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42화
다행히 아미엘은 주안이 세라타와 함께 온 것을 반겨주었고 잔잔한 미소까지 지어주었다.
그녀는 확실히 인간을 싫어하지만,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의 간극은 너무나 컸고 당시의 인간과 현재의 인간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서서히 이해하고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작은 체구로 자신의 선물을 직접 가지고 와준 아이에게까지 모질게 대할 만큼 아미엘의 천성이 나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저 아이는 네 동생이더냐.”
“친동생은 아니지만,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예요. 제 친구의 동생이거든요.”
“어떤 의미로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구나.”
“예, 맞아요.”
아미엘의 말에 주안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아미엘이 살풋 미소를 지으며 세라타를 바라보았다.
세라타는 이곳이 어디인지,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 매우 혼란스러운 듯 어버버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그런 세라타의 모습과 행동이 귀여운 것인지 아미엘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다가갔다.
“아이야. 내 집에 방문한 것을 환영하마.”
“네, 넵! 앗?!”
아미엘의 말에 세라타가 정신을 차리고 흠칫 놀란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모습을 똑바로 지켜보다 갸웃하며 물었다.
“호, 혹시 세냐의 어머니…… 세요?”
세라타보다 작은 체구이지만, 세 요정 꼬맹이보단 훨씬 큰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 같은 아미엘의 체형이었다.
하지만 세라타가 아미엘을 보자마자 그렇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분위기도 분위기이지만, 다른 요정들보다 크고 화려한 날개를 보고 그렇게 판단한 것도 있었다.
이런 세라타의 말에 아미엘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내가 그 아이들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아, 아, 안녕하세요! 세라타라고 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려다, 품에 안고 있는 책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는 듯, 세라타가 당황하였지만 아미엘은 이런 순수한 모습의 세라타에게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세라타의 품에서 책들이 허공에 떠오르자, 놀라면서도 한결 가벼워진 듯 세라타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리고 재차 고개를 숙여 아미엘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로구나.”
“가, 감사합니다…….”
이런 세라타의 모습에 살풋 웃어주던 아미엘 얼마 전 세 꼬맹이가 주안과 찾아왔을 당시 함께 하루를 보낼 때 즐겁게 웃고 떠들던 이야기들이 새삼 떠오른 듯 세라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다 미소를 지었다.
세 아이의 이야기 중 가장 즐겁게 이야기하던, 같이 놀아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예쁜 옷도 만들어주던 착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냐와 마냐, 아냐가 좋아한다는 아이가 너로구나. 맛있는 간식을 자주 준다고 들었다.”
“에헤헷, 저도 간식을 좋아해서……. 그 아이들이랑 간식을 먹는 게 즐겁거든요.”
“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주어 고맙구나.”
“아, 아니에요. 저야말로 같이 놀아줘서 고마운걸요.”
집 안에 또래의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세라타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세냐와 마냐, 아냐와 매우 편하게 지냈다.
주안과 함께 있는 일이 없다면 오빠인 토미보다도 더 자주 세 요정 꼬맹이와 함께 있는 일이 많았으며, 주안이 보아도 매우 친해 보였으니 말이다.
방긋 웃는 세라타의 모습에 아미엘은 이제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더 이상 이종족들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종족이 무엇인지조차 이제는 모르는 듯했다.
잊힌 존재인 것일까.
그토록 인간을 증오하고 생존을 건 다툼을 벌였지만, 어느새 잊힌 과거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씁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 위협이 없다는 것에 아미엘은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책, 잘 읽으마.”
“네, 네…….”
아미엘이 조용히 손을 뻗어 세라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굉장히 어려 보이는 소녀였지만, 어째서인지 세라타는 그 손길에서 다정한 할머니의 느낌이 났다.
그래도 눈치가 있어 그런 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조금 부끄러운 듯 볼을 발갛게 물들이면서도 세라타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에헤헷, 웃어주었다.
“다양한 책들을 준비해 왔구나.”
“일단 최근의 것과 꽤 오래된 것들을 섞어서 가져오긴 하였지만, 모두 다 준비한 건 아니에요.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가져오도록 할게요, 아미엘 님.”
“그래, 부탁하마.”
인간이 적대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세상을 좀 더 다양한 시선 속에서 보기 위해선 많은 것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인간의 시각으로 쓰인 책들이긴 하나, 기록을 좋아하는 인간들인 만큼 세상의 많은 부분을 다양한 시각으로 제각각의 생각으로 쓰여 있을 터이니, 꽤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듯했다.
허공에 떠오른 책 중 한 권을 집어 들어 펼쳐본 아미엘은 매우 흥미롭다는 듯 책의 내용을 눈에 담아내며 주안에게 말했다.
“한데 분위기를 보니 나에게 이 책을 주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닌 듯하다만…….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그게…….”
눈치가 빠른 것인지, 아니면 주안이 뭔가를 숨기지 못하는 것인지 아미엘조차 주안이 무언가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금세 깨닫고는 갸웃하며 물었다.
이런 아미엘의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주안이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실은 메데아 대족장님에게 전해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어떻게 보면 아미엘 님에게도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겨 버려서…….”
“곤란한 일?”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조용히 책을 덮었다.
그리고 주안을 보니,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는 아이를 보는 듯했다.
그런 주안의 행동에 아미엘이 작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
“……예.”
주안이 잠시 머뭇거리다 할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실은 제가 실수로 메데아 대족장님의 실력에 대해서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해 버렸거든요.”
“그 아이의 실력이라니?”
“아미엘 님이 보시기에는 메데아 대족장님의 실력, 강함은 어느 정도라고 보세요?”
잠시 갸웃하던 아미엘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와 세 이종족의 아이들이 이곳에 있을 당시와 비교하여도 꽤 실력이 있는 아이라고 보여지더구나.”
“예? 꽤, 꽤 실력이 있는…… 이라고요?”
“그래.”
대체 과거의, 아미엘이 있던 시대의 이종족들은 어떤 능력을 지닌 것인지 주안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메데아 대족장의 실력이라면 꽤 대단한 것이 아니라 서방 대륙에서는 검을 마주할 존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주안은 그 대단한 검성 시절의 토미가 어떤 활약을 벌였는지 너무나 잘 알았기에, 동급이라 평가가 되는 메데아 대족장의 실력도 그에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무엇보다 맨손으로 검기가 실린 검을 붙잡은 그것을 보면, 동방 대륙의 무사들에게도 천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잠깐. 그럼 그런 실력자들이 있던 이종족들을 이곳으로 몰아내 버린 당시 인간들의 힘은 대체…….’
지금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것은 메데아 대족장이 이끄는 달란트 부족일 뿐이다.
아직 이들이 이종족인지 뭔지, 주안으로선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겪은 입장으로서 이들은 제국의 어느 기사단에도 밀리지 않을 실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대밀림에 최적화된 존재들로, 바깥의 집단전에선 몰라도 이 대밀림 내에서라면 제국 중앙기사단이나 황실근위대도 꽤 곤란해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지리적인 특징, 그들이 다루는 다이어 울프를 통한 기동성, 대밀림 자체가 집이나 마찬가지인 현 상황 등등.
그렇기에 오래전이긴 하나 대밀림 정벌에 나섰던 제국이나 왕국들이 번번이 실패를 겪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것은 아미엘이 말하는 이종족, 오크들이라 불리는 달란트 부족 하나뿐이다.
남은 이종족인 칸데의 드워프, 엘 하임의 엘프들이 없는 순수한 달란트 부족 혼자의 힘으로 과거의 여러 나라를 상대한 것이었다.
‘아미엘 님의 시대의 인간들이나 이종족들은 전부 괴물들뿐인가…….’
이들뿐만이 아니라 아미엘이나 요정들만 봐도 그 실력이 범상치는 않았다.
세냐나 마냐, 아냐의 외모만 보고 우습게 여기다간 큰코다칠 것을 주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아미엘은 이미 실전된 워프 마법까지 알고 있는 존재다.
그런 그녀가, 과연 실전된 워프 마법 하나만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까?
‘절대 아니지.’
이 사실을 황립 마탑의 마법사들이나 마이스터 모레노가 알면 주안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소개시켜 달라고 할지도 몰랐다.
그는 이미 나이 지긋한 노인이기도 하였고, 사실 마르티네스 공작가와도 꽤 인연이 있는 인물인지라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을 터이니, 이 일이 알려지면 주안도 매우 곤란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한데 그것은 왜 묻는 것이더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그 이유를 몰라 아미엘이 갸웃하였다.
“그때와는 세상이 확실히 변했다는 것, 아미엘 님도 이제 조금씩 느끼고 있으시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러하구나.”
“그리고 변한 건 사람들의 인식만이 아니에요. 사실, 그때의 사람들과 이종족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세상에서 메데아 대족장님의 실력은…….”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아미엘에게 말햇다.
“적어도 이 대륙, 서방 대륙에서는 제대로 검을 맞댈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고, 맞댄다 해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세요.”
“그게, 정말이더냐?”
“예, 단순히 비교한다면, 이전에 보셨던 마누엘 신관님과 비교를 한다면 편하실 거예요.”
“그 신을 믿는 아이 말이구나.”
아이라는 말에 주안이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는 서방 대륙에 현존하는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 중 한 사람일 것이니 말이다.
“예, 맞아요. 현재 대륙의 가장 강한 사람들이, 딱 마누엘 전대 대신관님과 비슷하다 보시면 될 거예요. 그것도 채 서른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토록 강함을 추구하던 인간들이 어이해서…….”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아미엘의 고운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워프 마법을 몰라, 그것을 보고 크게 놀란 것도 이상하였지만, 그토록 강성하던 인간들이 마치 일제히 퇴화라도 해버린 듯 문명 이전에 그들이 세상을 지배한 원천이라 할 수 있는 힘이 반 토막이 나버린 듯했다.
“대암흑기 이전에는 조금 달랐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마법은 확실히 대암흑기 이전 시대의 수준이 훨씬 높았다고는 하니…….”
“대암흑기라…….”
주안이 이전에도 말해준 일이 있었지만, 아미엘은 이 대암흑기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고 대륙이 혼란에 휩싸인다 해도 인간은, 특히 유서 깊은 가문은 자신들이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해도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한다.
그것은 자식들이고 가족일 수 있으며, 가문을 지탱해온 힘일 수도 있다.
인간은 반드시 그것을 지켜내려 사력을 다하는 존재들이다.
후세에, 다음 대에,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
인간이 발전하고 세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욕심과 함께 자신들의 것을 안전하게 다음 세대에 넘긴 것에서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마치 이전 시대의 역사를 도려낸 듯 뻥 뚫려 버린 빈 공간과도 같았다.
“현재의 대륙에선, 아니, 저희 대륙에선 메데아 대족장님과 같은 실력을 지닌 사람은 처음으로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 때문에 이곳이 소란스럽게 될 수가 있어요.”
“인간들의 눈이 이곳으로 향한다, 이것이구나.”
“예. 정말 죄송해요, 아미엘 님.”
“큰 실수를 하였구나.”
“예…….”
주안은 뭐라 변명할 수도 없었다.
전적으로 자신의 실수였으니 말이다.
“하면, 해결책은 있느냐.”
“해결책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고, 메데아 대족장님을 저희 제국에 초대하고 싶어요. 그러면 적어도 다른 왕국들은 이곳으로 향하는 눈을 제국으로 돌릴 수가 있거든요.”
“호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희 가문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만 보여줘도 크게 귀찮아질 일은 없어질 거예요.”
“하나 네 가문은 그만큼 힘들어질 듯하구나.”
“제 책임이니까요. 그 책임에 맞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봐요.”
“실수를 하더라고 그것을 반성하며 제대로 수습을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니 자책하지 말거라. 누구든 실수를 하는 법. 책임을 회피하는 게 지탄 받을 일이니 말이다.”
“예, 아미엘 님.”
아미엘이 크게 화를 내어도 주안은 감내해야 할 일이었지만, 오히려 다정하게 다독여 주니 주안은 정말 부끄러워 그녀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응원이 기뻤기에 조금은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그 아이를 만나러 가야 하겠구나.”
“네, 그래서 아미엘 님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요. 여기서 달란트 부족이 있는 곳까진 제힘으로는 갈 수가 없어서요.”
아미엘과 요정들이 거주하는 이곳, 세계수는 큰 호수의 중간에 위치한 거대한 나무였다.
이전에도 메데아 대족장의 품에 안겨 왔었고, 다른 한 번은 아미엘을 통해 워프로 한 번에 왔었다.
때문에 주안은 이곳을 벗어나 호수를 건너기 위해선 아미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었다.
“그래, 그러자꾸나. 나도 그 아이를 만나러 가보고 싶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런 주안의 부탁에 아미엘은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떻게 보면 주안의 걱정이 이곳, 자신이 지켜야 하는 땅의 안전과도 직결되어 있었기에 그녀도 주안의 곁에서 메데아 대족장과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였다.
그리고 만약 안 된다면, 그녀가 나서서 메데아 대족장을 설득시키는 것에 한 팔 거들 생각까지 하였다.
“가도록 하자.”
“예.”
아미엘이 허공에 손짓을 한 번 하자 떠올라 있던 책들이 조용히 테이블로 날아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 신기한 모습에 세라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다시 한번 아미엘이 허공에 손짓하자 주안과 세라타, 그리고 자신의 몸이 하얀 빛무리에 둘러싸이기 시작하였다.
강렬한 빛에 세라타가 깜짝 놀라 눈을 꼬옥 감았고 주안은 그런 세라타를 조용히 감싸 안아 주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준 아미엘의 행동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그 손을 잡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