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152화 (152/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52화

“피, 피터 아저씨 실력이 저 정도였어?!”

“……모르셨어요?”

주안의 외침에 오히려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토미나 곁에 있던 다른 사람 모두였다.

아니, 세라타마저 의아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주안은 피터가 대련하는 것이야 자주 봐왔지만, 그가 진심에 가까운 실력을 가감 없이 뿜어내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주안에게 피터란 그저 묵묵히 엄마의 곁을 지켜주던 든든한 아저씨였지, 검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뿐이지 진지하게 상대해 주고 있는 워랜과 제대로 맞섰다는 게 꽤나 충격이었다.

거기다 검을 잘 모르는 주안이 보아도 피터의 몸놀림이나 검술은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 도련님, 정말 아무것도 모르셨네요.”

“쥬, 쥬도 도련님…….”

쥬도의 말에 도리안이 크게 놀라 황급히 말리려 하였지만, 오히려 주안은 그런 쥬도의 말에 그다지 불만을 느끼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갸웃하며 그를 보자, 쥬도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여기, 공작 가문이잖아요. 그것도 전 황녀이셨던 안젤라 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황제 폐하가 직접 고른 인재를 호위로 보내신 건데……. 평범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왜 그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피터는 엄마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아저씨로만 생각했던 것인지…….

사실 랭크 5라는 경지도 보통의 경지가 아니었고,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주안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곁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한 이들이 많았기에, 잊고 있었던 듯했다.

“저 빼고 피터 아저씨의 저 실력은 다들 알고 있었다는 거네요.”

“그야 뭐…….”

쥬도야 피터에게 하도 시달리고 또 어떻게 보면 주안보다도 가깝게 지내던 이였고, 토미야 말할 것도 없이 피터의 제자였으며, 도리안은 틈틈이 피터와 검을 섞던 상대였다.

그저 주안만이 그런 피터의 진짜 실력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였을 뿐이니 말이다.

“……피터 아저씨한테 더 잘해드려야겠어요.”

“여기서 더 잘해드릴 건 없다고 보는데…….”

주안의 작은 중얼거림에 쥬도가 한마디 하였지만, 주안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쥬도의 말대로 사실 피터는 지금의 이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물질적인 지원도 많이 받고 있었다.

만약 그가 지금이라도 은퇴하면 안젤라뿐만이 아니라 가문 자체에서 피터에게 작위를 내려주고 영지까지 하사할 수 있을 정도로 피터라는 기사 자체가 마르티네스 공작가, 아니, 안젤라에겐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존재였으니 말이다.

물론 피터는 주안이 알던, 과거이자 미래에도 은퇴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끝까지 안젤라의 곁을 지켰지만.

그 충성스러움을 알기에, 그리고 이제는 그 실력까지 보았기에 주안은 엄마의 곁을 비워야 하는 것에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도련님, 아침부터 워랜 경에게 할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 워랜 경도 워랜 경이지만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

주안의 말에 토미와 쥬도, 도리안이나 솔마저 갸웃한다.

애초에 주안은 워랜에게 먼저 말을 한 후, 이들에게도 의사를 물어보려고 하였다.

토미야 또 떼어놓고 가면 가출을 할 수도 있었기에 데리고 갈 생각이었지만, 마를렌으로 향하는 길이기에 주안은 쥬도와 도리안.

이 두 사람을 반드시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이들 두 사람에겐 마를렌이란, 고향이자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장소였으니 말이다.

* * *

“마를렌?”

워랜은 적당한 자리에 앉아 주안이 한 말에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모두가 마찬가지로 의아한 듯 주안을 바라본다.

“네, 전에 제가 말씀드린 일, 조금 일찍 진행시켜야 할 듯해서요.”

“흐응, 그래?”

세라타가 건네준 시원한 물을 마신 워랜이 잠시 생각하는 듯했지만, 딱히 별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저도 같이 갈 거예요, 워랜 경.”

“응? 주안 공자도?”

“말씀드렸다시피 조금 일이 급하게 진행이 되어서요. 가서 일하면서, 제 개인적인 일도 같이 마무리를 지어 볼까 싶어요.”

“여러모로 참 바쁘구만.”

슬쩍 미소를 지으며 워랜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갑작스럽고 급하게 결정된 이 일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사실 워랜의 이런 시원한 성격을 잘 알기에 주안 역시 반대하지 않을 것을 알고는 있었다.

일단 워랜이 동의해 주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는 것이겠지만, 주안이 하고자 하는 일에 이제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주레인 공작이기에 이 역시 별 무리 없이 허락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가장 큰 난관이었던 엄마의 설득이 잘된 이상, 주안이 하려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이 저택에서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하지만, 피터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다 주안에게 넌지시 말했다.

“공자님,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예, 피터 아저씨.”

피터의 말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자 피터는 이러한 주안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다 조용히 말했다.

“공자님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알려주지 않으셔도 저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하고 우직한 충성심처럼 주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다른 생각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기사의 좋은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주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충성심도 좋지만, 주인이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할 때는 그것을 제지해 주면 어땠을까 하였다.

이전 삶 속에서도, 피터는 그저 안젤라를 묵묵히 그렇게 따랐지만…….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도, 주안은 그 부분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주안은 이러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버려가며 구해주었던, 은인이었으니 말이다.

“하나 안젤라 님을 또 혼자 두시고 어딘가로 가신다는 것이 저는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엄마는 혼자가 아니에요. 피터 아저씨도 곁에 계시고, 소니아 누나나 마리아 누나, 많은 사람이 엄마의 곁에 있으세요.”

“하지만 안젤라 님이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것은 결국 공자님뿐이십니다.”

피터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그렇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안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의 곁에 있어 주는 것만이 엄마를 위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엄마의 곁에 있어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자님…….”

“저는 좀 더 어른스럽고, 훌륭해져서 엄마의 곁에 서고 싶어서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뿐이에요. 그것을 엄마도 이해해 주셨고, 그래서 전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거예요.”

주안의 말에 피터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느끼고는 있었지만, 주안이 아스란 왕국에 갔다 온 뒤로 무언가 조금씩, 아니, 많이 바뀌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피터를 보며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마를렌에 간다 해도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예요. 그렇죠, 워랜 경?”

“뭐, 그렇긴 하겠지. 잘만 된다면 말이야.”

주안과 워랜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미소를 짓자,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이 두 사람이 이러는 것인지 모르는 듯 의아해한다.

“그리고 피터 아저씨. 제가 없더라도, 전 언제나 피터 아저씨나 소니아 누나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이나 가문을 위해서 힘써주시는 모든 분을 믿고 있어요. 그렇기에 안심하고 자리를 비울 수 있는 거예요.”

조금은 낯간지러운 말이었지만, 주안의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낀 듯 다들 헛기침이나 볼을 긁적이며 주안의 시선을 애써 피하였다.

무언가, 목덜미를 간질거리는 그 느낌에 몸을 움찔거리기까지 한다.

“거, 낯 뜨거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

“하하, 그런가요.”

그리고 이런 주안에게 대뜸 한마디를 해버리는 워랜은 그저 워랜다웠기에 주안이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이게 다 엄마와 가문을 위한 것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아셨죠?”

“후우……. 알겠습니다, 공자님.”

이런 주안의 모습과 그 행동에 피터가 잠시 머뭇거리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는 안젤라마저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말에도 물러서지 않을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저, 분에 넘치는 일이었지만 주안에게 이런 말을 한 번쯤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주안을 위해서도 있지만, 안젤라를 위함도 컸으니 말이다.

주안은 피터가 이렇게 말해준 것도 참 고마웠기에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었고, 잠시 그런 피터를 바라보다 조용히 시선을 돌려 쥬도와 도리안을 보며 말했다.

“쥬로 씨. 그리고 도리안 경. 두 분도 함께 갈 거예요.”

“예? 저도요?”

주안의 말에 쥬도가 놀라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킬 정도였다.

이런 쥬도의 모습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쥬도 씨나 도리안 경은 꼭 함께 가주시길 바라고 있어요. 아니, 이건 명령이라고 해두죠.”

“으음, 명령이라니…….”

주안이 누구에게 명령을 내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며 부탁하였기에 이러한 명령이라는 말이 생소하면서도 묘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쥬도가 무슨 큰일이라도 하러 가나 싶어 잔뜩 긴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주안은 쥬도 보다는 도리안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마를렌에 가서, 저는 도리안 경을 저희 가문의 훈련 교관으로 할아버지께 추천드릴 생각이에요.”

“……예?”

이런 주안의 뜬금없는 말에 도리안도 놀라긴 하였지만, 그보다 쥬도가 더욱 크게 놀란 듯 말했다.

“저기, 주안 공자님? 도리안을…… 훈련 교관에 앉히신다고요?”

“예, 물론 할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도리안 경 정도의 실력이면 허락하실 거예요. 저 북방의 케세니아 출신 기사라면 오히려 환영이니까요.”

도리안의 고향은 제국 북부에 위치한 케세니아 왕국으로, 산지가 많고 험하였기에 일반 백성들도 산을 오르내리는 게 일상적인 나라였다.

그리고 그곳 출신의 기사, 도리안은 이전 삶 속에서도 이런 케세니아 출신이라는 것을 가감 없이 뽐내며 수많은 전장에서 끈질기고도 치열한 삶을 살아갔던 이였다.

그의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존술은 그가 사망 후 많은 곳에 알려졌고, 기사들뿐만이 아니라 병사들의 좋은 훈련 교본이 되었을 정도였다.

주안은 그를 이 저택에 계속 묵혀두고, 이리엄 경의 좋은 체스 상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도리안을 마를렌에 보내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도리안 경,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기 좀 그렇지만, 이제 쥬도 씨를 홀로 서게 하시고 도리안 경은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가정을 책임을 지시는 게 어떠세요.”

“…….”

쥬도야 아직 좀 철이 없는 어른이긴 하지만, 슬슬 독립을 시켜도 될 정도로 꽤 괜찮은 남자가 되어 있었다.

이전, 제이미 링베르가의 일이 있은 후 주안은 쥬도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직접 느꼈고, 그렇기에 쥬도에게 더 이상 도리안의 보호가 필요치 않은 아이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주안은 도리안이, 더 이상 쥬도가 아니라 자신의 아내와 아픈 아이를 위해서, 가족과 함께 지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제가 도리안 경을 마를렌으로 함께 데리고 가는 것은, 그곳에 남겨진 도리안 경의 가족을 위해서이기도 해요. 두 사람에 대한 벌은 이제 충분하다고 보이거든요.”

“공자님…….”

도리안은 주안의 말에 짐짓 놀란 듯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것은, 그것도 아픈 아이를 내버려 두고 이런 타지에 있다는 것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정말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물론 그게 자신의 못난 행동 때문임을 알고 있었고, 죗값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이 보고 싶다는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부분을 다른 사람도 아닌 주안이 먼저 알아주고, 이렇게 배려해 주려 하고 있었다.

“뭐, 쥬도 씨는 아직 팔팔한 청춘이니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내버려 두겠지만 도리안 경은 지켜야 할 게 있으시잖아요.”

“하지만…….”

“쥬도 씨를 영원히 내버려 두라고 하진 않아요. 어차피 이 사람도 적당히 방황하고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집으로 돌아갈 거니까요.”

“바, 방황이라니요. 저는 새로움 꿈을 가지고 움직이려고 하는 겁니다.”

주안의 말에 쥬도가 작게 투덜거렸지만, 이내 씨익 웃으며 도리안에게 말했다.

“그리고 도리안.”

“……예.”

“나도 부탁할게. 나 같은 놈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지만, 공자님 말대로 이젠 내가 아니라 마를렌의 가족을 위해서 있어 줘.”

쥬도는 확실히 제멋대로였지만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따뜻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많은 호위가 자진해서 쥬도를 따른 것이었으며 도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쥬도마저 이런 소리를 하니, 도리안은 매우 심란해졌다.

“이러면 이제 내가 도리안에게 도리안 경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그런 거예요? 도리안 경.”

“도, 도련님……?!”

장난가득 미소를 짓는 쥬도의 모습에 도리안이 당황하며 허둥거리자, 쥬도와 주안은 키득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두 도련님의 모습에 도리안은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고, 그저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는 피터의 거친 손이 매우 따뜻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