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43화
순식간에 달란트 부족의 허공 위로 도착한 주안과 세라타는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다행히 그대로 추락하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 우와…….”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아래를, 드넓은 호수와 거대한 나무, 그곳을 넘어 끝없이 펼쳐진 대밀림의 모습에 주안은 한동안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은 참 크긴 크구나…….’
아니, 주안은 자신의 세상이 매우 작았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주안에게 세상이란 이전까진 엄마의 품 안이었고, 그 뒤로는 저택과 황도로 조금씩 넓어졌지만 그뿐이었다.
그래도 버둥거리며, 한 걸음씩 나아갔지만 이렇게 드넓은 세상을 보니, 여전히 자신은 좁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밝아. 지역마다 시간이 다르고, 낮과 밤에 차이가 있다는 게 정말이었어…….’
저 먼 북방에 있는 빙하의 대지에는 해가 지지 않는 장소도 있다 하며, 메마르고 뜨거운 모래사막은 밤이 되면 정반대로 너무나 추워진다고도 한다.
지역마다, 장소마다, 제각각의 환경과 시간이 존재하는 것을 이곳에 와서 직접 느끼니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다.
“조금 더 구경하겠느냐?”
아미엘은 이런 주안의 모습에 살풋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주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했던 주안이지만, 이런 멋진 광경과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공포는 사라진 채 주변의 모든 것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이것은 주안만이 아니라 세라타 역시 펄럭이는 치마를 억지로 붙잡으면서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사를 터뜨릴 정도였다.
“도, 도련님. 그런데 여기가 어디예요?”
“아……. 내가 말 안 했지…….”
우거진 밀림과 뻥 뚫린 듯한 거대한 공간에는 호수와 그 주변에는 색색의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으며, 호수 중앙에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장소.
워랜이나 토미, 마누엘 전대 대신관과는 함께 왔던 장소였지만 세라타는 처음인 곳이기도 한 달란트 부족의 신성한 땅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 방문한 사실은 비밀로 하고 있었기에, 토미는 여동생인 세라타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않은 듯했다.
그 점이 매우 기특하였고 어린 소녀답지 않게 이렇게 높은 장소에서도 호기심 가득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 보는 세라타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안고 있는 세라타를 더욱 품에 꼬옥 끌어안아 주며 말했다.
“여긴 남부 대밀림이야.”
“……네?”
주안의 말에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 있던 세라타가 주안을 올려다보았지만, 이내 갸웃하며 말했다.
“남부 대밀림이요? 그, 아스란 왕국 저 아래에 있다는…… 거기요?”
“응.”
주안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세라타가 가만히 그런 주안을 지켜보았다.
“에, 에에?!”
하지만 이내 주안과 아미엘, 그리고 아래에 펼쳐진 거대 호수와 달란트 부족의 땅, 남부 대밀림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며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이런 세라타의 놀란 모습에 주안이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고 아미엘 역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세라타를 지켜봐 주었다.
“대, 대, 대, 대체 어, 어떻, 어떻게……?!”
“응? 어떻게, 라니?
“저, 저희는 저택에…… 도련님 방에 있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아까도……. 아, 아니, 지금도……?!”
그제야 주안의 방에서 테라스로 한 걸음 걸었을 뿐인데 주변이 변하고 아미엘의 방으로 이동한 것도 모자라, 아미엘이 손짓 한 번에 이렇게 높은 하늘에 나타나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 듯 세라타가 다시 어버버하며 눈이 팽팽 돌기 시작했다.
“자, 진정해, 진정. 별일 아니야.”
“우, 에……?”
할 수 없다는 듯 주안이 세라타를 품에 꼬옥 안아주는 것도 모자라 등도 토닥이며 진정시켜 주었다.
다행히 이런 주안의 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좋은 냄새는 허상도, 꿈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뒤 세라타가 조금은 진정이 된 듯했다.
“도련님…….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음……. 설명하긴 좀 복잡한데, 이렇게 한 걸음만 내딛어도 멀리 있는 장소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문을 만들었거든. 여기, 아미엘 님이랑 집에 있는 밉살스러운 세냐 녀석 덕분에 말이야.”
밉살스럽다는 말에 아미엘이 갸웃했지만, 주안이 세냐를 언급하며 이까지 가는 것을 보니 조금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듯했다.
그녀도 눈치가 있기에 묻지는 않았지만.
“……예?”
하지만 주안의 설명은 매우 난해했고 세라타에겐 이해가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으음…… 좀 더 쉽게 말을 한다면, 우리가 지나온 테라스 있잖아? 거기가 일종의 마법 문이라고 보면 돼. 작동은 나랑 세냐 정도만 가능하겠지만, 그 문을 열고 나오면 짜잔~ 하고 아미엘 님의 방으로 바로 올 수 있다, 이거지.”
“아…….”
조금 어린 아이의 기준에 맞춰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듯 과장된 표현까지 써가며 설명해 주자, 그제야 조금은 이해한 듯 세라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귀여운 두 아이를 보며 아미엘이 기어이 작게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늘 자상한 미소만 짓던 아미엘에게 웃음을 터지게 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주안은 그런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보다는 조금 부끄러운 듯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 참.”
그리고 주안은 세라타가 이렇게 놀란 것을 보고는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을 보고 더욱 크게 놀랄 수가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세라타에게 말했다.
“그리고 조금 더 놀랄 일이 있는데, 지금부터 만나는 사람들을 보고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안 돼.”
“네? ……네.”
주안의 경고 때문인지 세라타가 침을 꼴깍 삼키며 잔뜩 긴장하자 작게 웃어주며 세라타의 머리를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아, 그렇다고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조금 사납게 생긴 분들이긴 하지만, 음……. 그래, 피터 아저씨랑 비슷한 분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
우락부락하고 무뚝뚝하지만 다정하고 친절한 삼촌 같은 피터를 떠올려서 그런지 세라타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긴장한 아이를 말 몇 마디로 순하게 만드는 주안의 모습에 아미엘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는 대체 그 피터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기에 험악한 인상의 달란트 부족민들과 비슷하다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저기, 작은 집들이랑 사람들……. 저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거예요?”
“응. 저 사람들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어르신을 만나러 갈까 해. 아, 어르신이라고 하면 화를 내실까. 아름다운 여성분이 더 어울리겠다.”
“아름다운……?”
갸웃하는 세라타의 모습에 주안이 아차, 한 듯 잽싸게 말을 정정하였다.
세라타는 주안의 말에 매우 궁금해졌고, 아미엘은 주안을 참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인간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달란트 부족의 존재들은 결코 그들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 부합하진 않는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그렇게 변화가 극적으로 찾아올 것인지는 아미엘도 부정적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세 요정 꼬맹이가 알려준 바깥세상의 이야기나 주안의 저택에서 지내며 알아온 내용을 생각해 보아도 인간들은 여전히 인간들이었고, 그들의 시선 또한 예전의 인간들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이종족이 무엇인지 잊었다는 것뿐이니 말이다.
“너는…….”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든 것이 평등한 것이더냐.
아미엘은 주안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다.
주안이 하는 행동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은 평등하고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하는 듯했다.
세라타가 어떤 아이이고 어떻게 자라왔으며 어떻게 주안의 집에 오게 된 것인지까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게다가 주안이 집에서 보여주는 그 행동마저 세 요정 꼬맹이는 즐겁게 이야기해 주었고, 세냐는 특히 더욱 자세하게 아미엘에게 설명해 주었다.
세냐는 단순히 워프 게이트를 만들러 이곳을 벗어나 주안에게 간 것이 아닌, 아미엘을 대신해 세상을 보고 어떻게 바뀌었으며 인간들의 동향이 어떤지 알아오는 역할이었다.
그런 세냐를 통해 들은 세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는 인간들의 세상이었으며, 적당히 악행을 일삼는 이들도 있고 욕심을 채우는 이도 있지만 선행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도 있는 만큼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고 있다 들었다.
그중에서도 주안이란 아이는 정말 특이했다.
낮잡아 볼 수 있는 이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하였으며, 신분상 결코 얽힐 수 없는 이들을 편하게 받아들였고, 위세가 대단한 가문의 후계자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하였다.
아미엘은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위험한 일인지 너무나 잘 안다.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평등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욕망을 불태우며 노력이라는 것을 한다.
때때론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지만, 인간들은 결국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해 나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이 인간들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반대로 평등함을 내세웠던 것은…….
……이종족들이었으니까.
모두가 같은 존재들.
모두가 평등한 존재들.
그들을 이끌어줄 지도자와 정신적 지주가 있지만 섬기지는 않는다.
믿고 따르고 의지하여도 같은 가족이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지배하는 탐욕과 위로 올라선다는 욕망에 충실하게 이행하여 이종족을 박해했고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불평등을 만들어 세상을 지배한 것이다.
“……위험하구나.”
그 생각이. 그 정신이. 그 행동이.
혹여, 주안이 그대로 높은 곳에 올라서서 자신만의 생각을 펼쳐 모두에게 평등함을 보이지 않을까, 아미엘은 너무나 걱정됐다.
변하였다고는 하나 인간의 본성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그들 속에 잠재된 여전한 욕망이 주안에게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까 매우 걱정되었다.
“아미엘 님?”
“…….”
하지만 이런 주안에게 경고를 하고 다그칠 수가 없었다.
그런 정신과 마음이, 너무나 갸륵하였다.
비록 인간과 섞였다고는 하나, 그 선한 행동은 마치 과거 자신의 곁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엘 하임의 엘프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제 그만 내려가겠느냐?”
잠시 아미엘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금세 주안 자신에게 포근한 미소를 지어주는 것에 주안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내려가요. 아, 다음에는 세계수에서 야경을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후훗……. 마치 내가 편안한 이동용 마차가 된 듯하구나.”
“아하하…….”
하지만 즐거운 그 미소에 주안이나 세라타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말했듯이, 너는 나에게 무엇을 부탁하여도 괜찮단다. 모든 것을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네 부탁은 언제든 깊이 생각하며 답해주도록 하마. 그리고…….”
아미엘이 조용히 주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야경 정도는 언제든지 보여줄 수 있으니, 자주 찾아 오거라.”
“예, 아미엘 님.”
주안이 하얀 이가 드러날 정도로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미엘은 그런 주안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아내며 조용히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영롱한 빛을 머금은 그 날개는 지금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빛을 내고 있었지만, 밤에 보았다면 그 밤이 새도록 날개만 보았을 정도라고 주안은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세라타 마저 날개를 펼친 아미엘의 모습에 볼까지 발그레 붉히며 바라볼 정도였다.
“내려가마.”
하지만 이런 귀여운 두 아이의 행동에도 아미엘은 담담히 그렇게 말하며 함께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