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72화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소년을 보며 주안은 무언가 착잡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빨갛게 부은 눈은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 것인지 베개가 다 축축해졌을 정도였다.
새로운 침대 시트, 새 베개, 새 이불을 갈아주었음에도 땀과 눈물에 젖어 있는 모습을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지금은 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곁에 누가 와도 모를 정도로 아픈 것인지 작고 여린 숨을 내쉬고 있을 뿐, 하마르는 그 외에 미동조차 없었다.
“신관이 왔다 간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왜 이 아인…….”
“신관이 왔기에 이 정도인 겁니다.”
“쥬도 씨…….”
주안도 이런 착잡한 심정인데, 가까운 사이인 쥬도의 현재의 기분도 영 좋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나마 주안이나 토미만큼 놀라지 않는 것은, 이미 많이 봐왔기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하지만 타인이 보기에도 이런데, 가족인 도리안이나 몰리의 심정은 차마 물어보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이 아이가 열 살이라고……?’
가느다란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하마르는 이불로 몸을 다 가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체형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주안이 본 하마르는 열 살의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작은 체구의 아이였다.
이불 밖으로 나온 가느다란 손과 팔만 보아도, 그 몸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주안은 씁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주안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하마르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공자님…….”
이런 주안의 행동에 도리안도 그렇지만, 몰리는 크게 놀란 듯했다.
“…….”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레 주안이 신성력을 자신의 손을 통해 하마르의 손으로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무언가를 한다는 말조차 하지 않은 채 한 행동이었지만 주안은 그만큼 하마르가 안쓰러워 행동으로 먼저 나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주안은 처음으로 이 신성력을 사용하면서 묘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신성력을 깨달았을 때도, 술을 마시고 그 난리를 피웠을 때도 아니었고, 아스란 왕국에서 사용할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이런 아이가…….’
너무나 작고 가녀려 보이는 아이였다.
하마르를 보며, 안쓰러운 그 감정을 느끼면서도 주안은 자신의 이런 감정에 작은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아스란 왕국에서 그 많은 사람이 죽어갈 것을 알았어도 이러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아니, 물론 그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 아픔에 공감하고 보듬어 주고 싶었던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주안은 눈앞의 이 아이, 하마르의 모습에 전염병에 걸려 위태로웠던 아스란 왕국의 사람들보다 더욱 안쓰러웠다.
‘나란 녀석도 참 이기적이야.’
바로 눈앞에, 자신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느끼는 이 감정이 정상적인 것인지 주안은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주안은 마음을 추스른 후 조심스레 신성력을 하마르의 손을 통해 흘려보내 주었다.
그러자 희미한 숨을 몰아쉬던 하마르의 숨소리가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더니 이내 빨갛게 부어 있던 눈도 점차 가라앉았고 땀에 젖어 있던 몸이나 이불, 베개도 보송보송하게 변해갔다.
주안이 하마르에게 전한 선성력으로 인해 어느새 하마르의 몸뿐만이 아니라 이불과 베개, 침대마저도 깨끗해지고 있었다.
“하마르와 같은 병을 가진 아이들이 세상에는 많을까요?”
갑작스러운 주안의 그 말에 쥬도와 도리안이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잠시 갸웃하긴 했지만 도리안이 조심스레 주안의 말에 답했다.
“많지는 않았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도리안은 조용히 말을 흐렸다.
그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으며,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것을 알아보고 조사도 하였던 그였기에 하마르와 같은 이들이 세상에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만, 그렇기에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하마르처럼 도리안 경이나 몰리 부인, 쥬도 씨 같은 사람이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이겠군요.”
주안의 그 말에 도리안은 침묵을 지켰다.
세상은 결국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병마마저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따뜻한 집에서, 풍족한 음식을 먹으며 편하게 지내는 사람과 허름한 집에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병마는 다르게 찾아온다.
그리고 이런 알 수 없는 불치병마저 있는 사람, 없는 사람에 대해서 차별을 하는 것이다.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지…….’
신관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신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신은 모두를 사랑한다.
신은 모두를 굽어살핀다.
‘……헛소리야.’
주안은 신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신의 말을 전한다는 신관들의 말도 믿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선행을 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고 해도 그들을 존중할지언정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신에 대한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애초에 신이 존재함에도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 것이지…….’
분명 주안은 신을 믿지 않고 신의 말도 믿지 않았지만, 신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신의 말과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이 존재하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신관들의 입에 발린 신의 존재에 대한 말을 믿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신의 존재를 알려준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미엘 님은 신이 있다 하셨지만…….’
직접 본 것인지, 아니면 직접 본 드래곤들을 통해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미엘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주안에게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주안의 손에 새겨진 성흔을 바로 신이 내려준 증표라고 말을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주안 역시 이 성흔을, 신성력을 인간의 힘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결국 세상이 이 꼴이 된 것도 전부 인간의 잘못이지, 신의 잘못은 아니지.’
아미엘과의 대화를 떠올리자, 주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이 꼴이 된 것은 모두 인간의 탓이었고, 세 이종족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길 바랐던 신의 마음을 먼저 저버린 것은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이게 동방 사람들이 말하는 업보라는 건가.”
“도련님……?”
갸웃하는 토미의 모습에 주안이 픽 하고 웃어주었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지러우며 많은 이들이 불합리함 속에 살아가던 이유도 모두가 인간의 탓일 수밖에 없으니 신을 원망하는 것도 참으로 웃긴 일이라 할 수가 있겠다.
‘신도 참 불쌍한 존재 같기는 해. 원할 때만 찾고, 필요 없을 땐 원망만 들으니 말이야.’
주안에게도 신이란 딱 그 정도일 뿐이었으니, 신을 탓하는 자신이 참으로 웃길 뿐이었다.
“도, 도련님…….”
“왜?”
혼자 생각하고, 혼자 중얼거리다, 혼자 피식 하고 웃는 자신의 이런 행동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런 자신을 보며 토미가 당황한 모습으로 부른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기에 이번에는 토미를 구박하지 않았다.
“저기, 그게, 도련님 몸이…….”
“응? 내 몸?”
토미가 놀란 눈으로 주안을 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애가 왜 이러나 몰라 갸웃하며 주안이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
그리고 자신의 몸의 상태에 주안 역시 토미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 몸이 왜 이래?”
“……그러게요.”
토미도 황당해했지만, 주안 역시 어이가 없어서 자신의 몸을, 손을 내려다보았다.
반투명해진 자신의 손은, 아니, 몸은 반대편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고 몸에서 빛나는 그 광채는 점차 강렬해지며 주변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빛에 닿는 모든 것은 점차 깨끗해졌고, 향긋한 향이 퍼졌으며 그 빛에 닿은 토미와 쥬도, 도리안과 몰리는 순간 주안에게서 비치는 그 후광에 가슴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듯 주안이 갸웃하며 말했다.
“다들 왜 그러세요?”
하지만 주안은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고도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입을 통해 말을 하였는데, 어째서인지 입이 아닌 허공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퍼져 나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왜, 왜 이래, 이거?!”
놀라서 소리치는 그 목소리마저 주변을, 아니, 주위의 사람들 가슴을 울리듯 퍼져 나갔다.
무언가, 신성력의 빛이 심각할 정도로 강해진 그것에 주안은 불안감보다 황당함을 더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마르를 치료하면서 주안이 한 것이라고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신 가득한 생각밖에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신성력이 더욱 강해져만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다예프의 대신전은 다른 대신전들과는 달리 방문자라고는 거의 없는 장소였다.
애초에 일반 신도들은 성도 다예프가 자리 잡은 나라인 무라디안의 대신전이 그 역할을 하였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라고는 대륙의 순례길에 오른 신관들 정도뿐이니 말이다.
그런 신관들조차도 극히 일부만을 허용하는 폐쇄적인 장소인지라 성도 다예프의 대신전은 언제나 적막함만이 흐르는 장소였다.
“주안 마르티네스라…….”
다예프 대신전의 최고 책임자인 케들락 대신관은 자신의 서재에서 제노폴 제국 남부 대신전에서 올라온 주안에 관한 자료들이 서류의 형태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주안에 대한 정보가 비치고 있었다.
제노폴 제국 남부 대귀족인 맥도넬 후작가의 후계자, 에반드리안 맥도넬과의 분쟁, 유우나 아스란 공주와의 묘한 분위기, 링베르가 공작가와의 트러블 등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지만, 그에겐 그러한 자료들은 그다지 필요치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부 대신전은 그것을 중점으로 조사한 것인지 자료 대부분이 그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부분을 옆으로 치워놓으니, 분량이 상당했지만, 다행히 케들락 대신관이 원하던 주안에 관한…… 아니, 성흔에 관한 자료도 있었다.
그중 한 장의 서류를 집어 들고, 그곳에 그려진 특이한 문양을 보며 케들락 대신관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주안이 성흔을 가졌다 하는 소문을 접했을 땐 그도 소문으로 취급하려 하였다.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이가 자신이 신에게 선택을 받았다며 나섰지만, 그들은 모두 사기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주안의 가문이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는 것뿐이었다.
다른 곳은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고 이유조차 없었지만, 마르티네스 공작가만은 그에게도 특별하다 할 수가 있었다.
“결국 몇 대, 몇십 대를 거쳐 다시 나오긴 하였군요, 마를렌 님.”
마를렌 마르티네스.
아니, 엘 하임 마를렌.
한때 이종족, 엘프를 이끌던 수장이자 엘프에게 내려진 자애의 성흔을 소유했던 그녀는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던 엘프들을 버려둔 채 사라졌었다.
그리고 그 버려진 엘프들을 모아 생존을 건 사투를 벌였던 이가 바로 케들락 대신관, 아니, 엘 하임 케들락.
버려진 엘프들의 새로운 수장인 그였으니 말이다.
“당신 때문에 많은 것이 어그러졌는데, 또 당신 때문에 모든 게 망가질 것만 같군요…….”
케들락 대신관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주안의 성흔이 그려진 종이를 움켜쥐며 구겼다.
그녀가 사라지고 그녀의 흔적이 저 먼 중남부의 대제국의 땅에서 발견이 되었지만, 이미 그녀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뒤였고, 자애의 성흔 역시 사라진 뒤였다.
이미 없어진 것을 되찾기보다 손에 들어온 것을 지키는 쪽을 택한 그였기에 마를렌이라는 이름은 그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지 오래였지만 말이다.
“성흔이 우리가 아닌 인간에게, 아무리 당신의 피를 이었다고는 하나, 더러운 인간의 피가 흐르는 아이에게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인간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고, 그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그였기에 결코 인간에게 자신들의 성흔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분위기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서자 순식간에 사라졌고,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던 신관들이 하나둘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이 대신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또 다른 성흔을 지니고 있다는 성녀가 머무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