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68화
마를렌에 근거지로 둔 홈멜스 상단은 그 규모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동방 대륙과의 무역에서는 꽤 알아주는 상단이었다.
특히 고가의 사치품을 주로 수입하고 판매하는 관계로, 그 부피는 작고 값은 비쌌기에 큰 이문을 남겼다.
나름대로 신용이 있는 상단이기도 하여서 그런지, 동방 대륙의 상단이나 귀족들과도 연이 많이 닿아 있는 상단이기도 했다.
이런 많은 돈을 벌고 귀족들과 인연이 있는 상단의 주인이 산다는 저택은 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화려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그 때문인지 주안도 쥬도의 집이자 로닐 상단주의 저택의 정문 앞에 서서 보며 갸웃했다.
“생각보다 크진 않네요?”
“황도에 있는 공작가의 저택이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다는 생각은 안 하세요?”
주안의 말에 쥬도가 어이없어했지만, 주안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쥬도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쥬도 씨의 성격을 보면 크고 화려하고 비싼 것만 찾으실 것 같아서 집도 엄청 크고 화려할 줄 알았는데요.”
“그거 완전 공작부인…….”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쥬도의 작은 중얼거림에 주안의 눈매를 좁히며 말하자, 쥬도가 황급히 주안에게서 멀어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토미가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뜨렸지만, 주안은 괜히 기분만 상해 버린 듯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쥬도가 말했다.
“저야 좀 그렇긴 해도 저희 아버지는 전혀 아니시거든요. 뭐, 제 방을 꾸미거나 제가 개인적으로 뭘 사는 거야 크게 관여치 않으셔도 저택이나 상단 일은 그게 아닌지라…….”
“아, 하긴. 쥬도 씨가 그런 일에 관여하면 망하기 딱 좋긴 하겠죠. 매번 비싼 새 물건을 사고 한 번 쓴 물건은 질렸다고 버리고 그럴 수 있으니.”
“그거 완전 안젤라 님이시잖아요…….”
“아니거든요?”
쥬도의 그 말에 주안이 또다시 발끈했지만, 뜨끔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거의 그러지 않지만, 예전에는 딱 그 말 그대로였으니까.
살짝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그보다 주안은 로닐 상단주의 저택의 정문이 활짝 열린 것에 갸웃하며 쥬도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문이 활짝 열려 있네요? 누구 귀한 손님이라도 오세요?”
주안의 말에 쥬도와 토미가 주안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집중된 그 시선에 주안이 움찔 놀라더니 살짝 으쓱해지며 말했다.
“설마 제가 왔다고 저렇게 한 거예요?”
주안이 놀라서 그렇게 묻자, 쥬도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아쉽지만, 아닙니다.”
“……쳇.”
“……엄청 아쉬우셨나 보군요.”
사실 조금 기대하긴 했지만, 아닌 듯하였기에 주안이 입술을 삐죽였다.
가끔 보면 이런 허영심 가득한 모습이 간간이 주안에게서도 보이는데, 딱 엄마인 안젤라와 비슷해 보였다.
“그럼 왜 정문을 저렇게 열어놓으세요? 경비도 없고.”
“아버지의 신념이랄까, 고집이랄까…….”
“신념? 고집?”
주안이 갸웃하자 쥬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법을 어기는 일도 없고, 죄를 지은 일도 없으며, 누군가에게 원망을 들을 일도 하지 않아 당당하다며 저렇게 정문을 열어놓으세요. 뭐, 상인으로서의 신용을 보여주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헤에, 알고는 있었지만 로닐 상단주님은 진짜 신용 하나는 끝내주는 분이시네요.”
주안도 로닐 상단주의 그 행동에 크게 감탄하였다.
보통 사람으로선 그렇게 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안이 알던 이전 삶 속에서의 로닐 상단주는 확실히 사람 됨됨이가 남달랐던 인물이었다.
상단을 접은 뒤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고아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가르친 그는 참으로 청렴결백한 인물이었고, 모두에게 귀감이 되던 이였다.
“하지만 도둑이라도 들면 큰일인데…….”
그래도 한 상단의 주인이 있는 집이다.
아무리 청렴하다 해도 중요한 물건이나 서류를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보관하는 게 일반적인지라 주안도 그 부분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주안의 생각은 기우인 듯 쥬도가 말했다.
“정문만 저렇게 열어놓지, 사실 안에 들어가면 나름 마법적인 보안도 다 되어 있고, 상단 호위들이나 따로 경비들도 안에 있어서 전혀 걱정은 없어요.”
“음……. 역시 보통 분은 아니시네요.”
바깥에서 보기에는 로닐 상단주의 이런 청렴결백한 모습이 여러 입을 통해 퍼져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상인으로서 그리고 상단의 신용에 직결되는 일인지라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만약의 사태까지 대비해 안전을 확보해 놓고 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부분이기도 했다.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시죠. 공작성의 요리사들보단 못하지만 저희 집 요리사들도 음식 솜씨 하나는 대단하거든요.”
“쥬도 씨도 오랜만에 집밥을 드시겠네요? 마를렌에 도착한 날 밥도 안 먹고 그냥 오셨잖아요.”
“그야 뭐, 아직 아버지 볼 낯이 없어서 그런 거였죠.”
쥬도나 도리안은 주안과 함께 마를렌으로 다시 돌아온 날, 주안의 배려로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도리안과는 달리 쥬도는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공작성으로 되돌아 왔다.
친하던 호위들이 잘 지내고, 집안사람들도 다 무탈한 것을 보고는 안심하였지만, 아버지인 로닐 상단주를 만나기 매우 껄끄러워했던 이유가 컸다.
그것은 쥬도뿐만이 아니라 로닐 상단주 역시 여전히 죄인인 것처럼 아들을 만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제가 자리라도 마련해 드릴까요? 제가 부탁을 드리면 로닐 상단주님도…….”
“아뇨, 괜찮습니다. 저나 아버지나 지금은 이렇지만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무엇보다, 저도 정신을 좀 차렸잖아요. 아버지도 그걸 알면 먼저 만나러 나와주시겠죠.”
“흠……. 뭐, 그러시다면.”
쥬도의 말에 주안이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스스로 정신을 차렸다고 하는 말처럼, 주안이 보기에도 쥬도는 확실히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다.
여전히 껄렁껄렁하고 과소비적인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그것은 천성이 그런 것이었고, 그게 꼭 나쁜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것도 아니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지금은 스스로 훈련도 하며 몸을 키우고,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우 원만했으며 꿈도 찾아 나서고 있었기에 지금의 쥬도는 확실히 제대로 된 청년이라 볼 수가 있었다.
쥬도 역시 주안이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알기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뒤 주안과 토미를 데리고 활짝 열린 저택의 정문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 * *
쥬도가 찾아온 것에 집안사람들은 크게 반겼지만, 그보다 쥬도가 데리고 온 주안의 모습에 몇몇 사람들, 특히 쥬도의 전 호위들이 기겁하며 납작 엎드려 절을 하는 바람에 작은 소란이 있었다.
그런 소란을 뒤로한 채 주안은 일단 이 집안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로닐 상단주를 만나러 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행동에 앞서 먼저 달려간 집안사람이 로닐 상단주를 모시고 오는 바람에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주안은 그대로 우뚝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구를 이끌고 달려 나온 로닐 상단주는 그대로 주안의 앞으로 달려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주안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홈멜스 상단의 상단주 로닐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에게 인사 올립니다.”
“아, 저기…….”
당황하며 주안도 고개를 숙이려 하였지만, 이내 주안은 할아버지와 하였던 그 대화 속에서 마르티네스 공작가로서의 의미를 떠올리고 또한 닮고 싶은 그 할아버지의 모습에 몸을 멈칫하였다.
게다가 토미 역시 주안의 팔을 살며시 붙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다 익숙하지 않지만, 꼿꼿하게 서서 로닐 상단주의 인사를 받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로닐 상단주님. 이렇게 환대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찾아주신 것, 가문의 영광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너무 과한 그 행동에 주안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이런 주안과는 달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로닐 상단주와 같은 생각인 듯 주안을 보는 눈이 정말 남달랐다.
이곳 마를렌에 있는 이들이라면 아마 주안이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다들 큰 기쁨과 영광스러워할 것임을 주안은 정말 모르는 듯했다.
그만큼 마를렌, 더 나아가 마르티네스 공작령 내에서의 가문의 위상은 황제 그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전까진 몰랐지만, 할아버지와의 꾸짖음과 가문에 대해서 알아가면 갈수록 그것을 점차 실감하는 주안은 어색하지만, 이것에 익숙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기에 주안은 도리안을 만나러 왔지만, 이 집의 주인이기도 한 로닐 상단주와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여 그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로닐 상단주는 아들이 주안의 곁에 있음에도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오직 주안만을 극진히 모셨다.
그것을 깨달은 주안은 쥬도를 살펴보았지만 쥬도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오히려 이런 아버지를 아버지답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쪽도 참 묘한 부자야. 아니, 쥬도 씨가 조금은 성장해서 그런가.’
예전의 쥬도였으면 단번에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주안의 위치나 아버지의 위치, 사회적 위치를 모두 다 파악하고 있는 듯 적어도 이 상황 자체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주안의 걱정과는 반대로 로닐 상단주나 저택의 사람들은 주안을 모시고 온 쥬도를 오히려 더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 * *
주안은 로닐 상단주와 따로 자리를 가졌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하진 않았다.
함께 나눈 대화도 의례적인 이야기였을 뿐 그리 깊이 있는 대화도 아니었다.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에는 주안의 경험은 무척이나 적었고, 그저 로닐 상단주로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입장인 주안을 극진하게 잘 모셔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적당한 대화 후 주안은 로닐 상단주와 헤어져 토미와 쥬도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주안이 도착하자 쥬도가 그런 주안을 보며 실실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좀 답답하시긴 하죠?”
“예, 답답하지만 상당히 편안한 분이시더군요.”
로닐 상단주는 사람을 정말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왜 동방 대륙에서 발이 넓고 신용이 있는 것인지,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대화 내내 자신의 아들, 쥬도에 대한 잘못을 주안에게 언급하며 사죄하였고 아들에 대한 걱정을 계속해서 내비쳐 주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고마움, 그리고 그 은혜 속에서 못내 마음에 걸린 아들에 대한 그 생각에 주안은 씁쓸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무심한 아들의 모습에 주안이 발끈하며 쥬도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집에서 아버지랑 밥은 드시고 오세요. 이건 명령이고 그렇게 안 하면 공작성에 못 오게 막으라고 해버릴 거니까.”
“……되게 치사한 협박이십니다.”
“치사하고 자시고 아버지 걱정하시니까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후우……. 알겠습니다. 그 명령에 따르도록 하죠,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
과한 몸짓으로 주안에게 인사하는 쥬도의 모습에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긴 했지만, 집에 와서 그런지 조금 들뜬 그의 기분을 알기에 이해하고 넘어 가주기로 하였다.
“그보다 도리안 경이나 만나러 가죠. 어디에 머물고 있어요?”
“별관 쪽에 있습니다. 아, 그리고 도리안에겐 저희가 온 것을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 아직 모를 겁니다.”
“예? 그걸 왜 말을 안 해요?”
갸웃하는 주안에게 쥬도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야 갑자기 찾아가서 놀라게 해줘야 더 재미있잖습니까.”
“완전 어린애가 따로 없으시네요.”
쿡쿡거리며 즐겁게 웃으며 앞서나가는 쥬도의 그 행동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랑살랑 가로 저었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아직 정신적으론 많이 미숙한 청년이나 다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