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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36화 (136/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36화

“하아, 정말이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 거람…….”

워랜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집어 들자, 그런 워랜을 보며 바스티아노 백작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고식이라고 생각하게.”

“거, 신고식 한번 아찔한데요. 두 번 하면 아주 죽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스티아노 백작과의 대련이 신고식이라니.

일반적인 기사라면 그냥 도망쳐도 아무도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투덜거리는 워랜의 모습은 일견 버릇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바스티아노 백작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이들 역시 워랜에게 뭐라고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정도는 하여도 되는 실력자였고 워랜이 어떤 인물인지 익히 소문으로 듣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워랜은 이전부터 실력자들에게 주목을 받던 이였으며 그가 게으름을 피우고 검에 매진하지 않는 것에 매우 안타까워하던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무슨 몸이 저래?’

워랜은 자신의 몸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였고, 근육질 덩어리의 다른 기사들의 비대한 몸과는 달리 꼭 필요한 최소한의 근육만 가진 완벽에 가까운 몸은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니, 은근히 자랑하며 즐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스티아노 백작의 몸은 뭔가, 다른 기사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우락부락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그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대련이 아니더라도 갑옷은 거추장스럽다고 입지 않는 그였고, 그 갑옷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저 강철 같은 근육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흉기나 다름이 없었다.

“준비는 되었나?”

“안 되었어도 도망칠 곳도 없어 보이네요.”

“그렇게 긴장하지는 말게. 말 그대로 대련이니 말일세.”

“하아, 예.”

미소를 짓는 바스티아노 백작의 모습에 워랜 역시 투덜거리면서 긴장을 풀어보려 했지만, 눈앞의 이 사람이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없는 현 서방 대륙 제일 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고 제국에서는 가장 강하다는 인물이었다.

‘이거, 라쿰바 때와는 압박감이 전혀 다른데…….’

남부 원주민들에겐 랭크의 단위 자체가 없었고 그저 강한가, 아닌가로 나누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워랜이 상대해 본 라쿰바는 확실한 랭크 7의 인물이었으며, 그와 검을 맞댔을 때 확실히 강했지만 못 이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황도로 돌아와 에밀리 펜버를 보았을 때도 그렇게 느꼈다.

동방의 검은,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무사들에게 서방의 검을 쓰는 이들의 육체를 확실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보검이 들려져 있는 이상 극단적으로 육체를 단련시킨 이들에겐 확실한 상성의 우위를 보여준다.

하지만…….

‘약간 유리한 감도 있지만, 그거야 실력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을 때나 그렇지…….’

눈앞의 이 태산 같은 인물과 자신의 차이는 수십 년이 넘는 세월의 시간만큼 컸다.

자존심이고 뭐고, 그딴 걸 세울 것도 없었다.

살아온 세월, 검을 잡은 때, 랭크 7에 오른 시간.

워랜은 에드워드 바스티아노 백작과 비교하여 이 모든 것이 부족하였다.

‘그렇지만 못 할 것도 없지.’

그럼에도 워랜은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바스티아노 백작의 정면에 섰다.

주눅이 드는 것도 없었고 눈빛도 두려움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도가 바뀌어 있었다.

이런 워랜의 모습에 구경하던 실력자들도 상당히 놀란 듯했고, 에드워드 바스티아노 백작은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사라진 뒤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넨 정말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님과 닮았어.”

“끄응……. 그 영감님이랑 닮았다는 소리는 좋은 말이 아닌데요.”

“하하, 그런가. 하지만 그분과 닮았다는 것은 모든 기사가 바라는 말이기도 하다네.”

“그 경박한 영감님이요?”

워랜에게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매우 경박하였고 뜬금없이 나타나 냅다 검부터 휘둘러보던 황당한 노인이었다.

물론 자신도 토미를 보고 냅다 달려가 검을 휘두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경박이라……. 확실히 좀 자유로운 분이시긴 하셨지.”

“조금이 아니실 텐데…….”

그에게 시달리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런지 워랜이 살짝 찌푸렸지만 바스티아노 백작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분이 바라셨던 검이라 들었네. 그것을 내게 보여주게.”

“실망하셔도 책임 못 집니다.”

바스티아노 백작의 말에 워랜이 미소를 지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순간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누던 분위기가 사라지더니 날카로운 공기가 주변에 내려앉았다.

이곳에는 분명 랭크 7의 실력자들도 몇 있었지만, 워랜의 기세에 상당히 놀란 듯했다.

소문으로만 듣고 알고 있었던 것과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듯, 이제 막 랭크 7에 오른 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워랜의 이런 바뀐 분위기에 바스티아노 백작도 검을 고쳐 잡았다.

“오게.”

“예, 가겠습니…….”

순식간에 바스티아노 백작의 앞으로 달려간 워랜은 그대로 검을 내질렀고, 그 검의 끝에는 희미한 푸른빛의 검기가 맺혀 있었다.

“……다!”

이런 일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기습하여 냅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나 워랜이나, 아주 똑 닮아 있었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을 그 누구보다 오래, 가까이에서 모셨던 바스티아노 백작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여유로웠다.

게다가 오히려 대련임에도, 그리고 처음부터 전력을 담은 일격을 내지르는 워랜의 행동이 매우 마음에 든다는 듯 그 역시 워랜에게 검을 내질렀다.

* * *

워랜과 바스티아노 백작의 대련은 일반적인 대련이라기보단 그냥 결투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대련의 모습을 보며 주안도 감탄사를 터뜨렸다.

“우와…….”

“정말 대단하네요. 실력 전부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워랜 경의 움직임이나 검에 실린 날카로움도 대단한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는 바스티아노 백작님도 명불허전입니다, 공자님.”

“확실히…….”

에밀리는 눈까지 반짝이며 십 대 시절의 꿈 많은 소년처럼 두 사람의 대련을 보며 감탄하였고, 이런 에밀리 펜버와 마찬가지로 주안 역시 두 사람을 놀란 눈으로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나도 모르겠어요.”

“하하…….”

뭔가 휙휙 지나가고 검과 검이 부딪히는 거친 쇳소리와 불꽃이 튀었지만, ‘우와, 멋지다.’ 같은 소리는 나와도 저게 어떤 움직임이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주안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남부 대밀림에서 대련했던 라쿰바 때와는 진짜 다르네…….”

라쿰바와 대련이라고 할지 대결이라고 할지, 아니면 결투라고 할지 애매했지만 그때와는 무언가 많이 달랐다.

거칠기는 하여도 차근차근 검을 나누고 있었고, 워랜의 속도에 당황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확실히 같은 랭크라고 해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대결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 바로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작은 중얼거림에 에밀리가 갸웃하며 주안에게 말했다.

“남부 대밀림이라니요?”

“앗?!”

주안도 그제야 곁의 에밀리 펜버가 대밀림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한 듯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반응에 에밀리 펜버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안에게 물었다.

“공자님. 설마, 아스란 왕국의 남부 대밀림에 가셨었습니까?”

“아, 아니, 그게…….”

마치 추궁하는 듯한 에밀리의 그 눈에 주안이 쩔쩔매다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에게는 비밀이에요.”

“공자님…….”

“어쩔 수 없었어요. 그곳도 전염병의 위험이 있어서 그랬던 거였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대체 같이 가셨던 분들은 공자님을 말리지 않고 무얼 하신 것입니까.”

“제가 한 고집 하잖아요.”

“하아…….”

검을 쓰는 사람들에겐 워랜과 바스티아노 백작의 대련은 매우 중요한 기회였지만, 에밀리에겐 지금 자신이 모시는 이 철없는 공자님이 벌인 엄청난 일이 더욱 중요했다.

“그래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거기서 워랜 경이나 아르베리아 경, 토미가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의 검을 맞댈 수 있어서 굉장히 큰 경험을 쌓을 수 있었거든요.”

“예? 워랜 경과 검을 나눈 원주민이 있었습니까?”

“그냥 검을 나눈 게 아니라 질 뻔하셨죠.”

“그, 그게 정말입니까?”

주안의 말에 에밀리 펜버가 주안에게서 고개를 돌려 워랜과 바스티아노 백작의 대련을 보았다.

주안에게는 여전히 눈에 제대로 담기지 않는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에밀리 펜버가 보기엔 워랜은 상당히 까다로운 실력자가 확실했다.

무엇보다 서방의 검은 동방의 검, 최고위 실력자들에게 상성에서 밀리는 부분이 컸기에 아무리 이제 막 랭크 7에 올랐다 해도 완숙한 동급의 기사도 워랜을 상대하는 건 꽤 버거울 것이다.

바스티아노 백작 정도가 되어야 여유를 가질 수 있지, 만약 자신이라면 상당히 긴장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에밀리 펜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시 고개를 돌려 주안을 보며 에밀리 펜버가 말했다.

“그곳에도 랭크 7의 실력자가 있었습니까?”

“뭐, 거긴 그런 분류를 하지 않아요. 그냥 강한 사람, 좀 많이 강한 사람, 약한 놈, 쓸모 있게 만들어야 할 놈, 그렇게 구분하거든요.”

“하하…….”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 오래전부터 단순무식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이들에게도 제대로 된 실력자가 있다니……. 무슨 비법이라는 게 있었습니까?”

“글쎄요. 그런 건 없어 보이던데. 그냥, 많이 싸우고 많이 맞고, 목숨 걸고 사냥 나가고 그런 것 정도?”

“실전형이라는 소리군요.”

마수의 이야기까지 해줄 수는 없지만 그들의 생활 자체가 전투적인지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단순한 건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으음……. 그래도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체계적인 훈련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렇긴 하죠.”

동방 대륙에서야 서방 대륙의 훈련을 무식하다고 평하지만, 나름 체계적인 훈련이 있었고 튼튼하게 아래에서부터 쌓아 올렸기에 안정적인 실력자들이 꾸준하게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정말 놀라운 일이긴 하군요. 남부 대밀림에 그만한 실력자가 이미 있다면, 앞으로도 꾸준하게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인데…….”

같은 제국의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실력자가 나오는 것은 어쨌든 축하할 일이지만 적국에서 나오게 된다면 조금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남부 대밀림은 현재로선 적국도, 뭣도 아니지만 조금 껄끄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에밀리의 깊은 고민에 주안이 괜한 걱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보다 픽 하고 웃어주며 한마디 해주었다.

“그래도 아직 더 놀랄 일이 있는데요.”

“제가 심장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심장을 강화하는 그런 신성력은 없습니까?”

“없어요. 담력 키우세요, 에밀리 경.”

“……예.”

시무룩해지는 에밀리 펜버를 보며 주안이 작게 웃어주며 말했다.

“거기에 워랜 경도 어쩌지 못하는 실력자가 있었어요.”

“으으음……. 점점 더 남부 대밀림이 곤란해지는군요. 원주민들의 실력이 상당한가 봅니다.”

“상당한 것 그 이상이에요. 단순히 실력자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모습들을 보면서 내린 판단이에요. 그래도 대륙에 적대적이지 않고, 대밀림을 침범만 하지 않으면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휴우…….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리고, 거기 침범하는 나라는 진짜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니까요.”

“목숨이라니요?”

갸웃하는 에밀리에게 주안이 히죽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랭크 8의, 아름다운 대족장님의 주먹에 맞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납작 엎드려야 하거든요.”

“…….”

잠시 주안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에밀리 펜버가 주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에밀리 펜버 개인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주안의 말에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구경하던 이들은 원래 조용히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서로 의견을 나누던 소리조차 사라졌고 그것은 대련 중이던 워랜과 바스티아노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순간, 주안은 이 대단한 육체들을 지닌 고랭크 기사들의 귀가 지나치게 좋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자신이 크게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목이 집중되자, 주안은 크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거하게 사고를 쳐버렸네요.”

메데아 대족장의 능력을 알려버린 것도 문제지만, 주안은 그보다 자신이 남부 대밀림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려 버린 꼴이 되어버린 게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엄마에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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