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178화 (178/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78화

마르티네스 공작가에는 수많은 가신이 있고, 그러한 가신 중에서도 대표적인 기사 가문이 몇 있었다.

하나는 남부의 노밀 자작가로,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명마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기병은 제국을 넘어 대륙 제일이라고도 불리는 가문이었다.

게다가 아스란 왕국 정벌 당시 선두에서 활약하며 그 실력이 여전함을 보여주었으며, 현재 가주인 가론 노밀 자작은 벡브란 전대 공작의 최측근으로 머리의 역할을 담당하며, 한때 그 실력이 출중한 기사이기도 했다.

현재는 그런 가론 노밀 자작보다 그의 아들, 워랜 노밀이 노밀 자작가의 위상을 떨치고 있었다.

제국, 아니, 대륙 최연소 랭크 7의 기사로서 언젠가 제국을 넘어 대륙 제일 검이 될 것이 확실시되는 기사였다.

그리고 이런 노밀 자작가와 쌍벽을 이루는 명성을 떨치는 것이 바로 서부의 로마니아 백작가였다.

노밀 자작가처럼 특수한 병과를 운영하진 않지만, 그들은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검술과 독특한 철재 제련술로 만들어낸 병장기는 동방 대륙에서도 탐내는 물건들이었다.

이러한 강력한 병장기로 무장한 숙련된 기사와 병사들의 집단전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교본에 실려 다른 가신들의 가문에서 배워갈 정도로 대단하였다.

현재의 가주인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은 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랭크 7의 기사로서, 실력은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살아온 세월과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가 대단한 인물로 인정을 받는다.

그 외에도 중부의 헥사빌 백작가나 남부의 말란체, 북부의 스타니아 등등, 다수의 기사 가문이 있지만,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대표한다면 노밀 자작가와 로마니아 백작가, 이 두 곳을 꼽는 이들이 많았다.

타 가문보다 뛰어난 기사들과 그들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병사들의 능력과 숙련된 기술 등을 종합했을 때 이 두 가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대표적인 두 가문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계자의 문제로 골치가 아파했다.

하지만 노밀 자작가는 자신의 길을 찾은 워랜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버렸지만, 로마니아 백작가는 아니었다.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의 아들, 스타크 로마니아 경은 실력이 매우 뛰어난 기사였지만, 문제는 그에게 현재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다는 점이었다.

고지식한 기사의 가문답게 후계자에 매우 민감한 로마니아 백작가였으며, 마르티네스 공작가와는 달리 여자가 가주가 되는 것에는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록산느 로마니아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검을 휘둘렀고,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하아, 하아…….”

그녀는 로마니아 백작령의 저택에서도 그랬지만, 공작성에 왔음에도 변함없이 가족 중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훈련을 시작하였다.

간단한 구보를 시작으로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간단한 아침 식사 후 가문의 기사들과 대련하였다.

점심 이후 개인 수련에 몰두한 뒤 저녁을 먹은 후 검술 교본을 본다거나 대련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새기며 잘못된 부분을 반성하고 고쳐 나갔다.

참으로 재미없는 일상이었지만, 그것이 현재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후우, 하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달려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훌륭한 기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조급함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가 더욱 컸다.

“…….”

바로 곁에서 자신과는 달리 숨을 고르게 쉬며 달리고 있는 남자아이 때문이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땀으로 인해 하얀 머리카락이 이마와 얼굴에 몇 가닥이나 달라붙어 있었음에도 거친 숨 한 번 내쉬지 않으며 록산느를 걱정하는 아이, 토미가 록산느의 모습을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이제 그만 달리셔도…….”

“시끄럽다. 난 아직 멀쩡해.”

“아, 예…….”

벌써 며칠째인지 모른다.

그녀는 공작성에 온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집에서 하던 것처럼 일상을 보냈다.

다른 기사들이야 연무장에서 간단히 몸을 풀거나 하였지만, 아무래도 자신들의 저택도 아니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근거지인 공작성인지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평소처럼 훈련할 수는 없었지만, 록산느는 그러한 눈치를 보지 않고 평소처럼 아침 구보로 훈련을 시작련하였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토미 역시 아침 일찍 훈련을 시작하는 것에 록산느는 의외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마를렌으로 오면서 꾸준히 훈련하던 토미의 모습은 봐서 알았지만, 설마 이곳에서까지 자신과 마찬가지일 줄은 몰랐었다.

대견하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졌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아인…….’

자신의 곁에서 함께 달리고 있는 토미를 흘겨보며 록산느 로마니아는 잔뜩 찌푸렸다.

‘어째서 숨도 안 차고 나와 똑같이 달릴 수 있는 거지…….’

바로 첫날부터, 함께 달린 것도 모자라 먼저 지쳐 버린 것이 바로 록산느, 자신이라는 것에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녀를 떠나 가문의 다른 기사들에 비해서 손색이 없는 체력을 가진 록산느였고 그런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 큰 노력을 하였던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크게 상처까지 내버린 것은 따로 있었다.

“토미 경.”

“저, 저, 저기, 저는 아직 기, 기사도 아니고…….”

록산느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볼까지 빨갛게 붉히며 당황하는 토미의 모습에 록산느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놀라고 당황한 것인지 토미는 잘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였다.

하지만 록산느는 이런 토미의 모습을 보면서도 표정을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히며 말했다.

“구보 후에 또 대련을 신청해도 되겠나?”

“예? 대련을요?”

“그래.”

록산느의 그 말에 토미가 조금 망설였지만, 차가운 외모와는 달리 뜨겁게 타오르는 눈을 본 토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용 목검으로라면 얼마든지요.”

“고맙네.”

무뚝뚝하게 답하는 록산느의 행동에 토미가 작게 웃어주었다.

말투가 마치 나이 지긋한 중년의 기사처럼 보였고 록산느의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 의지만큼은 제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토미는 이런 무뚝뚝한 기사를 정말 좋아했다.

외모는 딴판이지만, 피터와 그 속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절대 봐주지 않을 것이네.”

“예…….”

“절대로……!”

“…….”

토미는 자신을 노려보는 록산느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 눈과 마주하자 움찔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우연이야. 절대로 우연이야……. 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억지로 토미를 지나쳐 먼저 앞서 달려간 록산느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질 리가 없어…….’

얼마 전, 그녀는 토미와 검을 섞었고…… 순식간에 패배한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 * *

“호오…….”

두 남녀가 연무장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많은 이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구경꾼들이긴 하나 면면을 살펴보면 죄다 가주들을 모시는 실력 있는 기사들이었다.

그중에는 워랜과 솔 그리고 아르베리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토미와 록산느의 대련을 보던 아르베리아가 마치 괴물을 바라보는 듯 놀란 눈으로 토미를 주시하였다.

“그 잠깐 사이에 토미의 실력이 더욱 오른 듯하군, 워랜 경.”

“앞으로 더 오를 거야. 1년 정도, 아니, 반년만 지나도 아르베리아 경을 따라잡을 수도 있을걸? 솔은 이미 제쳤고.”

“저, 전 검을 안 잡는데요?!”

워랜의 말에 솔은 매우 억울해했지만, 워랜은 그런 솔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토미와 록산느의 대련을 주시했다.

다만, 워랜의 발언에 아르베리아가 언짢은 듯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 좀 지나치다 생각이 되네만.”

“농담이 아니라는 거, 아르베리아 경도 이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

워랜이 미소를 지으며채 아르베리아를 흘겨보며 그렇게 말하자, 아르베리아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체격은 조금 작지만 체력이나 검술 솜씨, 재능과 열정 그리고 노력까지, 토미는 기사가, 검사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다 가진 천재였다.

마치, 곁에 있는 워랜 노밀처럼 말이다.

“뭐, 반년은 좀 심했지만 적어도 1년…… 아르베리아 경이 별다른 발전이 없다면 따라잡고도 남을 거야.”

“……자네 이상의 괴물이 되어가는 듯하군.”

아르베리아 역시 나름 뛰어난 기사로 불리지만, 그의 나이는 벌써 20대 중반을 넘어섰다.

슬슬 실력의 상승은 정체되고 대신 숙련도를 극한으로 쌓아가는 시기인지라 10대 후반, 20대 초반처럼 폭발적인 성장은 이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토미는 달랐다.

이제 폭발적으로 성장할 시기이고, 그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를 뒷받침해 줄 괴물 같은 재능까지 가지고 있었다.

마치…….

“그때도 봣지만, 저 아이의 검은 자네와 매우 많이 닮았어.”

“그야 당연하지. 저 녀석도 이제 나와 스승이 같거든.”

“결국, 풍신 경에게 검을 배우게 되었나 보군.”

“왜? 부러워?”

“……지금은 좀 부럽긴 하네.”

아르베리아는 솔직히 그 부분이 매우 부러웠다.

워랜처럼, 토미처럼 그런 엄청난 재능이 자신에게 없음을 잘 안다. 그렇기에 엄청난 실력의 스승이 더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검을 가르쳐 준 가문의 기사, 그들 모두가 좋은 스승이었지만, 사실 풍신과 비교하면 실력으로는 많이 떨어지는 이들이니 말이다.

“우리 인연을 생각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 사실 아르베리아 경은 우리 스승의 검은 못 배워.”

“알고 있네……. 동방의 검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일세.”

특별한 재능이 없다면 배울 수 없는 동방의 검술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재능이 없다면 입문조차 힘들고, 설령 어떻게 입문한다 해도 재능이 모자라면 도태되어 버린다.

그런 재능 싸움에서 결국 살아남은 이들이 최고수로 올라서는 살벌한 동방 대륙의 검술이기에, 아르베리아는 자신의 재능으론 도저히 동방 대륙의 검술을 배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몸에 맞지 않으니 입문조차 불가능할 것이었고.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지만, 아르베리아는 워랜의 다른 말에 발끈하며 말했다.

“그래도 1년 안에 토미에게 따라잡히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니, 방금 했던 말은 철회하도록 만들어주겠네!”

“뭐, 열심히 노력하시구려.”

여전히 쓸데없는 것에 활활 타오르는 바른 생활 청년, 아르베리아 말란체의 모습에 워랜이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토미와 록산느의 대련을 눈에 담아내었다.

“어째 내 검도 다 훔쳐낸 것 같은데, 피터 경의 검도 제대로 가져간 것 같네.”

다른 이들의 눈에는 토미의 저 변칙적인 검술이 동방의, 워랜의 검과 비슷하다고 느껴지겠지만 워랜에게는 아니었다.

‘저놈, 진짜 두 대륙의 검을 다 배울 생각인가.’

주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사실 워랜은 그 말을 그다지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서방 대륙의 검과 동방 대륙의 검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재능의 차이도 있고, 육체의 능력도 상반이 되며, 정신적인 부분도 완전히 다르다.

때문에 서방의 검을 타고난 이는 동방의 검을 배우기 어렵고, 반대로 동방의 검을 타고난 이는 서방의 검을 배우기가 어렵다.

하지만 토미는 마치 이 두 검을 모두 배우려는 듯했다.

몸은 여전히 가녀리지만, 그 속에는 서방 대륙의 기사들처럼 미친 듯한 체력이 붙기 시작하였고, 그 검은 날카로우면서 변화무쌍함에도 제대로 부딪히면 손이 저릴 정도로 단단하고 강했다.

‘……이거, 저 녀석이 제대로 크면 나도 밀리겠는데?’

단지 동방의 검만 배워서 성장한다면, 토미가 자신을 절대 따라오지 못할 것을 워랜도 알았다.

하지만 저 둘을 모두 배우며 올라오는 토미의 모습은 솔직히 그 역시 긴장될 정도였다.

“나도 서방의 검을 더 배워볼까…….”

“음? 서방의 검을? 자네가 그것을 배워서 어디에 쓰려고?”

“……뭐, 그냥 어디든 쓰겠지.”

워랜은 토미가 그렇게 하는 것에 자극을 받아 똑같이 해볼 생각이라는 사실을 아르베리아에게 말해줄 수가 없었다.

괜히 놀림거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