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85화
“음, 저기……. 제가 방해를 한 건가요.”
록산느를 위해서 로마니아 백작가의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온 주안은 어째서인지 분위기가 묘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록산느나 루반 웰링은 주안의 말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고, 스타크 로마니아나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은 날이 잔뜩 서 있었으니 말이다.
주안의 말에 루반 웰링 준남작이 나서서 말했다.
“아닙니다, 공자님. 때마침 잘 와주셨습니다.”
“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 뻔하였으니까요.”
“큭……!”
주안은 루반 웰링 준남작의 말에 갸웃했지만, 스타크 로마니아가 그런 루반 웰링 준남작을 노려보는 모습에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록산느가 이곳에 있고, 스타크 로마니아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니, 지금 이들이 왜 이러는지 주안도 대충 파악할 수가 있었다.
‘역시 곧바로 말씀드리러 오셨군.’
그리고 주안이 슬쩍, 록산느에게 시선을 주자 주안과 시선이 마주친 록산느가 움찔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그 당당한 여기사인 록산느 로마니아조차도 이런 모습을 보일 정도라면, 반대가 매우 심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나라고 할까.’
답답하고 지독하게 고집스러운 스타크 로마니아의 성격을 이전 삶에서부터 직접 겪어본 이로서, 록산느가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것을 이해하기에, 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록산느 경이 이곳에 있는 걸 보니, 대충 이야기는 다 들으신 듯합니다.”
“예, 공자님.”
주안의 말에 루반 웰링 준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루반 웰링 준남작의 말에 주안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로마니아 백작가의 두 부자를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제가 록산느 경에게 추천한 일이다 보니, 제가 나서서 스타크 로마니아 경과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님을 이해시켜야 할 듯하여 이렇게 찾아온 것이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이해라니, 나는 주안 공자가 우리 손녀에게 좋은 조언을 한 듯하여 매우 기쁜데 말이야.”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야 록산느의 편이었고, 오히려 가문을 위해서라면 절대적으로 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손녀인 록산느가 조금은 자신의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반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런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의 모습에 주안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반대하는 것은 스타크 로마니아 경뿐인가.’
뚱한 표정의 스타크 로마니아를 흘겨보던 주안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50대를 막 넘기 시작한 그는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을 잔뜩 움츠리게 만들 만큼 날이 잔뜩 서 있는 인물이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이나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체구는 확실히 기사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주안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하인이 따라준 차로 입술을 축인 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워랜 경이나 토미는 곧 검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동방의 무사이신 풍신 경이 계신 아스란 왕국으로 갈 것입니다. 저는 그때 록산느 경 역시 함께 가서 그 검을 배웠으면 합니다.”
이미 록산느에게서 들었기에 스타크 로마니아나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 루반 웰링 준남작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단지 스타크 로마니아는 이런 주안의 말에 차분하게 주안을 보며 말했다.
“동방의 무사가 검을 그리도 쉽게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물론 쉽게 가르치지는 않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록산느 경이 풍신 경과 만날 수 있게 해드리는 것 정도뿐입니다.”
“확실하게 배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아니군요.”
“제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저 부탁드릴 뿐이지요.”
“부탁이라…….”
주안의 위치라면 이 제국 내에서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가 드물었고, 타 왕국에서 역시 웬만한 귀족들은 주안의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못할 것이다.
아스란 왕국이라면 왕이 나와서 고개를 숙여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주안 마르티네스의 위치였다.
그러한 존재가 명령도 아닌 부탁을…… 그것도 확신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은 그 인물에 대해 더더욱 의문을 가지게 했다.
제국의 이름과 힘도 있었지만,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위상 역시 그에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스타크 로마니아의 날카로운 눈매가 더욱 사납게 변하더니 차가운 그 눈동자가 주안에게 향했다.
“그 풍신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동방의 무사가, 이곳까지 왜 온 것인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말입니까.”
스타크 로마니아의 그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지만, 주안은 그런 그를 보며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무슨 이유로 이곳까지 온 것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신합니다.”
“확신한다는 그러한 말을 쉽게 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되는군요. 무엇보다 그런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워랜 경이나 토미라는 그 아이, 게다가 이제는 저희 아이까지 맡기실 생각이신 것입니까.”
“과거를 모른다 해서 현재의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스타크 경. 적어도 제가 본 풍신 경은 그 어떤 기사들보다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스타크 로마니아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주안 역시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이런 주안의 모습에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나 록산느 로마니아, 루반 웰링 준남작이 조금 놀란 듯 주안을 바라보았다.
스타크 로마니아의 눈은, 별 의미 없이 바라보아도 우는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딸꾹질하게 할 정도로 눈매가 살벌하다.
그런데 진심으로 주안을 쏘아보고 있음에도 주안은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그리고 주안은 이런 스타크 로마니아를 마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안쓰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려움에 처한 유우나 공주님을 곁에 서서 지켜주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우나 공주님을 모시고 이곳 제국까지 직접 방문해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일부러 호감을 주고 접근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얻을 것이라…….”
주안은 작게 웃어주며 스타크 로마니아에게 말했다.
“그 아스란 왕국에서 얻을 게 뭐가 있습니까?”
“…….”
주안의 말에 스타크 로마니아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 말대로 아스란 왕국에서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귀찮은 일만 잔뜩 있을 것이고 몸과 마음만 피곤해질 것이다.
“또한 그분의 실력은 이미 실버론 하셀 자작님이 확인하셨고 워랜 경만 보셔도, 단순히 실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타인을 가르치는 능력 역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실버론 하셀 자작이라…….”
황실 근위대 부단장인 실버론 하셀 자작에 대해서야 스타크 로마니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존재가 인정할 정도라면,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봐도 무방하였다.
“제가 록산느 경에게 그분을 소개해 드리려는 이유는 록산느 경의 검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로마니아 가문을 넘어 저희 마르티네스 가문에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문을 위한 일……?”
로마니아 백작 가문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갔지만, 그것이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까지 영향을 간다는 것에 스타크 로마니아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리고 이런 스타크 로마니아를 보며 주안이 싱긋 웃어주었다.
“만약 록산느 경이 풍신 경에게서 검을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검을 다른 여성 기사들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된다면……. 수많은 여성 기사들이 남자들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되겠지요.”
나름 체계적인 수련법으로 인해서 많은 기사가 강자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같은 수련을 하고, 같은 노력을 했음에도 여성 기사들은 체격이나 근력 같은 신체적 차이를 메우지 못하여 남성 기사들보다 한 단계, 혹은 두 단계 그 실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같은 수련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 기사들의 고충은 매우 컸다.
그것을 모두 다 알지는 못하였지만, 주안 또한 그것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록산느를 통해 알았다.
그렇기에 주안은 많은 여성 기사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들이 더 이상 힘들지 않고 똑같은 노력으로 똑같은 성취감을 얻었으면 하였다.
“동방의 검은 부드러움 속에서 강함을 찾는 특이한 검법이지요. 이러한 것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매우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백작님?”
“그렇지, 동방의 무사들은 매우 가벼워. 검도, 몸도, 그 움직임도 모든 게 다 가볍지. 하지만 그 가벼움에 방심하다간 그대로 목이 떨어지거나 심장이 뚫려 버리지.”
젊은 시절, 동방 대륙으로 떠나는 제국 사절단에 합류했던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경험한 동방 대륙의 무사들은 참으로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동방 대륙의 주민들은 서방 대륙에 비해 키도 작고, 나이 든 이도 매우 젊어 보이는 신비로운 땅이었다.
하지만 그 외모만 보고 방심했다가 대련에서 호되게 당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이 중 한 사람이 바로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 자신이었다.
“이것은 단지 여성 기사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신체적으로 서방의 검을 배우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어요.”
여성들도 여성이지만, 처음부터 체구가 왜소하고 성장기에도 제대로 체격이 붙지 않는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토미 역시 이에 해당하지만, 그 괴물 같은 재능으로 모든 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물론 이는 예외일 뿐이지만 말이다.
“공자는 워랜과 토미라는 그 아이, 그리고 우리 록산느를 통해서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 전체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생각이군.”
그리고 주안이 하는 말뜻을 이해한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흥미로운 눈으로 주안을 바라보았다.
이런 그의 말에 주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록산느 경을 보고, 록산느 경이 그 검을 배울 수만 있다면 새로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확실히…….”
남다른 재능을 가진 워랜과 토미와는 달리 록산느는 재능이 있다 하지만 앞의 두 사람과는 매우 떨어지는 재능일 뿐이었다.
일반적인 이들보단 조금 더 뛰어나다뿐이지, 남은 것은 오직 노력만으로 일구어낸 것이니 말이다.
“스타크 경, 반대하시는 이유는 저 역시 이해합니다. 하지만 안전에 대해서는 저, 주안 마르티네스와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에서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록산느 경이 아스란 왕국으로, 풍신 경에게 검을 배울 기회를 주십시오.”
주안이 직접 스타크 로마니아를 보며 부탁하자, 스타크 로마니아 역시 매우 곤란해졌다.
다른 이의 부탁이라면 단번에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 상대가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후계자인 주안 마르티네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주안은 재차 스타크 로마니아에게 말했다.
“로마니아 가문을 위해서 그리고 마르티네스 가문을 위해서……. 스타크 경의 이해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
주안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스타크 로마니아 역시 크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던 스타크 로마니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안에게 말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스타크 경.”
주안은 그의 답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서 이 정도로 양보를 받아낸 것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에게도 물러섬이 없던 그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