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140화 (140/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40화

“어, 어, 그게, 그러니까…….”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너무나 쌀쌀맞은 엄마의 모습에 주안이 어버버거리며 뭐라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도움을 바라듯, 곁에 있던 워랜에게 시선을 슬쩍 돌렸지만…….

‘워랜 경?!’

그 엄청난 육체의 능력을 가지고 어느새 소리소문없이 멀찍이 떨어져서는, 주안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 사람들 틈 속에 숨어 있는 워랜의 모습에 주안은 절망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건 워랜만을 욕할 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실망도 컸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슬플 따름이다.

‘그보다 대체 누가 그런 엄한 소리를 엄마에게 한 거야?!’

주안이 이를 갈며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특히 이런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의심이 되는 사람은…….

‘소니아 누나?’

슬그머니 시선을 엄마의 곁에 있는 소니아에게로 향하자, 주안과 눈이 마주친 소니아는 주안이 왜 자신을 지켜보는 것인지 알겠다는 듯 화들짝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닌가.’

보통은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우겠지만, 저렇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라고 하는 모습을 보니, 소니아는 확실히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가장 의심스럽던 소니아가 아니라면, 모두가 다 의심스러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주안이 시선을 돌려 토미나 세라타, 솔이나 쥬도와 도리안, 거기다 피터까지 의심스럽다는 시선을 주었지만, 그들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대체 누구야?!’

이 말을 소리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엄마의 분위기가 너무 흉흉하여 행동으로 옮기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모습에 모두가 안타까운 듯, 작게 혀까지 찼다.

그리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안젤라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슬그머니 위로 향했고, 그것을 본 주안 역시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설마?”

그곳에는 세 요정 꼬맹이들이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주안과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으며 손을 열심히 흔드는 마냐와 부끄러운 듯 다소곳이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주는 아냐와는 달리 어째서인지 세냐는 흠칫 놀라며 주안의 시선을 은근슬쩍 피한다.

“세냐, 너였냐?!”

“어, 어머나, 무슨 소리일까나~.”

“너어?!”

“세상에 숨겨도 되는 비밀은 없답니다~ 게다가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완전 불효잖아요.”

“그게 무슨 불효야?! 너 거기 안 서?!”

밉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주안의 말에 답하던 세냐가 슬그머니 더 높이 날아오르더니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그런 세냐를 잡을 수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는 주안은 이를 갈며 세냐가 사라진 허공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주안아.”

“윽?!”

그리고 분노에 이를 갈던 주안을 정신을 차리게 하는 엄마의 조용한 한마디에 주안이 움찔 놀라며 엄마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어, 엄마…….”

“우후훗, 우리 주안이도 엄마한테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은데?”

“저, 전 그러니까…….”

“아니, 엄마도 우리 주안이에게 할 말이 아주 많은데 말이야.”

생긋생긋 웃으며 한 걸음씩 다가오는 엄마의 모습에 주안은 이전 삶 속에서 보았던 토미보다 더 살벌함을 느낀 듯 새파랗게 질린 채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뒤로 도망쳐 봐야 결국 어디 갈 곳도 없었다.

갈 곳이 있다 해도 엄마가 분명 사람을 시키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올 게 확실한 나머지 일찌감치 포기한 채 조심스레 엄마에게 말했다.

“……이, 이건 제가 아니라 아빠가 먼저 시작하신 일이에요.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어머? 정말? 네 아빠가 그런 애먼 짓을 저지르셨다고?”

“……시작은 링베르가 공작가가 먼저 하긴 했지만…….”

변명 아닌 변명이긴 하였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려는 듯 아빠에게 모든 죄를 돌리는 게 아니라 은근슬쩍 링베르가 공작가에 분담을 시켜 주었다.

이게 주안이 아빠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기도 하였다.

“역시 네 아빠가 문제구나.”

“…….”

차마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한 채 주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엿다.

그러다 워랜과 눈이 마주치자, 주안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양심이 무척이나 찔려, 너무나 아팠다.

* * *

“오늘 아빠보고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연락을 드리는 게 나으려나.”

엄마를 겨우 진정시키고 다시 방으로 돌려보낸 것도 모자라 곁에서 갖은 아양을 떨다 방으로 돌아온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런 주안의 피곤한 모습과 중얼거리는 말에 세라타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기, 도련님.”

“응?”

세라타의 말에 주안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세라타가 말했다.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으음……. 지금 밥 먹을 분위기는 영 아닌데…….”

“그래도 드시고 기운 내셔야죠. ……안젤라 님이 언제 찾으실지 모르시는데.”

“으…….”

세라타도 주안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고, 주안 역시 그 말에 앓는 소리를 내며 찌푸렸다.

그리고 그 말대로 오늘 언제 어느 때라도 엄마가 주안을 찾을지 충분히 예상이 갔기에, 당연한 걱정이기도 하였다.

“혼담, 그냥 오갔다는 말…… 엄마가 안 믿는 거 같았지?”

“네.”

“……내 거짓말이 참 서툰가 보네.”

“그게…….”

주안이 시무룩해지자 세라타가 뭐라 위로의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주안은 거짓말을 참 못 하는 성격이었고 그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 많아서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도 속지 않을 그런 어수룩함을 많이 보여주었다.

지금도 안젤라에게 혼담에 대해선 대충 둘러댔지만, 그것에 속을 안젤라도 아니었고 지금은 남편이 돌아오면 주안까지 불러서 한 소리를 할 기세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분위기가 폭풍 전야라는 사실을 다들 알기에 이 분위기에 맞춰서 최대한 조용히 지내려는 게 보였다.

“하아……. 아빠가 오면 진짜 큰일인데. 잘못하면 정말 집에서 쫓겨나실 텐데.”

“서, 설마요. 그래도 가주님이신데…….”

“……세라타 너도 확신 못 하잖아.”

“우음…….”

확실히 그동안 보아온 공작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세라타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 어디에서 아내에게 구박받고 집에서 쫓겨나는 공작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까 싶지만, 적어도 이 저택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밖에서 보아온 주레인 공작은 세라타가 보기에도 참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쩜 집에만 돌아오면 이상해지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녁은 좀 늦게 먹을게. 밥 먹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좀 있어서.”

“할 일이요?”

갸웃하는 세라타에게 주안이 이를 갈며 말했다.

“세냐, 이 꼬맹이를 붙잡아야지.”

“아하하…….”

주먹까지 불끈 쥐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주안이 씩씩거리며 겉옷을 벗어버리고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그런 주안을 보며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세라타는 주안의 옷가지들을 정리하였다.

“하지만 세냐를 잡기 힘드실 텐데…….”

날아다니는 작은 요정 꼬맹이는 의외로 약삭빨랐고 게다가 그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주안이 가지고 있는 마법 도구들은 한 방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주안으로선 아무리 노력해도 세냐를 잡기에는 어려웠고 세라타는 그것을 알기에 주안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주안은 사납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고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하는 법이라고 했지. 힘이 통하지 않으면 머리로 해야 하는 거야.”

“머리로요?”

“그래.”

주안이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주안은 당당하게 방을 나서며 말했다.

“쿠키는 주방에 있을 거고, 쥐덫은 어디 있더라.”

“도련님…….”

설마하니 맛있는 것과 쥐덫을 이용해 지금 세냐를 잡을 생각이냐는 그 말을 세라타는 주안에게 해줄 수가 없었다.

주안의 모습을 보니 진심이었고, 열의에 활활 불타고 있었으니…… 그런 주안에게 안쓰럽다는 위로조차 해줄 하기 힘들었다.

* * *

“흠, 흠. 엄마.”

“흥!”

세냐를 잡을 쥐덫을 실제로 설치한 주안은 그대로 걸음을 옮겨 엄마가 찾기 전에 먼저 엄마를 만나러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주안이 찾아오고 말을 걸어도 안젤라는 볼을 잔뜩 부풀린 채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읽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주안을 무시하였다.

“이번 혼담은 정말 저희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링베르가 공작가에서 먼저 제의하는 바람에…….”

“아~ 그랬어?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어쩜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엄마만 모르고 있었을까?”

“그야, 엄마가 걱정하실까 봐…….”

“걱정이 아니라 귀찮았던 건 아니고?”

“절대로 아니에요.”

주안이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지만, 안젤라의 마음은 썩 편치 않았다.

다들 알고 있는 일에 자신만 몰랐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만 따돌리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느낌에 잔뜩 화도 났으며 특히 주안이 이런 중요한 일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에 눈물까지 날 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죄송해요.”

주안이 시무룩해지자 볼을 잔뜩 부풀리며 투덜거리던 안젤라도 마음이 조금 약해진 듯 볼에서 바람이 빠지며 그저 입술만 삐죽이고는 말했다.

“그래서, 네 아빤 뭐라니? 아니, 주안이 네 생각은 어떠니?”

“…….”

엄마의 말에 주안이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며 말했다.

“저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크게 상관이 없어요. 엄마나 아빠, 할아버지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의외로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주안의 행동에 안젤라가 조금 놀란 듯했다.

빈말이라도 엄마를 생각해서 ‘절대 결혼은 안 할 거예요’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가문의 사정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고 한 말이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였지만 그런 감정보다 주안의 어른스러운 그 행동이 무척이나 대견하였다.

“하지만 엄마가 반대하시는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약속해드릴 수 있어요.”

엄마가 반대하면 아빠도 물러설 수밖에 없고, 그 강경한 할아버지도 물러나야 할 터이니,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말에 안젤라는 잠시 고민을 하다, 책을 덮고는 말했다.

“엄마는, 네 결혼이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

역시나라고 할까, 하지만 절대 불가가 아니라 이르다는 말이 의외로 들린 듯 주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엄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안젤라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매우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는 듯 주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언젠가 결혼을 해야 한다면,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하였으면 할 뿐이야.”

“어, 엄마……?”

이런 엄마의 말에 주안은 무척이나 놀란 듯 뭐라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그 강경한 엄마가, 이전 삶 속에서는 주안에게 절대 결혼을 허락하지 않고 곁에서 끼고 살던 그 엄마가, 40년 가깝게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던 엄마가…….

……주안, 자신이 변한 만큼 그 억척스럽던 엄마도 무척이나 많이 변해 있었다.

“단! 결혼해도 분가는 절대 허락 못 해! 엄마랑 아빠랑 같이 평생 사는 거 아니면 결혼은 허락 안 해!”

“아하하…….”

결국 이야기가 그렇게 되지만, 주안은 정말 크게 놀랐고 엄마를 새롭게 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주안에게 집착하고 있지만, 이건 기분 좋은 집착 정도로 보일 뿐이었기에 주안도 미소를 지었고, 이런 주안의 미소에 안젤라는 불만스럽다는 듯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가문을 위한다느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마. 엄마는, 주안이 네가 너만의 인생을 살고 네 행복을 위해서 지냈으면 좋겠으니까.”

“제 행복은 이 집에서 엄마랑 아빠랑, 그리고 다 같이 지내는 거예요. 그게 제 꿈이고 제 목표고 제 행복이니까요.”

“흐, 흥! 그런 말은 이제 하나도 안 기쁘거든!”

엄마의 귀여운 토라짐에 주안이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

지나치게 빨개진 엄마의 볼과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행동은 정말이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주안은 그런 엄마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손을 뻗어 엄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그래, 그랬지. 내가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살아가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

이런 엄마의 모습을,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집을, 그리고 환경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표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주안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빠도 용서해 주세요. 아셨죠?”

“싫어. 흥! 네 아빤 혼 좀 나야 해. 어쩜 그런 걸 딱 잘라 거절도 못 하는 거니.”

“…….”

‘……죄송해요, 아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진가 봐요.’

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어쩔 수가 없으니, 주안은 속으로 아빠의 안전을 빌어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최대한 늦게 들어와서 엄마가 자고 있기를 바라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