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49화
주안은 메데아 대족장에게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찾아와 일정을 말해주는 것으로 약속한 뒤 아미엘과 함께 세계수의 방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과 통하는 워프게이트 앞에 섰다.
하지만 주안은 세라타를 먼저 워프게이트 너머의 자신의 방으로 보낸 뒤 아미엘에게 말했다.
“저기, 아미엘 님.”
“음? 왜 그러느냐?”
“……몬스터라는 게, 그렇게 위험한 생명체예요?”
“위험하다라…….”
주안에게 몬스터란 그저 상상속의 동물일 수밖에 없었다.
현세대의, 서방 대륙에서의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역시나 전염병이나 가뭄, 홍수, 산사태와 지진 등의 자연재해이지 여기에서 맹수와 같은 위협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위협이 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깊은 숲이나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이런 맹수에게 위협을 당하는 것은 매우 희박하였다.
게다가 마물은 먼 남부 대밀림 깊숙한 곳에서 달란트 부족에 막혀 볼 기회조차 없었고 요물은 동방 대륙을 벗어나지 않기에 역시나 이 대륙 사람들에겐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마물과 요물에 빗댈 수 있는 몬스터란, 그저 조금 더 두렵던 맹수 정도로 기록, 아니, 전설로 남아 있는 현세대에서 얼마나 큰 두려움인지 주안으로선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공존이 불가능하여, 신께서 이종족들과 인간을 위해 드래곤들에게 부탁을 하여 그 몬스터들만이 살아갈 땅으로 인도를 하였을 정도란다.”
“공존이 불가능하다면…….”
“일전에도 말하였을 것이다. 언젠가 몬스터는 인간과 이종족들을 몰아내고 이 땅을 차지할 운명을 가졌던 생명체라고 말이다.”
“…….”
아미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종족들과 인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믿지 못할 말들을 해주었다.
하지만 쉽게 믿을 말들이 아니었기에 주안은 반신반의하였지만, 이처럼 진지한 아미엘을 모습을 보니 단순히 해주는 말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사실만을 재차 깨닫게 될 뿐이었다.
“만약, 다시 이 땅에 몬스터가 찾아와 발을 디디고 있다면……. 드래곤들이 분리해놓은 몬스터들의 땅과 이곳에 무언가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의미이니…….”
그리고 조용히, 나지막이 아미엘이 주안에게 말했다.
“세상에 큰 혼란이 찾아올 수도 있단다.”
“하지만 달란트 부족이 충분히 잘 제어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점은 다행스럽다 생각은 한단다. 오랜 세월, 몬스터가 아니라 마물로서 불리고 그렇게 지내었다면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나…….”
아미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며 말을 이었다.
“둑은 작은 틈으로 인해서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란다. 이 작은 틈이 언제 어떤 형태로 무너져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지금으로선 그 작은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본단다.”
“아미엘 님…….”
그녀는 과거에도 이렇게 소중한 이들을 지켰고, 그 과거의 지켜야 하던 이들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려는 듯했다.
그 마음이 너무 고왔지만, 혼자 힘으로 그 모든 짐을 떠안으려는 모습이 너무나 고독해 보였고 가련하였다.
그렇기에 주안은 잠시 머뭇거리다 아미엘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제게는 큰 힘이 없지만, 이건 큰 힘이 될 수 있잖아요.”
주안이 싱긋 웃으며 자신의 왼손을 들어 성흔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주안과 성흔을 바라보던 아미엘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다가와 주안의 왼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꼬옥 잡아주며 말했다.
“그래. 내게 힘이 부치는 일이 있다면 이 힘에, 아니 너에게 기대어 보도록 하마.”
“예. 꼭 그렇게 해주세요. 저 혼자만이 아니에요. 아미엘 님도 혼자가 아니에요. 다 같이, 모두가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고맙구나.”
그리고 아미엘은 조용히 주안의 왼손을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따뜻한 그 손길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그녀의 외로움과 쓸쓸함, 혼자가 되어버린 그 상처를 치료해주듯 주안은 자신의 성흔에서 신성력을 끌어올렸고, 그녀를 따뜻한 신성력으로 포근히 감싸 안아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미엘에게 신성력의 빛으로 감싸주다, 아미엘이 조용히 주안의 손에서 벗어난 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말했다.
“그만 가 보도록 하거라. 저쪽에서의 시간은 벌써 늦은 밤이 아니더냐. 그리고 너를 기다리는 아이도 있으니 말이다.”
“예,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아미엘 님.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아셨죠?”
“후훗. 그러도록 하마.”
주안의 걱정에 아미엘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누군가에게 걱정을 받을 만큼 자신은 결코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모든 드래곤들의 아버지라고도 불린 크세니아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였던 요정들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년은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도 않는 듯, 그저 진심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걱정해 주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럼 갈게요, 아미엘 님.”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주안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주며 배웅을 해준 아미엘은 주안이 워프게이트 너머로 건너가 문이 닫힐 때까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주안이 지나간 자리의 뒤를 눈으로 좇았다.
근심과 걱정만 가득한 일들이 많았지만, 주안이라는 아이와 함께 있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어두운 기분이 모두 날아가는 듯하였다.
그렇기에 웃을 수 있었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 * *
주안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복잡하게 얽힌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며 자신이 가장 먼저, 그리고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일들을 정리하느라 거의 밤을 새워 버렸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런 것은 주안만이 아닌 듯, 주안의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 역시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과 주안이 벌인 일이 겹치는 바람에 황성에서 이 일에 대한 일로 밤을 새워 버린 듯 저택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게 다행스러운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내인 안젤라에게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점은 다행이지 싶었다.
대신 주안 역시 그런 엄마를 달래는 한편, 설득과 함께 잠이 들 때까지 곁을 지켜주었기에 황성까지 쳐들어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일들로 밤을 지낸 주안이었고 엄마가 잠든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결론을 내린 것은 하나였다.
“마를렌…….”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은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맡겨도 되었고, 메데아 대족장에 관한 일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아무리 다른 이들이 먼저 나선다 해도 남부 대밀림이 어디 쉽게 갈 수 있는 장소도 아니며 그들 역시 절대자에 가까운 존재와 함께 수많은 전사가 모여 있는 집단을 건드릴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주안은 아미엘을 위해서라도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마를렌으로 가서 자신의 선조에 대한 것을 조사하여 아미엘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워랜 경에게 부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가야 해……. 세냐랑 마냐, 아냐가 워프게이트를 만드는 사이에 난 마를렌 님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 되니까.”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는 방법은 결국 세 요정 꼬맹이들이 워프게이트를 만드는 사이 주안은 마를렌의 서고에서 밤을 새우고 그곳에서 사는 한이 있더라도 선조인 마를렌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일단, 세냐를 찾아야 하는데…….”
어제의 일 때문인지 세냐나 마냐, 아냐 조차 주안의 눈을 피해 이 거대한 저택 곳곳을 숨어 다니며 놀고 있는 듯했다.
주안의 눈만 피하고 다닐 뿐, 평소처럼 지내는 것 같아 조금 발끈하긴 했지만 지금은 세냐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처지이기에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시간 잠을 자지도 못하였지만, 지금은 피곤함에 다시 침대에 누울 수가 없었다.
주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자 마침 주안에게 찾아오던 세라타가 주안을 보고는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였다.
“도련님! 좋은 아침이에요.”
“응. 세라타도 좋은 아침이야. 아, 그보다 세라타.”
“네?”
방긋 웃으며 총총총 달려오는 세라타를 보며 인사를 하던 주안이 넌지시 세라타에게 물었다.
“혹시 세냐 어디 있는지 알아?”
“세냐요? 그게…….”
“아, 이번에는 혼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부탁을 할 게 좀 있어서. 혹시 알면, 가서 좀 전해주지 않을래?”
“우음…….”
다른 사람보다도 세냐와 마냐, 아냐와 무척이나 친한 세라타였기에 세 꼬맹이가 어디 있든 금세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주안이 세라타에게 직접 부탁을 하였고 세라타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혼내지 않는다면 세냐도 허락을 할 거예요.”
“응. 진짜 혼내려는 게 아니니까, 꼭 좀 부탁…….”
“세냐~ 도련님 말씀 들었지?”
“……응?”
세라타의 말에 주안이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냐가, 근처에 있었어?’
하여튼 이곳저곳 참 잘 숨어 다닌다는 생각에 주안이 입술을 삐죽였다.
쥐덫을 괜히 놓은 게 아니었고, 그 쥐덫에 걸리지 않은 세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세냐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갸웃하며 세라타에게 세냐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려 하였던 주안이었지만, 세라타의 상의의 가슴 부근이 불룩해지더니 무언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에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너 왜 거기 있는 건데.”
세라타의 옷 속에서 나온 세냐는 잠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질하다 주안의 말에 시큰둥하게 답했다.
“취미니까 존중해 주시죠. 그보다 부탁할 게 있다면서요? 그리고 맨입으로 안 되거든요?”
취미 한번 이상하다는 말을 해주려다 또 싸울 것 같아 주안은 억지로 참아내며 말했다.
“그래……. 뭐, 나도 맨입으로 부탁할 생각 없었어.”
세냐가 손을 내밀자 주안은 그 행동의 뜻을 이해한 듯 자신의 손가락을 내밀어 세냐의 손바닥에 꾸욱 눌러 주었다.
약속의 증표였고 만약 어기면 엄청난 위약금이 발생한다는 계약의 의미이기도 하였다.
이런 주안의 행동에 만족한 듯 세냐가 쿠후후, 작게 웃어주었다.
정말이지 밉살 넘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약속과 제대로 된 거래를 해주면 신용 있게 답해주는 것이 세냐였기에, 이런 거래에 대한 신용은 대단하였다.
그렇기에 안심하며, 한편으로는 어떤 것을 요구할지 걱정하면서 세냐에게 말했다.
“실은 급하게 마를렌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마를렌? 아, 워프게이트 설치해 달라는 곳이요?”
“응. 거기에 급하게 좀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아미엘 님이 부탁하신 거, 빠르게 해결해야 될 듯하거든.”
세라타가 곁에 있었지만 이미 주안의 방에 뭐가 있는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다 겪었기에 말을 꺼내어도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단지 여전히 주안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듯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는 듯 질문 없이 그저 조용히 주안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이런 주안의 말에 세냐가 흐응~ 하고 잠시 생각을 하였지만 금세 정리를 한 듯 주안에게 말했다.
“뭐, 딱히 상관은 없는데……. 설치하는 것도 오래 걸리진 않아요. 이미 여기에 좌표가 설정되어 있어서 길만 터주면 되는 일이라서요.”
“정말? 그건 다행이네.”
“그런데 아미엘 님의 일이 그렇게 급하게 되었어요?”
세냐는 주안의 말에, 특히 아미엘이 언급된 것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매우 궁금해하였다.
“급하다고 할까, 그냥 내가 너무 굼뜨게 움직인 것 같아서 말이야. 요즘 여러 일도 있었지만, 아미엘 님의 부탁을 가장 먼저 들어줬어야 했는데…….”
“흐응~ 나쁘지 않은 행동이네요.”
주안이 아미엘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말에 세냐는 매우 만족한다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세냐와 이곳에 없는 마냐와 아냐는 주안을 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아미엘을 위해서 움직이는 몸이었고, 아미엘을 위해서 행동하려는 주안이 아주 조금은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언제 가실 거예요?”
“일단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고 바로 갈 거야. 이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이면 갈 거니까.”
“헤에, 허락은 받을 수 있고요?”
“으음…….”
세냐가 실실 웃으며 주안을 흘겨보다, 받을 수 있어! 라고 단번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혼담 이야기 때문에 엄마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데, 이런 상황에서 주안이 또 어딘가로 가버린다고 하면 엄마가 화를 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안과 오래 지내지는 않았지만, 주안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파악이 끝난 듯 주안의 이런 행동에 세냐가 쯧쯧 하고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어휴, 대체 어떻게 하면 엄마를 이렇게 무서워하실까.”
“무,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걱정을 끼쳐드릴 수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
“예이, 예이~.”
“으…….”
세냐의 능글맞은 그 행동에 주안이 볼을 발그레 물들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런 주안과 세냐의 모습에 세라타가 쿡쿡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고, 세라타의 모습에 주안의 볼이 더더욱 빨개지며 얼굴을 넘어 목덜미까지 붉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