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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39화 (13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39화

주안과 워랜은 황성에서 에밀리 펜버와 헤어진 후 함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주안의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무거웠다.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자신의 실수로 메데아 대족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퍼지는 아주 큰 사고를 쳐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이 늦을 듯하였고, 에밀리 펜버도 매우 늦을 듯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바스티아노 백작이 약속대로 대신전까진 함께 와주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기다리고 있던 여러 기사를 피해서 안전하게 저택으로 향할 수 있었다는 것뿐이다.

“유일하게 다행인 점이 이거라니…….”

뭔가, 굉장히 바쁘면서도 엄청나게 불행한 하루로 느껴졌다.

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일을 해결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거, 아빠만이 아니라 오늘은 나도 밤을 새우겠는데.’

집에 돌아가자마자 워프게이트를 이용해 아미엘이 있는 세계수에 향한 뒤 달란트 부족으로 가서 메데아 대족장을 만나 이 일을 설명해야 하나, 그런 고민도 들 정도다.

‘일단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급선무인데…….’

당장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은 주안의 손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 부분은 당장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먼저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함께, 여러 가신의 의견을 모아 결정할 일이었고 주안은 결과가 나온 뒤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며 방향을 정하면 되었다.

‘문제는 역시 혼담인데…….’

설마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혼담을 그대로 밀어붙일 줄은 주안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면 포기를 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욱 강경하게 나오니 주안으로서도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으음…… 혼담이라…….’

이토록 강경한 링베르가 공작을 보니, 주안도 이 일을 나름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전에 아버지에게 말을 했던 것처럼, 주안은 혼담이든 결혼이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전 삶 속에서도 결혼을 못 하였고 이번 삶 속에서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었으며, 가문을 위해서라면 처음 본 여성일지라도 얼마든지 결혼을 해줄 생각이었다.

만약 이 거래가 정말 성사된다면 주안은 미네아와 결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아냐, 아직은 일러. 그리고 확정이 된 것도 아니니까.’

이번 거래가 쉽게 되는 일이었다면 주안도 그저 체념해 버리겠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있었다.

다만,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미네아의 표정과 그 행동.

그리고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모습에 있었다.

‘정말 귀족답다고 할까, 귀족 외에는 다른 일은 하지 못할 사람 같다고 할까…….’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주안이 그동안 보아온 귀족 중 가장 전형적인 권위의식 가득한 귀족이었다.

제이미 링베르가는 이런 아버지의 귀족으로서의 보고 배우지 말아야 할 것만 배운 탓인지 제멋대로인 듯했지만 말이다.

다만, 그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귀족이 귀족답다면, 그래도 아랫사람들은 매우 편하고 믿을 수 있었고, 영지민들 역시 크게 고생을 할 일이 없다는 점은 매우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절대 아니다.

귀족다운 귀족은, 가신들과 영지민들에겐 매우 훌륭한 영주님일지언정 가족들에겐 오히려 좋지 않은 남편이자 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

그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결국 가족이 아니라 지켜야 할 영지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조금 불쌍하긴 하네.’

제이미가 왜 그렇게 누나만 찾고 매달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 그가 조금 안타깝긴 하였고 또한 미네아 링베르가가 집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을지 눈에 보였기에 측은해지기도 하였다.

‘뭐, 그래도 그런 집이 어디 그곳 한 곳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세상 모든 귀족가의 식솔들이 불쌍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 역시 주안이 이렇게 변하기 전까진 저런 전형적인 귀족과 매우 비슷했다.

아니, 조금 다르다면 이쪽은 가족의 행태에 반쯤 포기한 상태였고 저쪽은 아버지의 행동에 포기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차이뿐이다.

‘에휴, 남의 가정사,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주안, 자신의 눈앞 사정이 더 급하였으니 아쉽지만 미네아 링베르가의 사정이 어떻든 주안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주안 공자, 뭘 그렇게 생각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제 말을 좀 탈 수 있는 주안이었기에 옆집, 아니, 황성에 가는 것도 거창하게 마차를 타고 호위들을 이끌고 갈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워랜과 나란히 말 두 필만 끌고 나와 가면 금방이니 말이다.

나란히 말을 타고 가며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주안의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던 워랜도 너무 조용한 주안의 모습에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본 것이기도 하였다

이런 워랜의 말에 주안이 애써 태연한 척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보다 링베르가 공작님이랑 무슨 심각한 대화라도 했나 보네? 표정이 썩 좋지 않아.”

“예, 하였죠. ……제 혼담을 그대로 강행하실 생각이세요.”

“뭐? 진짜?!”

중요한 부분은 아직 워랜에게 알려줄 수는 없지만, 이 부분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런 주안의 말에 워랜이 깜짝 놀라 소리쳤고, 그 소리에 말도 놀란 듯 투레질을 하였다.

주안이었다면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겠지만, 달리는 말 위에서 잠도 잔다는 노밀 가문의 사람답게 고삐를 간단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말을 금세 잠잠하게 만들어 버렸다.

“진짜, 여전히 하자고 해? 그 난리를 치고도?”

“그 난리를 친 후에 엄청난 짐덩이까지 떠넘기면서 하자고 하시네요.”

“……완전 몰염치하잖아?”

“으음, 짐이긴 해도 이게 황금 덩어리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리는 것이라서요.”

“헤에, 뭔가 심각한 이야기들이 오갔나 보네.”

워랜이 조금 관심을 보이자, 주안이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당장은 저희가 아니라 어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거든요.”

“쩝……. 아직 어리다는 건가.”

“흐흥~ 어린 건 저 혼자이지 워랜 경은 아니잖아요.”

“……주안 공자도 내년이면 성인이고 이제 어리다는 표현보다는 징글징글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텐데.”

“그래 봐야 저는 워랜 경보다 열 살이나 어린 파릇파릇한 나이다, 이거죠. 워랜 경이야말로 내년이면 진짜 아저씨 소리 듣겠는데요?”

“크윽…….”

워랜이 잔뜩 찌푸리며 이를 갈았지만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여기서 화를 내면 나잇값도 못 하는 어른이, 아니, 아저씨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리고 주안 역시 여기서 워랜을 더 자극하면 진짜 폭발한다는 것을 알기에 적당히 선을 그어놓고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워랜 경은 진짜 결혼 안 하실 생각이세요?”

“난 독신주의자라고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놈의 독신주의……. 대가 끊긴다고요.”

“괜찮아. 정 안 되면 양자를 들이든,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가 힘 좀 써서 동생을 만들어주시겠지.”

“……그 이전에 워랜 경 두 다리가 모두 가론 자작님 손에 부러져 버릴 것 같은데요?”

“설마 제국 최연소 랭크 7의 기사 다리를 부러뜨리려고.”

“그 설마가 사람 잡을 게 확실하다고 봐요.”

제국 최연소? 대륙 최연소?

그딴 것은 우악스러운 아버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봐야 결국 게으름뱅이의 속 썩이는 놈팡이 아들놈일 뿐이니까.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결국 아들이든 딸이든, 아버지 앞에 서면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집은 좀 반대 같지만.’

어쩜 그렇게 크게 보이던 아버지가 엄마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을 리가 없지.’

주안 역시 엄마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을 보니, 이놈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집안의 내력이, 그리고 진하게 흐르는 공처가의 피가 너무나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그런 생각을 하니 주안이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단 집으로 가면 바로 메데아 대족장님을 좀 뵈러 가야겠어요. 워랜 경도 같이 가실래요?”

“흐음, 그러면 그럴까. 나도 오랜만에 그 아주머니를 좀 만나서 칼질이나 좀 하고 싶은데.”

“……무슨 정신 나간 연쇄 살인마도 아니시고, 칼질이라니…….”

키득거리며 웃는 워랜의 모습에 주안은 진심으로 황당했다.

게다가 바스티아노 백작과 함께 칼질을 나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게 다 주안 공자 탓이라고. 한창 달아오를 때 맥을 탁 끊어버렸잖아.”

“좀 참으세요. 오늘이 아니라도 내일은 분명 에밀리 경이 워랜 경을 붙잡고 온종일 대련하자고 할 거니까.”

“에밀리 경이랑은 좀 재미가 없을 텐데……. 뭔가 오싹한 그런 게 없다니까.”

“어휴, 정말…….”

오싹함을 느끼기 위해 검을 들려는 워랜의 모습에 주안이 정말 못 말리겠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하지만 주안이 그러거나 말거나 워랜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스승님이면 진짜 원 없이 검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조만간 보내 드릴 거니까 참으세요.”

“예이, 예이.”

심드렁하게 답하는 워랜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처럼 적극적인 워랜이 싫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게으르긴 하지만, 자신의 단련에는 이제 한 걸음씩 꾸준하게 걸어 나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기에 일견 무례할 수 있는 워랜의 행동에도 주안은 그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였다.

아니, 오히려 존중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워랜은 그런 존중을 받아도 될 실력자였고, 그가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힘이 되었으니, 앞으로 가주가 될 주안에겐 반드시 함께해야 할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숙이고 들어간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동반자다.

주안에게 워랜이 필요하듯, 워랜 역시 주안을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도와주며, 함께 나아가야 하는 관계…….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이 추구하는 유대 관계가 바로 이런 것이니 말이다.

“자, 얼른 집에 가죠. 엄마 기다리시겠어요.”

“또, 또 엄마……. 뭔가 어른스러워졌다 싶어도 그놈의 엄마를 찾는 말이면 완전 깬다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니까 워랜 경이 참으세요.”

“하아…… 못 말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는 워랜의 행동에 주안이 작게 웃어주며 말을 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워랜 역시 웃으면서 주안의 곁으로 말을 몰고 와서 나란히 걸어갔다.

* * *

“응?”

주안과 워랜이 저택에 도착하고 말에서 내리자, 주안은 무언가 분위기가 묘하다는 것에 갸웃하였다.

그리고 이런 것은 주안만이 아니라 워랜도 느낀 듯했다.

“신성력이 사라졌나? 왜 이렇게 서늘해?”

“신성력은 여전한데…….”

주안이 집에 돌아와서 다시 신성력을 듬뿍 채워 넣었기에 사라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실제로 여전히 저택은 지나치게 번쩍번쩍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그러게요.”

갸웃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제이미의 난동 후 더 많은 인원이 배치된 경비들이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필 뿐이다.

이들에게 뭔가 물어볼까 하려다, 곤란해 하는 모습이었기에 그저 조용히 지나쳐 저택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문을 지나쳐 길을 따라 저택으로 향하면서도 주안과 워랜을 보며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당황하는데, 무언가 확실히 일이 있다는 것을 둔감한 주안도 알 수가 있었다.

‘왜 저러시지.’

보통 주안이 오면 웃으며 반기던 이들이, 웃고는 있지만 매우 어색하였고 주안과 눈이 마주치며 반갑게 인사해 주던 사람들도 주안의 눈을 피하기 바빴다.

뭔가 묘한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저택의 앞까지 도착한 주안과 워랜은 말의 고삐를 근처 하인에게 넘겨준 후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응?”

하지만 저택의 큰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몇몇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 사람 중 다른 그 누구보다 반가운 인물인 엄마가 있었고 그런 안젤라의 모습에 주안의 표정이 확 밝아져 그런 엄마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이내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어 버렸다.

“엄마?”

“어머, 주안아. 마침 잘 왔어. 엄마랑 같이 어디 좀 가지 않을래?”

“예? 어디를요?”

주안이 갸웃하자 엄마인 안젤라의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고, 왠지 얼굴에 음영이 잔뜩 드리워진 듯했다.

게다가 무척이나 오싹한 것이, 주안의 착각이 아닌 듯 엄마의 곁에 있는 모두가 다들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런 주안을 보며 안젤라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아빠 잡으러.”

“…….”

뜬금없는 그 말에 주안이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았다.

보통 남편을 보러 나간다는 아주 지극히 정상적이고도 다정한 부부의 대화가 아니라 바람난 남편 잡으러 간다는 듯한 말에 주안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엄마? 갑자기 아빠는 왜…….”

“후훗, 우리 주안이~ 엄마한테 뭐 숨기는 거 없니?”

“숨기다니, 대체 뭐를…….”

하지만 그 숨기는 것이 순간 떠올라 주안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방긋방긋 무섭게 웃으며 안젤라가 말했다.

“혼담.”

“…….”

“네 아빠랑 외할아버지랑 엄마가 대화를 좀 나누었으면 하는데. 같이 갈 거지?”

순간 주안은 엄마의 차가운 목소리보다, 그 내용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사람이 왜 심장마비로 사망하면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인지 실감을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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