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182화 (182/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82화

“허허, 그게 가능할 줄이야……. 이거,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알았다면 동방 대륙으로 떠날 이유도 없었을 터인데.”

조금은 안타까운 듯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을 언급하는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의 그 말에 스타크 로마니아나 루반 웰링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무래도 서방 대륙, 이곳 제국의 검을 든 이들에게 가장 유명한 일화라고 한다면 역시나 서방 대륙의 검을 놓고 자신의 검을 찾으러 동방 대륙으로 떠나 버린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찾던 동방의 검을, 그것도 서방의 검과 동방의 검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가 갑자기 나타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것을 알았다면 그는 떠나지 않고 남아 저 어린 소년, 토미를 곁에 두거나 혹은 워랜과 그의 스승인 풍신에게 찾아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떠나고 토미라는 아이가 등장한 것이 그들 모두에겐 아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어르신들의 조금 어두운 그 모습을 보며 록산느 역시 공감을 하며 조심스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예전에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님이 저택에 방문하셨을 때, 그분은 이곳의 검을 놓고 자신만의 검을 찾으러 동방으로 떠나셨다고 하셨죠.”

“그랬지.”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동방 대륙으로 떠나기 전 동부의 몇몇 가문에 방문하였다.

모두 비공식적인 방문이었지만 그의 방문은 어느 가문이라도 환영할 정도였기에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단 한 곳.

노밀 자작가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말 그대로 정말 몰래 갔다가 워랜을 지겹도록 괴롭힌 것만은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비공식적인 방문지에는 로마니아 백작가도 있었고, 록산느는 당시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을 짧게나마 직접 만나기도 했었다.

“그때, 그분의 표정은 어떠셨나요.”

“표정이라니?”

“그분이 동방 대륙으로 떠나실 때의 표정 말이에요. 그분은 분명 평생을 배웠던 이곳의 검을 놓고 가셨잖아요. 그때 그분의 심정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서요.”

손녀의 그 말에 잠시 의아한 듯한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었지만, 진지한 그 모습에 그 역시 조용히 답해주었다.

“그 검에 미친 인간이 검을 내려놓은 것치고, 지나치게 즐거워 보이더구나.”

“즐거워 보여요?”

“그래.”

잔잔한 미소를 지은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말했다.

“비록 자신의 몸으론 이곳의 검을 가지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없었지만, 새로운 검을 배울 수 있는 것에 매우 행복해 보이더구나.”

“검을 놓는데 행복하셨다, 라…….”

검을 든 기사라면 그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평생을 수련한 검을 놓고 전혀 생소한 다른 검을 배워야 한다면 누구든 큰 고민을 할 것이고 쉽게 결정을 내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해 찾아오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허망함이 클 것인데도,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에 즐거워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록산느는 왠지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에 대해서 공감이 갔기에 무언가 답답하고 무겁던 것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저도 조금은 즐겁게 검을 잡고 싶어요.”

“음? 즐겁게?”

그동안 록산느가 검을 잡을 때 보였던 조급함은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것은 오롯이 손녀인 록산느가 이겨내고 그것을 넘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손녀의 모습은 그런 그가 바라던 모습처럼 보였다.

당당하게, 미련과 불안, 초조함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은 올곧은 눈을 한 채 록산느가 말했다.

“저도 제 검을 찾겠어요, 할아버지.”

록산느의 눈이 빛나며, 냉랭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 눈은 토미의 등을 쫓고 있었다.

* * *

“……뭘 해달라고?”

“검을 가르쳐 주십시오, 워랜 경!”

“…….”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하는 록산느 로마니아의 모습에 워랜은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토미의 대련 구경을 끝낸 후 느긋하게 아침도 먹고 이제부터 점심까지 잠이나 잘까 싶었던 워랜에게 찾아온 록산느의 그 뜬금없는 말에 곁에 있던 솔이나 아르베리아, 토미까지 당황시켜 버렸다.

“아니, 저기, 록산느 경……. 검이라면 이미 배우고 있지 않아?”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 몸으로는, 이곳의 검만으론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워랜 경 역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야…….”

여성 기사들은, 특히 이 중부에 걸쳐 있는 인종들은 그 체격이 호리호리해서 우락부락한 근육질을 만드는 서방 대륙의 검술 훈련과는 잘 맞지 않았다.

저 먼 북방 설원의 야만인들이나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 같은 경우는 인종 자체가 다르다는 듯 여성들도 남다른 골격을 자랑하여 매우 뛰어난 실력을 뽐내지만, 그들은 체계적인 훈련보단 그냥 신체적인 우월함에 나오는 재능일 뿐이었다.

때문에 여성에게 검을 제대로 가르치고 재능을 내보이게 할 생각이라면 북방의 야만인과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에게 검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농담할 때나 해주는 말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알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초적인 부분만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서방의 검을 배우는 기사들이라면 분명 타인에게 검을 가르치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그만큼 단순한 검인지라 뭔가 가르칠 만한 부분도 사실 많지 않았고 동방 대륙과의 경쟁에서는 다수의 강자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로 인해서 검을 배울 의지만 있다면 그게 설령 여성이라 해도 거리낌 없이 가르쳤다.

하지만 그것은 서방 대륙의 인식이지, 동방 대륙은 많이 달랐다.

그들의 검은 오직 재능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이들에게만 검을 가르치는 매우 폐쇄적인 검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부자여도, 아무리 권력이 있다 해도 재능과 믿음을 줄 수 없다면 검을 쉽게 가르치지 않았다.

이에 록산느 역시 이 부분을 잘 알기에 워랜에게 머리까지 숙여가며 부탁하는 것이었고, 많은 부분이 아닌 그저 아주 기초적인 부분만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그 기초적인 부분이라도, 그것을 통해 조금 더 다른 자신만의 검을 찾고자 하는 록산느였고 그 뜨거운 의지가 느껴지는 것인지 워랜은 매우 곤란해 하였다.

“저도…….”

하지만 록산느는 워랜의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에도 절박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으며 워랜에게 말했다.

“저도 동방의 검을, 그것을 통해 나만의 검을 만들고 싶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선언하듯 외친 그 말에 워랜만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록산느를 바라보았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 공작성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으며 그곳에 있던 모든 이가 다 들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록산느의 모습에 워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토미가 사람 여럿 버리는구만…….”

“예? 제, 제가요?!”

워랜의 중얼거림에 토미가 화들짝 놀랐지만, 그런 토미를 흘겨보던 워랜은 뭔가 뿔이 난 것인지 토미의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말했다.

“그러게 적당히 좀 상대해 주지 왜 이상한 짓을 해서 일을 이렇게 귀찮게 만드는 거야.”

“대, 대련에 임할 땐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피터 스승님이 말씀해 주셨단 말이에요.”

“어이구, 이 바른 생활 청소년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좀 요령껏 해, 요령껏. 그렇게 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아우우…….”

워랜이 토미의 얼굴을 주물럭거리며 괴롭혔지만, 곁에 있던 이들은 이런 워랜을 쉽게 말릴 수가 없었다.

일단 워랜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솔의 입장에선 괜히 나서면 자신의 얼굴이 저렇게 될 것을 잘 알고, 아르베리아의 경우에는 이런 두 사람보다 록산느를 신경을 쓰느라 말릴 수가 없었다.

“록산느 경, 그대의 심정은 잘 압니다. 하지만 동방의 검은 배우고 싶다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르베리아 경.”

아르베리아의 차분한 말에 록산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방의 검을, 그것도 제대로 사사받은 그 검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면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그 먼 동방 대륙으로 떠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록산느였으며, 아르베리아 역시 안타깝지만 록산느의 이런 절박함에 공감하여도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록산느는 서로 투탁거리는 워랜과 토미를 보며 당차게 말했다.

“모자란 재능은 노력으로, 노력이 부족하면 더욱 열심히 해서 배울 것입니다.”

“록산느 경…….”

아르베리아의 입장에선 탐이 난다 해도 애초에 배울 수도 없는 동방의 검에 대해선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지금의 검으로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고 헛된 바람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록산느 로마니아에겐 이 길밖에 없다는 듯,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왜 그런 것인지 아르베리아 역시 충분히 이해하기에, 록산느의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와서 미묘한 기분을 느껴야만 하였다.

“워랜 경,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제게 기초적인 부분만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재차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록산느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도 안쓰러운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적어도 동부의 사람들이라면 록산느가 얼마나 노력을 하여서 이 자리에까지 오른 것인지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검을 잡고, 여성의 몸으로 고된 훈련을 견뎌내며 아들이 없는 로마니아 백작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그녀의 노력은 많은 이가 인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을 워랜 역시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안한데, 검을 가르치는 것에는 우리 사부의 허락 없이는 안 돼.”

“하지만 토미는…….”

“토미야 이제 우리 사부의 두 번째 제자가 되니까 상관이 없지.”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토미는 애초에 적당히 검을 보고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던 어이없는 재능을 가진 아이인지라, 딱히 무엇을 가르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알려주면 록산느가 크게 좌절할 것임을 알기에 워랜 역시 눈치가 있는지라 굳이 그 부분까지 말해주진 않았다.

그럼에도 록산느의 표정은 급속도로 어두워졌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든다.

그때문인지 아르베리아가 조용히 워랜의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해주었다.

“그래도 기초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안 되나, 워랜 경.”

“안 돼.”

“너무 냉정한 것 아닌가?!”

“냉정이고 뭐고, 아무리 나라도 우리 사부 말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으음…….”

그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유유자적 살아가던 워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솔직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워랜의 그 말의 뜻에 담긴 의지를 알 수가 있었기에 아르베리아는 더 이상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기, 그러면 록산느 경을 풍신 경과 만나게 해줘서 직접 부탁하면 어떨까요?”

“응?”

뒤에서 들려 온 그 목소리에 워랜과 토미, 아르베리아뿐만이 아니라 록산느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다.

“……주안 공자?”

그곳에는 매우 흥미로운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주안이 서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