였다.
용.
그 용을 생각해 보면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비슷한 선상에 놓는다 해도, 인간들은 한낱 미물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자연, 다시 말해 바다와 대지, 하늘을 지배하는 세 용과, 인간의 편에 선 한 마리의 용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전 삶 속에서 이러한 힘을 제대로 발휘한 슌 제국의 수호룡 파사의 난동은, 한 나라의, 제국의 심장부를 그대로 도려내어 멸망시켜 버린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힘을 보여준 사례였다.
‘아미엘 님만 보아도 메데아 대족장님이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게 만들었던 분이셨는데…….’
그럼에도 만약을 대비할 정도로 강성했다는 당시의 인간들은, 정말 괴물들만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없지 않나요? 이미 이종족들에 대해서 잊어버린 저희예요. 이곳, 남부 대밀림은 더 이상 정복의 대상도 아니에요.”
그런 상황에서 대체 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그것을 보러 가려는 것인지, 주안으로선 조금 이해가 안 되었다.
이런 주안의 말에 오히려 표정이 조금 날카로워진 세냐였고, 아미엘은 그저 이러한 주안의 의문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세냐를 달랬다.
“그래, 현재의 이 대륙의 인간들은 이미 그 힘을 잃고, 지식도 잃고, 과거도 잃어버린 것을 나 역시 잘 안다. 인간은 더 이상 우리의 위협이 아님을 나 역시 이해한다.”
주안이 전해준 책들을 통해 익힌 지식과 세냐가 바깥 활동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보고, 듣고, 판단한 아미엘은 이 세상의, 현재의 인간들은 정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인정하였다.
인간은 이미 과거의 인간들이 아님을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눈앞에서 본 이상,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나로서는, 나의 지식으로서는 그것을 알아낼 수가 없어 도움을 받고자 크세니아의 무덤으로 향하려 하는 것이니라.”
“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요?”
주안이 갸웃하자, 아미엘이 조용히 찻잔을 들고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의 마물이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던 그것과 같더구나.”
“마물……?”
주안은 아미엘의 그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마물은 분명 위협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부 대밀림에 있을 때나 위협적인 존재지, 대륙으로 나온다면 주안은 그것들이 분명 사냥감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동방 대륙의 요물들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지만, 그것들은 남부 대밀림의 깊숙한 곳에서 나타날 뿐, 대륙 내에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방비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남부 대밀림을 지키는 원주민, 달란트 부족이 있는 이상 마물들은 대륙 바깥으로 나올 수도 없었고, 분명 위협적인 존재이나 달란트 부족에겐 중요한 식량 자원 중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마물에 대해서 아미엘이 이토록 경계하는 것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주안은 조용히 아미엘을 보며 그 답을 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안의 시선을 받은 아미엘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입술을 축인 뒤 말을 꺼냈다.
“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대에, 이종족들의 시대에 그리고 인간의 시대에…… 신께서 걱정하고 드래곤들이 신의 말에 따라 처리하였던…….”
그리고 조용히 찻잔을 내리며 맑고 투명한 그 눈으로 주안을 담아내며 아미엘이 말을 이었다.
“몬스터이니라.”
* * *
아미엘의 그 말에 주안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세냐마저 크게 놀랐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아미엘을 응시하였고, 아미엘은 조용히 찻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아, 아, 아미엘 님……. 몬스터, 진짜…… 몬스터를 보셨어요……? 이곳에서?”
그리고 먼저 정신을 차린 세냐가 떨리는 목소리를 아미엘에게 물었다.
“보았다. 카마르, 그 아이와 함께 가서 확인하였다.”
“하지만 몬스터는 크세니아 할아버지와 다른 드래곤분들이 힘을 모아서 이곳과 분리된 세상으로 보내었잖아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나 역시 그게 의문이란다. 하여 그것을 확인하고자 크세니아의 무덤으로 향하려는 것이다.”
아미엘의 말에 세냐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자 주안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세냐를 부드럽게 손바닥 위에 올린 후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안심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사람의 대화나 세냐의 반응에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주안이 말했다.
“몬스터라는 게 그렇게 무서워해야 하는 건가요?”
주안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세냐로서는 이 어리숙한 사람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대신 답해주었다.
“하나하나는 그렇게 두려운 존재라 볼 수는 없구나. 이 시대의 인간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으나, 이곳의 달란트의 아이들로서도 큰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이미 마물이라 불리는, 그 몬스터를 처리하고 다니는 달란트 부족이었다.
주안 역시 그것을 기준으로 생각했고, 그랬기에 이렇게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세냐와 아미엘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의문을 풀어주듯, 아미엘이 말했다.
“하나 몬스터의 가장 두려운 점은, 적응력 그리고 번식력이다.”
“적응력? 번식력?”
“그것들은 어디 어느 곳에서라도 쉽게 적응하고 쉽게 자손들을 본다. 숫자는 쉽게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며, 먹이를 찾아 어디든 향하고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그것이 설령 같은 몬스터라 할지라도.”
동족까지 잡아먹는다는 그 말에 주안은 속이 메슥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같이 있을 수 없는, 함께 있어서는 안 되는 종이 다른 두 몬스터가 나란히 이동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것은 마치 서로 협력하는 듯하였다.
같은 종이라면 서로 영역을 두고 다투긴 한다.
하지만 가끔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이라면 경쟁자와 협력하여 함께 사냥을 나설 정도로 지능 역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종에 한해서이다.
다른 종이란 경쟁자가 아닌 적이다.
함께할 수 없고, 함께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 함께할 수 없고 함께해서도 안 되는 두 종이 함께 움직이며 협력하는 모습에는 아미엘조차 크게 놀랄 정도였다.
“몬스터가 다시 나타난 것도 문제이다. 하나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함께하는 것은 무언가 많이 어긋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몬스터가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분명 큰 문제이다.
하지만 종이 다른 몬스터가 서로 협력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적응을 하고 번식하며, 경쟁하지 않고, 어떻게 협력하는지, 모든 것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니라.”
그렇기에 아미엘은 지금의 이 현상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모르는 곳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 상황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