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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54화 (154/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54화

“급하게 마를렌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곧바로 마를렌으로 좀 갔으면 해요.”

“흠…….”

주안의 그 말을 듣는다면, 사실 바로 반대의 입장을 내비쳐야 할 주레인 공작이었지만, 그동안 주안이 보여준 행동들로 인해서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을 마친 그는 조용히 주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네 엄마에겐 말했고?”

하지만 그 생각의 결론은 아내인 안젤라였고, 이런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의 말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

“반대하였다 생각은 한다만…….”

걱정스러워하는 아버지의 그 모습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제 엄마를 설득하는 건 문제 없거든요.”

“……정말 부러운 능력이구나.”

그 우악스러운 아내를 이렇게 쉽게 다루는 모습은 정말 신기하면서도 배우고 싶은 능력이었다.

화난 아내를 상대하는 것보다 차라리 제멋대로인 중앙귀족 백 명을 상대하는 게 더 쉬울 거라는 게 바로 주레인 공작의 생각이니 말이다.

“한데 마를렌에 가서 할 일이라는 게 그리도 급한 것이더냐.”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고, 궁금증에 대한 답을 바라는 듯 주레인 공작이 주안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아스란 왕국에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도 않았고, 안젤라의 임신과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황도에서 해결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것은 주레인 공작만이 아니라 주안에게도 해당되는 일인지라, 지금 이 시기에 마를렌으로 간다는 아들의 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겨서요. 사실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도 있지만, 그건 아버지 선에서 어떻게든 처리해 주실 수 있으시니까요.”

“……이 아비에게 다 떠넘기려고?”

“이건 가주 대 가주의 일이잖아요. 아들이 나서면 안 되죠.”

“하아…….”

능글맞은 아들의 태도에 주레인 공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굉장히 찝찝하고 아들의 볼때기를 손으로 붙잡고 죽죽 늘려주고 싶은 심정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말씀을 드렸지만, 절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길어도 한 달 안으로 집으로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

“음? 마를렌에 갔다 오는 데 겨우 한 달?”

안젤라 역시 이 말을 듣고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말처럼 주레인 공작 역시 비슷한 말을 꺼내며 의아한 듯 갸웃하기까지 한다.

이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귀여운 행동이 겹치는 바람에 주안이 즐겁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은 말씀 못 드리지만, 마를렌에 갔다 와서 모두 다 설명해 드릴게요. 제가 아스란 왕국에서 한 일이나, 남부 대밀림에 갔던 상세한 이야기 모두요.”

주안의 그 말에 주레인 공작이 작게 웃어주었다.

이미 주안이 남부 대밀림에 관해 이야기하며 무언가를 꽁꽁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말해주기 전까진 모른 척할 생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주레인 공작이 주안에게 말했다.

“알겠구나. 한데 너 혼자 갈 생각은 아니겠지?”

“예, 워랜 경이랑 토미 그리고 쥬도 씨랑 도리안 경도 함께 갈 생각이에요.”

“음? 쥬도랑 도리안 경, 그 두 사람을?”

“일단 쥬도 씨나 도리안 경은 가족을 못 본 지 꽤 오래되었잖아요? 이왕 가는 김에 두 사람에게도 좋은 일을 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래, 그렇지.”

아들의 그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곱다는 생각에 주레인 공작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은 단지 모두를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힘만으로는 좋은 리더가 될 수가 없다.

때론 사람들을 포용할 줄도 알고, 감싸줄 수도 있어야 하며 그들의 행동에 공감도 해주어야 한다.

주안에겐 이런 날카로운 이미지와 카리스마 같은 것은 없을지라도 사람들을 포용하는 그 능력 하나만큼은 주레인 공작도 인정해 줄 만큼 대단했다.

그저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사람들을 위한다는 점이지만, 그 역시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로 인해서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런 주안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주안이 알고 지내는 이들은 주안을 잘 따라주었고,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닌 스스로 곁에 서서 걸어 나가는 점이 참으로 좋았다.

아버지로서 그리고 거대한 가문의 가주로서.

이보다 안심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도리안 경을 할아버지에게 정식으로 소개시켜 드리고 저희 가문의 훈련 교관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확실히 도리안, 그자는 이대로 가만히 놔두기에는 조금 아쉬운 인재이긴 하지. 이리엄도 내게 그의 경험을 활용하자고 말을 하더구나.”

황도 저택에서 도리안과 가장 친한 이로는 이리엄을 꼽을 수 있었다.

좋은 체스 상대이자 서로의 검과 삶에 대해서도 가장 많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이기도 하였다.

주안보다 앞서 이리엄이 그런 말을 해주었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기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리안 경의 경험을 제대로 교육받은 병사들은, 좋은 척후병이나 정찰병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기사들 역시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 만약의 사태에서도 생존력이 크게 오를 거라고 봐요.”

“하긴……. 케세니아의 산맥은 꽤나 험하고 위험해서 일반 백성들도 보통은 아니지.”

케세니아에서는 눈이 조금만 내려도 마을들은 순식간에 고립이 되어버린다.

산을 오르며 생활하는 그들에게 그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터득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렇기에 케세니아 출신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어렸을 때부터 익혔으며, 고산지대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 험한 산지를 돌아다닌 탓에 체력이 남달랐다.

이런 상황을 보고, 도리안에게 필요한 훈련법을 정리해 가문의 병사와 기사들에게 가르친다면 꽤나 크게 성장할 것으로 주안이나 주레인 공작은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리안 경은 그대로 마를렌에 남겨,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어요. 괜찮죠?”

주안이 그를 마를렌으로 데리고 가려는 것은, 단지 훈련 교관으로 추천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가족들과 계속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것이었다.

주안의 그런 행동이 점점 더 마음에 드는 듯 주레인 공작만이 아니라 근처에서 듣고 있던 에밀리 경마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주안을 바라본다.

“네 사람이란다. 네 의지대로, 그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라.”

“예.”

“하면 쥬도 그 아이도 남겨둘 생각이더냐.”

“아뇨. 쥬도 씨는 집에 가기 싫다네요. 그냥 인사만 드리고 같이 다시 황도로 올 생각이에요.”

“……그 아이는 여전하구나.”

“좀 건방지긴 해도 이제 적당히 남자다워졌다 봐도 되겠어요. 그래도 집이 싫어서 안 간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어서 그런다니까요.”

“호오…….”

건들거리며 꽤나 건방져 보이는 모습과 그 행동과는 달리, 쥬도 역시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에 주레인 공작이 조금 의외라는 듯했다.

그래도 주안이 이렇게 말해주니, 많이 변한 듯싶었다.

“하면 언제 갈 생각이더냐. 아무래도 마를렌까지 가는 거리를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오늘 바로 갈 생각이에요.”

“오늘?!”

주안의 간단한 말에 주레인 공작이 찻잔을 집어 들었다 놓칠 뻔했다.

“너무 급한 것 아니더냐.”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라서요. 엄마와 점심은 같이 먹고 오후에 바로 갈 생각이에요.”

“……애초에 이 아비가 허락할 것을 알고, 통보하러 온 것이구나.”

“그래도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안 되면 설득할 생각이었는 걸요.”

그래도 깔끔하게 허락해 줘서 따로 설득할 일이 없어서 매우 편했다.

사실 이 부분이야 자신하던 부분이었고, 이미 오기 전에 저택에 미리 말해서 마를렌으로 갈 채비를 하라고 일러둔 상태였다.

“끄응……. 뭔가, 점점 더 주안이 네가 영악해지는 것 같구나.”

“설마요.”

왠지 아들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서고 있다는 것에 주레인 공작이 고민스럽다는 듯했고 주안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음미할 뿐이었다.

“가서 틈틈이 할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배워 올게요. 집으로 돌아오면 후계자 수업도 매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매일이라니?”

후계자 수업이란 주레인 공작보다 벡브란 전대 공작이 더욱 잘해주었기에, 사실 안젤라가 주안의 동생을 출산한 후 몸이 좀 좋아지면 주안과 함께 마를렌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몇 년은 벡브란 전대 공작의 아래에서 열심히 후계자 수업을 받고, 공작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피며 가신들과 자주 접촉하여 신뢰를 쌓은 뒤 주안이 서른쯤에 이 자리를 그대로 물려줄 생각이었다.

주안은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 나가고 있었고, 정말 특별한 일이 없다면 주레인 공작은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뒤 매일 그 수업을 받겠다는 것에 주레인 공작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안아, 이 아비도 네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지만, 사실 나보단 네 할아버지가 훨씬 더 낫단다. 그리고 이곳보단 마를렌이 후계자 수업을 받기에는 적합한 장소라…….”

“걱정 마세요. 제게 다 생각이 있거든요. 이것도…….”

“……마를렌에 갔다 오면 다 말을 해주겠다, 이것이더냐.”

“네.”

주안이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대체 마를렌에 가서 뭘 하고 돌아올 생각인지 조금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시나 반대의 입장을 내비칠 수 없는 것이, 이토록 당당하게 아비인 자신에게 자기의 의사를 내비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대견하였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주레인 공작 자신은 아버지의 앞에서 이렇게까지 당당해 본 일이 없었다.

도망치듯 황도로 올라온 것이었고, 그렇게 올라와 눌러앉아 버린 것이니 말이다.

나라를 위한 일을 한다는 것은 보람차지만, 결국 그 시작은 아버지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자신과는 달리 아들은 피하는 아닌, 무언가를 진정하고자 하며, 다시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갸륵했다.

그렇기에 주레인 공작 역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 마를렌에 갔다 와서, 제발 그 숨기고 있는 모든 걸 이 아비에게도 다 털어놓았으면 좋겠구나.”

“엄청 놀라실 거예요.”

자신만만한 그 미소에 주레인 공작 역시 픽 하고 웃으며,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그러면 네 할아버지에게 드릴 서신이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전해 드리거라.”

“예? 서신이요?”

주안이 갸웃하자 주레인 공작이 조용히 말했다.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을 네 할아버지에게도 알려드려야지. 그리고 그곳에서 가신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그것을 종합해서 답을 내려야 할 듯하구나.”

“아, 하긴…….”

작지만 땅을 가지고 하는 거래였고, 더욱이 링베르가 공작가의 추태에 대한 일도 알려 드려야만 하였다.

하지만 주안은 조금 이상하다는 듯 갸웃하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거 그냥 마법통신으로 알려 드려도 상관없지 않아요?”

“…….”

주레인 공작이 주안의 말에 찻잔을 든 채로 흠칫 놀랐다.

하지만 이내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중요한 일을 통신을 통해 알려드릴 수는 없지 않으냐.”

“그냥 솔직히 할아버지가 무서우셔서 저한테 떠넘기시는 거잖아요.”

“…….”

주안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꾸욱 다물고 주안을 지켜보다 한참이 지난 뒤에서 입을 떼었다.

“이런 일은 직접 찾아가서 가신들과 함께 의논하는 게 맞는 거란다. 지금 나는 움직일 상황이 아니니, 네가 마를렌에 간다니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주안은 그런 아버지를 빤히 지켜보다 말했다.

“앞에서 생각하시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으셨어요?”

“크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주레인 공작이 괜히 헛기침하며 주안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딴청을 피웠다.

이 일을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알면 분명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주안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주안에게 떠넘기는 아버지의 행동이 좀 불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 일이 벌어진 게 바로 주안의 탓이니,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하아, 알겠어요. 가서 할아버지한테 제가 직접 다 설명할게요.”

“그래, 잘 부탁한단다.”

한 시름 덜었다는 듯 주레인 공작의 안색이 매우 밝아졌다.

바쁜 것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그게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게 주안으로 인해서 해결되었으니, 쌓여 있던 문제의 절반은 덜어낸 듯 투덜거리는 주안을 보며 작게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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