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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80화 (180/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80화

“후읍!”

토미가 짧게 숨을 들이쉬며 검을 내지르자, 그 직선적인 검의 궤적에도 록산느는 잔뜩 긴장해서는 검 끝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또……!’

검은 분명 단순한 서방의 검처럼 정직하고 강한 힘이 실린 검이었다.

하지만 록산느 로마니아는 그 단순한 검임에도 검 끝의 변화를 끝까지 기다리며 지켜보았다.

검과 토미.

그 눈과 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집중력 역시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지금!’

그리고 그녀의 예상과 판단력, 몇 번이나 겪은 토미의 검에 익숙해진 끝에 토미의 검 끝이 흐릿해지며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휘어져 들어오는 것을 눈치챘다.

“으윽……!”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과 막는 것은 달랐다.

억지로 몸을 틀어 토미의 검을 막으며 반격을 이어나가려던 록산느였지만, 한 번의 변화가 아닌, 두 번. 세 번의 변화를 맞이한 토미의 검 앞에 또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왜, 이런 재능은…….’

어깨와 허벅지, 그리고 옆구리.

연속적으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을 이겨내며 록산느 역시 토미의 팔에 검을 내질러 타격을 가했지만, 그뿐이었다.

토미의 붉은 눈은, 그 차분한 표정은 록산느의 공격에 아무런 아픔도 나타내지 않고 오직 록산느만을 눈에 담고 있었다.

‘왜 남자들에게만 이런 재능을……!’

세상에는 수많은 천재가 등장했고, 그들은 그 재능에 걸맞게 하나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 옛날, 서방 대륙을 통일한 사이캄 대제를 필두로 수많은 실력자가 나타났으며 대륙을, 제국을, 왕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남자들이었다.

아니, 여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재적인 능력으로 나라를 움직였던 여왕도 있었고, 획기적인 방식으로 마법의 발전을 한 단계 높인 여마법사, 예술 분야에 이름을 올리는 여성들.

많은 여성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그곳에 여성 기사는 없었다.

‘왜 남자들에게만, 검의 재능을…….’

점차 수세에 몰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생각이 그녀의 검에 영향을 준 듯, 조금 전까지 그래도 나름 팽팽하게 이어가던 대련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느낀 토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록산느를 주시했다.

그리고 록산느의 표정이 썩 좋지 못한 것을 깨닫고는 자신이 무언가 큰 실수를 한 것인가, 혹시 대련에 너무 집중하여 크게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닌가, 그런 착각마저 할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토미의 검 역시 주춤거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아이도, 워랜 경의 검은…….’

서방의 검은 어쩔 수 없이 강인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검술이다.

그것은 결국 남자들에게 잘 맞는 검이며 여자들에겐 서방의 검 자체가 맞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재능의 차이 이전에 신체적인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였을 뿐이었다.

재능을 가진 여성 기사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획일화된 서방의 검의 벽에 막혀 그 재능을 완벽하게 꽃피울 수 없었고, 그 결과 역사에 남은 여기사가 전무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록산느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토미에게 검을 휘두른다는 행동 하나만을 취하자, 토미가 움찔 놀라며 그 검을 그대로 막아냈다.

원래라면 간단히 피하고 재차 반격해서 한 번에 대련을 끝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록산느의 검에는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막아선 토미의 당황한 모습을 보며 록산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토미 경.”

“저기, 저는 기사가 아닌데…….”

토미는 자꾸 자신을 기사로 호칭하는 록산느의 그 말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록산느는 토미를 보며 말했다.

“네 검도 워랜 경과 마찬가지로 동방의 검술인 건가.”

“동방의 검술이요……?”

잠시 갸웃하던 토미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워랜 경에게 조금 배운 검이에요. 이걸 동방의 검이라고 해야 한다면 그렇겠지만…….”

확실히 토미의 변칙적인 검은 일전에 그녀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대련하던 워랜의 검과 비슷했다.

그리고 토미는 록산느의 씁쓸해하는 표정을 보며 이내 싱긋 미소를 지은 뒤 록산느에게 말했다.

“하지만 제 검의 근본은 서방의 검인걸요.”

“결국 서방의 검이라는 거구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록산느의 그 모습에 갸웃하던 토미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굳이 검을 동방의 검이든 서방의 검이든 나눌 필요가 있나요?”

“음? 그게 무슨 말인가?”

토미의 뜬금없는 말에 록산느가 조용히 검을 내렸다.

이미 대련은 의미가 없어진 상태였고, 그것을 깨달은 토미 역시 자신의 목검을 내리며 말했다.

“워랜 경도 그렇고, 다들 동방의 검은 이렇고, 서방의 검은 이렇다고 하는 게 저는 조금 이해가 안 되어서요.”

“그것은 서로가 추구하는 검의 방향이 다르고 훈련하는 방식과 의지가…….”

록산느는 이런 토미에게 검에 대해서 짧게나마 설명해 주려 했지만,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상하게 여기는 토미의 그 모습에 말을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 순간 그녀 역시 토미와 마찬가지로 조금 이상하다는 듯 갸웃했다.

“……너는 왜, 그런 생각을 가진 거야?”

“글쎄요. 그냥, 그것을 나누는 것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해서요.”

토미가 자신을 지켜보는 록산느의 시선에 조금 부끄러운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결국 검은 검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잖아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을 하는 토미의 모습에 록산느가 멍하니 토미를 바라보았다.

“검은, 결국 검……?”

“꼭 서로 검을 나누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할 필요는 없잖아요. 자기한테 맞으면 배우고, 그것을 가지고 나아가면 되는 걸요.”

토미는 처음부터 검을 그렇게 배웠다.

어떤 검이 더 좋고, 어떤 검이 더 우수하다는 것이 아닌, 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 배움에 있어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꽉 막혔지만, 그 누구보다 깨어 있는 생각을 가진 스승, 피터에게서 말이다.

“그래서 너는 그 두 개의 검을 모두 배우는 거고?”

“으음……. 조금, 욕심일까요. 그래도 두 배, 아니, 세 배, 네 배로 노력하고 있어서 저는 괜찮다고 생각을 하는걸요.”

“노력이라…….”

노력만이 아니라 재능마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록산느는 검을 나누어 보며 금세 깨달았다.

이곳에 남아 이 대련을 지켜본 이들 역시 토미의 남다른 재능은 알아봤지만, 그 노력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토미의 손, 그 손바닥의 상처들과 굳은살을 본 록산느는 토미가 단지 재능 하나만 가지고 검을 배우고 있는 아이가 아님을 깨닫고는 순간 부끄러움에 도망치고 싶어졌다.

‘나는 결국 쓸데없는 것에 질투만 한 건가…….’

그저 여자라는 이유로, 서방의 검으로는 높은 곳에 오를 수 없다는 것에, 아버지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며 결국 이 재능을 가진, 남자에 대해서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재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재능에 절대 모자라지 않은 노력과 깨어 있는 생각, 그리고 보다 먼 곳을 바라보는 그 시야.

토미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꽉 막힌 생각과 그저 의미 없는 노력만 하며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던 자신과는 너무나 달랐다.

토미는 피터의 아래에서 서방의 검을 배울 때도, 워랜에게서 간간이 동방의 검을 배울 때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서방의 검이든 동방의 검이든 중요하지 않다.

검이란 결국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록산느 경이 어떤 심정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록산느 경의 검에선 굉장한 집념이 느껴졌어요. 무섭기도 했지만, 무언가 다른 목표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어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집착이었고, 작은 발버둥이었지만 결국 그녀는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지금껏 검을 휘둘렀다.

그것을 토미가 느꼈다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록산느는 토미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는 토미 경, 자네의 목표는 뭔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노력을 하는 것인가.”

매우 딱딱한 록산느의 그 말에 토미가 작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여기서 웃으면 왠지 록산느가 다시 진심으로 검을 휘두를 것 같아서 억지로 참아내었다.

“인정을 받는 거예요. 인정을 받고, 그 곁에 서는 거예요.”

“인정……?”

마치 자신과 같은 목표로 느껴져 록산느가 움찔 놀랐다.

그리고 그 투명한 빨간 눈과 마주친 록산느는 순간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 점의 어둠도 없었고, 가슴을 뜨겁게 만들 만큼 올곧고 바른 눈빛이었다.

“예, 인정이에요. 저는 제 검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함께 나란히 서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이 되려면 이 검으로 노력해야 하니까요.”

“그대 정도의 검이라면 이미 충분히…….”

“충분하지 않아요. 아직 한참 멀었거든요.”

싱긋 웃는 토미의 그 모습에 록산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나이에 이 정도의 실력을 보이는 상황에서 아직도 자신이 한참 부족하며 더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대체 누구에게 그렇게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인가.”

록산느의 그 말에 토미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도련님이죠.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이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 말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록산느였다.

하지만 토미는 그러거나 말거나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분을 위해서라면 저는 뭐든지 할 거예요. 제가 검을 배우는 이유도, 노력하는 이유도 모두 도련님을 위한 것이니까요.”

“토미…… 경.”

이미 그 눈은 바로 앞에 서 있는 록산느 자신을 보는 게 아니라 더 먼 곳으로 향해 있었다.

자신의 목표로 세운, 인정받을 수 있는 미래의 자신과 주안에게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토미를 보며 록산느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도 있었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 간질거리는 이질적인 느낌도 있었지만 토미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검을 배워 나가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매우 컸다.

분명 많은 이들이 검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검을 가지고 강해지고 싶다는 것이나, 출세하고 싶다는 것이나, 복수를 꿈꾸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든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아이, 토미는 조금 달랐다.

그저 누군가의 곁에 서서 그 사람과 함께 나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토미는 순수했지만 그만큼 강인한 아이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말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고 오히려 당당했다.

그것이 록산느에겐 자신을 작게만 만드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자신은, 저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검을 휘두르고 노력해 본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직 멀었지만 언젠가는 꼭 그렇게 할 거예요. 록산느 경의 목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표를 꼭 이루셨으면 좋겠어요.”

토미의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록산느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토미는 여전히 자신감과 뚜렷한 목표로 반짝이는 빨간 눈으로 록산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그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한 록산느는 이내 토미에게서 시선을 돌려 한쪽 구석에서 이쪽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워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 작은 새로운 목표를 가진 그 눈은, 마치 토미처럼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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