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76화
세냐의 그 말에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 누나는 허풍쟁이이니까 안 믿어도 괜찮아.”
“흐응~.”
하지만 세냐는 주안을 바라보던 시선이, 아니, 정확히는 호감도가 꽤 많이 깎여 나간 듯했다.
이것을 느낀 듯 주안이 슬쩍 세냐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진짜 우리 엄마랑 많이 닮으셨는걸. 난 아빠도 닮았지만, 엄마랑 닮았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단 말이야.”
“뭐, 분위기 자체는 비슷하시긴 하네요. 하는 행동도…… 비슷했지만.”
“……하는 행동도 비슷해?”
주안이 잠시 갸웃하며 허공에 떠오른 마를렌의 얼굴 모습과 세냐를 번갈아가며 보다가 살짝 찌푸렸다.
“……그건 좀 그런데.”
“엄마 좋아하시는 거 아니셨어요?”
“좋아하지만 안 좋은 부분까지 다 감싸줄 정도는 아니야.”
“선택적인 마마보이셨네.”
“마마보이는 빼라니까. 이제 엄마 안 찾는다고.”
“……아직도 엄마, 엄마 하는 거 보면 좀……. 나이가 몇인데 엄마 타령이세요.”
“으극!”
복수다.
그림이 이상하다는 것에 대한 복수가 분명했다.
쿠후후, 장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주안을 흘겨보는 저 태도를 보니 100% 주안에 대한 복수가 확실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랑 행동이 비슷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었다는 게 믿기지는 않는데…….”
“다행히 동 세대에 나타난 것도 아니니, 딱히 천재지변 수준까진 아니잖아요.”
“그, 그 정도로 엄청난 건 아니라고.”
“……확신 못 하시죠.”
“으으…….”
세냐의 그 말대로 주안은 확신 못 할뿐더러 작게 안심까지 하는 자신이 싫었다.
엄마는 확실히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엄마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둘이나 있다는 것은 좀 많이 괴로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주안의 생각과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세냐 역시 공감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엄마랑 비슷한 분이라면, 엘프들도 꽤 힘들었겠네.”
“어디 엘프만 그랬겠어요? 옆집에 사는 드워프나 오크들도 엄청 시달렸다니까요.”
마치 지긋지긋한 언니를 생각하는 듯, 세냐가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 깐깐한 칸데 할아버지를 젊게 만들어준다고 수염을 몰래 밀어버리지 않나, 오크들의 근육을 더 멋지게 만들어준다며 이상한 약을 먹여 단체로 배탈 나게 하지 않나…….”
“……오크가 배탈도 나?”
그 먹성이 좋은 오크들은 먹성만큼이나 위장도 튼튼해서인지 웬만해선 탈도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오크를 배탈 나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가진 엘프가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에 주안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곁에서 보고 겪은 산 증인인 세냐는 그게 아니라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작은 고개를 살랑살랑 가로 저었다.
“마를렌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엘프로 보다간 큰코다칠 거예요.”
“……전설은 다 헛소문이었구나.”
“마를렌만 빼면 이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엘프에 대한 환상은 얼추 맞을 걸요.”
“그분을 포함하면?”
“엘프에 대한 인식이 오크만큼 바뀌지 않을까요?”
“그, 그 정도라고?”
이것도 농담이겠지, 싶었지만 세냐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주안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 세냐에게 말했다.
“그런 분에게 이 성흔이 있었다고? 그래도 신에게 축복을 받은 증거 아니야?”
“그러니까요. 신이 노망이 나셨나……. 선조도 그렇고 후손도 이렇고…….”
“……말이 너무 심해.”
주안도 신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저런 불경한 말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냐는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듯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도 많이 시달렸나 보네?”
“저뿐만이 아니라 아미엘 님도 마찬가지예요.”
“우와, 아미엘 님까지…….”
대체 어떤 성격이기에 그 대단한 아미엘마저 시달림을 당한 것인지, 주안으로서도 참으로 아찔한 선조라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주안은 엄마의 행동을 떠올리다 이내 자신도 모르게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는데.”
“왜 납득하시는 건데요.”
“아니, 그게…….”
주안이 세냐의 눈을 피해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보아오고 겪어오던 엄마의 엄청난 모습을 떠올리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해 버리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세냐는 이런 주안을 보다가 뒤로 벌렁 드러눕더니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어요.”
“우리 엄마 같은 성격이면, 좀 피곤하긴 해도 옆에서 적당히 주의만 줘도 재미있는 분으로 생각하실 거니까.”
그 적당한 주의 줄 사람이 그동안 없었고, 이곳으로 돌아와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안이 그 역할을 해주니 집안도 참 평화로웠고 엄마에 대한 주변의 평판도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다.
무엇보다 과한 행동들이 없어지니 조금 괴짜 같기는 해도 저 높은 곳에 있는 공작 부인답지 않은 털털함과 친근함으로 인해서 아랫사람들도 안젤라를 매우 좋아하는 쪽이었다.
주안의 그 말에 세냐도 겪어본 안젤라를 떠올리며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긴 하죠. 오빠네 엄마처럼, 항상 밝게 웃으면서 모든 이종족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고, 쉽게 친해질 수 없던 드워프나 오크, 엘프들을 하나로 뭉치게도 했으니까요. 마를렌이 있어서 다들 그 좁은 곳에서 함께 웃으면서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어요.”
“세냐…….”
주안은 세냐의 말 속에서 요정들은 엘프들과 매우 친했고, 다른 이종족들인 드워프와 오크들과도 사이가 크게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세냐는 마를렌에 대해 더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넌 우리 선조 어르신, 마를렌 님과 매우 친했구나.”
“뭐, 그럭저럭?”
싱긋 웃는 세냐의 그 미소에서 주안은 조금 다른 감정을 느꼈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세냐의 미소에는 쓸쓸함이 담겨 있었다.
이 작고 어려 보이는 요정 꼬맹이도, 사실 나이로 보면 주안보다도 많은 어른이겠지만 그럼에도 주안은 세냐를 보면 꼭 어린 여동생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 행동도 철이 없었고 장난도 많이 치고, 쉽게 삐치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 외모와는 다른 분위기를 낼 때도 있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주안은 위로라도 해주려는 듯 조심스레 세냐에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성흔에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성흔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의 빛은 금세 세나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이런 주안의 행동에 세냐는 조용히 웃어주며, 오히려 주안의 손가락에 기댄 신성력의 빛을 받아들였다.
“응, 익숙한 느낌이에요. 오빠는 별로지만, 이 성흔의 빛은 저희 요정들이나 엘프, 드워프, 오크들에게는 희망의 빛이었으니까요.”
“별로라서 참 미안하네.”
포근하게 감싸주는 그 빛은 익숙하였고, 너무나 따스하였다.
마치 그 옛날, 이종족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살던 그때가 떠오르게 할 만큼, 눈물 나게 할 만큼 말이다.
“달란트 부족이, 오크들이 남아 있으니까 어딘가에 분명 드워프나 엘프들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꼭 찾아내서 다시 함께 살아가면 돼.”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인간들이 가만히 두고 볼지…….”
“그런 거라면 걱정 마. 이 오빠가 조금만 더 공부하면, 그들을 지킬 힘도 가질 수 있을 거니까.”
“헤에, 그건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은데…….”
세냐가 빙글빙글 웃자, 주안이 조심스레 세냐의 통통한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주었다.
“오빠가 이래 보여도 능력 있는 남자라고.”
“능력 있는 집안이겠죠.”
“그것도 내 능력이지.”
세냐도 주안의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어떤 집안인지 대충 파악이 끝난 듯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인간들은 이종족을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 존재마저 지워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주안이 이처럼 호기롭게,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하는 그 말도 어느 정도 신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뭐, 아직은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오빠네 할아버지나 여기 집안사람은 조금 대단해 보이니까, 그건 인정해 드리죠.”
“어이구,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조금 우울해졌던 세냐도 주안의 이런 농담에 농담으로 받아칠 정도로 기운을 차린 듯했다.
“아, 그리고 곧 마를렌 님에 대한 자료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나랑 같이 살펴볼래?”
“네? 정말요? 그거 못 찾겠다며 힘들어했잖아요.”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부탁드렸지.”
“결국, 아무것도 안 하셨다는 거네요.”
마치 조금 믿음직스러운 오빠를 바라보는 듯 반짝이던 눈에 실망감이 어리자 주안이 당황하며 황급히 말했다.
“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나도 나름 노력했고, 나 혼자 이렇게 아등바등하는 것보단 가문에 대해서 훨씬 자세하게 아시는 할아버지의 손을 빌리면 훨씬 더 빨리 마를렌 님에 대해서 알 수가…….”
“변명이 매우 구차하세요.”
“으…….”
세냐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자, 주안이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좋은 인상을 좀 심어 주나 싶었는데, 금세 실망감을 준 듯했다.
하지만 이런 주안을 보며 세냐가 생긋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날아올랐다.
어느새 허공에 떠오른 빛으로 만든 마를렌의 얼굴은 사라진 뒤였고, 반짝이는 세냐의 날개의 움직임에 따라 빛무리가 흩날리고 있었다.
“오빠.”
“응?”
세냐의 부름에 우울해하던 주안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언제 온 것인지 세냐는 주안의 얼굴 바로 앞까지 날아와 주안을 바라보며 밝은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도 고마워요. 그래도 오빠가 마를렌의 아이라는 게, 저는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으, 으응……. 그런데 아이라기보다는 그냥 먼 후손인데…….”
직계 후손이라고는 해도 정말 머나먼 후손일 뿐이지만, 그런 것은 아미엘도 그랬지만 세냐에게도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얼빠진 모습을 보면서 세냐가 조심스레 손을 뻗더니 이내 주안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어, 어어?!”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주안의 얼굴이 뜨거워지며 확 붉어졌다.
분명 작고 어린 꼬맹이임을 주안도 알고 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세냐는 왠지 훨씬 더 성숙해진 소녀처럼 주안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세냐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너, 너, 이건, 그러니까…….”
“왜요? 감사의 표시인데. 별로였어요?”
“가, 갑자기 웬 감사?! 그보다 이런 건 좀…….”
배시시 웃어주는 세냐의 그 모습과 당당한 행동에 주안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세냐가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그보다 첫 키스니까, 책임져 주실 거죠?”
“첫 키스?! 아니, 이건 그런 거라기보단 다, 단순한 뽀, 뽀뽀…….”
허둥거리는 주안의 모습에 세냐가 쿠후후, 웃으며 장난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주안을 흘겨보며 말했다.
“정말 어리숙하시네요. 놀리는 재미가 있단 말이에요.”
“너, 정말…….”
또 장난친 것인지 금세 속아 넘어간 주안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세냐는 주안이 그러거나 말거나 몸을 돌리더니 다시 테이블 쪽으로 느긋하게 내려가 앉았다.
“어휴, 정말이지……. 그런 장난은 적당히 해…….”
“어머, 장난으로 한 거 아닌데요.”
“그러니까 안 속는다고.”
“흐응~ 그러세요.”
샌드위치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던 세냐가 조심스레 주안을 돌아보았다.
“저는 오빠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인간적으로 말이에요.”
“…….”
자신을 보며 생긋 웃어주는 세냐를 내려다보며 시선을 교환한 주안이었지만, 이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안 속아.”
“흥!”
다만, 그런 주안의 말에 세냐는 또 삐친 것인지 볼을 잔뜩 부풀리며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