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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69화 (16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69화

확실히 로닐 상단주의 저택은 공작성이나 황도의 공작가의 저택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은 주안의 입장에서나 그렇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엔, 아니, 동업자들인 상단에 몸을 담고 있는 상단주들이 보기엔 로닐 상단주의 저택은 매우 큰 편이었다.

오히려 상단의 규모에 비해서 지나치게 크다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보면 로닐 상단주의 신념이자 배려로 인해서 저택의 크기를 이렇게 키운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는 숙식이 필요한 상단의 일꾼들이나 호위들을 위해서 저택의 부지 내에 제법 지낼 만한 별관을 지어놓았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이유로 꽤 무리해서 이 저택을 구매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로닐 상단주의 배려는 상단에 몸을 담고 있는 일꾼들에겐 너무나 큰 은혜나 다름이 없었다.

때문에 다른 상단의 사람들과는 달리 쉽게 일을 그만두거나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방 대륙과의 무역에 중점을 두고 있는 상단인지라 한 번 배를 띄워 나가면 오랜 시간을 바깥에서 보낼 때가 많았기에 남겨진 가족이 더욱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단에서 이런 가족들을 책임져 주니, 그런 걱정을 덜 수 있었기에 더욱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가족들 역시 대를 이어 상단에 몸을 담고 싶어 할 정도로 충성심은 남달랐다.

때문에 쥬도가 벌인 큰 사고에서도 홈멜스 상단을 떠난 이들이 없었을 정도로 홈멜스 상단은 그들에겐 집이었고, 로닐 상단주는 가족이자, 가장이며, 가장 큰 어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 로닐 상단주에게만 은혜를 입은 게 아닌, 쥬도에게도 은혜를 입고 상단에 머무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도리안이었고, 대부분이 쥬도의 전 호위들이기도 했다.

그들 역시 로닐 상단주만큼이나 쥬도를 따랐고, 쥬도로 인해서 가족과 연인, 아내와 자식들을 돌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쥬도에 대한 충성심은 로닐 상단주를 따르는 이들보다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이런 껄렁껄렁한 쥬도 씨의 뭐를 보고 그렇게 반기고 따르는 것인지, 정말 이유를 알 수가 없네요.”

“후훗, 이것도 다 인복이지요.”

쥬도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를 보는 상단의 사람들이나 전 호위들은 매우 반갑게 쥬도를 맞이해 주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주안이나 토미는 정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약간 버릇은 없었어도, 그건 다 어릴 때의 철없는 행동이었지 심성은 착하다니까요.”

“스스로 그런 말을 하면 좀 부끄럽지 않으세요?”

“전혀요.”

“이젠 완전 뻔뻔해지셨네요.”

“하핫, 도련님 곁에 있다 보면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거 왠지 저 놀리는 것 같은데.”

“자, 다 왔습니다. 저기 저 별관 건물이에요.”

“흠…….”

주안이 눈매를 좁히며 쥬도를 빤히 바라보자, 쥬도가 황급히 앞으로 걸어가며 주안을 피한다.

그리고 이런 쥬도를 지켜보던 토미가 주안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런데 정말 쥬도 형이 많이 즐거운 거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도련님에게 이렇게까지 놀리고 그러진 않았잖아요.”

“뭐, 편하게 대해주는 거야 나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확실히 집에 오니 사람이 좀 변한 것 같기는 해.”

그래도 집이 좋긴 좋은 듯, 쥬도의 들뜬 발걸음이나 자신을 여전히 반겨주는 사람들을 보며 웃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철없고 버릇없던 성격은 적어도 자신의 사람들에게만큼은 보이지 않은 것인 듯했다.

‘뭐, 소니아 누나도 그렇게 말을 해주긴 했지만.’

쥬도에 대해서 좀 더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 소니아에게 부탁했었던 그 일을 떠올리니, 확실히 쥬도라는 사람 자체는 적어도 자신의 사람들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게 아니라도 쥬도와 함께 몇 개월이지만 황도에서 지내보며 주안 역시 쥬도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으로는 생각이 되진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철이 없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쥬도 형은 정말 여기 안 남고 황도로 가시려는 걸까요?”

“자기 말로는 꿈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거 그냥 황도가 더 놀기 좋아서 그러는 것 같은데.”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해.”

황도의 저택에서 도리안 외에 쥬도와 가장 많이 어울린 사람으로 본다면 토미를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피터 아래에서 함께 훈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토미마저도 쥬도가 자신의 꿈을 찾아서 눈물을 머금고 집에 남지 않고 함께 황도로 간다고 했을 때, 매우 의심스러운 눈을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주안은 그가 꿈을 찾으려는 것을 반쯤은 믿지만, 나머지 반은 아무래도 마를렌보다는 황도가 더 놀기 좋고 멋지기에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피터 아저씨한테 쥬도 씨를 좀 많이 굴리라고 해야겠어.”

“우와, 그건 좀…….”

주안에겐 작은 복수였지만, 토미는 새하얗게 질린 채 자신의 도련님의 악랄한 그 행동에 몸을 흠칫 떨었다.

분명 주안에게 이런 소리를 들은 피터는 정말 우직하게 쥬도를 굴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토미는 이런 행동을 말릴 수도 없었다.

그저 지금은 쥬도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듯 황도로 돌아갈 때까진 말하지 않기로 작게 다짐하며 주안과 함께 쥬도의 뒤를 따라갔다.

* * *

별관에 다다르자 쥬도의 의도대로 아직 제대로 소식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쥬도를 보고는 작게 놀라기도 했지만, 이미 얼마 전에도 집에 잠깐이나마 방문했기에 놀란 것보단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저 쥬도와 함께 온 주안과 토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갸웃할 뿐이지만 말이다.

‘뭐, 나는 이게 더 편하긴 하지만.’

주안이 누구인지 알고, 고개를 숙이고 어려워하는 것은 주안으로서도 조금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할아버지를 닮고 싶고, 마르티네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고자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단지 마르티네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자신이 섬김을 받는 것이, 진짜 자신이 닮고 싶은 할아버지이고 마르티네스가 아님을 주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진정으로 존경 받고, 순수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주안은 그때 당당하게 그런 인사를 받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이 집에서는 마르티네스 공작가보단 쥬도 씨나 로닐 상단주님이 더 좋은 사람들일 것이니까.’

쥬도는 자신에게 인사해 주고 반기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 듯, 그들의 가정사나 남편과 아내의 이름, 아이들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니 내심 부럽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주안은 정말 친한 몇몇 사람 외에는 황도 저택에서 함께 있는 사람들의 가정사나 그런 부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변명도 안 돼. 할아버지는 멀리서 온 모든 가신의 작은 부분까지 다 기억을 하셨는데…….’

오히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가신들의 사정에 대해서 훤히 꿰뚫고 있는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저 친절하고 사람 좋은 모습만 보인 자신이 얼마나 얕은 사람이었는지 깨닫는 바람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면, 아니, 여기서 머무를 때라도 시간을 내어서 나도 가신들을 제대로 좀 알아봐야겠어.’

후계자 수업을 제대로 받았다면 이러한 가신들에 대한 부분을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겠지만, 결국 그것을 받지 않고 팽팽 놀았던 것은 주안이었기에 불만조차 내비칠 수 없었다.

때문에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기보단 반성할 때라는 것을 알고는 작게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을 쥬도를 통해 다짐했다는 것도 조금 웃기는 일이기도 했다.

“응? 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쥬도가 앞서 나가면서도 용케 주안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것에 갸웃하며 묻자, 주안은 괜스레 불만스럽다는 눈으로 그를 보며 퉁명스럽게 답할 뿐이다.

괜히 속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미 앞에서 쥬도가 놀린 것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삐친 모습 같아서인지, 곁에 있던 토미가 쿡쿡거리며 작게 웃었고 쥬도는 그저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왠지 조금 발끈하는 바람에 주안이 투덜거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쥬도의 안내를 받고 별관 안으로 들어가자, 별관에 쥬도가 오는 것을 이미 본 사람들이 안에서 할 일을 하던 사람들도 부른 듯 중년의 여성들에서부터 아직 어린아이들도 한 무리가 나와 쥬도를 맞이해 준다.

“진짜 완전 인기인이잖아.”

“왠지 부러우신 것 같아요.”

“하나도 안 부럽거든? 여기서 내 이름을 알리면 저 사람들은 쥬도 씨가 아니라 날 반길 거거든.”

“……안쓰러워요, 도련님.”

“시, 시꺼.”

토미의 매우 안타깝다는 그 눈에 주안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닌지라 뭐라 화도 못 낸다.

나중에 토미는 세라타에게 다 일러서 버릇 좀 고쳐달라고 부탁을 해야겠다고 작게나마 마음을 먹으며 툴툴더리던 주안은 곧 쥬도를 반기러 나온 사람들 틈에서 낯이 익은 한 남자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도, 도련님? 공자님?!”

도리안이 쥬도가 찾아온 것에 반가워했지만 이내 뒤에 서 있던 주안과 토미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이런 도리안의 모습에 주안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토미를 흘겨보자, 어째서인지 토미는 더더욱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주안을 바라볼 뿐이다.

“아, 아얏?! 왜, 왜 때리세요…….”

“너 눈 마음에 안 들어.”

“완전 제멋대로세요.”

“흥, 이다.”

그래서 주안은 토미에게 꿀밤을 먹였고,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토미는 머리를 감싼 채 억울하다는 듯 주안을 바라보았지만, 주안은 오히려 그런 토미를 불만 가득한 눈으로 노려봤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쥬도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대체 나이가 몇인데 싸우고들 있는 거람…….”

“쥬도 씨보단 훨씬 젊거든요?!”

사실 그렇게 나이 차이는 안 나지만, 그래도 나이 이야기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주안도 성인이고, 사실 이전 삶까지 따지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주안도 철이 없어 보이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여,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셋이서 서로 아옹다옹 다투는 모습에 오히려 도리안이 쩔쩔매며 다가와 말하자, 토미는 억울한 눈으로, 쥬도는 한심하다는 모습으로, 주안은 매우 불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도리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런 세 사람의 모습에 도리안이 다가오다 놀라서 멈칫거렸을 정도였다.

“잠시 시간이 나서 외출 겸 놀러 왔습니다.”

“뭐, 나야 도리안 너랑 하마르 보러 왔지. 그리고 오랜만에 몰리가 만들어주는 밥도 먹고.”

“저는 쥬도 형이 밥 사준다고 해서 따라 왔지만…….”

주안과 쥬도, 토미의 말에 도리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각각 이유는 달라도 결국 목표이자 목적지가 자신인 것을 알고는 조금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런 쥬도의 목적에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밥은 아버지랑 드시라고요.”

“저녁까진 시간이 있으니, 늦은 점심이라고 생각해 주시죠.”

“흠……. 뭐, 그런 거라면.”

로닐 상단주와 안 먹겠다는 것도 아니니, 주안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 잔소리를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러다 문득, 쥬도의 말에서 낯선 이름이 나와 주안이 갸웃하며 말했다.

“응? 그런데 몰리랑 하마르가 누구에요?”

“도리안의 아내 이름이 몰리고 아들의 이름이 하마르거든요.”

“아…….”

도리안은 나름 결혼도 했고 아들도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한 가족의 가장이기도 했다.

그것을 떠올린 듯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다, 슬쩍 쥬도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런데 참 예의가 없으시네요. 도리안 경이 그래도 쥬도 씨보다 어른이신데 말이죠.”

“제 호위입니다만?”

“전 호위겠죠. 그리고 도리안 경은 이제 쥬도 씨에게 충성서약도 철회한 남남이기도 하고, 이제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훈련 교관으로서 직책으로 봐도 쥬도 씨보다 훨씬 높은 계급이 된 듯한데요?”

“…….”

주안의 말에 쥬도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주안의 말대로 쥬도와 도리안은 모실 주인도 아니고 호위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충성서약을 맺은 주군과 기사의 관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오히려 쥬도는 주안의 이름뿐인 호위이고 말단일 뿐이지만, 도리안은 이제 공작 가문의 병사들이나 신입 기사들이 상급자로 모셔야 할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훈련 교관이 된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주안이 싱긋 웃으며 쥬도에게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 호칭은 어떻게 해야 하죠?”

“그게, 그러니까…….”

“이런, 피터 아저씨에게 예절 교육은 제대로 못 받으신 듯하네요. 제가 피터 아저씨에게 제대로 다시 말씀을 드려야…….”

주안이 과장된 몸짓으로 그렇게 말하자 쥬도가 잽싸게 도리안에게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말했다.

“밥 좀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도리안 경.”

이런 쥬도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고, 도리안은 기겁할 정도였다.

하지만 주안만이 실실 웃으며 쥬도를 보고 있을 뿐이었고, 토미는 이런 주안을 보게 이제는 조금 슬퍼진 듯했다.

“……소심한 복수이시네요.”

“시, 시끄럽다니까.”

“아얏?!”

주안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며 또 가슴을 찌르는 말을 하는 토미의 하얀 머리카락을 쭉쭉 잡아당기며 자신의 언짢음을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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