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48화
“한 가지만 묻겠다, 달란트의 아이들이여. 아니, 카마르라고 하였느냐.”
“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미엘이 조심스레 카마르 족장에게 말했다.
작고 어린 소녀의 말에 카마르 족장이 갸웃했지만, 아미엘이 어떤 존재인지 이미 들어서 알기에 불쾌함을 가지지 않았다.
“네가 바깥의 마수라는 생명체를 잡아 온다고 들었다. 맞느냐.”
“그렇소만.”
물론 그 혼자 하는 일은 아니며, 지금은 잠깐 보고도 할 겸 돌아온 것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미엘은 이런 카마르의 말에 곰곰이 생각을 하다 말했다.
“마수의 생김새가 어떠했는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느냐?”
“생김새? 어떤 마수를 말하는 것이오? 한 두 녀석이 아닌지라…….”
“네가 얼마 전에 잡아 왔다는 마수의 생김새면 충분하다.”
대체 그걸 왜 묻는 것인지 몰라 카마르가 갸웃했지만 진지한 아미엘의 모습에서 잠시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무지막지하게 컸소. 보자, 우리 대족장을 세 명 정도 세우면 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지 짐작은 하다 생각되오. 게다가 그 피부는 참 이상했다오. 색도 칙칙한 회색에…….”
“외모적인 특징보다 능력적인 특징이 듣고 싶구나.”
“능력?”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카마르 족장이 말했다.
“피부가 더럽게 질긴 것도 모자라 완전히 잘라내지 않는 이상 그냥 그대로 다시 붙어서 말짱해지더이다. 배를 뚫어버리고 어깨를 박살 내도 그때뿐이지, 금세 멀쩡히 돌아다니는 게 아주 괴물 같은 놈이었소.”
“…….”
“게다가 그 덩치로 얼마나 재빠른지, 나무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매달리는 것을 보면 무슨 원숭이를 보는 것 같았소.”
카마르 족장에게도 조금 힘든 녀석이었던 것인지 잔뜩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정면으로 싸운다면 우리 부족 전사들도 어떻게 상대할 만하였는데, 그 빌어먹을 재생능력이나 나무를 오고 가는 재빠른 몸놀림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오.”
기본적으로 이들도 서방의 전사들답게 단단한 근육질의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지라 아무리 대밀림이 집과 같았다 해도 그런 움직임을 가진 거대 마수를 상대하는 것은 조금 버거운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질긴 피부에 그것을 뚫어내어 상처를 내어도 금세 회복하는 회복력까지 갖추었으니, 제대로 된 실력자가 급소인 심장과 머리를 박살 내거나 목을 잘라 버리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다시 일어나 싸워대었기에 다수보다는 확실한 실력자인 카마르 족장이 직접 나서서 상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카마르 족장의 말에 아미엘의 표정이 주안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나빠져 있었다.
“……오우거…….”
의심은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수, 아니, 몬스터.
“어째서 그것들이…….”
……인간과 이종족을 위협하였기에 신이 드래곤을 이용해 타 차원으로 보내었던 몬스터가 다시 대륙에 등장하고 있었다.
* * *
“몬스터라니요?”
주안 역시 아미엘 만큼이나 그녀의 말에 놀란 듯했다.
몬스터는 이미 멸종된 고대 생명체다.
한때 번성했다고는 하나,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추었고 그 이유에 대해선 아미엘에게서 들었기에 마수와 몬스터를 연관 지어 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몬스터가 뭔가?”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듯 메데아 대족장이 갸웃하였다.
그것은 메데아 대족장 뿐만이 아니라 카마르 족장이나 라쿰바, 카사와 오랜 연륜을 가진 파나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안 역시 의아한 듯 아미엘에게 시선을 주자, 아미엘 역시 지금의 이 상황이 조금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하였다.
“나 역시 잘 모르겠구나. 그것들이 어째서 다시 나타난 것인지, 어이해서 마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인지…….”
애초에 아미엘은 자신이 살던 시대와 지금 이 시대의 시간이 얼마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인지 아직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의 간극은 상상 그 이상으로 벌어져 있다는 것만 대략적으로 이해할 뿐이니 말이다.
“진짜, 몬스터가 맞아요?”
“외형적인 특징이나, 특성이나……. 비슷하긴 하단다.”
“그래도 확신을 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마물이 나타난 건 좀 되긴 하였지만, 아미엘 님이 있던 시대와는 상당히 차이가 날 거예요.”
주안은 이곳, 아스란 왕국을 오기 전이나 이곳에 와서 자신이 제대로 모르는 마물에 대해서 아르베리아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통해 들은 후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알아보았다.
특히 아스란 왕국의 왕성의 도서관에서는 이러한 마물에 대한 자료가 생각보다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남부 대밀림과 경계면에 위치한 탓인지 다른 위험도 위험이지만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과 맹수, 독충, 나무나 기타 환경적인 요인 등등을 매우 자세하게 조사해 놓았었다.
그래도 한때 이곳을 정복하려고 하였던 이들인지라, 당연하다면 당연한 조취나 마찬가지였다.
그중 마물에 대한 것들은 맹수들과는 너무나 다른 존재로 수가 일정치 않고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며 서식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동방 대륙의 요물과 비슷한 형태로 등장하되 남부 대밀림의 깊숙한 곳에서만 서식하며 원주민들과의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나 많지는 않지만 그 종류에 대한 기록되어 있었다.
“마물이 처음 발견된 건 500년 전쯤, 아스란 왕국 최전성기 시절이었다고 해요.”
당시 남부 3국이라고 하면 아스란과 함께 맥도넬과 체스커로 제국으로 발돋움하던 당시의 제노폴과 함께 대륙 중남부의 패권을 다투던 국가였다.
하지만 결국 맥도넬과 체스커가 제노폴에 무릎을 꿇은 뒤 제노폴이 걸음을 멈추어 아스란 왕국은 큰 피해를 입지는 못했지만 대륙 중부로 향하는 모든 길이 끊어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는 방법으로 남부 대밀림의 개척으로 눈을 돌린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번번이 그 길을 가로막는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 달란트 부족과의 마찰이 대단했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남부 대밀림의 일부분까지 밀고 들어가 수많은 모험가와 학자들을 끌어모아 남부 대밀림의 생태 조사나 쓸 만한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마주한 것이 바로 마물이었다.
“뭐, 아스란 왕국의 입장에서 적혀있던 자료들이긴 하지만 처음 조우한 마물들 때문에 큰 피해를 입고, 그것도 모자라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 달란트 부족의 부족민들에게 습격을 당해서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어요.”
“킁. 그런 일도 있었나? 뭐, 바깥 주민이 옛날에는 많이 찾아오기는 하였지.”
“하하…….”
딱히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달란트 부족이기에, 자신들의 선조, 조상에 관한 일이 아니라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메데아 대족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보니, 큰 문제로 번진 일까진 아닌 듯했다.
“어쨌든 마물이 대륙에 알려진 건 딱 그 시기였어요.”
“옛날에는 우리도 마물이 뭔지 잘 몰랐다. 그냥 좀 많이 강한 이상한 맹수들이었으니까. 그래도 나름 좋은 먹이였고, 쓸 만한 가죽과 뼈도 주는 훌륭한 가축 정도였을 뿐이다.”
주안의 말에 카마르 족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나, 만만하게 봐선 안 되었지요. 우리 역시 마물이 뭔지 몰랐기에, 큰 피해를 입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나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좌중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야 마물이 나타나는 장소의 경계를 부족민들이 지키고 있지만, 그 전까진 마물들은 갑자기 나타나 부족을 습격하고 대밀림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그랬지……. 나도 그건 들어서 알고 있다. 선대 대족장인 두란 대족장께서 나서서 마물들을 사냥하고, 마물들이 나타나는 곳의 경계를 만들며 전사들을 보내고 사냥을 하여서 더 이상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메데아 대족장 역시 파나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물들은 하나하나는 강하나, 그것들은 서로 뭉치지 않습니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어디에 서식지가 있는데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갑자기 나타날 때도 있고, 자고 일어나면 마치 그곳에 있던 것처럼 돌아다니고 있기도 합니다.”
역사를 기록하지는 않지만, 이어져 내려오는 말들을 듣고 기억하고 필요할 때 풀어내 주는 역할을 하는 파나르는 그 방대한 지식을 모두 머릿속에 저장을 해두는 듯했다.
그렇기에 존중을 받는 듯, 그의 말에 족장이든 부족장이든, 대족장이든 가리지 않고 집중을 해주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마냥, 그것들은 나타납니다. 때문에 그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어 그나마 안전한 안쪽을 경계로 부족민들을 지켜내고 있을 뿐이지요.”
먹이라고는 하나 갑자기 나타나 습격하는 마물들은 경계를 할 수밖에 없는 매우 위험한 먹이이기도 하였다.
해결책이 없다는 말처럼,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물들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장소를 파악하고, 등장하지 않는 장소를 나누어 그 중간 경계선에 전사들과 새로운 부락을 건설하여 안전한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끔 하는 게 달란트 부족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듣던 주안은 무언가 떠오른 듯 조용히 말했다.
“그런 게 또 있어요. 갑자기 나타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생명체들…….”
“그런 게 또……?”
주안의 말에 파나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록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라고는 하나, 지식에 항상 목마른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안은 파나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방의 요물들이에요.”
“요물?”
“예. 요물이요. 동방에서 역시 갑자기 나타나 주변의 모든 것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생명체로 불리고 있어요. 하지만, 그게 마물도 해당된다고는 전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어요.”
주안이나 다른 학자들 역시 이 마물들을 포악한 생명체 정도로 보고 있었을 뿐이다.
미지의 영역인 남부 대밀림에만 서식하는 맹수로 취급하였지만, 파나르의 말을 종합하면 마물은 마치 요물들과 매우 비슷한 생명체로 보였다.
무엇보다 갑자기 등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것과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 등등이 흡사하였다.
“하지만 그게 정말 몬스터일지는…….”
“그래. 알 수는 없지. 하지만 확인을 해볼 필요는 있구나.”
단지 이야기를 듣는 것과 의심만으로는 확신을 할 수는 없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직접 가서 보는 것이었다.
“만약, 정말 마물이 몬스터라면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구나.”
“하지만 그동안은 크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하지만 그런 말을 하려던 주안도 순간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아니,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다.
단지 느끼지 못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서방 대륙에서 마물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바로 남부 대밀림의 달란트 부족이었고 저 먼 동방 대륙의 이야기는 역시나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만약, 달란트 부족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동방 대륙처럼 어제의 이웃이 갑작스러운 습격에 큰 피해를 입고 늘 주변을 경계해야 하는 그럼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다.
주안 역시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듯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 청이 있구나.”
“말씀하시게, 정원사님.”
그리고 주안이 고민하는 사이, 아미엘은 메데아 대족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나를 너희들이 지키고 있다는 그 경계로, 마물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길 바란다.”
“위험할 수…… 있을 리 없겠구려. 쿠후후.”
메데아 대족장은 아미엘의 외모만 보고 그렇게 말을 꺼냈다가 순간 그녀의 힘이 어떠한지 떠올리고는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가서 보시고 가능하면 작은 도움 정도는 주시구려.”
“알겠다. 나 역시 두고 볼 수 없는 일, 배려에 대한 도움은 충분히 주도록 하마.”
“고맙소.”
메데아 대족장은 사실 아미엘의 걱정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녀가 경계로 가서 조금이라도 손을 빌려 주면 큰 도움이 되었기에 매우 만족스러워 하였다.
다만, 주안은 이런 아미엘을 무척이나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무언가 자꾸 그녀의 주변에 힘든 일들이 발생하는 듯하였다.
갑자기 이 세상과 단절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돌아왔지만 함께하던 이종족은 모두 사라진 것도 모자라 주안에게 새겨진 성흔에 이제는 사라졌던 몬스터까지.
그리고 이런 일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에 주안은 조금 씁쓸했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한 가지 뿐인가.’
아미엘이 부탁한 엘 하임 마를렌에 대한 것.
주안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마를렌으로 가서 알아본 뒤 아미엘에게 알려줄 것을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