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70화
안으로 안내된 주안과 토미는 쥬도와는 달리 주변을 계속 구경하며 신기해하였다.
이런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는 곳은 처음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공동 주택이나 다름이 없는 이곳 별관은 함께 사용하는 큰 식당도 있었고 거실이나 목욕탕,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방이나 뛰놀 수 있는 장소도 있을 정도로 있을 건 다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조금 큰 사춘기의 아이들에 방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로닐 상단주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처럼 주로 남자들은 바깥일과 동방 대륙과의 무역, 그 호위 등을 위해 자주 이곳을 비우는 관계로 아내와 아이들이 대부분인지라 그 부분에 대해선 굉장히 신경 쓴 듯했다.
그만큼 자신의 사람에 대해서 대우와 배려를 해주고, 그렇게 해주니 또 아랫사람들은 로닐 상단주나 홈멜스 상단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따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도리안을 따라 안으로 안내된 주안과 쥬도, 토미는 따로 응접실이라고 할 곳이 없는 장소라 함께 사용되는 거실로 안내를 받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별관 자체가 공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헤에, 생각보다 크네요.”
그리고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주안 넌지시 한마디 해주자, 도리안은 오히려 매우 송구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런 누추한 장소로 모시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누추하다니요. 사람 사는 집 같아서 매우 좋은걸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해주는 주안의 그 말에 도리안이나 쥬도, 토미마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아무리 주안이 다른 이들에게 매우 편히 대해준다 해도 주안은 이곳,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이자 유일한 후계자이기도 했다.
타국의 왕조차 주안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그 권력은 막강했고, 사는 곳 자체도 다른 세상의 사람과도 같은, 평민들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의 귀족이라면 평민들이 모여 사는 이런 곳에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거리낌 없이 들어오고, 졸졸졸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줄 정도로 넉살도 좋았다.
게다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이미 주안과 함께 지내본 이들이라면 다들 알기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주안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 것이다.
“저희 집처럼 조금 시끄럽고 활기차 보여서 좋은걸요.”
“그 대부분 소음의 원인이……. 으음…….”
“피터 아저씨에게 다 이를 겁니다.”
“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쥬도의 작은 중얼거림에 주안이 냉정하게 한마디 하자, 쥬도가 움찔 놀라며 금세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다들 알고 있는 듯,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황도의 마르티네스 공작 저택도 이만큼은 아니지만, 여타 다른 귀족의 집들답지 않게 매우 활기찼다.
그 활기참의 대부분이 공작부인 안젤라에게서 시작되었고, 가끔 소니아에게서도 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세 요정 꼬맹이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리안. 몰리는 어디 간 거야? 우리 도련님 밥 얻어먹으러 오신 건데.”
“그, 그거 때문에 온 것 아니거든요?! 그러는 자기도 밥 먹으러 온 거면서!”
당당한 쥬도와는 달리 주안이 볼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탁 트인 공용 거실인지라, 주안 일행을 몰래 훔쳐보던 이들에게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주안의 얼굴까지 화끈 달아오른다.
게다가 아이들도 많아서 그런지, 주안이 밥 얻어먹으러 온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소리까지 여기저기서 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소문이었고, 그 소문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전달되는 것은 아낙네들의 수다에서 나오는 소문들이었다.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소문은 어지간히 큰 마을이라도 30분이면 동네 꼬마들에게까지 전달되기에, 그만큼 무서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주안 역시 이전 삶 속에서 이런 소문을 종종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기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 다 아는데, 설마 밥 얻어먹으러 찾아온 공작가의 후계자라고 소문을 내거나 하진 않겠지.’
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흘깃거리며 주변을 훔쳐보던 아낙네들이 은근한 눈으로 주안을 보며 서로 속닥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잘못하면 또 할아버지에게 혼날 수도 있겠다는 것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이런 주안의 걱정과는 다른 의미로 근심 가득한 얼굴의 도리안 역시 작게 한숨을 내었다.
“아, 그게 몰리는…….”
쥬도의 말에 도리안이 잠시 머뭇거리며 표정이 어두워지자, 쥬도는 도리안이 왜 이러는 것인지 알아버린 듯 그 역시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마르가 또 아픈 거야?”
“예, 그래도 상단주님이 신관분을 빠르게 불러 주셔서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상태입니다.”
“끄응……. 설마 나 없는 사이에 아버지가 하마르의 치료를 대충 해준 건 아니시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없어서 더 잘 보살펴 주셨습니다.”
쥬도는 몰랐지만, 로닐 상단주는 쥬도의 사람들이 어떻게 쥬도의 아래에 들어간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쥬도가 그렇게 된 후 오히려 더 잘 챙겨주었다.
특히 쥬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도리안이었고, 그에게 아들 문제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세심하게 보살펴 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도리안이 쥬도를 어떻게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살펴봐 주고 있는 것인지 알기에 그 역시 도리안의 아들에게 비슷하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뭐, 그러면 다행이고.”
쥬도 역시 아버지가 그럴 분은 아님을 알기에 내심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표정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도리안 경, 아들분이 많이 아픈 건가요?”
이런 쥬도나 도리안의 표정에 근심 걱정이 가득하였기에 주안도 조심스레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주안의 말에 도리안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조금 아프긴 합니다.”
도리안의 표정을 보니 조금이 아닌 듯했다.
“대체 무슨 병이라고 하던가요?”
“그것이…….”
하지만 이런 주안의 물음에 도리안이 머뭇거리자 그를 대신해 쥬도가 대신 말했다.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 그게 무슨…….”
“병명이 뭔지,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치료 방법도 아무것도 몰라요.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조금 아프지 않게 신관들의 신성력이나 더럽게 맛없는 진통제를 먹이는 게 전부니까요.”
진통제도 보통의 진통제가 아닌지라 가격이 매우 부담스러운 수준이었지만, 그보다 더 부담을 주는 것은 바로 신관들을 부르는 비용이었다.
신관들을 부르는 것, 그것도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고위 신관을 부른다는 것은 비용이 매우 비싸다.
특히 이 동부에는 대신전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무래도 동방 대륙과의 교역이 많다 보니 그만큼 동방 대륙의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신관을 사술을 쓰는 사이비들이라 생각하여 달가워하지 않는 존재들인지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했다.
때문에 많은 신관이 모여 있는 대신전보단 각 마을이나 도시마다 소규모의 작은 신전들만이 다수 자리를 잡은 동부이자 마르티네스 공작령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런 이유로 신관을 부르는 비용이 비싸긴 하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주안도 잘 안다.
신관들의 신성력은 무한하지 않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신성력은 근방 고갈되고 다시 신성력을 사용할 때까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특히 이 신성력을 가진 신관도 적을뿐더러 강한 신성력을 가진 신관은 이곳 동부에는 거의 없었다.
한정된 신성력을 사용해야 하는 신관이었고 그것을 통해 신전을 운영해 나가며 포교 활동을 해야 하였기에 가격을 비싸게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비싼 돈을 받는다 해서 욕을 먹거나 손가락질을 당하진 않았다.
그 돈을 결국 빈민들의 구휼에 쓰였고, 신성력이 아닌 다른 방도로 아픈 이들을 무상으로 돌보고 다녔으니 말이다.
즉, 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보다 편한 방법으로 치료를 해주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조금 불편하고 오래 걸리긴 하나 무료에 가깝게 치료를 해주고 다니는 것이 바로 신관들이다.
귀족이나 상단의 높은 이들은 신성력이 있는 신관들에게, 어느 정도 돈이 있는 백성들은 의사들에게, 돈이 없는 빈민들은 일반 신관들에게 치료를 받는 것이 바로 현 대륙의 의료 체계나 마찬가지였다.
“신관들의 신성력마저 효과가 없는 건가요? 그래도 신성력이라면 웬만한 치료는 다 해결 가능할 텐데…….”
주안도 성흔을 통해 신성력을 사용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정말 이 신성력이라는 것은 만능에 가까운 힘이었다는 점이다.
사지가 잘려도 다시 붙여줄 수 있었고, 병든 자들에겐 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치료의 힘을 부여했다.
보이지 않는 곳을 다쳐도 상관이 없었으며, 능력만 된다면 아무리 찢어지고 베이고, 처참한 상처라도 숨만 쉬고 있다면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성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쥬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안의 말에 답했다.
“차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지금은 심하게 아플 때 통증을 줄여주는 게 최선일 뿐이니까요.”
쥬도도 그렇지만, 도리안 역시 여건만 된다면 신관을 항상 이곳에 상주시켜 치료해 주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도리안에게도 소중한 아들이었지만, 쥬도에게 역시 동생이나 조카와도 같은 아이가 바로 하마르였기 때문이었다.
쥬도의 그 말에 주안도 조금 착잡했지만, 토미는 세라타가 떠오른 것인지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생각해 보면 세라타 역시 작년까지만 해도 몸이 심하게 아팠고 그 때문에 침대에서 거의 내려오지 못하는 생활을 하던 아이였다.
그나마 세라타는 영양 부족과 함께 온 병으로 인한 것이었을 뿐, 지속적인 치료와 영양 섭취를 충분히 하니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니 말이다.
지금의 세라타를 보면 굉장히 건강했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주안, 자신보다 힘도 셌다.
분위기가 갑자기 어두워지자, 주안이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도리안 경. 괜찮다면 도리안 경의 아들인 하마르를 제가 한번 봐도 괜찮을까요?”
“예? 공자님께서 하마르를 왜…….”
주안이 도리안을 보며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주며 자신의 왼손을 들며 말했다.
“저도 나름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괜찮다면 제가 신성력으로 치료를 한번 해주고 싶은데, 괜찮죠?”
“고, 공자님…….”
“게다가 저, 황도의 대신관님에게도 인정하신 나름 대단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거 아시죠?”
그제야 모두가 주안이 신성력을, 그것도 대신관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게다가 주안의 신성력으로 황도 저택에서 무슨 짓을 벌였는지, 그리고 아스란 왕국에서 어떤 일들을 벌이고 다닌 것인지 떠오른 듯 모두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그거 술 마시고 써야 하는 것 아니죠?”
“술 안 마셔도 되거든요!”
쥬도가 주안의 신성력을 겪었던 것은 황도의 저택에서였을 뿐이었기에, 술을 마시고 그 난리를 친 것을 떠올린 듯 히죽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주안이 발끈하며 버럭 소리 질렀다.
“하, 하지만 공자님 이건 너무 폐가 되는 일이…….”
“폐가 될 게 뭐 있나요. 놀러 와서 선물도 안 사온 대신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내분의 요리 솜씨가 좋다면서요. 밥이나 맛있게 만들어주세요.”
“공자님…….”
어떻게 보면 도리안도 이제 주안의 사람이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이었다.
그전까진 애매했다고 해도, 이젠 정식으로 가문의 훈련 교관이었으며 그의 손을 통해 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더욱 강성해질 것이다.
가문을 위해 힘을 써주는 사람인만큼, 주안 역시 그에 대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안이 이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에는 정말 아무런 힘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