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87화
세냐는 마를렌에 관한 자료를 열심히 살폈고, 쉬는 시간에 틈틈이 맛있는 벌꿀 과자를 먹는 것으로 피로를 풀었다.
주안은 작은 장신구를 집어 들고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행동에 세냐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뭘 하고 계신 거예요?”
“아, 이거?”
세냐의 말에 주안이 싱긋 웃고는 손에 쥐고 있던 목걸이를 들며 말했다.
“실은 여기에 신성력을 불어 넣어 볼까 싶어서.”
“신성력을요?”
“응.”
갑자기 웬 신성력, 이라는 듯 세냐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주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세냐의 귀여운 모습에 주안이 손가락으로 세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전에 아스란 왕국에 갔을 때, 실은 급하게 치료해야 할 사람들이 잔뜩 있었거든.”
그때를 떠올리니 기분이 조금 그랬지만, 애써 태연한 척 세냐에게 말했다.
“그때 신성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데, 신관들은 많이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생각했었던 게 여러 천에 신성력을 잔뜩 불어넣은 붕대를 만드는 거였어.”
“붕대를요?”
“응, 그래서 사람들을 잔뜩 치료할 수 있었어. 물론 신관분들의 도움이 가장 컸지만 말이야.”
주안은 수월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 단지 신성력 가득한 붕대뿐만 아니라, 신관들의 도움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물건에도 신성력을 불어넣으면, 그때처럼 효과가 나지 않을까 싶어서.”
“누구 아픈 사람이라도 있어요?”
“응, 있지. 내가 없어도 아프지 말았으면 하는 아이가 있어.”
언제 또 갑작스레 아플지 모를 도리안의 아들인 하마르를 생각하니, 주안은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고민하다 떠올린 것이 바로 아스란 왕국에서 만들었던 신성력이 가득한 붕대였다.
항상 몸에 지닐 수 있는 이런 장신구를 통해 똑같은 효과를 내게 만들 수만 있다면 또다시 갑작스러운 통증에도 몸에 지닌 신성력의 효과로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일단 붕대는 확실히 효과를 봤거든. 하지만 그건 쉽게 훼손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거라면 쉽게 망가지진 않을 거 아니야.”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이런 장신구는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특히 목걸이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생각에 세냐는 황당하다는 듯 주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완전 성유물을 만드실 생각이시잖아요.”
“성유물? 아, 신전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런 거?”
과거의 유물 중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유물들이 있었고, 그러한 유물들은 성유물이라고 불리며 신전에서 보물처럼 여겨졌다.
주안 역시 그 성유물을 떠올려 만든 게 바로 신성력 가득한 붕대였으니 말이다.
“사실 그냥 도리안 경이 머물고 있는 저택 전체를 우리 저택처럼 만들어주어도 괜찮다 싶은데, 그건 좀 과할까 싶어서.”
“엄청 과하거든요?! 무슨 스케일이 안젤라 아줌마만큼 크신 건데요!”
“……일단 아들이니까?”
그리고 이런 세냐의 시선을 피하며 주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요정에게까지 인정받은 어마어마한 스케일이라는 점이 조금 머쓱하게 만든다.
“뭐, 나도 그래서 그만둔 거야. 너무 신성력을 남발하는 것도 좋진 않으니까.”
“충분히 남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흠흠, 적당한 거야, 적당한 거.”
“모전자전…….”
“으음…….”
주안이 생각하는 적당함이 실은 생각보다 스케일이 좀 크다는 것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세냐의 말처럼, 엄마인 안젤라를 닮아서 그런지 주안도 은근히 씀씀이가 매우 큰 편이었다.
물론 가문의 이름이나 권력 등을 보면 사용하는 것은 매우 적었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케일이 큰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주안 역시 절제한다, 한다 하였음에도 가까운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전혀 아니었다.
“이, 일단 그때처럼 한번 해볼까 싶은데 조금 고민이 되어서.”
“그걸 조금 고민이라고 하는 것도 어이없다는 거, 오빤 모르시죠?”
“응? 왜?”
“…….”
순진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주안의 그 모습에 세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주안을 바라본다.
“만들지 못한다는 고민은 아니시죠?”
“응, 그냥 얼마나 불어넣어야 오래 유지될까 싶어서. 너무 많이 해놓으면 그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동방 대륙의 말에 따르면 과유불급이라는 말이다.
너무 지나치다면 오히려 모자란 것과도 같다고 하니, 적당함을 유지하여 균형을 맞추어야 할 듯한데 주안은 그게 얼마인지 몰랐다.
“무슨 성유물이 집에서 만드는 빵도 아니고…….”
“빵 만들기 힘들 거 같은데…….”
사실 주안의 입장에선 성유물 만들기가 더욱 쉬울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전 삶 속에서도 빵 같은 것은 만들어본 일도 없다 보니, 그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감도 안 잡혔다.
“아, 혹시 마를렌 님도 나처럼 이런 거 만드시고 그러셨어? 그래도 이 성흔을 원래 가지고 계셨던 분이셨잖아.”
“그런 걸 만들 수 있었으면 무기나 방어구, 장신구에 신성력을 잔뜩 불어넣어서 죽지 않는 불사의 군단을 만들어 인간을 쓸어 버렸겠죠.”
“……무시무시한 발상이네. 난 그렇게 안 해야지.”
생각해 보니 세냐의 말대로 무기나 방어구에 이런 신성력을 잔뜩 불어 넣게 된다면 참 어이없는 일이 생길 듯했다.
큰 상처 따윈 금세 치료해 줄 것이고, 무기는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베어버릴 수도 있을 듯하니 말이다.
조금 혹하긴 하였지만, 정말 그게 가능하다 해도 시도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
‘내가 무슨 대륙 통일할 것도 아니고…….’
가문은 지금도 충분히 강성하고 어디 부족하지도 않았다.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하고 주안은 자신의 크기가 얼마인지 지금은 잘 알고 있었다.
현재의 가문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것이 주안의 한계임을 모르진 않았다.
그렇기에 욕심은 버리고 자신의 품에 있는 것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것만 하여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정말 급하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그게 정말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가능하다 해도 지금은 아니었다.
정말 급할 때, 그땐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왜 오빤 그런 게 가능한 건지…….”
“그러게 말이야. 이런 것도 되고.”
주안이 싱긋 웃으며 슬쩍 신성력의 힘을 풀자 어느새 다시 주안의 뒤로 후광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쓸데없는 능력 같지만, 세냐는 주안의 등 뒤로 비치는 후광에 자신도 모르게 절을 할 뻔했다.
그만큼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만드는 신성한 빛이었다.
하지만 주안이 이내 다시 집중하자, 그 후광은 주안의 왼손바닥의 성흔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말 신기하긴 한데 참 쓸데없는 능력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왜 이런 게 생겼나 모르겠어.”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후광이 생긴 이후 신성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일단, 한번 해볼까?”
“…….”
“……왜 멀리 떨어지는 건데?”
잽싸게 벌꿀 과자가 담긴 접시를 마법으로 띄워 저 멀리 침대 쪽으로 날아가 버리는 세냐의 모습에 주안이 갸웃하며 물었다.
그리고 세냐는 다시 재차 마법으로 투명한 막을 만들어내며 말했다.
“잘못되면 일단 살아야 하니까요.”
“치사하게…….”
안 그래도 불안한데 세냐의 행동에 더욱 불안감을 쌓인다.
이런 주안의 앓는 소리에도 세냐는 진심이라는 듯 잔뜩 긴장한 눈으로 주안을 주시하였기에 주안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조금 고민되었지만, 주안이 침을 꼴깍 삼킨 후 조심스럽게 왼손의 성흔에서 신성력을 끌어내어 들고 있던 목걸이에 집중하였다.
하마르에게 선물해 줄 것이기에 크게 부담스럽지 않도록 적당한 상점에서 구한 목걸이라 그런지 별다른 장식은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 목걸이가 주안의 신성력을 받자 점차 환한 빛이 나기 시작하였다.
‘조금 더 해도 괜찮겠지?’
지금은 아스란 왕국에서 만들었던 붕대만큼의 신성력이었다.
그때보단 조금 더 많은 신성력을 불어넣어야 오래 유지되고 하마르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주안이 조금씩 신성력의 강도를 올렸다.
그리고 집중된 신성력의 빛은 목걸이를 반투명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점차 강해지는 빛은 압축되어 반투명해진 목걸이 속으로 흘러 들어가 마치 강처럼 천천히 목걸이 내부를 무한히 돌기 시작했다.
완성된 목걸이의 모습에 주안이나 세냐나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디.
“…….”
목걸이를 보며 할 말이 없어진 주안이었고.
“…….”
마찬가지로 말없이 그것을 지켜보는 세냐였다.
“……좀, 과했나.”
주안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 말에 세냐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이 아니라 심하게 과하다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세냐가 놀란 상태라는 것을 주안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목걸이는 더 이상 상점에서 파는 단순한 목걸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신성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며, 점점 주변에 퍼져 나가는 꽃의 향기가 마음의 안정까지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거, 선물로 줘도 괜찮을까…….”
“안 된다고 봐요.”
“으으음…….”
기껏 만든 것인데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안 역시 지금 자신이 만든 이 목걸이가 하마르를 치료하기 이전에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주안이 만들었음에도 심할 정도로 과한 신성력의 빛은 일반 사람들마저 탐내게 할 것만 같았고, 신관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것을 구하려고 할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이것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을 매우 힘들게 할 수 있는 물건이 된 것이다.
아무래도 세냐의 말대로 하마르의 안전을 생각하면 이것을 절대 주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조금 더 약하게 해서 하나 더 만들어야겠어.”
“아주 성유물을 찍어내실 생각이신가 보네요.”
“어쩔 수 없잖아. 세냐 것도 하나 만들어줄까?”
“필요 없어요.”
주안의 배려에도 세냐는 퉁명스레 거절햇다.
아무렇지도 않게 성유물에 버금가는 물건을 만들어서 선물해 주겠다는 주안의 말이 참으로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지. 이건 일단 엄마한테나 드릴까…….”
이런 과할 정도로 엄청난 물건을 평범한 사람이 가지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엄마인 안젤라가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두 ‘그러면 그렇지.’ 하고 이해할 정도로 과소비가 심하였기에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기승전엄마네요.”
“그, 그런 거 아냐. 우리 엄마가 가지고 있으면, 일단 안전하기도 하고 사람들도 이해할 정도이기도 해서……. 무엇보다 곧 태어날 내 동생을 위해서라도 이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으니까…….”
“참으로 구차한 변명이라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으…….”
세냐의 말이 가슴에 푹 하고 내리꽂힌다.
많이 따끔하였기에 주안은 뭐라 따지지도 못하였다.
그저 세냐의 시선을 피한 채 조용히 말을 꺼냈다.
“……조사, 계속할까?”
“성유물 안 만드시고요?”
“그건 내일 다시. 지금은 장신구가 더는 없거든.”
주안의 것이라면 몇 개나 있겠지만, 그 역시 하마르가 가지고 있으면 다른 이들이 탐낼 수 있는 것들이기에 그것을 가지고 만들어주긴 조금 곤란했다.
내일은 반드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성유물을 만들어주기로 마음을 먹고는 주안은 조용히 마를렌 마르티네스에 관한 자료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세냐의 눈총을 받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평범한 것을 만들어주기로 작게 다짐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