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50화
세냐의 그 말에 차마 반박은 못 하겠고 그저 속으로 분만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실실 웃어주는 세냐 때문에 기분 좋은 아침이 조금은 망가진 기분이었다.
“도련님, 그런데 마를렌에 가실 생각이세요?”
“어? 아, 으응.”
“요즘은 도련님이 정말 바빠 보이세요.”
“하하, 그런가. 그래도 늘어져 있는 것보단 낫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시다 몸에 탈이라도 날까, 걱정되는 걸요.”
“흐흥~ 그 부분은 전혀 문제가 없다, 이 말씀이지.”
주안은 자랑스럽게 팔짱을 끼며 가슴을 쭈욱 펴는 것도 모자라 콧대까지 세우며 당당하게 섰다.
이런 주안의 모습에 세라타는 갸웃하였고, 세냐는 표정이 조금 요상해졌다.
“우와, 이 오빠도 참 재수없어…….”
“……시꺼.”
직설, 아니, 독설적인 세냐 때문에 또 좋았던 기분이 망가지자,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궁금해하는 세라타를 보며 히죽 웃으며 자신의 왼손을 펼쳐 보여주었다.
“이것 때문에 난 어디 탈이 날 걱정을 안 해도 되거든.”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성흔은 성스러움도 가득했지만, 왠지 지금의 주안의 표정과 성스러움에는 거리가 좀 컸다.
하지만 주안이 이렇게 자신만만한 이유는 당연히 이 성흔, 그리고 신성력을 가진 사람은 매우 건강하게 병치레도 없이 오래 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라타 역시 그 부분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음, 그래도…….”
이해는 하지만 그럼에도 걱정은 여전한 듯 세라타의 표정은 썩 좋지는 않았다.
“괜찮다니까. 그보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세라타.”
“……네.”
이런 세라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주안은 세라타를 안심시켜 주려는 듯 왼손으로 세라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준 후 쓰다듬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성흔의 빛을 이용해 세라타를 따뜻하게 감싸주니, 기분 좋은 그 느낌에 세라타의 볼이 발그레 물들었다.
주안에게는 정말 여동생이 있다면 세라타 같은 아이였으면 하였고, 그 이전에 정말 여동생으로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세라타 역시, 분에 넘치는 이런 사랑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고맙고, 또 품어선 안 되는 감정이지만 주안이 토미와 마찬가지로, 친오빠였으면 하는 바람까지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지금의 이런 관계도 너무나 좋았기에 계속 쭈욱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보기 참 좋네요. 그보다 바쁘다면서요?”
“아?!”
그 좋은 분위기를 깨는 세냐의 뾰족 날이 선 말에 주안과 세라타가 정신을 차렸다.
“자, 그럼 엄마한테 갈까.”
“네, 도련님.”
정신을 차린 주안이 어색하게 웃어주며 그렇게 말하자, 세라타가 작은 두 손을 꼬욱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안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기에, 지금부터 가는 안젤라의 방은 마치 마왕님에게 쳐들어가는 용사의 심정과도 같을 수밖에 없었다.
주안은 일단 가장 큰 문제이자 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엄마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서 세라타의 손을 잡고 불만 가득한 세냐를 데리고 엄마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에도 늦잠을 자주 자던 엄마였고 임신을 한 뒤로는 잠이 더욱 많아진 듯했다.
그것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안이 돌아오고 난 뒤, 그렇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지 싶었다.
엄마의 방 앞에 도착한 후 주안은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뒤 조용히 노크하였다.
그리고 열린 방문 너머로 엄마의 전속 하녀인 마리아가 주안을 맞이해주었다.
“엄마 일어나셨어요?”
“네, 도련님.”
마리아가 주안의 말에 조용히 답해주며 문을 활짝 열어주었고, 그 행동에 주안과 세라타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요즘 자주 엄마와 함께 있는 소니아가 있었고 세냐와는 따로 놀고 있었던 듯 마냐와 아냐도 함께였다.
“어머, 주안아~!”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난 듯 주안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안젤라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려 주안을 맞이해주었다.
다행히 어제의 뚱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주안이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것에 매우 기분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소니아와 두 요정 꼬맹이들이 무언가 재미나게 해주었던 것인지 기분이 꽤나 좋아 보이는 안젤라의 그 모습에 주안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가가 두 팔을 벌려 자신을 맞이해주는 엄마를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엄마.”
“응,, 잘 잤어? 얼굴이 완전 피곤해 보여, 주안아.”
“아, 그게 조금……. 그보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네요?”
“흥. 일찍 일어나려던 거 아니다 뭐, 소니아가 억지로 깨웠잖니.”
볼을 잔뜩 부풀리며 소니아를 흘겨보며 투덜거리는 엄마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런 눈총을 받던 소니아는 오히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무 오래 자도 배 속의 아이에게 전혀 좋은 게 아니라고요. 그리고 아침 먹고 저랑 잠깐 산책도 하세요. 아셨어요?”
“귀찮은데, 완전 피곤한데. 우리 작은 애가 움직이는 거 엄청 싫어하는데…….”
“그 애가 어떻게 말을 하는 건데요…….”
“흥~ 이다. 아이도 못 가져본 애가 뭘 알겠니?”
“으…….”
배를 살살 쓰다듬으며 히죽 웃는 안젤라의 행동에 소니아가 재차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두 사람의 이런 행동에 주안은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특히 소니아가 엄마의 바로 곁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살피며 지극정성으로 살피는 것도 좋았지만, 그런 소니아 때문에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때론 낮잠도 자면서 편하게 지내는 엄마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런데 네 아빤 들어오지도 않았다던데, 진짜니?”
“네, 황성에서 일이 좀 많아서 그런가 봐요.”
주안 역시 아빠가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고를 받았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기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속사정을 엄마에게 모두 털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안젤라는 남편인 주레인 공작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영 못마땅한 듯했다.
“설마 혼담을 내가 알았다고, 그게 무서워서 집에 안 들어 온 건 아니지?”
“설마요…… 3할 정도는 그 이유도 있겠지만, 7할은 다른 일이 있어서 그래요.”
“……3할도 충분히 많지 않아요?”
주안의 말에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 소니아가 물었지만, 두 모자의 대화는 일반인이 듣고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먼 이야기인 듯했다.
“찾아가면…….”
“절대로…….”
“안 돼요.”
안젤라의 작은 중얼거림에 주안과 소니아가 정색을 하며 잽싸게 말했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반응에 안젤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농담이거든? 그보다 주안아, 같이 아침 먹으러 갈 거지?”
“아, 네. 그보다 엄마.”
“응?”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듯, 안젤라가 몸을 일으키자 주안과 소니아가 그런 안젤라를 부축해 주었다.
하지만 주안의 말에 안젤라가 갸웃하며 주안을 바라보았다.
“저, 잠깐 마를렌에 다녀와도 괜찮을까요?”
“마를렌에? 네 할아버지 생신은 조금 남아 있지 않니?”
“그게, 급히 알아볼 일이 있어서요.”
주안의 말에 안젤라가 갸웃하였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마를렌에 갈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안의 표정이나 나름 진지한 모습을 보니 무슨 사정이 있는 듯하였지만…….
“엄마한테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고, 단지 가고 싶다 하면 엄마가 허락해 줘야 한다고 보니?”
“…….”
당연하다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기에 주안은 그저 엄마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뭐라 말이라도 하라는 듯 신호를 보내어 오는 엄마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주안이 입을 열었다.
“실은 우리 가문의 초대 가주이셨던 힉스 마르티네스 가주님의 아내이신 마를렌 마르티네스 님에 대해서 알아볼 게 있어요.”
“응? 그분은 갑자기 왜…….”
가문 내에서도 딱히 언급이 없는 마를렌 마르티네스라는 그 이름에 안젤라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듯했다.
아니, 그것은 소니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안은 조용히 엄마에게 말했다.
“제게도, 가문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에요.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라 말씀은 드리지 못하지만, 알게 된다면 엄마에게도 꼭 말씀드릴게요.”
주안의 진지한 그 표정이 안젤라는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 같아서는 ‘절대 안 돼!’라고 반대의 말을 내뱉을 수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그 먼 동부의 마를렌까지 간다는 것은 쉽게 허락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다만, 주안이 말하는 가문을 위한 일이라는 것에서 안젤라는 마음이 매우 복잡해졌다.
점점 더 엄마인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 더 넓은 장소, 가문과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주안이 멀어져만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안은 그런 엄마의 심정을 이미 다 안다는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 마를렌에 갔다가, 엄마랑 아빠. 두 분 모두에게 큰 선물을 준비해서 올게요. 그리 긴 시간도 아닐 거고, 정말 금방 갔다 올 거니까 잠시 외출을 보낸다 생각해 주세요.”
“우음…….”
주안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안젤라도 무작정 반대만을 외칠 수가 없었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안젤라가 조심스레 주안에게 물었다.
“얼마나 갔다 올 거니?”
“일단 넉넉히 잡아서 한 달이고 빠르면 20일 안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봐요.”
“마를렌에 가는데 겨우 한 달? 더 짧아질 수 있다고?”
이전에는 마를렌에 계신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의 생일에 맞춰 나름 위용을 갖춘 채 황도에서 마를렌으로 이동하였기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중간중간 가신들의 저택에도 방문하였기에 더욱 오래 걸렸다고 봐야 하였다.
하지만 주안은 이번 마를렌으로 향하는 길엔 정말 최소한의 인원으로 말을 타고 쉼 없이 달려갈 생각이었기에 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돌아오는 것은 새롭게 만들어질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것이기에 가는 시간과 워프 게이트를 만드는 시간, 그사이 마를렌 마르티네스 공작부인에 조사만 하면 되었으니 주안이 예상하는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듣는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갔다 오면 제가 그곳에 간 이유나, 금방 갔다 온 이유도 모두 말씀을 드릴게요. 분명 놀라실 일일 거예요.”
아들이 점점 비밀이 많아진다는 것에 안젤라는 조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처럼 무언가에 매달려 노력하는 모습이 썩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주안이 집을 벗어나 계속 바깥을 나선다는 것에서만큼은 쉽게 이해해줄 수가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안은 아직 집에서도 많은 것을 배워도 될 미성년의 아이였다.
물론 올해가 지나면 정식으로 성년식을 치르고 성인이 되겠지만, 그래도 미성년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평범한 가문에서도 이 나이의 아이들을 바깥 외출을 그렇게 시키지 않으며, 시킨다 해도 영지 내의 활동이나 인근 영지의 초대에 응해서 움직이는 것 정도일 뿐이다.
주안은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달랐다.
아니, 달라지고 있었다.
스스로 끝없이 움직였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였으며, 점점 더 멀리 나아가려는 듯했다.
그것도 너무나 빠르게, 그런 아들과 보폭을 맞춰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아니라 주안만이 엄마를 멀리 떨어뜨려 놓고 가버리는 듯하여 안젤라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안젤라는 더 이상 주안을 붙잡고, 자신의 곁에 앉혀둘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주안이 하려는 일에 응원해 주고, 좋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현재로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주안의 행복에 자신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임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다.
“……생각, 해보고 말해줄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허락해 주지 않는 것은, 작고 귀여운 투정 정도일 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엄마의 행동에 주안이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조금 뿔이 난 듯 안젤라가 입술을 삐죽였다.
“밥 여기서 먹을 거야.”
“으음……. 그럼 전 워랜 경에게 잠시 가볼게요. 워랜 경에게도 좀 물어봐야 해서.”
“엄마 아직 허락 안 했거든?”
“아하하…….”
하지만 주안은 엄마가 분명 허락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싫어하고 반대를 하였다면 생각을 한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엄마에 대해서 잘 아는 주안이었기에, 나름 이런 모습에 안심하며 방을 나설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