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44화
달란트 부족의 중심지로 천천히 내려오는 주안과 세라타, 그리고 아미엘.
하지만 주안은 아래에서 웅성거리며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달란트 부족 사람들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눈에 띄는 등장인 듯, 많은 이들이 나와 있었지만, 딱히 크게 놀라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무척이나 익숙한 듯했다.
그리고 이런 익숙함이 누구 때문인지 예상이 갔기에, 곁에 있는 아미엘을 보며 말했다.
“자주 찾아오셨나 봐요, 아미엘 님.”
“가끔 들렸단다. 이곳에서 함께 공존해야 하기에, 이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 아이들 역시 나와 나의 아이들의 힘이 필요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 하긴…….”
지난 과거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미 달란트 부족이 오랜 세월을 지켜오던 땅이었고, 신성시하며 모시는 나무가 바로 어머니의 나무, 세계수인 셈이다.
비록 아미엘이 다시 돌아왔다 해도 달란트 부족의 땅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미엘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자신들조차 잊혔음에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남아 선조들의 남겨진 단편적인 이야기를 우직하게 되새기며 지켜 나가고 있는 달란트 부족을 지켜야 할 존재를 넘어 존중하기까지 하였다.
아니, 이제 아미엘의 힘은 필요로 하지 않는 듯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다른 의미로 함께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란다.”
“그래도 사이가 매우 좋아 보이세요.”
“후훗, 그러하느냐.”
달란트 부족, 특히 메데아 대족장 역시 대족장에 어울릴 만큼 사리판단이 빠르고 생각이 깊은 인물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미엘과 요정들로 인해서 혼란스러워하는 달란트 부족을 잘 통제하고, 설득하였고 이방인이 아닌 이웃으로 받아들였기에 그녀의 역할이 매우 크다 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답례로 아미엘은 세계수에서 맺힌 열매들을 과거의 그때처럼 나누어 주었고 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호수를 맑게 하고 다친 이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러니 달란트 부족 역시 요정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메데아 대족장은 과거, 달란트 부족의 초대 대족장인 달란트에 대해서 아미엘에게 많은 것을 전해 듣고 그 용맹스러움을 부족에게 전하니, 그들로서도 선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어 자랑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미엘의 표정에서 이들과 함께하는 것에 매우 평온해 보이기에 주안도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아미엘 님.”
주안의 진심 어린 따뜻한 그 말에 아미엘 역시 살포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세라타는 주변의 우악스러운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 모습에 조금 놀라긴 하였지만, 미리 주안에게 놀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세 사람을 보던 달란트 부족의 사람들 틈에서 낯이 익은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나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 작은 손님! 날개 달린 정원사님 왔나?”
“날개 달린 정원사?”
일전에도 보았던, 토미와 결투를 벌인 카사가 크게 웃으며 다가왔지만, 그가 한 말에 주안이 갸웃하다 슬그머니 아미엘을 바라보았다.
“으음…….”
하지만 아미엘은 카사의 말에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기에 주안이 움찔 놀라 버렸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였다, 작은 아이여.”
“킁! 이름 너무 불편하다. 그냥 정원사님 안 되나?”
“안 된다.”
“크흥……!”
남부 대밀림의 사람들은 대륙의 사람들과는 구강 구조가 조금 다른 듯, 언어에 능통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카사 정도면 대화를 매우 잘하는 편임에도 이 정도이니, 다른 이들은 안 봐도 뻔할 정도였다.
그것을 알기에 주안은 투덜거리는 카사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아미엘도 이해하였지만 뭔가 도움을 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 작은 손님도 같이 왔다. 과일 아직 많다. 술 아직 덜 익었다. 못 준다.”
“웬 술?”
카사의 말에 주안이 다시 슬그머니 아미엘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번에는 세라타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미엘에게 시선을 주었다.
“…….”
하지만 아미엘은 이런 두 소년, 소녀의 시선에 왠지 볼이 발갛게 변하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버린다.
“……술, 좋아하신다는 게 사실이었나 보네요.”
일전에 세냐를 통해 아미엘이 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미 달란트 부족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유명할 줄은 몰랐다.
“따, 딱히 그런 것이 아니다. 달란트 부족의 전통 술은 매우 독하지만, 순식간에 얼굴로 열기가 올라오며 몸이 달아올라 순간 멍해지고 그 이후 찾아오는 달콤한 끝 맛과 함께 몸이 나른해지는 그 기분이 정말 좋은, 아주 훌륭한 술이라…….”
“……되게 자세히 아시네요.”
“으…….”
장황한 그 설명은 마치 달란트 부족의 전통 술이 얼마나 맛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상인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려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게다가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움찔 놀라며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왠지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비밀로 하고 싶었던 듯했다.
“다음에는 꼭 좋은 술을 준비해서 올게요.”
“그럴 필요까진…….”
“달란트 부족의 전통 술만큼 맛있는 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종류에서만큼은 지지 않거든요.”
“우음…….”
인간의 술은 그 종류가 수백, 수천 가지라고 봐도 무방했다.
과일주를 담아도 어떤 과일을 쓰고 어떤 물을 쓰며 어떤 숙성 과정을 거치며 어떤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조되는지, 그 모든 것에 따라 술의 맛과 이름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술이 어떤 것인지 아미엘도 아는 듯, 입맛을 다실 정도였다.
아니, 아미엘뿐만이 아니었다.
“대륙의 술! 작은 손님, 술 가져올 수 있나?”
“물론이죠.”
“술 가져와라, 작은 손님. 답례 꼭 한다! 쿠단, 술 자랑 엄청 했다. 나쁜 놈. 한 번도 안 가져왔다! 영감도 안 가져왔다! 둘 다 나쁘다!”
“아하하…….”
카사만이 아니라 주변의 원주민들도 그 말에 동조하듯 우우~ 하며 야유를 퍼부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단순하지만 순수한 이들의 모습에 주안이 즐거운 미소를 지었고, 세라타 역시 무시무시한 외모와는 달리, 하는 말이나 행동이 꽤나 순박해서인지 금세 친근함을 느끼는 듯했다.
무엇보다 아미엘에게 대하는 태도나 주안에게 보여주는 행동은 매우 살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답례는 괜찮아요. 다음에 올 때, 달란트 부족원들이 다 마셔도 남을 정도의 술을 잔뜩 가져올게요.”
“작은 손님, 착하다! 쿠단, 영감! 몹쓸 놈들이다! 작은 손님이 최고다! 쿠하하하!”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웃고 떠드는 이들을 보니, 오히려 주안의 마음이 매우 편해질 정도였다.
곁에 있던 아미엘은 이런 주안을 조용히 지켜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아이가 메데아, 그 아이를 만나러 왔구나. 안내를 부탁한다.”
“알겠다. 대족장도 정원사님 오는 거 안다. 데리고 오라고 했다. 족장도 같이 있다. 할아버지 소개시켜 준다, 작은 손님. 할아버지도 작은 손님 보고 싶어 했다.”
“할아버지? 아…….”
주안이 잠시 갸웃하긴 했지만 카사는 달란트 부족에서 나름 혈통이 좋은 부족민이라고 봐도 문제가 없었다.
이전에 들었던 것을 토대로 생각을 해보면, 그의 할아버지는 현 달란트 부족의 족장이었으며, 부족장이 바로 그의 아버지인 라쿰바였다.
물론 이 혈통으로 인해서 족장과 부족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현명하고 강한 부족민이 대족장이 되고, 두 번째로 현명하고 강한 이가 족장이 된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강한 자가 부족장이 되는 것이다.
즉, 달란트 부족 내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로 강한 자가 바로 카사의 가족이라는 의미였다.
“헤에, 전에 못 봤었는데……. 오늘은 오셨나 보네요?”
“온 지 좀 됐다. 저거 봐라. 저거 우리 할아버지가 잡아 온 거다. 살은 다 발라 먹었다, 쿠하하.”
카사가 자랑스럽게 웃으며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큰 나무에 장식처럼 걸려 있는 웬 이름 모를 동물의 머리뼈를 가리키며 주안에게 알려주었다.
주안과 세라타 역시 그것을 보고는 그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동물이……. 설마 저게 마수의 뼈예요?”
“맞다. 가장 큰 놈으로 가져왔다. 전사들, 많이 죽고 다쳤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혼자 가서 잡았다.”
많은 전사가 죽고 다쳤다는 것에 크게 놀랐지만, 그 엄청난 짓을 저지른 마수를 혼자 잡아버린 그의 할아버지는 대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라쿰바는 확실한 랭크 7이긴 했었으니…….’
메데아 대족장보다는 못하겠지만 라쿰바보다는 확실한 위라는 말이니, 대단한 실력자가 분명하였다.
‘그건 그렇고, 무슨 머리가 저렇게 큰 거람.’
어떻게 보면 흉측할 수도 있지만, 새하얀 뼈만 발라내어 장식해 놓은 저것을 보니 압도되는 위용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너무나 크고 날카로운 이빨들은 저 생명체가 정말 이곳에 존재하는, 같은 대륙에 존재하는 생명체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마수라…….”
“아미엘 님은 마수를 보신 일이 없으시다 하셨죠?”
“그러하다.”
아미엘이 활동하던 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마수들은 그녀에게도 의문이었지만, 이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언제부터 나타나고 언제부터 이곳에서 지냈던 것인지 모든 게 불분명하다.
갑자기 나타난 뒤 마치 이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게 바로 서방 대륙의 마수와 동방 대륙의 요물이었다.
“하나, 왠지 낯이 익구나…….”
“네? 그래요?”
주안에겐 낯설었지만 아미엘에겐 아닌 듯했다.
물론 주안은 저런 동물의 뼈를 본 일은 책에서 그려져 있던 것뿐이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뼈라는 것은 그저 음식의 부산물 정도로 보았을 뿐이다.
“참으로 이상하구나…….”
“그러게요.”
마수나 요물에 대해서 조사하는 학자들은 많지는 않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수는 남부 대밀림의 깊숙한 곳에 있어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요물은 동방 대륙에서만 나타났기에 서방 대륙의 연구 자료는 매우 미미하였다.
때문에 그저 좀 많이 포악한 동물 정도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었고, 그렇기에 주안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매우 이상한 생명체로 인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미엘의 시선은 마수의 뼈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원래의 크기는 짐작할 수 없지만, 그 머리뼈만 남아 있는 저것은 조금 과장한다면 주안 정도는 한 손으로 집어 들어 꿀꺽 삼켜도 될 정도로 보였다.
그렇기에 주안도 질린 듯 마수의 머리뼈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대체 얼마나 컸던 거야.”
“엄청 컸다. 영감이 세 명 서야 할 정도로 컸다. 그래도 먹을 거다. 위험해도 우리한테는 먹는 거다. 가죽도 엄청 좋았다.”
“으음…… 마, 맛있었어요?”
“맛있다. 다음에 술 가져오면 내 몫을 잔뜩 주겠다.”
“예, 예…….”
괜히 말을 꺼낸 듯하였기에 주안의 안색이 조금 좋지 못했다.
이들에게 마수의 고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런 귀중한 고기를 준다고 하니, 거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 가자. 늦게 오면 할아버지 화낸다. 화난 할아버지는 엄청 무섭다.”
거친 콧바람을 뿜어내며 카사가 투덜거리자, 그 콧바람에 세라타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며 흩날릴 정도였다.
꽤나 무서운 할아버지인 듯, 주안 역시 어색하게 웃어주며 할 말을 하고 따라오라는 명령만 내린 채 앞서가는 카사의 뒤를 황급히 뒤따랐다.
“아미엘 님?”
“아니다. 가자꾸나.”
하지만 아미엘은 여전히 머리뼈만 남은 마수의 흔적에서 눈이 떼어지지 않고 있었다.
주안의 말에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 채 허공을 둥실둥실 날아다니며 느릿하게 주안과 세라타의 뒤를 따라갔지만, 그럼에도 그 눈은 여전히 마수의 뼈에 향해 있다.
그리고 그 익숙함에 아미엘은 자신도 모르게 과거에 사라졌던 생명체를 떠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몬스터…….”
단순히 그 뼈만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렀지만, 아미엘에 그 익숙함은 절대 잊히지 않았다.
한때, 숲의 재앙이라고도 불리며 수많은 인간과 이종족들에게 공포를 주었던 최상위 포식자.
……몬스터 오우거와 매우 많이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