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51화
“주안 도련님~!”
“응?”
엄마의 방에서 나와 세라타와 함께 워랜을 찾으러 걸음을 옮기던 주안은 뒤에서 들려온 큰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소니아 누나?”
주안과 세라타는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소니아의 모습에 갸웃했지만, 일단 그녀가 오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앞에 도착한 소니아의 행동에 주안이 의아한 듯 물었다.
“엄마가 저 부르셨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주안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소니아였지만, 이내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 이상한 질문 하나만 해도 괜찮아요?”
“네?”
뜬금없는 그 말에 주안이 갸웃했다.
그리고 조금 머뭇거리며 주안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모자라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지더니, 조심스레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그런 건 아니죠? 그건 좀 곤란한데…….”
“그런 거 아니라고요…….”
주안이 조금 곤란한 눈치를 보이자 소니아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소에도 이상한 장난을 많이 하던 그녀였기에, 자연스럽게 경계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행동에 소니아도 움찔 놀라긴 하였지만, 이내 주안이 한 말이 묘하게 불만스럽기에 볼을 잔뜩 부풀렸다.
“아니, 그보다 곤란한 건 또 뭐예요.”
“아하하, 그냥, 그런 게 있잖아요.”
“흥!”
주안의 말에 소니아가 작게 투덜거렸지만, 세라타는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웃음을 참느라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이런 세라타를 흘겨보는 소니아의 눈이 매우 날카로웠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려 버려야 하였지만 말이다.
“그보다 뭘 물어보시려고요?”
“아, 그게…….”
잠시 머뭇거리던 소니아가 이내 주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새로 산 마법 도구라던가, 그런 게 있으세요?”
“네? 마법 도구요?”
“그게…….”
마법 도구라는 말에 주안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웃하자 소니아가 주안을 지긋이 지켜보며 말했다.
“요즘 주안 도련님의 방에서 마나 파동이 일어나고 있어서…….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마나 파동?”
마법을 사용할 때 으레 나타나는 것이 바로 마나의 움직임, 파동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방에서 느꼈다는 것에 주안이 갸웃했지만 이내 흠칫 놀라며 잽싸게 말했다.
“요즘 세냐가 제 마법 도구들을 가지고 좀 놀았거든요. 얘가 생각보다 마법 실력이 꽤 대단해서…….”
“호기심이 참 많은 요정 꼬마네요.”
“그렇긴 하죠.”
여전히 의문스러운 요정이라는 아이들이지만, 소니아도 세냐의 마법 솜씨를 알고 있는 듯 주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아무리 마법 실력이 좋다 해도 다른 사람이 만든 마법 도구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네, 그렇게 할게요.”
소니아의 말대로 보통 다른 사람이 만든 마법 도구의 기능을 알아본답시고 제멋대로 수식을 풀다가 폭발해 큰 화를 겪는 일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보안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마법사에게 자신만의 마법 수식은 곧 자신의 재산과도 같았기에 그것을 타인에게 알려주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이런 것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보안 방법이었기에 이것을 억지로 알려다 다친 마법사를 다른 이들은 결코 동정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소니아는 불쾌하다고 하기보단 세냐가 조금 걱정스럽다는 것에 주안도 애써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 도구나 그런 걸 알고 싶으면 저한테 오라고 해주시고요. 아셨죠?”
“그렇게 할게요.”
재차 당부의 말을 남긴 소니아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는 눈치였지만, 조만간 세냐를 직접 만나 다시 이 말해주기로 마음먹은 뒤에야 겨우 걸음을 돌려 안젤라의 방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니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주안은 매우 복잡한 심경이었다.
세냐는 이 마법 도구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 살펴보고 구석에 던져놓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소니아가 느꼈다는 마나 파동이란 단 하나뿐이었다.
워프 게이트.
소니아는 그것에서 뿜어져 나온 아주 미묘한 마나를 느끼고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하였다.
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이러한 마법 도구가 너무나 많았고, 그 사이에서 정확하게 주안의 방에서 느껴진 새로운 마나 파동을 감지한 그녀가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주안만이 한 것이 아니라 작고 귀여운 꼬맹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저 언니, 감이 꽤 좋은데요? 마법사로서의 자질이 상당해요.”
“응, 확실히 재능이 남다른 분이시지.”
여전히 세라타의 옷 속에 숨어 있던 세냐가 얼굴만 삐죽 내민 채, 안젤라의 방으로 되돌아가는 소니아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주안 역시 그런 세라타의 말에 동의해 줄 수밖에 없는 게, 소니아는 이미 10대에 마법사로서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랭크 3에 오른 상당히 재능이 있는 인재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펜 남작 가문의 여식이라 해도 안젤라의 호위로서 있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한동안 소니아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주안은 언젠가 그녀에게도 제대로 말해줘야 할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하며 멈추었던 발걸음을 움직여 워랜의 방으로 향했다.
* * *
주안은 워랜의 방으로 향했지만, 늦잠을 잘 것이라 생각했던 워랜이 방에 없는 것에 의아하였다.
게다가 워랜뿐만이 아니라 솔도 자리에 없었기에 갸웃하다 집안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워랜이 있다는 장소를 알아내어 세라타와 함께 그곳으로 향하였다.
“워랜 경이 아침부터 웬일이시람.”
워랜이 있는 장소.
바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 연무장이었다.
아침뿐만이 아니라 하루 중 짧은 시간만 그곳을 이용하는 워랜이였기에 사실 그와 연무장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장소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조차도 이용하지 않을 때가 많았을 정도였다.
아스란 왕국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는 연무장보다는 저택 정원 쪽을 더 애용하였다.
숲과 같은 자연의 기를 통해 수련한다는 동방 무사, 스승인 풍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듯 워랜은 정원에서 명상을 통한 수련에 주로 매진하였다.
가끔 보면 그냥 잠을 자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주안이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뒤 낯이 익은 사람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다들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 도련님.”
주안의 말에 토미가 가장 먼저 주안을 돌아보며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게다가 그런 토미와 함께 억지로 붙잡혀 왔을 솔, 그리고 쥬도와 언제나 함께인 도리안 경도 이곳에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특히 토미와 쥬도는 늘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인지라 지금의 시간에 일어나 이 자리에 있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단지 매우 피곤해 보이는 솔이 조금 불쌍할 따름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구경이요.”
“구경?”
주안의 말에 간단히 답한 토미.
주안은 그 말이 조금 이해가 안 되어 갸웃하였다.
하지만 아까부터 들려오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연무장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대충 짐작은 갔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생각에 확신을 시켜주듯 통통한 솔과 나름 듬직한 몸을 자랑하는 도리안이 자리를 비켜주자, 시야가 탁 트이면서 토미가 말한 구경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피터 아저씨……?”
피터뿐만이 아니었다.
워랜이 피터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피터는 그것을 막고 재차 반격하는 등 대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대련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날카롭고 살벌해 보여 실전 같을 정도였다.
검을 잘 모르는 주안이 이렇게 느낄 정도로 검이 부딪히는 소리에 움찔거리며 놀랄 정도였다.
“지금, 피터 아저씨랑 워랜 경이 대련하는 거야?”
주안의 말에 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요즘은 아침부터 이렇게 검을 나누시고 계세요.”
아무래도 워랜은 에밀리 경보다 피터와의 약속을 먼저 잡은 게 아닐까 싶었다.
무엇보다 피터는 워랜의 경지에 대해서 이미 주안에게 들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피터와 간간이 대련하기도 하였으니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워랜이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게 영 적응이 안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주안을 보며 눈웃음을 짓던 토미가 주안에게 물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어쩐 일이세요?”
“아, 워랜 경에게 할 말이 조금 있어서…….”
“곧 끝날 듯하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
“어, 으응.”
곧 끝난다?
주안에게 저 두 사람의 대련이 언제 끝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였는데 토미의 눈에는 그게 다 보이나 보다.
괜히 미래의 검성이 아니었고, 앞날이 창창한 검사가 아니었다.
* * *
토미의 말대로 워랜과 피터의 대련은 주안이 연무장에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을 맺게 되었다.
검기를 쓰지 않고 순수한 육체의 능력과 검술로만 피터를 상대한 워랜이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의 모든 것을 보여주듯 검술을 펼친 피터는 조금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옷깃으로 대충 얼굴의 땀을 닦아낸 후 자신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정말이지, 워랜 경. 자네는 못 당해내겠군. 괜히 랭크 7이 아니야.”
“그런 말씀 마시죠. 그런 단계를 나누는 거, 사실 별 의미가 없다고 보거든요.”
“응? 어째서?”
“피터 경은 랭크 5라고 불리고 있다지만, 그 정도 육체적인 능력이라면 랭크 6이라 불리는 기사들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상대할 거라고 보는데요. 아닌가요?”
“…….”
사실 피터가 여전히 랭크 5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저 검에 제한적인 힘을 실지 못한다는 이유 단 하나뿐이지 그의 육체적인 능력은 이미 보다 높은 곳에 올라 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워랜이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 역시 그의 육체적인 능력은 실로 대단하였고, 대련하면서 단지 검기를 싣지 않았다뿐이지 여전히 날카로운 자신의 검을 맨손으로 쳐 내 방향을 바꾸는 그 솜씨는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육체적인 능력이었다.
랭크 5와 6의 차이는 정말 미세할 뿐이다.
이미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진 육체적인 능력과 그 능력을 한껏 뿜어낼 수 있게 그저 검이 부서지지 않도록 강하게 만들며 휘두를 수 있는 능력일 뿐이었다.
괴물 같은 육체 능력은 사용하는 무기마저 일회용으로 만들 정도인지라, 이것을 망가뜨리지 않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랭크 6이었다.
그렇기에 랭크 5와 랭크 6이란 사실 크게 의미가 없다는 워랜의 말이 딱히 틀리진 않았다.
그리고 이런 워랜의 말이 마치 피터에게 해주는 위로와도 같았기에 피터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뭐, 피터 경이 그런 것에 연연할 분은 아니시겠지만……. 어쨌든 상대하면 할수록, 정말 몸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노련함도 대단하다 싶어요.”
무엇보다 피터의 가장 큰 강점은 오랜 세월을 우직하게 검에 매진해왔다는 그 시간의 힘이었다.
아무리 천재적인 워랜이나 앞으로 앞날이 창창한 토미라도 이런 시간으로 메울 수 있는 노련함은 피터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가. 역사에 기록될 분에게 그런 칭찬을 들으니 부끄럽기까지 하군.”
“……피터 경이 그런 농담을 하면 진짜 무섭거든요? 저기, 저쪽의 도련님이라면 귀엽다고 웃어넘길 수 있다지만 피터 경은 아니니까 그러지 마시죠.”
“하하, 알겠네.”
워랜의 투덜거림에 피터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보다 저기 저 도련님이 기다리는 거 같은데, 가보죠.”
“그러도록 하지.”
먼저 좀 씻고 싶기도 하였지만, 아침부터 이곳에 직접 찾아올 정도라면 무언가 급한 볼일이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을 알기에 워랜이나 피터도 연무장 구석에서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구경 중인 주안을 보고는 작게 웃어주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