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84화
“일단 그 부분은 록산느 경에게 맡겨야겠지만…….”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님이라면 모를까, 스타크 로마니아 경이라면 분명 크게 반대하실 것입니다.”
“하아, 그분은 정말 융통성이 없으셔서 큰일인데…….”
현 가주인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은 그래도 나름 유연한 성격이었지만 그의 아들인 스타크 로마니아 경은 고지식함이 지독할 정도였으며, 매우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다.
가문을 잇는 것은 아들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었으며 록산느가 검을 잡는 것조차 마땅찮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여자란 자고로 집에서 시를 읽고 그림이나 그리며 파티에 나가 좋은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는 게 가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무리 검을 든 가문이라 해도, 자신의 딸에게 검을 쥐여주고 싶지 않아 했고, 그로 인해서 그의 아버지인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과 크게 싸운 일화도 있엇다.
게다가 그보다 더욱 심한 일도 있어서인지, 아르베리아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님이 아직 정정하시다 해서 여전히 그 작위를 받지 않으시려는 것만 보셔도 아시지 않습니까. 절대 쉽게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끄응…….”
보통 다른 가문이라면 아버지가 물러나고 작위를 물려준다 하면 감사하게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스타크 로마니아는 자신의 아버지인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여전히 정정하고 검으로도 넘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여전히 가문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이였다.
스스로 만족할 실력을 쌓고, 아버지에게 제대로 인정받은 뒤 가문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그의 태도는 답답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답답하고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아들에게 다 떠넘기고 유유자적 살고 싶은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의 계획까지 물거품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두 부자의 사이는 사실 조금 삐걱거리고 있었다.
“제가 조언을 드린 것이니, 그에 대한 부분 역시 제가 나서서 도움을 드릴 수밖에 없을 듯하네요.”
“아무리 주안 공자님이라 하셔도 스타크 로마니아 경이 과연…….”
스타크 로마니아의 고지식함은 이미 동부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인지라, 아무리 주안이 나선다 해도 일이 제대로 해결될지, 아르베리아는 조금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에게 워랜이 말했다.
“동방의 검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 스타크 로마니아 경도 생각을 달리하시겠지.”
“동방의 검이라…….”
“동방의 검을 접하기는 쉽지 않아. 아무리 고지식한 스타크 로마니아 경이라 해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겠지.”
확실히 워랜의 말이 맞았다.
아직 자신의 아버지를 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검에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작위도 거부한 채 수련에 매진하는 인물이었기에, 동방의 검을 바로 곁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토미가 양 대륙의 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받으신 듯하던데.”
“예? 진짜요?”
주안이 갸웃하자 워랜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야. 다른 가문의 기사들도 그랬지만, 로마니아 백작가의 어르신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시더라.”
워랜은 토미와 록산느의 대련을 보면서도 주변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모두 눈에 담았다.
이 일로 인해서 토미가 동부의 떠오르는 신성이 될 것을 이미 짐작하였기에, 여타 다른 가문의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들의 눈에 욕망을 넘어선 질투와 시기, 살의까지 그 모든 것을 파악해야만 차후의 일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사실 주안이 있는 이상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진 않겠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조금도 방심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질투의 감정까진 간간이 보였지만, 그 이상의 질 나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록산느로 인해 로마니아 가문의 토미에 대한 관심은 꽤나 깊어 보였다.
“스타크 로마니아 경은 록산느 경이 검을 배우는 것은 여전히 마땅찮아 하시겠지만, 만약 토미처럼 양 대륙의 검을 모두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하면 크게 고민하시겠지.”
“하긴…….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배우고 싶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검도 아니고, 그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기사가 크게 관심을 가질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록산느가 검을 배우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인 그녀의 아버지인 스타크 로마니아라고 해도 이 일에서는 한발 물러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워랜의 말대로 주안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 부분을 잘 설명해 드리면 되겠네요.”
“뭐, 주안 공자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에선 랭크 8 이상이니까.”
“……그거 왠지 칭찬 같지 않은데요.”
“칭찬이야, 칭찬.”
“흠…….”
장난 가득 미소를 짓는 워랜의 모습은 참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조금 불만스럽다는 듯 주안이 볼을 살짝 부풀리긴 했지만, 사실 자신은 이런 일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뭐라 말도 못 하였다.
* * *
“안 된다.”
록산느는 마주 앉아 있는 아버지의 냉정한 그 한마디에 크게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답이었기에 상처를 받을 이유도 없었다.
“나는 허락하마.”
“아버지!”
하지만 곁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은 크게 반기며 허락해 주었다.
그 때문에 스타크 로마니아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놀라서 큰 소리를 치는 무례를 저질렀지만 말이다.
이런 아들을 보며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말했다.
“반대만 하지 말고 좀 넓게 보거라. 네 녀석이 그토록 바라는 가문을 위하는 일을, 이 아이가 지금 하려고 하지 않느냐.”
“하지만 정체도 모르는 동방의 무사입니다. 단지 주안 공자가 안다고 해서 그에게 이 아이를, 그것도 그 먼 아스란 왕국까지 보낸다는 게 말이 된다 생각하십니까.”
“이 아이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이미 워랜과 토미라는 그 아이도 함께 간다 하지 않느냐.”
“아무리 그 아이들과 함께 간다 하여도 록산느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가문 그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록산느를 생각한다는 놈이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을 그렇게 반대했더냐?! 그럴 것이었다면 차라리 애라도 많이 낳던가!”
“저도 20년이 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는 아버지께서 제 형제를 만드셨으면 문제가 없지 않았잖습니까!”
“50년이 넘도록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어찌 하란 말이더냐?!”
두 어르신의 대화에 록산느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부자의 모습에 루반 웰링 준남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서 두 부자가 어떤 노력을 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아는 그였기에 이해는 하여도, 딸아이이자 손녀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닌 듯했다.
“그보다 아가씨……. 아니, 록산느 경.”
“네, 루반 경.”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서로 투탁거리며 다투고 있는 가문의 가장 큰 어르신들은 뒤로한 채 록산느가 조용히 루반을 보며 갸웃하였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그 길이 낫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많은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고개를 숙이실 만큼…… 절박하셨던 것이었습니까.”
록산느가 워랜에게 고개를 숙여 배움을 청한 소문은 이미 공작성 내에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이 때문에 아버지인 스타크 로마니아가 크게 화를 내었지만, 다행히 할아버지인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있었기에 큰 문제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나 루반 웰링 준남작은 록산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루반 웰링 준남작은 고개를 숙일 만큼 그녀가 그토록 절박했던 것인지, 그 부분까지는 전혀 몰랐다.
그렇기에 미안함과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을 담아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루반 웰링 준남작의 마음을 이해한 듯 록산느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전혀 없었다는 것은 거짓이겠지만…… 절박함보다는 저 역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이 더 컸을 뿐입니다.”
“희망이라…….”
그동안 줄곧 날이 잔뜩 선 채 몸을 혹사시키듯 검을 휘둘렀던 그녀가 이토록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던 루반 웰링 준남작은 조금 놀란 눈으로 록산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미소에 거짓이 전혀 없다는 것을 느꼈고, 오히려 이전에 가문을 찾아왔던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의 미소를 보는 듯했다.
“확실히 결심을 굳히셨군요.”
“예.”
록산느 역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이해하였기에 루반 웰링 준남작은 스타크 로마니아 경의 편에 설 수가 없었다.
그 역시 가능하면 록산느 로마니아가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로마니아 백작가의 기사이기 이전에 그녀를 어릴 때부터 곁에서 지켜보고 검을 지도한 스승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하아……. 어쩔 수 없군요.”
작게 한숨을 내쉰 루반 웰링 준남작이 여전히 투탁거리는 로마니아 부자를 보며 말했다.
“저는 일단 록산느 경이 아스란 왕국으로 가는 것에 찬성입니다.”
“루반 경……!”
로마니아 백작 가문에서 발언권이 가장 큰 사람은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었고, 그다음이 스타크 로마니아와 루반 웰링 준남작이었다.
단순히 가문의 일등 기사라는 직책 이전에 그는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 다음가는 기사이기도 하였으며 가문의 많은 이에게 검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스타크 로마니아 역시 이런 루반 웰링에게 한때 검을 배웠던 인물이었으니, 어찌 보면 발언권만 따지면 가문의 혈족 그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록산느의 편을 들자 스타크 로마니아가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크 님……. 록산느 경의 안전이 걱정되신다면 저나 가문의 실력 있는 기사들을 호위로 보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렇게 걱정이 되면 네 녀석이 같이 따라가서 그 동방의 무사한테 절이라도 해서 검을 같이 배워 오던가.”
“크윽…….”
루반 웰링 준남작이 돌아선 것도 화가 나는데 아버지인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그 때문에 기세등등해져 버린 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아무리 두 분이 그러셔도 절대로 안 됩니다. 이것은 가문의 일 이전에, 이 아이의 아비로서 허락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놈의 고집은 대체 어디서 배워 온 것인지…….”
“이게 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아니겠습니까.”
“뭐라?!”
또다시 서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두 부자의 모습에 이번에는 록산느마저 작게 한숨을 내쉴 지경이었다.
이대로 가면 한참이 지나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록산느는 루반 웰링 준남작을 보며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루반 웰링 준남작 역시 스타크 로마니아의 고집을 어떻게 꺾을 입장은 아니었다.
그저 록산느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녀의 편에 서는 것으로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의 발언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일단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남은 것은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아들인 스타크 로마니아의 고집을 꺾는 것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을 듯하군요, 록산느 경.”
그의 말에 록산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 역시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천천히 시간을 들여 설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투탁거리던 로마니아 부자가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 방문을 열어준 하인이 이내 되돌아와서 이들에게 고개를 숙여 말했다.
“백작님, 주안 공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안 공자가?”
잠시 의아하던 그들이었지만, 이내 주안이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한 듯했다.
그 때문인지 스타크 로마니아 백작만이 언짢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