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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77화 (177/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77화

거대한 대밀림에서도 더욱 남쪽으로 내려간 경계면.

대륙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밀림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원주민들조차 이 경계면 너머로 나아가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장소였다.

아미엘은 그러한 경계면 너머의 어두운 대밀림을 바라보며 표정을 잔뜩 굳혔다.

“이곳인가.”

“그렇네, 정원사 양반.”

아미엘의 말에 곁에서 숨을 죽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카마르 족장이 낯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많은 수의 이곳, 경계면을 지키는 달란트 부족원들이 넓게 퍼져 몸을 숨긴 채 주변을 경계하였다.

“뭔가 오는구나.”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지면을 울리는 거대한 발소리에 아미엘이 어두운 대밀림 너머를 응시하였다.

그리고 카마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큰 놈이군. 둘이네. 잽싼 녀석이 하나, 하나는…… 처음 보는 녀석이군.”

“그것을 다 아는 것이더냐.”

의외라는 듯, 아미엘이 카마르를 바라보자 카마르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을 펼친 채 바닥에 대고 있었고 지면이 흔들리는 진동과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숨소리, 그리고 코끝으로 전해져 오는 냄새로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안 보이는 건 듣고 느끼고 냄새로 알면 되는 것이지.”

“그러한가.”

마치 자랑이라는 듯 우쭐하는 카마르 족장이었지만, 아미엘은 그가 그런 자랑을 하여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분명 현 달란트 부족의 대족장인 메데아 대족장보단 무력으론 떨어져 보여도 그 외적인 능력은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보였다.

그렇기에 카마르 족장이 이 위험한 경계면을 지키는 중심이 된 듯했다.

“한데 처음 보는 녀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이더냐.”

“이곳으로 오고 있는 마물은 둘이오. 하나는 부족으로 가져왔던 크고 잽쌌던 그 마물이지.”

“오우거를 말하는 것이구나.”

“한데 하나는 모르겠구려. 처음 보는 녀석이라 말이오.”

“처음 보는 녀석이라…….”

카마르는 어금니를 드러낸 채 웃고 있지만, 여유로운 모습까진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강하고 그 힘으로 마물들을 사냥해 왔다 해도 마물은 마물.

위험한 존재들임을 그는 잊지 않았다.

조금의 방심이 곧 생명에 직결되는 이곳, 대밀림에서 절대 해선 안 되는 것이 바로 아무리 작고 약해 보이는 것이라도 얕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카마르 족장의 모습을 보며 아미엘이 조용히 말했다.

“마물의 종류는 많더냐.”

“아주 많소만.”

“그러면 지금 오는 거대한 녀석들도 많더냐.”

“거대한 놈들이라…….”

아미엘의 말에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카마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소.”

“몰라?”

“그렇소.”

고개를 끄덕이는 카마르의 말에 아미엘이 갸웃하였다.

하지만 카마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린 저 안쪽까지 갈 수가 없소. 너무 위험하기도 하지만, 이 이상 나아가긴 우리도 벅차기에 확인할 길이 없으니 말이오.”

서방 대륙의 사람들은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을 원시적인 존재라 비하하면서도 그들의 힘을 무시하진 않는다.

이미 그렇게 무시를 하다 큰코다쳐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처럼,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도 자신들의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확장할 수 있는 부분, 지켜낼 수 있는 장소까지만 뻗어 나갔으며 그 이상은 욕심을 내지 않았다.

이미 먹이는 풍족하여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최근 들어 거대한 녀석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졌다오. 이곳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마물들의 숫자도 많아졌고 그 주기도 매우 짧아지고 있소.”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렇소. 많아지고 있소.”

아미엘은 그 말에 안색이 무척이나 어두워졌다.

그리고 카마르 역시 매우 피곤해 보이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마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소. 작은 녀석들도 그렇지만 덩치 큰 녀석들도 이제는 몰려다닐 정도로 많아졌소.”

작은 마물들은 뭉쳐 다니는 것이 일상인 일이라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마물들이 하나둘씩 뭉쳐 다니면서 이곳, 경계면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한 녀석 정도야 일반 부족원들이 나서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지만 둘, 셋씩 뭉쳐 다니기 시작하니 점점 그 피해가 쌓이는 게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이곳, 경계면의 우두머리인 카마르 족장의 입장에선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더냐.”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느냐는 듯 카마르 족장이 아미엘을 바라보았지만, 너무나 진지해 보이는 그 모습에 카마르 족장이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떠오른 듯, 카마르 족장이 아미엘에게 말했다.

“300번 정도 밤낮이 바뀌었던 때였소.”

날짜의 개념도, 연도도 사용하지 않는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에겐 그게 최선의 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미엘은 그런 카마르 족장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한 듯했다.

“300일 정도 전이라…….”

대륙의 시간으로 따지면 작년 봄의 끝자락 정도가 될 듯했다.

아미엘은 이 대륙의 시간으로 따져도 이곳으로 다시 발을 디딘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때 무슨 연유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정면을 응시, 저 어둠 너머에서 다가오는 두 거대한 마물을, 아니, 그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비정상적이고 혼란스러운 마나의 농도였다.

‘점점 더 짙어지고 있구나. 매우 무겁고, 다가오는 존재를 밀어내는 마나로구나.’

그녀의 눈에 비치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 함께 자리 잡고 휘몰아치는 마나였다.

이 서방 대륙에서 저 마나의 흐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라는 달란트 부족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타고난 전사이지 마법사는 아니었으며, 마나를 제대로 느끼고 파악할 수 있는 이들 역시 아니었다.

단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이곳까지만 나아선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익숙해. 어째서…….’

그 혼란스럽고 무거운 마나의 속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은 아미엘은 과거의 아런한 추억들이 생각이 날 정도였다.

‘나는 이 마나를 알고 있구나.’

익숙하다는 것. 그리고 친근하다는 것.

결국 그 이유는 자신은 이 마나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차분하게 생각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는 듯했다.

“오는구려.”

카마르가 조용히 낯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자 주변에 퍼져 있던 달란트 부족들의 기세가 일제히 변했다.

저 무겁고 혼란스러운 마나의 강을 뚫고 등장한 거대한 두 생명체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자신들의 무기를 고쳐 잡고 날카롭게 벼린 투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크르르륵……!”

“쿠우, 쿠후우……!”

그리고 달란트 부족이 내뿜는 투기에 반응하듯 거대한 두 마물들 역시 짙은 살기를 뿜어내었다.

“저것은…….”

마물.

아니, 이제는 확신한 듯했다.

“몬스터…….”

카마르가 잡아왔다는 마물, 몬스터 오우거가 제 모습 그대로 대지 위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또 다른 마물이자 몬스터라 할 수 있는 단단하고 큰 두 개의 뿔을 가진 거대 생명체가 꼿꼿하게 서서 달란트 부족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미엘은 저 두 생명체를 알고 있었고, 몬스터가 확실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 함께할 수 없는 저 두 몬스터가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두 몬스터를 노려보던 아미엘은 금세 두 생명체에게 달려 나갈 기세의 달란트 부족, 카마르 족장을 뒤로한 채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음? 정원사 양반?

“이곳을 안내해 달라고 한 것은 나의 부탁이니, 손을 빌려주겠느니라.”

아미엘이 조용히 먼저 앞으로 나서자 카마르 족장이 무척이나 당황한 듯 손을 뻗었다.

그녀를 붙잡으려 하였지만 아미엘은 어느새 카마르 족장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나아간 뒤였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이 다가오자 잔뜩 흥분해 있던 두 몬스터가 아미엘에게 달려들었다.

마물은 마물. 그리고 몬스터는 몬스터.

일반적인 맹수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야수성과 폭발적인 움직임은 카마르 족장이나 달란트 부족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미엘은 그런 두 몬스터를 보며 조용히 손을 들었다.

“너희가 어이해서 이곳에, 이렇게 다시 나타난 것임을 나는 모른다. 하나…….”

그리고 조용히 내리며 말했다.

“이 땅은 이제 너희의 땅이 아니니라.”

아미엘의 손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그녀의 날개가 강하게 빛이 나더니 이내 그녀의 등 뒤에서 거대한 번개의 줄기가 뿜어져 나와 달려드는 두 거대한 몬스터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번개에 휩쓸려 나간 두 몬스터는 그대로 멀찍이 떨어진 지면에 고꾸라졌다.

그리고 거대한 파공음과 함께 뒤이은 충격파에 달란트 부족원들은 나무와 바위, 그것도 아니면 그것을 붙잡고 있는 부족원의 팔과 다리를 붙잡은 채 휩쓸려 날아가지 않기 위해 애썼다.

“허, 허허…….”

그리고 이런 광경을 다른 부족원들과는 달리 꼿꼿이 서서 지켜보던 카마르 족장은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아미엘의 너머에 쓰러진 채 미동이 없는 두 거대 마물, 아니, 몬스터의 모습에 카마르 족장은 어이가 없어졌다.

“저것 한 마리를 잡으려고 그 고생을 하였던 우리인데……. 참으로 대단하구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던 카마르 족장도, 아미엘의 강함이 이 정도일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듯했다.

조심스레 아미엘의 곁으로 다가간 카마르 족장은 그녀의 곁에 서서 멀찍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두 거대한 마물의 모습을 보며 짧게 감탄을 터뜨렸다.

“아주 알맞게 구워졌구려. 허허허…….”

그리고 카마르 족장이 바닥에 처박혀 있는 두 마물, 아니, 처음 보는 마물의 모습에 표정이 매우 밝아졌다.

“오늘은 소고기로 배를 불리겠구려.”

오우거와는 달리 소의 머리를 한 거대 마물의 모습에 카마르 족장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달란트 부족원들도 조심스레 다가오다 카마르 족장의 말을 듣고 바닥에 처박힌 마물의 모습을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도 좋았지만, 아무거나 잘 먹는 그들 역시 고기를, 그중에서도 소고기를 최고로 치는 듯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들이었다.

“음? 정원사 양반, 왜 그러시오?”

즐거워하는 달란트 부족원들과는 달리 아미엘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고, 근심이 가득하였다.

“함께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어이해서 이것들이…….”

아미엘이 그렇게 말을 하며 조용히 바닥에 처박혀 있는 소머리 형상의 몬스터에게 날아갔다.

그 모습에 카마르 족장이 다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아는 놈이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소 같았기에 입맛을 다시는 카마르 족장이 심각한 표정의 아미엘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미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노타우로스…….”

“이 소의 이름이 미노타…… 뭐, 그런 거요?”

발음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몇 번이나 중얼거렸지만, 그 이름이 입에 제대로 붙지 않는 듯 카마르 족장이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그냥 소머리 마물로 부르기로 정하며 아미엘에게 물었다.

“앞으로 이런 놈도 나올 듯하구려. 소고기라 좋기는 하지만, 너무 많이 나오지만 않으면 좋겠구려.”

소고기는 좋지만 이 덩치와 근육, 거대한 뿔을 보니 이 녀석을 잡다가 여럿 다치겠다는 생각에 카마르 족장은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이런 카마르 족장만큼, 아미엘 역시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그리고 미노타우로스와 나란히 쓰러져 있는 오우거를 보며 아미엘이 작게 중얼거렸다.

“크세니아여, 그대와 그대의 일족의 봉인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더냐.”

거대한 나무들에 가려진 그 틈 속,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미엘이 작게 중얼거렸다.

오랜 친우이자 벗이 만들어낸 것에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그녀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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