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96화
“응? 아미엘 님, 어디 가셨나?”
주안이 이 워프 게이트의 문을 열고 세계수와 연결하면 가장 먼저 나와서 맞이해 주던 아미엘이었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아미엘의 방은 맞았지만, 아미엘은 없었다.
“우리 아미엘 님도 바쁘시거든요?! 오빠가 온다고 몸단장하고 기다리실 분이 아니시거든요!”
“……그런 생각도, 그렇게 바란 적도 없어.”
“흥!”
왠지 토라진 세냐의 모습에 주안은 또 얘가 왜 이러는지 몰라 갸웃하였다.
참 여자는 알다가도 모른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서 절실히 깨닫긴 했지만 어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들은 세라타 빼고는 그 속을 다 알 수가 없는 것인지…….
“어쩌지, 나중에 와야 하나.”
“일단 나가볼래요? 어차피 오크들도 만나야 하잖아요.”
“아, 그렇긴 하지.”
달란트 부족에 방문하여 메데아 대족장에게도 그 의사를 물어봐야 하였다.
대충 할아버지와 가론 노밀 자작과 함께 일정을 조율하여 결정하였고, 메데아 대족장의 허락을 받으면 되었다.
“그러면 일단 메데아 대족장님을 만나러 가볼까? 아미엘 님도 거기 있을 수 있잖아.”
“뭐, 그러면 그렇게 해요.”
주안의 말에 세냐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아미엘 만큼 순식간에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세냐의 손바닥 위로 자그마한 마법진이 떠올랐고, 주안은 참으로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세냐의 손을 보다 무언가 떠오른 듯 주안이 잽싸게 손까지 들고 세냐에게 말했다.
“아, 세냐. 그보다 달란트 부족에 먼저 가기 전에 세계수의 꼭대기 부분에 잠시 갈 수 있을까?”
“네? 갑자기 거긴 왜요?”
“응, 오랜만에 온 거기도 하고, 이 성흔으로 신성력을 잔뜩 넣어줘야 문이 안 닫힌다고 했잖아.”
“아…….”
주안이 든 왼손의 손바닥에 새겨진 성흔의 빛을 보던 세냐도 그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로 문을 닫거나 하진 마세요. 그러면 우리 또 가버린단 말이에요.”
“그래도 고향이지 않아? 여기보다 재미없는 거야.”
“음, 느긋한 걸 좋아한다면 모를까……. 좀 심심한 곳이긴 하거든요.”
“헤에, 그래? 언제 한번 놀러 가고 싶어지네.”
“마치 옆집 놀러 가는 듯 말씀하시네요. 인간이 가기에는 엄청 위험한데…….”
그렇긴 하지만 세냐는 주안이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대신 입술을 삐죽인 채 주안에게 작은 경고의 말을 하였다.
“가능하다 해도 시도하려 하지 마세요.”
“응? 왜?”
“여기랑 거긴 시간이 다르다고 이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잘못하면 그곳에서 하루, 아니, 한 시간 머물고 다시 되돌아와도 이곳의 시간이 어떻게 변했을지 아무도 몰라요.”
“아……. 그렇구나. 그건 좀 그러네.”
주안 역시 이전에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긴 하였다.
요정들이 사는 땅과 이곳의 땅은 시간의 차이가 매우 심했다.
요정들의 세상에서의 하루가 이곳의 일 년이 될 수가 있었고, 반대로 그곳의 일 년이 이곳의 하루가 될 수도 있었다.
갈 수 있는 것은 둘째 치고 갔다가 잠시 머물고 돌아오면 이곳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세냐의 경고에 주안이 조금은 아쉽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아쉽긴 하네. 나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왜요? 요정들의 세상이 그렇게 궁금하세요?”
“조금은……. 나중에 동생이 태어나고, 말문이 트였을 때 자랑할 게 하나 생기는 거잖아.”
“……요정의 세상에 구경 갔다 와서 하고 싶은 게 동생한테 자랑이에요?”
“응.”
당당한 주안의 그 말에 애써 집중해서 만들던 워프 마법이 흐트러져 사라질 뻔했다.
무슨 농담이라도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주안의 눈빛은 거짓 하나 없이 진실을 말해주는 듯했다.
“정말 오빠는…….”
“하하, 좀 그런가…….”
그래도 조금은 부끄러워진 것인지 주안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네요. 나중에 요정들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 말해줄까요?”
“정말?”
“힘든 일도 아닌데요 뭐. 그걸 잘 정리하면, 동생한테 나름 자랑할 만한 동화책 하나 정도는 만들어지겠죠.”
“세냐, 완전 좋은 생각이야.”
“흐흥~”
주안이 엄지까지 치켜세우며 세냐를 칭찬하자, 주안의 그 말에 세냐가 우쭐하며 콧대를 높였다.
조금은 어른스러워 보이는 말과 행동 치고는 칭찬에는 엄청나게 약한 아이 같았다.
“자, 그러면 갈게요. 손잡아요.”
“응! ……응? 손?”
갸웃하는 주안에게 세냐가 손을 내밀자, 자신도 모르게 주안이 그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아미엘은 그저 눈 한 번 깜빡이니 금세 이동을 하던 것치곤 세냐는 준비하는 것이 참으로 많은 듯했다.
“전 아미엘 님이랑 달라서 이거 잘 못 하거든요? 이렇게 저랑 접촉하지 않으면 못 데리고 간다고요.”
“아, 그래?”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리는 세냐였지만, 이것만으로도 인간 세상의 마법사들은 꿈도 못 꿀 일이라는 사실을 주안은 잘 몰랐다.
그저 아미엘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고, 세냐는 그보다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유능한 아이라는 것 정도만 이해할 뿐이었다.
그리고 주안의 손을 잡은 세냐가 이내 자신과 주안의 몸을 마법진으로 감싸주자 순식간에 아미엘의 방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앗? 세냐다!”
“언니~!”
“인간 형아도 있다!”
주안과 세냐가 아미엘의 방에서 세계수의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나뭇가지 위에 나타나자, 근처에서 놀고 있던 요정들이 이런 세냐와 주안을 보며 반갑게 맞이해 주며 날아왔다.
“으악?! 자, 잠깐만……. 옷 속에 들어가지 마!”
“냐하하~!”
“형아, 좋은 냄새 나! 엘프 냄새!”
“따뜻해…….”
세 요정 꼬맹이, 특히 마냐도 대단하긴 했지만, 요정들이란 참으로 넉살이 좋고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들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분명 나이로 보면 자신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겠지만, 마치 영원히 아이들로만 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 바쁘니까, 내려가서 놀아. 나중에 이 오빠랑 마음껏 놀게 해줄 테니까.”
“놀아?! 나랑?!”
옷 속에 들어간 작은 요정 꼬맹이를 떼어낸 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주안은 세냐의 말에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놀란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 요정 꼬맹이들은 세냐의 말에 활짝 웃어주었다.
“네에~”
“언니야 나중에 마냐 언니야랑 아냐 언니야도 데리고 오세요~”
“형아도 나중에 봐!”
그리고 마치 나중에 노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손까지 흔들어주며 곱게 내려가는 그 모습에 주안은 핼쑥해졌다.
“……마, 마냐 만큼 기운이 좋진 않겠지?”
“우리 마냐보다 날쌘 애는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그, 으음…… 으응. 그러면 안심이야.”
정말 웬만한 기사들보다 건강함과 활발함을 자랑하는 마냐는 쉽게 지치지도 않고 주안에게 계속 놀아달라며 떼를 썼다.
한번 놀아주면 몇 시간이고 술래잡기에 숨바꼭질에 그림 그려주기 등등을 하여야만 하기에 굉장히 피곤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마냐보다는 낫다고 하니, 주안은 정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냐는 이런 주안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마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들이 잔뜩이라 그 이상일 수도 있는데…….”
“응?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여기 왔으니까 할 거 하세요.”
“응.”
안심하는 주안을 보니, 진실을 말해줄 수가 없었기에 세냐가 안심하는 주안의 시선을 슬쩍 피하였다.
그저 놀아줄 때, 정말 피곤할 때 한 번 정도는 도와주기로 작게 다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주안은 조심스레 세계수의 꼭대기 부분에 자리를 잡은 성흔의 흔적 쪽으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거대한 나무라 그런지 밟고 있는 이 가지도 굵고 넓었으며, 매우 튼튼했고 주안이 크게 무리 없이 움직일 만하였다.
이런 주안의 뒤로 세냐가 날아와 주안의 머리 위에 앉았다.
“아직 성흔의 빛이 밝네.”
작은 흔적만 남아 있던 세계수에 새겨진 성흔은 주안으로 인해서 밝게 빛나며 세계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저쪽 너머의 요정의 땅과 연결된 문을 열어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주안은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저 아미엘에게서 들었던 이 성흔이, 마를렌의 피가 바로 열쇠의 역할을 하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게 큰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아미엘 님을 다시 이곳으로 부른 것이니까…….’
아미엘뿐만이 아니라 세냐나 마냐, 아냐와 같은 요정들도 다시 이 땅으로 불러주었고, 세상의 잊힌 비밀도 주안에게 알려준 소중한 것이었다.
“자, 그러면…….”
주안이 조심스레 왼손바닥의 성흔에서 신성력의 빛을 끌어 올리자, 등 뒤로 후광이 다시 비치기 시작하였다.
신성력을 끌어올리면 이게 다시 나타나는 점은 조금 그렇긴 했지만, 이건 조절할 수가 없었다.
신성력을 내지 않고 집중하면 괜찮지만, 신성력을 끌어내면 아무리 집중해도 후광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주안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빛이 나고 있는 세계수에 새겨진 성흔에 자신의 왼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아, 그리고 조심하세요. 신성력 같은 걸 너무 많이 집어넣으면 세계수가 터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
세냐가 넌지시 던진 그 말에 주안이 움찔 놀라며 움직임을 멈추었지만, 이내 픽 웃으며 세계수의 성흔의 흔적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 농담에 이제 안 놀라거든?”
“……진짠데.”
“하하, 안 속는다니까.”
그랬다면 이미 세냐는 저 멀리 날아가서 주안을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니, 주안이 또 속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 불안한 것인지 슬쩍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세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어 만져 보았다.
“…….”
촉감은 있다.
세냐가 여전히 있긴 하였다.
단지…….
“……마법 방어막, 단단하네?”
“네, 단단해야죠.”
“근데 왜 너만 그런 거야?”
“일인용이니까요.”
“…….”
세냐의 간단한 말에 주안은 왼손을 조심스레 거두었다.
대신 오른손으로 마법 방어막을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세냐를, 마법 방어막 통째로 집어 들어 얼굴 앞으로 가져와 소리쳤다.
“너, 너 마법 잘 쓰잖아?! 왜 2인용이 아닌 건데!”
“오빤 커서 오빠까지 해주려면 귀찮아요!”
“귀찮아?! 힘든 게 아니라 귀찮은 거였어?!”
“오빤 일인분이 아니라 백인분이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엄청 귀찮죠!”
“배, 백인분 아니거든!”
“우리한텐 백인분이거든요!”
세냐의 입장에서야 맞는 말이긴 했지만, 왠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주안 역시 으르렁거리며 세냐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런 주안과 세냐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사이 조용히 곁으로 내려온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진 못한 듯했다.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이더냐.”
언제 온 것인지, 아미엘이 주안과 세냐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넌지시 그렇게 물었다.
“…….”
“…….”
그리고 주안은 그런 아미엘을 아무 말 없이 올려다보다, 조용히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미엘 님.”
“……재미있어 보이는구나.”
아미엘의 그 간단한 말에 주안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고, 세냐는 뭐가 그리 재미난 것인지, 정말 성격 나쁜 꼬맹이처럼 쿠후후 하며 웃었다.
그리고 주안은 두 손으로 세냐의 몸을 감싸고 있는 마법 방어막을 꽉 움켜쥐었지만, 돌덩이처럼 단단한 그것은 매우 말짱했다.
그저 주안의 손만 아팠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