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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97화 (197/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97화

“너의 성흔에서 아무리 신성력을 세계수에, 성은의 흔적을 통해 흘러 넣는다 해도 잘못되는 일이 없으니 안심하거라.”

“지, 진짜 말짱한 거죠?”

주안이 재차 그렇게 묻자, 아미엘은 여전히 불안해 보이면서도 세냐를 붙잡고 있는 주안의 모습에 갸웃했다.

하지만 꽤나 절박하고 불안해 보이는 주안의 모습에 안심시켜 주어야 한다는 묘한 감정이 일어서 그런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말했다.

“물론이니라. 성흔은 누군가를 해할 목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지켜주고, 보듬어주고, 부흥시키기 위한 것이니라.”

“휴우…….”

아미엘의 말에 그제야 주안은 안심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냐는 조금 재미없어진 듯 마법 보호막을 풀고는 주안의 손에서 벗어나 아미엘에게 날아가 그 어깨에 앉았다.

“핏, 아미엘 님, 그걸 다 말하면 어떻게 해요. 재미있었는데.”

“그러하느냐.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마.”

“주, 주의하지 마세요. 세냐의 그런 말에 따르지 마시라고요.”

“음? 그렇게 하도록 하마.”

“아?! 아미엘 님!

서로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는 아이들처럼 아미엘에게 매달리는 주안과 세냐였지만, 그럼에도 아미엘은 평온한 모습으로 이쪽 편이 되어주고 저쪽 편이 되어주기도 하였다.

그 때문인지 주안도, 세냐도 아미엘을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려보며 으르렁댈 뿐이었다.

“그보다 오늘은 어인 일이더냐?”

“아, 참.”

세냐를 노려보던 주안이 아미엘의 말에 정신을 차리며 가방 속에서 마를렌에 관한 자료들을 꺼내어 아미엘에게 보여주었다.

“마를렌 님에 관한 저희 가문에 남아 있던 것들이에요. 아직 더 살펴볼 수는 있지만, 일단 이것만이라도 좀 봐주시겠어요?”

“마를렌의……?”

주안이 꺼낸 종이뭉치에 아미엘이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주안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들었다.

“많은 것이 남아 있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세냐가, 마를렌 님이 아미엘 님이 아시던 그 마를렌 님이라는 확인은 해줬어요.”

“그러하구나…….”

그리고 아미엘은 그것들을 살펴보다 마를렌이 남긴 편지를 보고는 표정이 조금 변했다.

그러한 아미엘의 모습에 주안이 조심스레 말했다.

“마를렌 님의 필기체가 맞나요?”

“그래, 그 아이의 글씨구나.”

아미엘 역시 마를렌의 글씨를 기억하는 듯, 세냐와 마찬가지로 그 글씨를 마치 마를렌인 듯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얼굴을 본 주안은 조금 놀란 듯했다.

‘아미엘 님이 저런 표정을 다 지으실 수 있구나…….’

아미엘이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미엘과 만난 것은 오래되지도 않았고, 같이 지낸 것도 짧았지만, 주안이 아는 아미엘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가끔 세 요정 꼬맹이 때문에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던 아미엘이 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았다.

마를렌이 남긴 편지와 그에 관한 것들이 담긴 종이를 마치 마를렌인 것처럼 소중히 품에 끌어안는 모습에 주안은 왠지 모를 부러움을 느꼈다.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공작성에 워프 게이트가 만들어지자마자 가장 먼저, 이곳으로 달려온 게 잘한 듯하네요.”

“이것을 전해주러 온 것이구나. 정말 고맙구나.”

그래도 아미엘의 칭찬에 주안 역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 참. 그리고 아미엘 님에게도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

“부탁 말이더냐?”

갸웃하는 아미엘에게 주안은 이전처럼 또 아미엘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는 부탁이 아닌지, 사실 조금 고민되었다.

하지만 미리 세냐에게 물어보고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기에 일단 아미엘에게 말을 꺼낼 수는 있었다.

“실은 공작성과 황도의 저택에 있는 워프 게이트, 그것을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는 사용할 수 있게끔 아미엘 님에게 허락을 받고 싶어서요.”

“그곳을 말이더냐?”

머뭇거리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주안의 모습에 아미엘은 의아한 듯했다.

무척이나 신경 쓰고 있는 듯 쭈뼛거리는 주안의 모습에 아미엘이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가문이 마를렌의 피를 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너의 가족은 나의 가족이니라. 허락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 워프 게이트는 너의 가족에게는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을 것이다.”

“아미엘 님…….”

“네가 생각하는 너의 가족들……. 일전에 너와 함께 왔던 그 아이처럼, 너의 가족의 범주 내에 있는 이라면 내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니 안심하거라.”

허락도 없이 세라타를 데리고 함께 이곳에 왔을 때, 그럼에도 아미엘은 크게 마음을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타인임에도, 피가 이어져 있지 않은 이임에도, 그렇다고 함께 여생을 보낼 반려가 아니었음에도 주안은 세라타에게 가족과 같은 아이라 칭했고, 아미엘은 그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 마음을 알고 있었고, 마를렌 역시 그러한 많은 가족을 두었으며 모든 이종족의 어머니처럼 지내었으니, 주안에게 그러한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에 아미엘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주안의 가족이라는 그 범위가 결코 나쁜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고, 주안을 믿었다.

세냐 또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에 허락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었다.

“꼭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알리도록 할게요, 아미엘 님.”

“그래, 그러면 된 것이다.”

주안의 다짐에 반응하듯, 성흔에서 신성력의 빛이 흘러나오며, 주변을 금세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이러한 다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성흔이 그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익숙한 힘에, 포근함에 아미엘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세상은 자신이 알던 것과 달라졌지만, 마를렌의 자손만큼은 변치 않고 그녀와 매우 닮아 있었다.

* * *

“네? 메데아 대족장님이 안 계셔요?”

세계수에 신성력을 잔뜩 불어 넣은 뒤 아미엘의 방으로 자리를 옮긴 주안은 그녀가 직접 따라준 차를 마시다가 그녀가 한 말에 갸웃하였다.

이곳에 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미엘을 만나 마를렌에 관한 자료를 전해주는 것이었고, 하나는 메데아 대족장을 만나 일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듯 주안이 아미엘에게 물었다.

“메데아 대족장님이 자리를 비울 만한 일이라도 생겼나요?”

대족장은 웬만해선 이곳, 세계수가 자리를 잡은 호수가의 달란트 부족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들었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그녀의 바람과 주안의 요청이 딱 맞아 떨어져서 주변의 만류에도 제국으로 쉽게 초대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이런 주안의 물음에 아미엘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자세히는 모르겠구나. 나 역시 그 아이를 만나러 갔다만, 바깥쪽 경계에 외지인들로 인하여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달려갔다더구나.”

“달려가요? ……설마, 혼자 가셨어요?”

“라쿰바라는 아이가 그렇다고 하더구나.”

“……라쿰바 부족장이 기겁했겠네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곳까지 그 일이라는 게 전달되었다면 썩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듣고 부족 회의도 아닌, 혼자 달려 나갔다는 것에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를 참고 있는 게 눈에 보이더구나.”

“하아…….”

“하지만 이해해 주거라. 너라는 아이는 초대를 받았다고 들었다만, 초대받지 않은 이가 멋대로 들어와서 매우 어수선하더구나.”

“초대받지 않은 사람……? 설마, 외지인 다수가 들어 온 거예요?”

“꽤 많은 인원이라고 라쿰바가 그러더구나.”

외지인은 곧 적이고, 그것도 초대받지 못한 많은 이가 한꺼번에 찾아온 것은 몇백 년 만이다.

그러니 그들로서도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안 역시 이해했다.

또한 그러한 일에 가장 앞장을 서야 할 대족장인 메데아 대족장이 나선 것 역시 이해했다.

그저, 다른 이들을 내버려 두고 혼자 가버린 것이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물론 그분 혼자 가는 것이 가장 빠르긴 하지만.’

다이어 울프들을 타고 다니는 달란트 부족이지만, 그런 것보다 진심으로 달리는 메데아 대족장이 더 빠를 것을 주안이 직접 몸으로 겪어보았었다.

“으음……. 하지만 갑자기 왜…….”

남부 대밀림은 더 이상 대륙의 사람들에게 정복할 땅이 아닌지라, 대규모 인원을 보내어 분쟁하여 얻을 이득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이곳, 남부 대밀림과 가장 가까운 국가인 아스란 왕국은 그럴 국력도 없었으까.

그렇기에 주안은 갑자기 일어난 이 일이 자신과 연관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메데아 대족장에 관한 일로 황도가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일 말이다.

“……벌써 타 가문의 사절단이 온 건가, 너무 빠른데.”

하지만 제국의 귀족이 보낸 사신이 당도하기엔 시간상 너무 이르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는 몰라도 아미엘을 통해 전해 들은 부족의 어수선함은 꽤 많은 인원으로 생각되었다.

많은 인원이 움직였다면 소문이 나게 마련이고, 남부 국경을 통과한다면 맥도넬이 쉽게 통과시켜 주지도 않을 것이기에 제국의 귀족이 보낸 사절단으로는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였다.

“아스란 왕국의 귀족인가.”

“아스란? 이곳과 가까운 나라의 이름이라 들었다, 맞느냐.”

“아, 네. 바로 여기 북부에 자리를 잡은 왕국이에요.”

주안이 전해준 책들을 통해 세상에 관한 여러 공부를 하고 있는 아미엘이라 그런지, 서방 대륙의 나라에 대해서는 대충 파악이 끝난 듯하였다.

“제가 일전에 메데아 대족장님에게 말씀을 드렸던 제 실수, 아마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일이 일어난 듯해요.”

“그러하구나. 하면 하루라도 빨리 그 아이를 데리고 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할 듯하구나.”

“예, 앞으로 더 귀찮은 일들이 많아질 듯해요.”

하지만 아스란 왕국의 귀족이, 제국, 그것도 황도에서 일어난 일을 이렇게 빨리 알아차리고 갑자기 사절단을 꾸려 남부 대밀림으로 보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탐나는 힘이라 해도, 그들에겐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힘은 전혀 없었다.

괜히 찔러본다는 것치고는 소식도 빨리 접했고, 빠르게 사절단을 보냈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일은 누군가가 사주한 듯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그것도 아스란 왕국의 귀족이 움직일 리 없어요. 그 귀족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실 저희 제국의 귀족들밖에 없거든요.”

속국이나 마찬가지인 아스란 왕국이기에, 제국의 귀족과 연결되어 그들에게 명령을 받는 이가 굉장히 많았다.

그것에 분해서 동부의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조용히 손을 뻗어 곁에 앉아 있던 주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호오, 보지 않았음에도 너는 그것을 잘 아는구나.”

“주변 상황을 살펴보면 직접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파악은 할 수 있으니까요.”

“참으로 똑똑하구나.”

“으, 으음……. 저 그렇게 똑똑한 건 아닌데…….”

그리고 이런 주안과 아미엘의 다정한 모습에 세냐가 살짝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맞아요. 이 오빠가 공부를 얼마나 못하는데요.”

“시, 시끄러. 나도 안다고.”

주안이 볼을 발갛게 붉히며 반론을 하였지만, 사실인지라 조금 부끄럽긴 하였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투탁거리는 모습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던 아미엘이 말했다.

“하면 너는 그 아이를 만날 시간이 비게 되겠구나.”

“아무래도 그렇겠죠. 내일이나 모레 다시 와야 할 듯해요.”

내일이든 모레든, 일정을 봐야 알겠지만, 그때도 메데아 대족장이 없다면 조금 곤란해진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잠시 나와 외출하지 않겠느냐?”

“네? 외출이요?”

주안이 갸웃하자 아미엘이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었다.

“너의 성흔의 힘을 잠시 빌렸으면 하여 말이다.”

주안이 자신의 왼손바닥을 보며 의아해하였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어디로 가시려고요?”

성흔의 힘을 왜 빌리는 것인지 이유를 묻지도 않고, 위험한 곳인지 의심조차 하지 않고 전적으로 아미엘을 믿는 주안의 모습에 아미엘도 조금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안을 보며 아미엘이 마를렌의 편지를 받았을 때만큼 밝은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덤이다.”

“예? 무덤……?”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갸웃하는 주안을 보며 아미엘이 간단히 답했다.

“최후의 드래곤, 크세니아가 잠든 장소이니라.”

주안은 아미엘의 그 말에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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