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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61화 (161/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61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근거지인 항구도시 마를렌은 항상 북적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서방 대륙 최대의 항구 도시라고 하면 마를렌을 떠올릴 것이다.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며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 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마를렌은 거주 인구보다 오가는 인구가 더욱 많을 정도로 항상 북적였고, 단순한 사람의 숫자만 따져보아도 황도 그 이상이라고도 평가한다.

수많은 배는 마를렌을 중심으로 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주요 항구 도시들을 오갔고, 셀 수 없는 상단과 그 지부들이 즐비하다.

이것은 인종을 가리지 않았으며, 다른 지역들보다 개방적인 마르티네스 공작가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동방의 사람이든 북방 설원의 사람이든 서부 사막의 사람이든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든 상관없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땅에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법에 따르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누구든 환영이다.

그렇기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주요 항구 도시들뿐만이 아니라 각 지역에도 다수의 상단이든 공방이든 가리지 않고 세워져 있었다.

그렇기에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별다른 특산물이 없어도 각 지역, 각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로 인해서 벌어들이는 돈만으로도 충분히 굴러갔다.

아니, 오히려 자원 그 자체는 넘쳐난다.

말 그대로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한 것들이 넘쳐났기에 부유한 것이다.

주요 식량이라 할 수 있는 밀은 공작령 중부에 넓게 퍼져 제국 최대의 곡창지대를 만들어냈고, 북부 산맥의 광산에선 철이 넘치고, 나무도 훌륭하다.

공작령 남부는 거대 목초지가 펼쳐져 있어 말과 양, 소 등의 가축을 키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풍부하다 못해 넘쳐나는 자원과 좋은 땅과 날씨는 축복받은 대지라고도 불릴 정도였으며, 이 모든 것을 손에 쥔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제국 내에선 절대 흔들리지 않는 입지를 자랑한다.

그리고 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정점에 오른 인물.

공작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인물이 바로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이다.

다만, 그는 현재 매우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후우…….”

공작성의 복도를 걸으며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가론 노밀 자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북적이는 마를렌은 사람들로 미어터지기 직전이었다.

갑작스럽게 불러 모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가신들은 하나하나가 한 가문의 가주들이었다.

그들이 움직이자 자연스럽게 그 아래의 인물들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단지 그들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가주와 동행할 가족들과 그들의 측근, 그리고 그들을 지킬 기사와 병사들, 더해서 편하게 수발을 들 하인들까지 다수였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백 단위까지 넘는 가신들의 일행들 다수가 움직이니, 이 거대한 공작성도 미어터질 정도였고 마를렌 시내까지 복잡해질 정도였다.

“대충 가까운 이들은 다 온 것인가.”

땅이 넓은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다수의 가신이 이 땅을 분할 통치하는 형식으로, 여타 다른 귀족들과 운영 방식 그 자체가 달리하였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왕국과도 마찬가지였고, 그만큼 땅의 크기가 크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따라서 먼 거리의 가신들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은 부르기보단 마법 통신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가신들을, 가주들에게 직접 명령을 내린 것이 바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현 지배자인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슬슬 로마니아 백작가와 소벡 백작가도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마를렌에서 가장 먼 거리에 떨어진 가문은 아니지만, 마를렌에서 소벡 백작 가문과 로마니아 백작 가문의 거리는 매우 비슷했다.

3대 백작 가문 중 가장 가까운 헥사빌 백작가는 이미 도착한 뒤였다.

가론 노밀 자작은 로마니아 백작가와 소벡 백작 가문도 곧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들이 도착한 후 머지않아 연락한 모든 가신 가문이 다 모일 것이고, 그때쯤이면 주안 역시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안 공자님…….”

작년에 본 주안은 벡브란 전대 공작뿐만이 아니라 가론 노밀 자작이나 이곳에 상주하던 가신들, 기사들, 병사들, 더 나아가 마를렌의 백성들마저 안심시키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아스란 왕국의 외교 겸 문화 사절 참여와 그곳에서 행한 놀라운 일들은 마를렌에도 전해졌고, 벡브란 전대 공작도 매우 흐뭇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려온 소식으로 인해서 이러한 일들이 무색할 만큼 벡브란 전대 공작은 크게 실망했다.

“링베르가 공작가라…….”

황도의 소식 정도야 가론 노밀 자작의 손을 거쳐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전해졌기에,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가론 노밀 자작도 잘 안다.

이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다가 링베르가 공작가에 들켜서 어쩔 수 없이 알리게 되었다는 말에 기쁘기보다는 황도로 달려가 아들의 멱살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링베르가 공작가와 주안 그리고 주레인 공작 사이에서 일어난 알력 싸움이 벡브란 전대 공작의 분노를 일으킨 것이다.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지만, 어쩌자고 그리 하신 것인지…….”

물론 가론 노밀 자작도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과의 거래를 통해서 이득을 취하려 하였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분명 두 부자에겐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충분한 이득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내린 판단이었을 것이니까.

“하지만 그건…….”

벡브란 전대 공작과는 주레인 공작보다도 더 오래, 거의 평생을 함께한 이로서, 전대 공작님이 왜 그토록 심기가 불편한 것인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고민이 깊어 밤에 제대로 잠도 못 잘 정도였다.

그만큼 바쁜 것도 있지만 벡브란 전대 공작이 겨우 사이가 좋아진 황도의 아들 내외와 다시 틀어질까, 가론 노밀 자작은 그게 너무나 걱정이었다.

“하아, 대체 어쩌시려고…….”

“오, 노밀가의 애송이. 오랜만이구나.”

“응?”

재차 한숨을 내쉬며 오늘 올 손님들이 누구인지, 또 어디로 안내를 하고 맞이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걷던 가론 노밀 자작의 귀로 호탕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트 말란체 어르신……?”

말란체 남작가의 전대 가주이자 공작령 내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이 가론 노밀 자작을 보며 복도의 끝에서 크게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과거 공작가의 군단 하나를 통솔할 정도로 통솔력이 뛰어난 장군이기도 했으며, 나름 기사로서도 꽤 실력이 있었던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은 꽤 몸집이 컸다.

근육은 많이 사라졌지만, 건강해 보였고 새하얀 머리카락과 하얀 수염만 없다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을 수도 있었다.

그런 그가 손자인 아르베리아 말란체만 대동한 체 가론 노밀 자작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네 녀석은 어떻게 볼 때마다 고민만 늘어가는 것 같으냐.”

“……그러는 어르신은 볼 때마다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왜? 젊은 애인이라도 생겨 새 장가라도 갔을까 봐?”

“하, 할아버지!”

전혀 귀족답지 않은 그 농담에 모범청년인 아르베리아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지만, 오히려 더 크게 웃으며 아르베리아의 등을 팡팡 치는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이었다.

손자가 그 매운 손에 쿨럭거리며 거친 기침을 토해내는 것조차 즐거운 듯하다.

그런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을 보며 이번 일로 계속 찌푸리며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가론 노밀 자작도 겨우 미소를 지으며 그의 버릇인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어르신보다 작위도 높은 귀족입니다. 말을 좀 조심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큭큭, 천방지축 날뛰던 그 애송이가 어쩜 이렇게 점잖아진 것인지…….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딱이군.”

“그러는 어르신은 전혀 변한 게 없으시군요.”

“나야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뒷방 늙은이일 뿐이지. 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겠나?”

그렇게 말을 하는 것치곤 지나치게 건강해 보이긴 하였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오히려 아르베리아가 당황하였지만, 그래도 한때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전우였기에 이런 농담도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이 차이가 지나치게 많이 나긴 하지만, 서로 가문도 가깝고 왕래도 활발하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한데 우리 작은 손자 녀석은 아직 안 온 것이냐.”

“도착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래도 위체니아와 록산느가 공자님을 잡으러, 아니, 안내하러 갔으니까요.”

“여난이구나, 여난이야!”

위체니아도 동부에선 굉장히 유명한 천재 마법사로, 냉정하고 쌀쌀맞아 예쁘장한 외모와 그 배경에 비해서 혼담을 넣고 결혼을 원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아이이기도 했다.

게다가 록산느 로마니아는 자신을 여성이 아닌 기사로서 모든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듯, 남자들과 섞여 뒹굴고 훈련하기로 유명했기에, 이 역시 남자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여장부였다.

이 두 여성이 주안을 잡으러 갔다고 하니, 그것을 들은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이 더욱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러한 웃음도 이내 잠잠해지더니, 조용히 가론 노밀 자작에게 말했다.

“한데 벡브란 님께선 어째서 가주들을 이렇게 부른 것인지, 너는 알고 있겠지?”

그 누구보다도 오래 벡브란 전대 공작의 곁에서 함께했고, 아들인 주레인 공작보다도, 손자인 주안보다도 더욱 친밀하다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가론 노밀 자작이다.

그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이는 없고, 그가 벡브란 전대 공작을 보필하는 것을 문제 삼는 이들도 없는,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을 공작가의 가신들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대소사에 관한 것을 모두 아는 이 역시 가론 노밀 자작이다.

제대로 된 말을 듣지 못하고 그저 벡브란 전대 공작의 명령에 마를렌을 찾은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은 가론 노밀 자작에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듯했다.

다들 갑작스러운 부름에 의아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짐작하는 이들도 있었고,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처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가론 노밀 자작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이어받을 주안 공자님에 대한 일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문책입니다.”

문책이라는 말에 곁에 있던 아르베리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고, 공자님에 대한 문책이라니요. 대체 왜…….”

아르베리아가 화들짝 놀라 소리치자, 가론 노밀 자작이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아르베리아 말란체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가론 노밀 자작에게 사과하였다.

“죄송합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니네. 자네도 공자님과 함께 아스란 왕국에 갔다 왔으니, 공자님과 각별해졌을 것이니 이해하네.”

공작령 남부 가신들의 가문 중, 주안과 가장 가깝게 지낸 인물을 꼽는다면 바로 워랜과 아르베리아라는 것을 가론 노밀 자작도 알았다.

그렇기에 아르베리아가 이렇게 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가론 노밀 자작의 말에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도 갸웃하며 말했다.

“주안 공자님이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나? 내 손자 녀석의 말이나 소문만 들었을 때는 평이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야.”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 역시 작년까지만 해도 주안에 대해서 걱정스러워 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보와 손자인 아르베리아 말란체가 직접 보고 함께 겪고 느낀 것을 듣고는 주안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기대가 생겨났다.

아마 마르티네스 공작령 남부 가신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덕트 말란체 전대 남작의 의문에 가론 노밀 자작이 답했다.

“후계자로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것에 대한 문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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