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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86화 (186/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86화

주안이 방을 나서고 그런 주안을 배웅하기 위해 록산느 역시 자리를 벗어났다.

자리에 앉아 찻잔을 매만지던 스타크 로마니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가문을 위해서라…….”

스타크 로마니아는 주안이 한 말을 곰곰이 되새기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주안 공자님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나도 조금 놀랐구나.”

스타크 로마니아뿐만이 아니라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 역시 주안의 모습에 짐짓 놀란 듯했다.

“공자님이 확실히 많이 변하시긴 변하셨군요.”

그리고 루반 웰링 준남작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들은 주안이 변했다는 소문만은 많이 접했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어보니 변했다는 것을 체감할 수가 있었다.

“어찌하겠느냐. 계속 반대한다면…… 나도 더 이상 뭐라 말하진 않으마.”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아무리 가주라 하여도 록산느의 아버지는 결국 스타크 로마니아다.

그렇기에 스타크 로마니아의 의사를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단지 아버지와 아들의 의견충돌을 넘어선 대립이 될 수 있었고, 딸과 아버지의 관계도 어긋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가족 간의 신뢰는 작은 것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는 것을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은 모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다음을 이을 사람은 스타크 로마니아였기에, 다음 대의 가주가 될 그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 주어야 로마니아 백작 가문의 권력이 자연스럽게 스타크 로마니아에게 집중이 될 수 있다.

“이런 소리를 듣고 마냥 반대하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면…….”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록산느의 안전을 어느 선까지 보장해 줄 것인지,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과 주안 공자가 어디까지 손을 쓸 수 있는지를 보고 판단하지요.”

다른 가문들과는 달리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과 그들을 따르는 삼대 백작 가문은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이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한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안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였으며, 분명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벡브란 전대 공작의 생일 파티 이후 변하기 시작한 주안에 대한 소문은 결국 삼대 백작가를 움직이게 했고, 아스란 왕국으로 떠나는 사절단에 위체니아 소벡을 합류시켜 주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주안에 대한 소문을 알아보고, 조사하였으며 위체니아가 가지고 온 정보를 통해 곧 이곳에서 삼대 백작가, 로마니아와 소벡, 헥사빌이 만나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타크 로마니아나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아직 마르티네스는 문제가 없는 듯하구나.”

“확실히 그런 듯합니다.”

여전히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이 강성하다면 삼대 백작 가문 역시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을 따르는 것에 큰 불만을 품지 않을 것이다.

* * *

“정말 감사합니다, 공자님.”

주안을 따라나섰던 록산느가 조용히 주안을 부르며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런 록산느의 행동에 주안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록산느 경이 이렇게 고개를 자주 숙이는 분인 줄은 몰랐는데요.”

“고개를 숙이는 것에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분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공자님.”

“으음, 저, 저는 아직 그런 가치가…….”

고개를 들고 생긋 미소를 짓는 록산느의 모습에 주안이 볼을 잔뜩 붉히며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정말 당당하고 밝은 여성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뭔가 기분이 참 묘했다.

“그, 그보다 풍신 경을 만나신다고 해도 허락을 받으시는 것은 전적으로 록산느 경에게 달렸으니 열심히 해주셔야 해요.”

물론 풍신에게 소개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주안도 최선을 다해 부탁해 볼 생각이었다.

록산느가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실 거라 생각을 하시는군요.”

“예, 스타크 경이 로마니아 가문과 저희 마르티네스 가문을 생각하신다면 허락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기사란 참 고지식한 존재들이긴 하지만, 다른 의미로 이만큼 다루기 쉬운 사람들도 없었다.

그들에게 가장 우선하는 것을 언급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주안에게 가족과 가문이 최우선인 것처럼, 스타크 로마니아 역시 가문을 우선해야 하는 인물이었기에, 가문에 큰 이득이 된다면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록산느 경의 안전만 보장될 수 있다면 스타크 경도 분명 허락하실 거예요.”

“제 안전은 제가 충분히…….”

“예, 록산느 경 혼자서도 충분하겠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죠. 많이 걱정하실 거예요.”

“…….”

아버지의 입장이라는 주안의 말에 록산느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녀에게 아버지란 언제나 인정받고 싶은 존재이자, 그 앞에 사람의 기사로서 서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것에 조금 의아하기도 하였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이건 할아버지에게 제가 부탁드려서 스타크 경도 안심할 수 있는 호위를 꾸려볼게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자님.”

“뭘요. 록산느 경뿐만이 아니라 우리 토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인걸요.”

“워랜 경은 없는 건가요?”

“워랜 경이야 어디 사막에라도 혼자 떨어뜨려도 살아오실 분인걸요.”

“푸훗…….”

워랜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심통이 나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안의 말에 록산느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런 록산느를 보며 주안이 말했다.

“그렇게 웃으니 보기 참 좋아요, 록산느 경.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조금은 여유롭게, 그렇게 지내보세요. 아직 젊으시잖아요.”

“꼭 세상을 오래 살아보신 어르신 같은 말씀이세요, 주안 공자님.”

“그런가요…….”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세상을 참 오래 살기는 했다.

너무 오래 살았고, 너무 의미 없이 살아갔다.

그렇기에 많이 후회하였고 또다시 그런 후회를 하기 싫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 * *

“우엑?! 그게 다 뭐예요.”

주안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 그런 주안을 반갑게 맞이해 주려던 세냐가 뒤따라 온 하인과 그런 하인이 들고 들어온 산더미 같은 종이들에 흠칫 놀란 것이다.

이런 세냐의 모습에 하인도 흠칫 놀랐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테이블 위에 서류 더미를 놓은 후 주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주안은 의자에 앉아 자신에게 날아오는 세냐에게 손바닥을 펼쳐주었다.

“진짜 이게 다 뭐예요?”

주안의 손바닥 위에 내려선 세냐는 여전히 궁금하다는 듯 종이 더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주안에게 재차 물었다.

그리고 이런 세냐를 보며 주안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할아버지가 찾아주신 우리 가문 가계도와 선대 가주님들의 인적사항 그리고 마를렌 님에 대한 자료.”

“이게 전부 다……?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많지. 그래도 우리 가문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서 그런지, 추리고 추렸어도 이렇게 많더라.”

사실 주안이 필요한 것은 마를렌 마르티네스에 관한 자료뿐이지만, 주안의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은 가문의 가계도를 최대한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여 주안에게 전해 주었다.

벡브란 전대 공작은 짧게나마 주안을 가르치면서 조금 욕심이 난 듯했다.

주안 역시 그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군소리 없이 이것을 다 받아온 것이다.

“그래도 마를렌 님에 관한 자료를 먼저 살펴볼 수 있게 잘 분리되어 있으니까 크게 상관은 없어.”

“이걸 다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 보긴 해야지.”

“밤새도 모자라겠는데…….”

“그렇다고 꼭 오늘 다 볼 필요는 없어.”

주안은 종이 더미 가장 위에 놓인 것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대충 훑어보며 세냐에게 말했다.

“그래도 할아버지 힘을 빌리니, 나름 쉽게 마를렌 님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어 다행인 듯싶어.”

“그건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자료가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안은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직접 찾아준 이 자료 이상을 구할 수 없으니…… 현재 찾을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 이것들을 살펴보면 대충 그분의 행적을 알 수는 있겠지.”

“흠……. 확실히.”

거의 설화에 버금가는 오래된 일인지라, 제대로 된 것이 남아 있을지 사실 좀 긴가민가하긴 하였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세냐랑 같이하면 금방 끝날 수도 있잖아.”

“왜 나랑 같이한다는 거예요?!”

서류를 테이블 위에 놓은 주안이 싱긋 웃으며 한 말에 세냐가 황당하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마를렌 님에 대해서 지금 가장 잘 아는 건 세냐, 너잖아. 이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도 너뿐인걸.”

“으윽…….”

“이게 다 아미엘 님을 위한 것이니 힘내자, 세냐, 파이팅.”

“하나도 안 파이팅이거든요!”

저 웃는 모습, 저 미소, 저 눈웃음.

세냐는 진심으로 주안의 얼굴에 주먹이든 발차기든 날려 버리고 싶었다.

“대신 맛있는 뭐든 다 사줄 테니까.”

“먹을 것으로 넘어가는 어린아이 아니거든요?!”

“음? 그래? 숀이 벌꿀 과자를 만들려고 기합이 엄청 들어가 있던데.”

“버, 벌꿀 과자…….”

달달한 과자 중 한 손에 꼽힌다는 벌꿀 과자는 그 맛 때문에 동방대륙의 제국 황제마저 탐내는 엄청난 과자였다.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나, 그 재료가 서방 대륙의 일부 지역에서만 나는지라 정말 돈 많고 몸매를 포기한 이들만이 찾는 중독성 강한 과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단것이라면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요정 꼬맹이들이었고, 입이 매우 짧기는 했지만, 세냐는 그 요정 꼬맹이 중에서도 단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하고, 얕게 코팅된 설탕과 그 속을 꽉 채우고 있는 벌꿀의 조화, 천상의 맛이지.”

“…….”

“게다가…….”

침을 꼴깍 삼키는 세냐를 보고는 싱근 웃은 주안이 결정타를 날렸다.

“잔뜩 만들고 있거든. 특별히 세냐 너를 위해서, 내가 부탁해 놓아서 말이야.”

“매우 올바른 행동이세요!”

이런 과소비, 특히 정말 쓸데없는 간식 같은 것에 돈을 쓰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벡브란 전대 공작이지만, 밤새 공부하는 것에 필요한 간식이라고 하면 넘어갈 것이다.

주안 또한 그것을 알기에 안심하고 부탁한 것이었다.

이런 주안의 말에 세냐의 표정이 확 밝아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주안은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었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볼까?”

“오케이!”

주안이 몇 장의 서류 종이를 집어 들자 세냐가 기운 좋게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밤을 새워야 할 듯했지만, 세냐에겐 지금 이 시간이 아침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게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가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무적의 벌꿀 과자가 있는 이상 크게 상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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