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47화
“쿠후후. 뭐가 걱정인가. 손님의 초대다. 그리고 한 번쯤 바깥세상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게 간단한 일이오? 바깥이오, 바깥. 우리를 경멸하고 천시하는 바깥 주민들 틈으로 가겠다는 소리요?”
카마르 족장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고 그의 말에 라쿰바나 카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그동안 조용히 차만 마시던 파나르가 말했다.
“다녀오십시오, 대족장.”
“파나르! 왜 안 말리는 거요!”
파나르의 말에 카마르 족장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파나르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말했다.
“안 가면 찾아올 것이고 찾아오면 귀찮아질 것입니다, 카마르 족장. 그렇다면 차라리 찾아가서 귀찮게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최선 아니겠습니까.”
“끄응…….”
“게다가 바깥 주민들,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을 압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한때 남부를 휩쓸 기세로 진군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힘에 박살이 난 것은 아스란 왕국이지만, 이런 대규모 전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바깥과의 연결고리가 없다 해도 전혀 시선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몇십 년 전에 일어난 그 거대한 사건에 매우 긴장을 했었던 그들이었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힘을 간접적으로 겪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작은 손님의 말대로 마르티네스와 적당히 손을 잡는 모습만 보여도 저희는 손해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손님이 손해이지요.”
“킁! 실수를 했으면 그 정도는 떠안아야지!”
라쿰바가 콧김을 뿜으며 소리쳤지만, 주안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사실이니 말이다.
“바깥 주민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명예를 중시한다 들었습니다. 대족장의 힘도 있고 마르티네스의 힘도 있고, 명예도 있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파나르의 차분한 그 말에 불만을 가져도 뭐라 말을 하기가 참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 때문인지 카마르 족장이 결국 항복한 듯 메데아 대족장에게 말했다.
“……사고나 치지 마라, 대족장.”
“카마르, 그대나 나 없을 때 사고 치지 마라.”
결국 포기한 듯 카마르 족장이 팔짱을 낀 채 투덜거렸다.
이런 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주안은 다행이라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구했다는 것과 주안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지 않은 것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쿠후후. 심심하였는데 잘 되었구나. 그래, 출발은 언제 하면 되나?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갈 수 있다, 마르티네스의 주안.”
메데아 대족장은 더 이상 혼자의, 달란트 부족의 힘만으로 이곳을 지켜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자신마저 긴장시킨 아미엘도 그렇지만, 많은 요정은 작지만 매우 든든한 우군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아,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황제 폐하의 정식 요청이랑 저희 가문에서도 여러 가지 준비를 할 필요가 있어서 지금 바로는 조금 무리예요.”
“끄응……. 정말 복잡하구나.”
“그래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결정되면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달란트의 부족민들과는 달리 남부 대밀림의 바깥 나라들은 절차가 매우 복잡하여 사실 결정이 되었다 해서 곧바로 움직이거나 하진 않는다.
주변 상황을 다시 살피고, 도움을 받을 이들에겐 요청도 해야 하며 다른 준비 역시 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은 정말 부러워…….’
물론 이런 복잡한 절차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공을 들이는 만큼 안전하여 일을 진행할 땐 그만큼 다른 부담이 적다는 점은 좋은 점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복잡한 절차 때문에 일을 그르칠 때도 있었기에, 뭐가 더 좋고 뭐가 더 나쁘다고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 그보다 몇 분이나 방문하실 생각이세요? 일단 달란트 부족의 위용을 보여준다면 제 생각에는…….”
달란트 부족원들이 제국으로 와서도 그들이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켜주기 위해선 마르티네스 공작가만의 도움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대략적인 규모를 생각해보고 거기에 따라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무엇을 얼마나 준비할지 결정하면 일은 좀 더 쉽게 진행이 될 수 있었기에, 주안은 이왕 이렇게 이곳에 온 김에 허락도 받았겠다, 그런 부분을 미리 결정하고 매듭을 짓고 가면 편할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생각에 메데아 대족장은 팔짱을 낀 채 히죽 웃으며 간단히 답했다.
“나 혼자 갈 거다.”
“……예?”
“나 혼자면 충분하다. 괜히 몰려가면 복잡하기만 하고 사고만 쳐서 안 된다.”
“우리 사고 안 친다! 그리고 가자고 해도 안 간다! 대족장 혼자 가서 놀아라!”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라쿰바가 발끈하였고 카마르 족장은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쉴 뿐이다.
이런 씩씩거리는 라쿰바를 보며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혼자 가시는 것은 좀…….”
“왜? 안 되나?”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달란트 부족의 위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준다면 단지 저희 가문의 비호가 아니라 순수한 달란트 부족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리면 좋지 않을까요?”
주안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나 혼자 가는 게 낫다. 다른 녀석들 여기 지켜야 한다.”
“아…….”
사실 아미엘이 있어서 든든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을 빼내어 가는 것은 힘들긴 하였다.
자신을 대신할 녀석이야 카마르 족장이나 다혈질이긴 하지만 라쿰바도 있었다.
곁에서 파나르가 적절히 조언을 해주고 가르친다면 부족을 움직이는 것이 크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바깥을 나서는 것도, 주안의 초대에 응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바깥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물론, 개인적인 즐거움도 반 정도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보여준다는 힘, 위용. 나 혼자라도 충분하다, 마르티네스의 주안.”
그래, 그랬다.
눈앞의 이분이 대체 누구인지. 어떤 경지에 오른 존재인지, 주안은 잠시 잊고 있었다.
토미 역시 혼자 오롯이 일인 군단이라 불리며 전장에 섰고, 그때마다 도망쳐야 하는 것은 수백, 수천의 집단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그런 과거이자 미래의 토미와 동급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였다.
자신만만한 그 모습은 강자의 여유였고, 당연함이기도 하였다.
이런 메데아 대족장의 모습에 카마르 족장이나 라쿰바 부족장, 카사나 파나르 역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메데아 대족장의 강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곁에서 지켜보아온 이들이었기에, 당연한 믿음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주안은 자신의 걱정이 마치 연약한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을 걱정해 주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인 꼴불견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어색하게 웃어주며 메데아 대족장에게 말했다.
“예. 그러면 오시는 길은 훨씬 빠르시겠네요.”
이곳에서 아스란 왕국 남부로 갈 때 카사의 다이어 울프를 타고 순식간에 이동해 본 경험이 있었던 주안이었고, 그 이전에 메데아 대족장의 품에도 안겨 세계수를 감싼 호수를 달려서 건너보았던 일도 있었다.
그렇기에 혼자 온다는 메데아 대족장이라면, 길만 알려주면 정말 순식간에 제국의 남부 국경, 아니, 어쩌면 혼자 거길 넘어서 황도까지 순식간에 달려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일이 좀 복잡해진다.
느려도 황제의 인가가 떨어진 후 정식으로 들어와야 하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들과 함께 와야만 하였다.
그렇기에 메데아 대족장이라면 아미엘이 허락했을 워프게이트의 사용도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저희 제국의 남부 국경에서 맞이해 주는 제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가문과 메데아 대족장님이 어떤 사이인지, 확실히 보여주어야 귀찮은 일이 대부분 해결이 될 거거든요.”
“킁. 바깥의 사람들은 정말 복잡한 걸 좋아하는군.”
“달란트 부족처럼 서로 가족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참 복잡하거든요.”
아니, 사실 가족이라고 해도 그 관계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단지 달란트 부족이 특이할 뿐이다.
“뭐, 알겠다. 난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 준비가 되면 찾아와라, 마르티네스의 주안.”
“예.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메데아 대족장님. 그리고 달란트 부족 모든 분께도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드려요.”
주안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메데아 대족장 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카마르 족장, 라쿰바 부족장, 카사와 파나르에게도 감사와 사과의 말을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그 인사에 바깥 주민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늘 찌푸려있던 라쿰바마저 킁, 하고 콧바람을 내며 주안을 조금은 다르게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최근 받아들였다는 저 손님은 확실히 조금 다르긴 하군.”
“쿠후후. 영감이 이상할 뿐이지, 마르티네스의 주안과 같이 온 손님들은 다 괜찮은 녀석들이다, 카마르.”
“라쿰바 녀석을 혼내준 아이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건 좀 아쉽군.”
강함을 숭상하고 삶 자체가 전투적인 달란트 부족이라 그런지 카마르는 자신의 아들을 박살 낸 워랜에 대해서 분노를 드러내기보단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주안이 혼자 온 것이 매우 아쉬운 듯하기에 주안은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주안을 보며 메데아 대족장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올 때 노밀의 워랜도 데리고 와라. 우리 정원사님의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나?”
“그건…….”
메데아 대족장은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를 채고 있는 듯했다.
주안이 이전과는 달리 이곳에 달란트 부족 누구의 도움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것과 주안이나 세라타의 일상복 차림, 그리고 아미엘과 함께라는 점에서 아미엘의 힘이 작용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안은 이런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걸 이용하면 편하게 오실 수 있으실 텐데…….”
“이해하니 계속 미안해하지 마라. 이곳에도 사정이 있는 만큼 너의 사정도 있다는 것 안다. 그리고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사정이니 미안해할 필요 전혀 없다.”
“……예.”
주안은 정말 메데아 대족장이나 이곳의 달란트 부족에게 폐만 끼치는 듯했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는 신경도 안 쓰는 대인배인 듯 주안의 탓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점이 너무나 감사하였기에, 메데아 대족장이 제국에 방문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편하게 모시고자 마음먹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가능하면 달란트 부족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이것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지만, 주안은 남부 대밀림에서 있었던 일과 달란트 부족에게 받은 좋은 대우를 모두 이야기할 생각이기도 하였다.
“쿠후후. 그러면 온 김에 밥이라도 먹고 가라. 마수 고기도 있지만, 바깥 주민이 먹기에는 힘들 수 있다. 멧돼지 고기라면 많으니 그거라도 준비해 주마.”
“아, 저녁은 먹고 와서…….”
“음? 그런가? 그러면 다음에 와서 많이 먹도록 해라.”
“예. 다음에는 워랜 경도 데리고 와서 잔뜩 먹을게요.”
“쿠후후……. 먹고 한바탕 하겠구만.”
주안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흘깃, 카마르 족장을 바라보자 그가 만족한 미소를 짓는 것에 눈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라쿰바 마저 콧김을 뿜어내는 것을 보니, 그때의 복수를 다짐하는 듯했다.
여러모로 워랜이 오면 참 피곤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