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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41화 (141/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41화

“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사무엘 그리마가 가지고 온 정보를 듣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두 부자에게 적당히 한 방 먹였던 즐거움이 큰 불쾌감으로 그에게 엄습했다.

“사무엘,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각하. 하지만…….”

“뜬금없이 최연소 랭크 7이 등장한 것도 모자라, 이젠 하다 하다 랭크 8? 그것도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라고?”

“…….”

사실 누구라도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 이를 거짓말쟁이로 치부하고 무시하여도 상관은 없겠지만, 가족보다 믿음이 가는 충직한 수하의 말이었다.

처음으로 이딴 소리를 한 존재 역시 조금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게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에게 헛웃음 이전에 불쾌감을 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소파에 몸을 깊게 파묻은 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모습에 사무엘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거짓이라고 하기엔 주안 공자의 말이나 그가 아스란 왕국에 갔다 온 일, 그곳에서 보여준 행동과 연관 지어본다면 남부 대밀림까지 갔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예, 사그레스는 아스란 왕국 남부에서부터 시작되는 병이었으며 더 멀리 본다면 남부 대밀림을 걸쳐서 전해져 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병마 속에 숨어 있었다는 새로운 전염병을 주안 공자가 직접 나서서 치료하였다면…….”

“직접 가서 치료했고, 그곳에서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과 인연을 쌓았다는 결론이다……?”

“……예.”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말에 사무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주안 공자의 성정을 그동안 쭈욱 살펴본바, 주변의 만류에도 분명 남부 대밀림에 발을 내디뎠을 것이 확실합니다.”

“……어디서 그딴 녀석이 나타나서…….”

아무리 서부에 콕 박혀 있다고 해서 세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정보는 곧 힘이고 그 정보의 힘으로 동부의 마르티네스 공작가 이상으로 서부를 꽉 움켜쥐고 있는 게 바로 링베르가 공작가였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에게 불과 1년 전의 주안 마르티네스라는 존재는 언젠가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무너뜨릴 희대의 마마보이로 기록될 것임을 꼭 링베르가 공작가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였다.

사람이 변해도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신경 쓰는 것조차 아까운 아이였고 자신이 주시할 것은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챙길 이득뿐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오히려 더욱 강성해지고 있었다.

주안이 성장함에 따라, 그에 맞춰 마르티네스 공작가도 주안의 발걸음에 맞춰 마치 주안에게 딱 맞는 옷으로 되어 가는 듯, 언젠가 가문을 이어받았을 때 주안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듯했다.

“빌어먹을…….”

사무엘 그리마의 말을 무시하기에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모두 믿을 수 있는 일도 아닌지라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아들의 문제로 머리가 아팠던 것보다 더 심한 두통을 느끼는 듯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개나 소나 다 달려들겠군.”

“하지만 어중간한 이들은 남부 대밀림으로 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아스란의 녀석들은 무시해도 되겠지만, 남부 국경을 틀어막고 있는 맥도넬이 길을 열어줄 리가 없을 것이니…….”

다만, 그런 어중이떠중이뿐만이 아니라 힘 좀 쓴다는 가문도 맥도넬에 막혀 나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황가이지만, 황가보다 복잡하고 쓸데없는 절차가 많은 곳도 없었기에 가장 늦을 확률이 매우 높았으니 논외로 쳐도 상관이 없었다.

“설령 길이 열려도 남부 대밀림이 어디 쉬운 곳도 아니고, 원주민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도 안 돼.”

“분쟁이 없어진 게 오래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남부 대밀림은 대륙에선 굉장히 껄끄러운 장소입니다.”

한때 제국도 아스란 왕국을 끌어들여 남부 대밀림의 정벌을 꿈꾸던 시기가 있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으며 그곳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장소인지는 기사 훈련소에서도 여전히 가르칠 정도였다.

이러한 사실은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도 잘 알기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고민 속에서 한동안 담배만 뻑뻑 피워대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말했다.

“사무엘.”

“예, 각하.”

“제이미가 황도 구경을 위해 나갔던 날, 주안 마르티네스를 만났었던 일이 있었지?”

“그렇습니다.”

“그때, 분명 큰 소란도 있다 들었다.”

“다행히 당시에는 주안 공자가 한발 물러나 주어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페로우 경의 대처가 매우 좋았으니 말입니다.”

사실 그때 사달이 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페로우의 현명한 판단에 일이 크게 번지지 않아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에 대한 보고를 받았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나 사무엘 그리마 역시 제이미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페로우가 곁에 있었기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에 빠졌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제이미와 다툼이 있었던 이가 분명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라 하지 않았나?”

“예? 아…….”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말에 사무엘이 무언가 떠오른 듯했다.

“맞습니다. 제이미 공자님이 시비를, 아니, 다툼을 벌였던 이가 확실히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안 공자의 지인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아이가 남부 대밀림을 갔다 온 게 확실하다는 의미로군,”

잔뜩 찌푸리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사무엘을 보며 말했다.

“어디 있는지 알아내게. 그리고 알아내는 즉시 그자를 만나러 간다.”

“예? 직접,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직접 간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었지만 금세 정리가 끝난 듯 사무엘 그리마에게 명령을 내렸다.

“맥도넬에게 이 정보를 흘리고 아스란 왕국에서는 적당히 쓰다 버릴 놈들을 물색해라.”

아스란 왕국의 일이야 사무엘 역시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무슨 의도로 말한 것인지 예상할 수 있었지만, 맥도넬에게 정보를 흘리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은 듯했다.

“한두 녀석들이 들은 게 아니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 해도 우리는 쉽게 이곳에서 몸을 뺄 수는 없어. 어차피 막힐 것, 빠르게 틀어막아 버리라고 해.”

“하지만 잘못해서 맥도넬이 먼저 선수를 친다면…….”

“흥, 해 보라지. 늙은 여우는 남부 대밀림이 어떤 곳인지 알기에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젊은 여우는 제 혈기에 못 이겨 제멋대로 굴다 알아서 넘어질 것이니까.”

사납게 웃는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말에 사무엘 그리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고 어떻게 생각하여도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너무나 유리한 일들만 계속해서 터져 나왔지만, 자신이 모시는 이 무시무시한 주군은 언제나 냉정하게 가장 먼저 생각을 하고 움직였다.

가족에게는 너무나 비정한 이였지만, 가문의 주인이자 거대한 땅의 지배자로서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인물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였다.

* * *

주안은 잔뜩 토라진 엄마를 위해서 함께 저녁을 먹는 것도 모자라 직접 엄마에게 먹여주었다.

밤에는 함께 잠을 자는 것까지 약속해 주는 것으로 달랠 수는 있었지만,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아빠는 어쩌지…….”

한창 바쁘고 머리도 복잡할 아빠가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는 것도 모자라 잘못하면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잔소리는 어쩔 수 없겠지만, 쫓겨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곁에서 막아 볼게요, 아빠.’

아빠를 위한 것도 있지만 가문의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그것만큼은 막아야만 하였기에 주안은 결의에 찬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잘 포장된 책들을 살펴보았다.

“워랜 경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거람.”

메데아 대족장의 일 때문에 급히 남부 대밀림으로 가려고 워랜에게 부탁을 하였지만, 쌀쌀맞은 집안 분위기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찾을 수가 없었다.

기껏 함께, 이 무거운 책들 좀 옮겨 달라고 하려 했는데 말이다.

“에휴, 어쩔 수 없지.”

세냐나 마냐, 아냐만 있었어도 세 요정 꼬맹이들의 힘으로 많은 책을 옮기는 게 별로 어렵지도 않았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안이 차곡차곡 쌓아 놓은 책들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볼 때,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책들을 살피며 돌아보지도 않은 채 간단히 그 말만 전해주자, 조용히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도련님.”

“어? 세라타?”

방 안에 들어온 것이 세라타는 사실에 주안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돌아보며 갸웃했다.

“무슨 일 있어?”

“에헤헷, 그게……. 도와드릴 일이 있나 해서…….”

세계수로 아미엘과 메데아 대족장을 만나려 하였기에 주안은 저녁을 먹은 후 세라타에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라고 말해둔 뒤였다.

하지만 세라타로선 쉬라고 하여도 다들 무언가를 하는데 혼자만 쉴 수가 없었다.

너무 부지런하다고 할까.

주안 역시 이런 세라타의 마음을 안다는 듯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혹시 토미 어디 있는지 알아?”

“오빠요?”

주안의 말에 세라타가 잠시 갸웃하다 말했다.

“오빤 지금 피터 경이랑 같이 있으세요. 불러드릴까요?”

“아, 아냐. 피터 아저씨랑 같이 있으면 됐어.”

안 그래도 조만간 아스란 왕국으로 다시 가야 할 토미에게 피터와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였고, 그런 토미를 불러 짐꾼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미안했다.

할 수 없다는 듯 주안이 책들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보고는 세라타가 총총히 주안의 곁으로 걸어와 손을 뻗어 책들을 집어 들었다.

“도와드릴게요, 도련님.”

“아, 세라타. 그거 무거…….”

“저도 힘 좋거든요.”

“……운데…….”

주안은 무거워서 다섯 권 이상 들기도 버거운 책들을 세라타가 번쩍 안아 들자, 남자로서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것을 느껴야만 하였다.

게다가 세라타는 이제 열세 살이다.

아직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거 옮기면 되는 거죠? 어디로 옮길까요?”

“어, 으응…….”

자신을 보며 방긋 웃는 세라타를 보며 주안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잠시 고민이 되는 게, 이런 세라타를 세계수로, 아미엘에게 소개해 주어도 괜찮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이미 워프 게이트를 보았던 세라타였던지라, 고민은 하였지만 금세 답을 내리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비밀 장소로 옮길 거야.”

“비밀 장소요?”

갸웃하는 세라타를 보며 주안도 책들을 집어 들었다.

‘어차피 조만간 메데아 대족장님을 초대하면, 알려질 거야. 적어도 부모님한테는…….’

가족에게 알리는 것 정도는 아미엘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특히 마를렌과 이곳의 워프 게이트가 연결이 된다면 숨긴다 해도 자연스럽게 소문이 날 수가 있었다.

일단 최대한 숨기기는 하겠지만, 그게 언제까지 될지는 몰랐다.

‘다른 곳은 어쩔 수 없겠지만…….’

주안은 여러 곳에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어 문명을 단번에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미엘이 깊이 고민하고 걱정스러워 하는 것에 주안 역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급했다.

갑작스러운 문명의 발전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곳.

이곳, 황도에 있는 자신의 방과 세계수의 워프 게이트는 반드시 필요하였고, 다시 마를렌과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갈까, 세라타.”

“네!”

방긋 웃으며 힘차게 고개를 세라타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과연 저 귀여운 미소가 워프 게이트를 통해 저 머나먼 남부, 함께 오랜 시간을 갔던 아스란 왕국보다 더 먼 곳으로 한 걸음만 내디디면 도착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변할까.

괜히 그런 생각을 하니, 알려주지 않고 세라타의 표정이 변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이런 주안의 장난 가득한 미소를 보지 못한 채 세라타는 주안의 비밀기지가 과연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에 두근두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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