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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34화 (134/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34화

멜파스.

서부와 중부, 남부를 사이에 낀 작은 황무지이긴 하였지만 세 지역을 잇는 통로의 역할로 수많은 이가 오가는 땅이며 무역지이기도 하였다.

땅의 크기는 작은 편이긴 하나 동부에서 중부를 거쳐 서부를 지나는 중앙가도가 관통하는 지역이었다.

중앙가도와 이어지는 작은 길들 중에는 남부를 관통하는 도로망도 연결되어 있어 링베르가 공작가의 입장에선 매우 좋은 알짜배기 땅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중부와 남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장소였기에 관문의 역할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땅이란 아무리 돈을 준다 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 이런 중요 통로 역할을 하는 장소는 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불모지의 작은 땅이라고 해도 중부와 남부를 이어주는 이 지역을 지금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배상이자 거래의 조건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한 듯하군. 담배 좀 태워도 되겠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꽤나 복잡한 듯, 생각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주레인 공작이 허락해주자,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수수한 은으로 만든 담배 케이스를 꺼내 열고는 안에서 시가 담배를 꺼내었다.

‘대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주안 역시 매우 복잡한 심경인지라,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과 마찬가지로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끝없이 생각하였다.

과거이자 미래의, 그때 그 시절에서도 멜파스는 사실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다만, 전쟁이 일어나고 제국이 조각나면서 이 땅은 너무나 애매하게 변해 버렸지만 말이다.

서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를 오가는 중앙가도의 역할은 사라졌고, 그에 따라 이 경계면에 위치해 있던 여러 지역과 중앙가도가 관통하던 도시나 마을들은 거의 대부분 쇠락해 버렸다.

가도 자체가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나, 교류가 가능한 지역이 한정적으로 변한 탓에 이런 가도를 이용하는 것보다 가도에서 뻗어 나온 길들을 이용해 이동하는 게 상인들에겐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먼 지역이라면 여전히 가도를 따라 이동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더 이상 동부 끝에서 서부 끝으로, 남부 끝에서 북부 끝으로 가는 게 힘들어진 세상 속에서 이 중앙가도는 그저 크고 편한 하나의 길일 뿐이지 반드시 사용해야 할 길이 아니게 되었다.

지역이 좁아진 만큼, 가도보단 작은 길들의 역할이 더 부각된 탓이었다.

이후 신왕조와 서부의 링베르가, 북부의 귀족연합이 정전 협정을 맺고 교류가 다시 활발해졌다면 이 중앙가도가 부활하여 현재의 제국처럼 활발하게 활성화될 수 있었겠지만, 주안이 눈을 감던 그때까지 정전은커녕 교류도 소원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 땅은 알짜배기나 다름이 없어.’

멜파스 지역의 중앙가도를 관통하는 유일한 도시인 밴다는 이 황무지 땅의 유일한 쉼터이기도 하였고 서부, 남부, 중부를 이어주는 중앙가도와 길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서부나 남부, 중부의 상인들의 지점이 다수 있었으며, 생산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지역은 이들이 풀어놓는 돈의 힘으로 굴러갔으며 그 돈을 보고 찾아오는 이들로 인해서 언제나 북적이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세금도 상당할 텐데.’

링베르가 공작가의 근거지인 서부의 고질적인 문제는 식량이지 돈이 아니다.

생산량이 적어도 값비싼 희귀 광석들이 나는 광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고급 가구의 재료가 되는 나무들은 동방 대륙으로 수출까지 하는 효자 상품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링베르가 공작가 자체가 대륙 서부로 나아가는 입구의 역할을 하는 장소인 만큼, 동부의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동방 대륙과의 무역 중계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링베르가 공작가는 대륙 서부 무역의 중계지 역할을 하는 곳인지라 그만큼 상인들이 내는 세수는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멜파스와 비슷한 역할의 지역은 다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돈줄 중 한 곳인 이곳을, 특히 이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다는 땅을 넘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대체 우리한테 뭘 얻어내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하얀 담배 연기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하였고, 독한 연기에 주안이 살짝 찌푸리긴 하였지만, 침착하게 링베르가 공작을 살펴보았다.

그는 여유롭게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고 마르티네스 부자를 바라보는 눈은 매우 차가웠다.

분명 꿍꿍이는 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 하고 있는 주레인 공작과 주안의 모습을 보고는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의 미네아 역시 이런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에 너무나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기에, 주안은 그녀도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멜파스에 무슨 흠이 있는 건 아닌데…….’

주안이 아무리 이전 삶 속에서 멍청했고 아무것도 몰랐다 하나, 빈민 생활을 하면서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은 꽤나 많았고, 한 번씩 찾아오는 유우나 공주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었다.

주로 주안의 삶을 비난하는 것이었지만, 가끔 그녀의 속마음을, 그리고 세상이 변해가는 이야기를 들으면 현실을 자각하며 살아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멜파스에 대한 흠이라고 할 것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쟁과 제국이 몰락하면서 중앙가도가 쇠락한 여파로 그곳도 함께 무너졌다뿐이지 현재의 세상에서는 너무나 좋은 땅이니 말이다.

“너무 과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소? 나름대로 사과의 의미를 담은 배려였는데 말이오.”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사실 조금 오싹할 정도였다.

주안은 그가 멜파스를 내놓는 것에 가신들과 그 어떤 의견도 나누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먼저 시간이 매우 촉박했으며, 그의 성격이나 링베르가가 서부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제이미 링베르가 시절과는 달리 현재의 블라드 링베르가의 서부에 대한 영향력과 장악력은 마르티네스 공작가 그 이상이었다.

철권통치가 어떤 것인지, 그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이미 알고 있다 생각되오만.”

“……역시 식량입니까.”

주레인 공작의 말에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비벼 끄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서부의 고질적인 문제인 식량 문제를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매우 올바른 답이긴 하다.

하지만 거래의 조건에 멜파스가 끼어 있다는 것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내어주어야 할 것인지 짐작이 안 될 정도였다.

“그 외에 하나 더 있소.”

“무엇입니까.”

“혼담이오.”

“……예?”

뜬금없는 그 말에 주레인 공작보다 주안이 더 놀랐다.

이런 주안을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흘겨보다 주레인 공작에게 말했다.

“내 아들의 잘못이라고는 하나, 이 아이의 잘못은 아니지 않소. 식량 문제와 더불어 혼담 문제를 이번 거래를 통해 깔끔하게 해결하였으면 하오.”

그가 미네아에게 눈길을 주었다. 미네아는 그런 자신의 아버지의 눈과 마주치자 오히려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다.

주안도 그제야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미네아를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 그리고 그의 눈빛이 알려주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는 미네아를, 이전부터 지금까지 주안에게 줄 좋은 선물이자 물건으로 보고 있었다.

“멜파스는 일종의 지참금이라고 보셔도 될 것이오.”

지참금의 스케일이 참 남다르다는 것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결혼 지참금으로 지역 하나를 내어주는 미친 인간이 어디 있…….’

하지만 이내 그런 인간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 주안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외할아버지가 있으시구나.’

주안의 엄마, 안젤라 역시 결혼할 때 엄마의 결혼 지참금이자 주머니가 든든하라는 의미로 황실직할령 중 한 곳을 받고 결혼하였다.

그리고 그 황실직할령에서의 세수를 통해 확실히 빵빵한 주머니를 가지고 과소비를 많이 하였으니 말이다.

주안의 엄마, 안젤라가 굳이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용돈으로 마음껏 주안과 놀러 다니던 이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말 단지 거래라고 생각한다면 확실히 나쁘지는 않아.’

서부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땅이 생긴다는 의미였고 서부를 넘어 중부와 남부에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황금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동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기조이지만 이 정도라면 눈독을 들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당장 주레인 공작마저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고, 주안도 같았으니 이 소식을 벡브란 전대 공작이나 마르티네스 공작가 휘하 가신들이 듣게 된다면 분명 큰 소란이 일어날 것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드리겠소. 하나 나는 이 이상 내놓을 것이 없다오.”

“…….”

확실히 과할 정도로 큰 물건이다.

너무 크고 무거운 황금 덩어리인데, 잘못하면 깔려 죽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거절이라 한다면 지금 말하여도 좋소.”

“……생각을, 아니, 의논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지만 그전에 내 아이를 치안청에서 나오게 해주시오.”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주안을 흘겨보며 주안의 의견을 바라는 듯했다.

그리고 주안 역시 조금 고민을 하였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거래가 성사된 것은 아니지만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충분한 성의,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다.

“단, 저희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확실한 보상을 해주셔야겠습니다.”

“하나 이보다 나은 거래 조건은 무리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네.”

주안이 잠시 아버지를 보았다. 주레인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안이 대신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에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거래라는 게 한 번에 되면 좋은 것이겠지만, 사실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나 주레인 공작, 주안이나 이곳에 있는 미네아도 한 번에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첫 번째 목적이 제이미의 석방인 이상, 그것을 달성하고 남은 문제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떠넘겼으니 오히려 홀가분한 쪽이었다.

반대로 주안이나 주레인 공작은 훌륭한 짐 덩이를 떠안고 고민해야 될 판이니,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수 싸움에서 밀렸다고 봐야 하였다.

“그리고 거래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이 거래가 성사된다면 황제폐하의 공증 아래 시행이 될 것이오.”

한 마디로 황제의 인가가 떨어지는 순간 멜파스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영지로 편입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전에 세부사항에 대한 의견과 조율이 오가겠지만 말이다.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도 않았고, 받아들이나 마냐의 수 싸움만 남은 이상 이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예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할아버지는 또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이 사실이 마를렌의 공작성에 전달된다면 가신 회의가 소집되고 꽤나 심각하게 의견들이 오갈 게 뻔했다.

그 이전에 이런 일을 일으킨 것에 화를 낼 수도 있었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안에 대해서 호통을 칠 수도 있었다.

‘겨우 할아버지 마음에 드나 싶었는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인생이 다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며, 이미 일어난 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우선이었다.

주안과 주레인 공작,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두 부자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의 예상대로 마르티네스 부자가 행동해 주고 있으니, 의외로 즐거운 상황이었다.

다만, 이런 아버지를 보는 미네아 링베르가의 심정은 마르티네스 부자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아버지가 여전히 자신의 혼담을 마르티네스가와의 거래에 이용한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이 거래가 성사되어도, 자신은 링베르가에서는 도구로서 사용되었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는 원치 않은 배필이 될 것이며, 거래가 안 된다면 다시 집안의 쓸모없는 계집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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