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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45화 (145/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45화

“길이 엄청 반듯해요, 도련님. 저기, 저 건물들도 정말 예뻐요.”

조금 낡긴 하였지만, 크게 망가진 곳 없이 반듯한 길과 곳곳에 자리를 잡은 달란트 부족의 천막과 집들은 세라타에게 매우 신기한 듯했다.

지나치게 밝고 강렬한 색상을 좋아하는 달란트 부족들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에도 스스로 화려한 염색해 놓고 여러 문양과 그림을 그려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은 곳곳에 자리를 잡은 천장이 낮은 집들도 마찬가지였다.

“세라타, 그거 알아? 달란트 부족의 사람들은 예술에도 조예가 엄청 깊어.”

“헤에, 정말요?”

주안이 빙글빙글 웃으며 하는 말에 세라타는 조금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을 제국 수도인 황도에서 주안과 함께 있다 만나본 일이 있었고, 지금도 이곳에 모인 많은 원주민의 그 겉모습만 본다면 예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훌륭한 전사라면 이해하겠지만 말이다.

“쯧쯧쯧. 우리 세라타가 이리도 시야가 좁았다니.”

“우…….”

주안이 혀까지 차며 실실 웃자 세라타가 볼을 살짝 부풀렸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야. 노래도 엄청 잘하고 춤도 되게 잘 추고, 독특한 그림이나 가죽 세공품을 보면 깜짝 놀랄 걸.”

달란트 부족은 단순히 강한 것만이 전부가 아닌 이들이었다.

그들은 웃고 떠들고 즐기는 음악을 좋아하고 함께 어울려 축제를 벌일 땐 춤을 빼먹지 않는다.

단순해 보이는 타악기를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달빛 아래 춤을 출 때면, 그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만들고 제작한 가죽은 튼튼하고 매우 질겼으며 품질이 굉장히 뛰어났고 독특한 그림들도 꽤나 대단하였다.

보통 이런 귀한 물건은 너무 많이 봐와서 나름대로 눈썰미가 있는 주안이었기에, 이들이 만든 가죽 제품들을 시중에 내놓는다면 엄청나게 큰 이슈를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주안이 세라타에게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던 아미엘은 근심 가득하던 표정이 조금은 풀리더니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냥을 하고, 그 사냥품의 가죽을 이용해 공예품과 예술품을 만드는 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오크들의 전통이자 특기였단다.”

“음음, 그럴 줄 알았어요.”

확실히 범상치 않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가죽을 두드리고 멋진 제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상상하니, 뭔가 장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이 느껴졌던 것들이, 아미엘의 시절에서부터 쭈욱 이어져 온 상상 이상으로 오래된 것이라는 깨닫자, 새삼 달란트 부족이 더욱 대단해 보였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은 제국에서는 흔치 않았다.

저 먼 동방 대륙이라면 또 모를까, 대암흑기 이전의 역사가 거의 지워지다시피 한 서방 대륙이었고 그 후로도 몇백 년에 걸친 전란 속에서 남아 있던 것들도 모조리 파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역사를 이어나가며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지켜나간다는 점에서는 자부심이 있었다.

적어도 사라진 것에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평화의 시대에 급속도로 발전시킨 점에서는 칭찬할 만한 일이니 말이다.

“그럼 다른 이종족들도 달란트 부족처럼 그런 전통이 많이 있었겠네요?”

“물론이지.”

주안이 이종족들에 대해 궁금해하자 아미엘은 매우 기쁜 듯 표정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느낀 것은 주안밖에 없었고, 타인이 보기에는 아미엘은 여전히 무표정할 뿐이었다.

“엘 하임의 엘프들은 세계수의 잎과 줄기를 이용해 실을 짜고, 그 실로 옷을 지어 입었지. 매우 가볍고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정말 따뜻한 옷이었단다.”

“헤에, 그런 게 있었어요? 대단한데요…….”

가볍다는 것은 그만큼 얇다는 의미였고 시원함은 있을지언정 따뜻하다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미엘은 즐거운 듯 말을 이어갔다.

“또한 지상의 작물과 열매를 키우고 관리하는 것에 따를 자들이 없었단다. 나무와 대화하고, 바람을 읽고, 날씨를 보는…… 그들은 숲의 정원사들과 같았지.”

정원사라는 말에 주안이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억지로 참아내었다.

앞서 나가는 카사가 아미엘에게 정원사님이라고 표현한 것이 괜히 떠오른 듯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미엘은 주안의 이런 웃음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칸데의 드워프들은 정말 대단한 장인들이었단다. 그들의 손을 거쳐 가는 것은 모든 게 예술품이 되었고, 땅의 목소리를 듣고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면 원하는 광석은 뭐든 얻을 수 있었단다.”

“아, 확실히 드워프들의 유물은 아주 가끔 나오긴 했어요. 제국 황실 보고에도 몇 개가 있었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주안은 아무나 갈 수도 없는 황실 보고를 놀이터처럼 이용하던 때도 있었기에, 그곳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모두 알지는 못하여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건 몇 개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들이었으며, 그중 하나가 드래곤 하트였고, 다른 하나는 드워프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보석 세공이었다.

보석 세공은 황실 보고에 널리고 널렸지만, 그 모든 것을 돌멩이처럼 만들어 버리던 게 바로 드워프의 보석 세공이었을 정도로, 주안은 그 강렬함이 커서 매우 오래전의 일임에도 여전히 기억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그래, 대단하였지. 이 길도, 저 집들도 모두 칸데의 드워프들이 만든 것들이기도 하단다.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지.”

“예? 이 길과 저 집들이 모두……? 하, 하지만 그러면 대체 언제 만들어진…….”

“조금 과하게 튼튼하게 만들었지. 웬만해선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이곳은 마지막 보금자리와도 같았기에 나 역시 한 손 거든 것이니 말이다.”

“아…… 아미엘 님도 이곳을 만드는 데 힘을 쓰셨어요?”

“그래. 나와 엘 하임의 엘프들의 집은 세계수이나, 달란트의 오크들과 칸데의 드워프들은 땅을 밟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라 이곳에 터전을 만들어야 하였단다.”

들어서 알고는 있다지만, 이종족들이 한데 모여 살아갔다는 것은 주안이 상상하기 참 힘든 것이었다.

그 시절을 겪은 것도 아니고, 그러한 역사적 자료를 접한 것도 아닌 오직 아미엘의 입을 통해서만 전달을 받은 것이니 말이다.

다만, 그래도 달란트 부족의 모습들을 보면 이들이 함께 있던 때 역시 크게 변치 않은 듯 유쾌하고 즐거웠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왜 그들은 다 흩어진 거지.’

인간들에게 이런 오지로 밀려났다 하지만, 아미엘의 보호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전통을 유지하며 한데 어울려 살았을 그들이 왜 뿔뿔이 흩어지고 아미엘은 자신들의 땅으로 강제로 되돌아가게 되었던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뭔가, 흔적이라도 있다면…….’

유일한 흔적은 자신의 핏줄인 엘 하임 마를렌의 흔적과 성흔뿐이지만 말이다.

“아미엘 님은 이곳에 계속 있으실 거죠?”

주안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아미엘이 말했다.

“……잘 모르겠구나.”

조용히 말을 꺼내는 아미엘의 표정은 매우 쓸쓸해 보였다.

“내가 이 땅에 남은 이유는 그저 크세니아의 부탁과 약속으로 이곳에서 세 종족의 아이들을 지켜주는 역할이었을 뿐이었다. 하나, 내가 지켜야 할 아이들은 이미 사라졌고 인간의 위험도 없어졌으니…….”

주변을 잠시 둘러보던 아미엘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도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란다.”

그녀가 있었던 이유는 결국 세 이종족을 지켜주기 위함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으며 남겨진 하나의 그 후손들조차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이곳에 있어야 할 의의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안은 그런 아미엘의 모습에 무언가를 생각하다,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는 아미엘 님이나 세냐, 마냐, 아냐……. 요정들 모두가 이곳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유가 뭐든 간에 다들 여기 있는 게 무척 즐겁고 행복해 보였는걸요.”

당장 집에 있는 세냐와 마냐, 아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세 꼬맹이는 잠을 잘 때 외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저택을 돌아다녔고, 사람들과 어울렸으며, 맛있는 간식을 먹거나 장난도 치고 때론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하는 등 정말 바쁘고 즐겁게 움직였다.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후훗, 그러하느냐. 하긴, 우리의 땅은 참 재미없는 곳이긴 하였으니 말이다.”

세냐나 마냐, 아냐만이 아니라 요정들 자체가 정말 지나칠 정도로 활동적이다.

물론 먼 곳까지 나가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지내는 이 땅에서만큼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웃고 떠드는 모습은 보기 매우 좋았다.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같이 다들 살았으면 좋겠어요. 생각날 때, 보고 싶을 때 오고가며 그렇게 말이에요.”

주안의 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아미엘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손을 뻗어 주안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말했다.

“당장 떠난다거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란다. 나에겐 아직 많은 것을 알아 봐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다른 이종족들, 그리고 저희 조상이신 마를렌이라는 분에 대해서, 맞죠?”

“그래, 그리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아미엘이 표정을 살짝 굳히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알아볼 일이 하나가 더 생겨서 말이다.”

“……술은 아니시죠?”

“수, 술은 취미이지 일이 아니다.”

주안의 농담에 아미엘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히죽 웃으며 바라보는 주안의 눈에 아미엘의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더니 처음으로 입술까지 삐죽이며 고개를 살며시 돌려버린다.

“너는 정말 그 아이를 닮아 참으로 짓궂구나. 어른을 놀리다니, 못된 아이로고.”

“하하, 저희 가문이 이상하게 선조 어르신들을 많이 닮긴 하더라고요.”

아내에게 꼼짝 못 하는 공처가라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미엘에게 말해주기에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흥, 안 좋은 것만 닮았구나.”

콧방귀를 뀌는 아미엘의 그 모습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졌기에 주안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첫인상은 꽤 무섭고 매우 차가워 보였는데,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녀가 꽤 부끄러움도 많고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 * *

카사의 안내로 메데아 대족장이 거주하는 거대한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메데아 대족장을 위시한 달란트 부족을 이끄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메데아 대족장이나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부드러워 보이는 털가죽을 깔고 앉아 있었고, 천막 일부분은 활짝 열어둘 수 있는 탈부착식인지, 환기에도 좋아 보이고 햇빛도 밝게 들어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단순한 천막이라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매우 크다는 것이다.

단순한 가구들만이 놓여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몇 사람이 지내도 크게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 저 어르신은 분명, 파나르라고 했던가.’

이곳에 있는 이들은 한 사람을 빼곤 모두 아는 사람들인지라 낯설지가 않았다.

메데아 대족장 그녀의 곁에서 머리의 역할을 하는 파나르라는 늙은 원주민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라쿰바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문신을 몸에 가득 새긴 채 팔짱을 끼고는 왠지 뚱한 표정으로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주안을 흘겨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보다, 주안은 시선이 낯선 한 남자에게서 멈추었다.

‘저 사람이 카사의 할아버지?’

호랑이의 가죽을 뒤집어쓴 거구의 늙은 사내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단지 그가 뒤집어쓰고 있는 사납게 생긴 호랑이 가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분위기.

메데아 대족장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세까진 아니지만, 거칠고 사나운 야생의 맹수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이였다.

메데아 대족장도 다른 원주민들 보다 크다 생각하였지만, 이 남자…… 달란트 부족의 족장인 카마르는 메데아 대족장보다도 크고 우람한 사내였다.

그리고 그가 주안을 보며 느긋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주안에겐 긴장이 되는 눈빛과 외모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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