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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81화 (181/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81화

“토미랑 록산느 경이 또?”

주안은 아침을 먹으러 방을 나섰다가 하인이 전해준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기운도 좋아.”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젓는 주안의 모습에 하인이 어색하게 웃어주었지만, 사실 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다들 비슷하게 생각을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설마 토미가 또 이겼으려나.’

처음 록산느와 토미가 대련했을 때 주안은 꽤나 흥미롭게 생각했었다.

사실 토미의 대련 상대라고 하면 주로 피터와 워랜이었고, 두 사람 다 토미를 가르치는 입장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검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고지식한 록산느의 성격이나, 만만치 않게 답답한 토미의 대련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주안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진짜 기사들이나, 기사 꿈나무생이나 지치지도 않아.’

그 이른 아침부터 나가서 뜀박질을 열심히 한 것도 모자라 대련까지 할 정도로 엄청난 체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 주안은 부럽기도 했지만, 참으로 징글징글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였다.

두 사람이 열심히 대련할 땐 주안은 아직 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마 이번에도 또 토미가 이겼어?”

주안의 말에 곁에서 걸어가던 하인이 주안을 보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그 대결을 직접 본 것인지, 아니면 흘러 들은 것인지 주안에게 대련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검을 나누고 어떻게 끝을 맺은 것인지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물론 거기엔 하인 나름의 감상과 과장이 잔뜩 섞여 있었지만 결국 토미가 록산느에게 이겼다는 결과는 변하지는 않았다.

“그 녀석도 참…….”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안이야 토미가 어떤 아이인지 이미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이전 삶 속에서 서방 대륙 제일 검이라고 불렸던 검성의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그 나이로 아무리 여성이라고 해도 정식으로 기사의 칭호를 받고 그것을 사용하는 록산느를 이겨버렸다.

그것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검과도 같은 로마니아 백작가의 검을 정식으로 사사받은 존재를 찍어 눌러버렸으니 조만간 꽤나 시끄러워질 듯했다.

분명 여러 가문에서 토미에게 손을 뻗는 것도 모자라 주안에게도 은근슬쩍 다가와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조금 싫었지만, 그래도 주안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제대로 다 배운 것도 아닌데 벌써 이 정도라니……. 정말 짜증 날 정도로 잘난 녀석이라니까.’

피터에게서 서방의 검을, 그것도 기초적인 체력 훈련과 검을 다루는 기본만 꾸준하게 배우고 워랜에게서 훔쳐 배운 것들만 가지고 이 정도의 실력을 뽐내는 토미는 주안에게도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혼자서 복수와 증오만을 가지고 검을 미친 듯이 휘두르는 것이 아닌, 모두의 기대와 보살핌 속에서도 그 이상의 실력을 쌓아가는 것은 매우 보기 좋았다.

‘그보다 다른 가문의 사람들이…… 특히 로마니아 백작가가 조금 걱정스럽긴 한데.’

아무리 록산느가 여성이라 해도 로마니아 백작가의 자손이었다.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에게 직접 검을 배운 경험도 있었고, 그런 만큼 뛰어난 실력으로 동부에서는 알아주던 여성 기사였다.

그런 록산느가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아이에게 패배를,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패배했다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해도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님이나 스타크 로마니아 경이 그런 것으로 토미에게 해코지할 사람들은 아니지만…….’

오히려 토미를 탐내며 달려들 것을 가장 크게 걱정해야 할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로마니아 백작가는 가능성이 있는 아이, 실력 있는 아이, 특히 고아들을 데려다 기사로 키우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뭐, 그렇다고 우리 토미를 데려가려고 나한테 부탁하진 않겠지.’

그래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토미가 누구의 사람인 것인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언가 엄청난 것을 내놓아서 토미를 유혹하거나, 그게 아니라며 은근슬쩍 주안에게 무언가 거래를 제안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그런다 해서 주안이 응할 사람도 아니고, 고지식하고 답답함은 피터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토미 역시 마찬가지라 그 부분은 안심할 수 있었다.

토미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토미의 상대가 되어 주었던 록산느를 떠올리자 주안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보다 록산느 경이 조금 걱정되네.’

주안은 이 대련에서 또다시 패배한 록산느 로마니아가 안타까웠고, 걱정스러웠다.

하인의 설명을 듣고 첫 번째 대련과는 달리 이번 대련은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이 되었다고 하니, 이런 대련에서 패배한 록산느의 자존심에 큰 상처로 남지 않았을까 싶었다.

‘록산느 경이라…….’

록산느를 생각하자 주안은 착잡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도 참 안타까운 여성이기도 했다.

나름 기사로서, 검으로 유명한 로마니아 백작가의 유일한 자식으로 여성의 몸임에도 가문의 검을 위해서,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검을 들었던 이였다.

그리고 그녀가 검을 들었던 이유도 주안은 잘 알고 있었고, 그녀가 검을 놓게 된 후 쓸쓸한 말년을 보낸 것도 간간이 전해 들었던 입장이었다.

‘하아,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님이나 스타크 로마니아 경이나 조금만 유연한 성격이었으면 록산느 경도 좀 편했을 텐데…….’

그랬다면 록산느가 가문을 이어받고 그녀가 원하는 상대와 결혼을 하여 나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안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검을 놓은 뒤 가문에서 데릴사위로 받은 남자와 결혼하여 쓸쓸한 여생을 보내게 된 여인이었다.

지금은 동부에서 전도유망한, 여성 기사로는 첫 번째로 꼽히는 이가 설마 그렇게 되리라고 사람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 그래서 가문은 살아남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남편 덕에 로마니아 백작가는 다행히 전화를 피하였고 신왕조가 열린 뒤로도 그 작위와 영지를 간직한 것이니 말이다.

나름 똑똑했던 것인지, 아니면 역사의 흐름을 잘 파악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주안에 대한 반기였던 것인지 어쨌든 록산느의 남편이 되었던 당시의 로마니아 백작은 그 누구보다 먼저 마르티네스에서 떨어져 신왕조에 붙었던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게 그녀의 행복은 아니었으니까.’

비록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녀는 가문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검을 들었던 여장부였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정말 이번 일로 크게 상처만 받지 말아줬으면…….’

기사는 누구나 패배를 경험하고 그 패배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성장하는 이들이다.

많은 패배를 겪고 그것을 통해 성장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반인인 주안도 그것을 잘 알고 있으니, 기사인 록산느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다만, 그런 상처가 어떤 것인지 주안은 모를 뿐이니 말이다.

그저 지금은 록산느가 이대로 주저앉길 바라지 않을 뿐이었다.

* * *

대련은 끝나기도 전에 많은 사람이 자리를 떠났고, 끝났을 땐 처음 구경하던 사람의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록산느의 패배가 결정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구경하던 기사들이 모두 떠났고 그나마 일부 하인들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 남겨진 사람들 속에는 로마니아 백작가의 사람들과 토미와 관련된 워랜이나 솔, 아르베리아만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말이다.

토미는 자신의 목검을 챙겨 든 후 워랜과 솔, 아르베리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으실까…….’

대련 중간까진 그녀의 표정이 매우 어두운 것을 알아서 걱정스러웠지만, 대련이 거의 끝날 때쯤 조금은 안색이 좋아진 것에 안심한 토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토미는 여전히 록산느가 마음에 걸렸고 눈이 갔다.

그리고 멈추어 서서 토미가 록산느를 바라보는 것만큼, 록산느 역시 토미의 뒷모습을 쫓다 토미와 눈이 마주쳤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그 눈을 피해 버렸다.

‘괜찮으시구나.’

그런 록산느의 모습에 토미가 다행이라는 듯 싱긋 웃어준 뒤 돌아서서 워랜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록산느는 재차 그런 토미의 뒷모습을 쫓으며 토미가 한 말을 되새겼다.

‘검은 결국 검일 뿐이라…….’

서방의 검도, 동방의 검도 상관없다.

결국 검은 그 사람에게 맞는 방향으로 이끌면 될 뿐.

그동안 록산느는 줄곧 가문의 검.

서방 대륙의 검에만 집착하였고, 여성으로서의 신체적 차이로 인해서 서방의 검은 아무리 노력해도, 몇 배로 노력한다 해도 제대로 실력이 쌓이고 능력이 나오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좌절을 하고, 의미 없는 노력과 집착만이 남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아이는…….’

토미의 검은 서방의 검이자 동방의 검까지 섞인 기묘한 검이었다.

하지만 결국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신만의 검이라는 것과 토미의 말에서 깨달은 록산느는 그동안 자신이 집착했던 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니, 그것을 달리 생각하고 내려놓으니 조금 편안해진 기분이 들 정도였다.

“괜찮은 것이더냐.”

“할아버지…….”

록산느가 오지 않자 직접 그녀가 있는 연무장 안으로 들어온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은 조용히 록산느를 불렀고, 다행히 깊은 생각에 빠졌음에도 그런 할아버지의 말에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만이 아니라 아버지인 스타크 로마니아, 가문의 일등 기사인 루반 웰링까지 함께였다.

“아주 멋지게 졌더구나.”

“……죄송합니다.”

스타크 로마니아는 딸아이가 아직 어린 토미에게 검에서 졌다는 것에 언짢은 듯했지만, 다행히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은 그런 아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네 녀석이 저 나이였으면 세 합에 졌을 거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그런 것치고 턱이 빠져라 보던 녀석이 무슨…….”

“그런 적 없습니다.”

능글맞은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의 말에도 꼬장꼬장하게 답하는 스타크 로마니아의 모습에 곁에 있던 루반 웰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아가씨, 저 토미라는 아이……. 검을 부딪쳐 보니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

아가씨라는 말에 록산느가 차가운 눈으로 루반 웰링을 노려보자, 움찔 놀란 그가 황급히 호칭을 바꾸었다.

“……록산느 경.”

“예.”

익숙하긴 하지만, 자꾸 실수하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임에도 이 아가씨는 그러한 부분을 전혀 이해해 주지 않았다.

이런 답답하고 고지식하면서도 고집불통인 부분이 딱 그녀의 아버지인 스타크 로마니아와 닮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그래서 정말 어떠셨습니까?”

멀리서 지켜보긴 했지만 보는 것과 직접 검을 마주한 것은 전혀 다르다.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이다.

이런 루반 웰링의 말에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나 스타크 로마니아 역시 록산느를 주시하였다.

이런 어른들의 뜨거운 눈에 록산느가 조용히 말했다.

“무언가,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검과도 할아버지의 검과도 그 느낌이나 분위기가 모두 달랐습니다.”

“그건 대충 봐서 안다만……. 우리의 착각이 아니라면 저 아인 분명 서방의 검과 동방의 검,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단다. 사실이더냐.”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의 말에 록산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 어르신의 눈이 일제히 토미 쪽으로 쏠렸다.

순간 멀리 떨어진 토미가 움찔 놀라며 로마니아 백작가의 일행 쪽을 돌아보았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뜨거운 어르신들의 눈에 크게 놀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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