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75화
“흐흥~ 저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어디서 냄새 나는 사람 따위와 위대한 요정을 비교하시나. 불쾌하거든요.”
“그거참 미안하네. 그 냄새 나는 사람이 만든 주스는 잘도 마시면서.”
“정화를 많이 했으니 괜찮거든요~”
“……마법을 정말 이상하게 사용하는구나.”
마법이란 매우 복잡하고 고도로 발달된 학문이기도 하며 매우 위험한 것임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일상적인 부분에 적용하는 마법도 있지만, 그 역시 매우 복잡한 수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보통 마법사라고 하면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인식이 강했다.
애초에 배우고 싶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검술은 재능이 모자라고 없다 해도 누구든 조금만 노력하면 검을 잡고 휘두를 수는 있다.
하지만 마법은 특별한 재능이 없다면 입문조차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세냐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마법을 마치 자신의 손발을 사용하는 것처럼 너무나 편해 보였다.
주안의 입장에선 꽤나 황당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아, 그래도 너한테 이 성흔에 관해 좀 더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네요. 그건 신의 힘이 깃든 것이라 아미엘 님이 아니라면 잘 모를 걸요.”
“그런가……. 워프 게이트까 만들어지면 아미엘 님을 바로 만나러 가야 하나…….”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뒷머리를 벅벅 긁자, 그 모습을 보면서 접시에 담긴 샌드위치를 꺼내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오물거리던 세냐가 말했다.
“그래도 점점 더 마를렌의 성흔이랑 비슷하게 변해가네요.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에요.”
“응? 진짜?”
“네.”
주안이 갸웃하자 세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안은 조심스레 자신의 왼손바닥, 성흔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흔적, 점점 더 강해지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조금 상처가 난 뒤 아물어서 남은 흔적 같아 보였지만, 지금은 마치 문신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또렷하게 보이는 이 성흔을 보던 주안이 왼손을 꽉 움켜쥐며 세냐에게 말했다.
“그 마를렌이라는 분은 이 성흔으로 뭘 했던 거야? 아미엘 님이 이 성흔은 이종족들을 보호하는 데 사용했다고 했잖아. 그럼 그분도…….”
“피부 미용 시켜줬는데요?”
“…….”
주안은 순간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세냐를 보며 재차 물었다.
“……뭘 했다고?”
“상처 좀 치료해 주고, 엘프들이랑 우리 요정들의 피부 미용을 제대로 시켜줬죠. 아, 그러고 보니 오빠도 가능하겠는데. 오랜만에 마사지나 좀 받고 싶어지네요.”
“…….”
마치 농담처럼 그렇게 말하는 세냐였지만, 어째서인지 그 눈에는 진심이 비쳤다.
무엇보다 실제로 그랬던 것인지 마사지를 받고 피부 미용을 받고 싶다는 바람이 가득 담긴 반짝이는 눈으로 주안을 빤히 바라본다.
그 부담스러운 세냐의 행동에 주안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분도 너처럼 이런 힘을 이상한 곳에 마구 썼구나.”
“이상한 곳이 아니라 제대로 쓴 거거든요?!”
게다가 그런 분이 선조라니.
아니, 물론 이 성흔이 마를렌에게서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피부 미용을 그때부터 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무엇보다 마사지까지 했다는 것에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주안의 이런 모습에 세냐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인간들 때문에 크게 흉터가 남은 이종족들을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흉터까지 치료했던 게 바로 그 성흔이었다고요.”
“아…….”
주안은 세냐의 그 말을 이해하였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의 흉터는 곧 마음의 흉터로도 자리를 잡는다.
남자들도 그렇지만, 특히 여성들은 더욱 심했다.
자신의 몸에 흉측한 상처가 자리를 잡고 있다면 사람들은 매우 위축될 수밖에 없고 바깥 외출도 거의 하지 못한다.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으니 자꾸 안으로 숨게 되며, 그것은 곧 마음의 병으로 번져 잘못하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할 수가 있었다.
주안은 실제로 그러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그렇기에 세냐의 그 말이 매우 공감되었다.
“뭐, 그것만이 아니라 자애의 성흔은 다른 성흔들과는 달리 치료를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 정신적인 부분 등 다양하게 치료해 줘서 그걸 가졌던 마를렌은 엘프들뿐만이 아니라 드워프나 오크들에게도 어머니 취급을 당했으니까요.”
“하하, 이종족들의 어머니인가……. 그럼 아버지는 누구셔? 그 칸데라는 드워프? 달란트라는 오크?”
주안의 물음에 세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달란트, 할아버지는 칸데였죠.”
“우와, 이미지가 확실히 딱 맞긴 하네.”
오크는 우락부락하고 무뚝뚝한 아버지 같고, 드워프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같기는 했다.
실제로 드워프 같은 경우는 수염이 매우 많아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강했다.
오크야 주안이 직접 본 달란트 부족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주안이 미소를 짓자, 세냐가 샌드위치 하나를 금세 다 먹어치운 뒤 말했다.
“그러고 보면 오빤 점점 더 마를렌을 닮아 가네요? 그 외모도 그런데, 분위기도 비슷해져 가는 것 같아요.”
“응? 정말?”
“네.”
세냐의 그 말에 의아해하던 주안도 이내 세냐가 이종족들, 특히 엘프들과는 한데 어우러져 생활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미소 지었다.
“그럼 그 마를렌이라는 분도 굉장히 미인이셨겠네?”
“자신감이 굉장히 지나치시네요?”
“나 정도면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보는데? 그래도 어디 가서 모자란다는 소리는 전혀 못 들었거든?”
“뇌는 좀 모자라 보이는데…….”
“얼굴 말이야, 얼굴! 고, 공부는 좀 못해도 얼굴 못생겼다는 소리는 한 번도 못 들었어!”
세냐의 작은 중얼거림에 주안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딱히 틀리지도 않아서 그런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갛게 변했지만 말이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영…….”
“너 방금은 닮았다며?!”
“내가 그랬던가~ 기억이 안 나는데요~”
“으……!”
실실 웃으며 밉상 가득한 모습을 보이는 세냐.
주안이 세냐를 노려보았지만 어쩌지는 못하였다.
솔직히 싸우면 질 것 같기에 대들지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요, 얼굴이 궁금하세요?”
“뭐, 조금은. 그래도 내 선조인 분이시고 이 성흔을 가지셨던 분이잖아.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흐응, 그런 거라면…….”
세냐가 지그시 주안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까닥거리며 뭔가 신호를 보내어 오지만 주안은 그게 무엇인지 몰라 갸웃할 뿐이다.
“왜?”
“펜이랑 종이 좀 가져오세요.”
“……너 마법으로 가져오면 되잖아.”
“귀찮아요.”
“예이, 예이.”
세냐의 명령에 주안이 투덜거리며 책상으로 걸어가서 펜과 잉크 그리고 종이를 집어 들고 테이블로 돌아와 세냐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법으로 자신의 몸보다 큰 펜을 들고는 잉크를 묻혀 종이에 슥슥 무언가를 그려 나갔다.
그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주안은 이내 세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 뒤 세냐가 종이에서 펜을 떼어내었다.
“완성~ 어때요?”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낀 채 주안을 보며 세냐가 우쭐거렸다
“세냐, 너…….”
하지만 주안은 그런 세냐를 가만히 지켜보다 말했다.
“……그림 되게 못 그리는구나.”
“익?! 아니거든요!”
주안의 말에 세냐가 발끈했지만, 볼이 발갛게 변하며 눈까지 도끼눈이 되어 주안을 노려보는 게 매우 매서웠다.
그런 세냐의 모습에 주안이 움찔 놀라며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하지만 세냐가 그린 그림은 도통 사람의 얼굴인지 동물의 얼굴인지, 그 형태도 괴상했고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냥 마법으로 파팍~ 하고 얼굴을 그려낼 수는 없는 거야?”
“그런 편한 마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넌 그런 편한 마법을 마구 써대고 있잖아.”
지금도 마법으로 주스를 물방울 형태로 허공에 떠오르게 한 뒤 마시고 있는 세냐를 보며 주안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예술은 마법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것도 모르세요?”
“……예술?”
주안이 갸웃하며 세냐가 종이에 그려 놓은 망측한 그림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가 마구 낙서해 놓은 것만 같은 그림이다.
“어딜 봐서?”
“어휴, 이래서 예술에 무지한 인간이란 어쩔 수 없다니까. 감수성이 메마르셨다니까요.”
이런 그림의 어디를 보고 감수성이 터져 나오는 것일까.
요정들의 예술이 이런 것일까, 아니면 그냥 세냐가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일까.
주안은 후자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 미안하다. 그보다 난 그냥 마를렌 님의 얼굴이 궁금하다니까. 이런 이상한 예술 말고.”
“익?! 안 이상하다고요!”
“그래, 그래. 안 이상하니까 얼굴 좀 알려주지 않을래?”
“부탁하는 태도가 엄청 마음에 안 드는데…… 아앗?! 샌드위치는 왜 가져가요!”
주안이 바구니를 집어 들자 화들짝 놀란 세냐가 자신에게 날개가 있고 날아오를 수 있다는 사실마저 잊은 든 허공에 손짓하며 당황한다.
그리고 이런 세냐를 보며 주안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부탁하는 태도가 엄청 마음에 안 드는데.”
“으……!”
주안의 이 말에 세냐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을 표했지만, 주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바구니 속에 작게 잘라놓은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들어 입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아아?! 내 샌드위치! 이 악마!”
“그래도 내가 준비한 거라고.”
악마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나쁜 짓이었나, 주안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접시 위에 샌드위치 한 조각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제대로 좀 설명해줘. 이건 어떻게 보면 아미엘 님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필요한 거니까.”
“쳇.”
사실 그냥 호기심이긴 했지만, 주안이 아미엘을 언급하자 세냐가 불만 가득한 눈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뭐라 말하진 않았다.
“자요.”
“응?”
대신 손가락을 한 번 튕겨주자 세냐의 날갯짓에서 흘러나온 하얀 빛무리가 뭉치더니 허공으로 떠올라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법으로 가능했잖아.”
“흥, 예술도 모르는 무지한 인간에게 보여줄 만큼 대단한 마법도 아니었거든요.”
“사실은 그냥 그림 그린 거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아, 아, 아니거든요!”
정곡을 찌른 것인지 세냐가 샌드위치를 먹다 말고 화들짝 놀라 주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샌드위치 파편이 조금 튀며 소스도 입가 주변에 묻어 있는 이런 세냐의 모습에 작게 웃어주며, 주안이 손을 뻗어 세냐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었다.
“으……!”
그런 주안의 행동에 세냐의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주안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선을 허공에 떠오른 하얀 빛무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랑 진짜 닮았구나.”
빛무리의 형상은 확실히 말해서 주안과 매우 많이 닮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좀 더 성숙해 보였고, 귀가 뾰족하다는 것 정도였다.
주안이 조심스레 왼손을 들어 세냐가 만들어놓은 선조인 마를렌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도 많이 닮으셨는데.”
“…….”
“왜, 왜? 뭐, 왜? 왜 그렇게 보는 건데?”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말에 세냐가 이상한 시선으로 주안을 보자, 당황한 주안이 허둥거렸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세냐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니아 언니가 말해주긴 했지만, 난 안 믿었는데…….”
“뭘 안 믿어? 아니, 그보다 소니아 누나가 뭐라 그러셨는데.”
“……마마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