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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33화 (133/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33화

“워랜 경, 잔뜩 굳으셨네요.”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황제 폐하를 직접 만나는 건데.”

“혼자 독대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느긋하고 누구에게나 편하게 대할 것만 같았던 워랜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 듯, 황성에서 황제 폐하와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조금 긴장한 듯했다.

하지만 이런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 느긋한 주안의 모습에 왠지 뚱해져서 주안에게 물었다.

“그런 것치고 주안 공자는 너무 말짱한데……. 긴장 안 돼? 여긴 황성이고 황제 폐하를 직접 만나는 거잖아.”

“우리 외할아버지인데 긴장이 왜 돼요?”

“……엄청 부럽네.”

마치 옆집 할아버지를 대하는 듯한 주안의 이 친근한 모습이 처음으로 부럽게 느껴지는 워랜이었다.

사실 엄마 손 잡고 너무 자주 찾아오던 황성인지라, 말 그대로 진짜 옆집에 사는 외할아버지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조금 뜸하다뿐이지 되돌아온 후 한동안 참 열심히 오가기도 했고, 이전 삶 속에서도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나름 좋았고 여전하였기에 매우 편안하기도 하였다.

“저도 있고, 아빠도 계시고, 다른 귀족들도 있으니까 너무 긴장하진 마세요. 그래도 제국 최초…… 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장 어린 랭크 7의 실력자이시잖아요. 무려 스물일곱이지만.”

“나이 이야기를 직접 하니까, 어린 게 아니라 엄청 늙어 보이잖아.”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워랜의 모습에 주안이 키득거리며 웃어 주었다.

하지만 워랜은 이 모든 게 갑갑한 듯, 잘 차려입은 정복도 그렇고 옅게 한 화장도 그렇고, 잘 정돈한 머리카락도 그렇고…….

이 모든 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인지라 매우 불편해했다.

“어쨌든 편안하게 하세요. 실력이 알려진다 해서 크게 변하는 건 없을 거예요.”

“그래, 뭐…….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유명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피곤한 일들이 몰려올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가장 어린 나이로 달성한 랭크 7의 실력자.

젊은 인재 중 첫 번째.

거의 확실시 된 차기 제국, 아니, 대륙 제일 검.

게다가 미혼에 잘생김.

눈독 들일 만한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주안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노밀 가문은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모시는 봉신 가문이기에 다른 가문 휘하로 들어갈 일도 없으니, 워랜을 탐내는 이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있다면 그저 워랜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딸이 있는 가문에선 어떻게든 혼담을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겠지만, 그 부분만 조심하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무엇보다 주안은 워랜의 인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참견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 결혼만큼은 아니었다.

소니아와 반드시 이어주겠다는, 가문을 지키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에서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워랜과의 결혼을 원한다면 그의 부모님을 넘는 게 아니라 주안을 먼저 넘어야 할 것이니까.

“일단 말씀드린 대로 적당히 귀족들 주의만 끌어주세요.”

“끄응……. 이런 건 차라리 아르베리가 경이 나은데…….”

“없는 사람을 언급해 봤자 소용없잖아요.”

“알았다니까.”

이것은 단순히 주안만의 부탁이 아니라 가주인 주레인 공작의 명이기도 하여서 워랜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으니, 미리 경험한다 생각하면 편하실 거예요.”

“정말 사람을 이렇게 부려먹는 건 안 좋은 버릇이라고.”

“나중에 워랜 경도 똑같이 해주면 되잖아요.”

“누구한테?”

워랜의 말에 주안이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히죽 웃으며 말했다.

“솔이요.”

“가만 보면 주안 공자도 좀 나쁜 사람 같다고 느껴지거든.”

“농담이에요, 농담.”

“……아닌 거 같은데.”

매우 의심스럽다는 워랜의 시선이 따갑긴 하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간단하게 무시해 주자, 이런 꽤나 능글맞아진 주안의 모습에 워랜도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며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리고 잠시 뒤,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의 방에 시종이 들어왔고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알현하러 방을 나설 수 있었다.

* * *

황제와의 알현 뒤 귀족들이나 검을 좀 쓴다는 이들에게 금세 이목이 집중된 워랜은 그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그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일은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 나갔다.

그사이 주안과 주레인 공작은 황제의 배려로 황성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마르티네스 부자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링베르가 공작가 일행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안은 나이 지긋한 링베르가 공작보다 그의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미네아 영애?”

주안의 말에 주레인 공작도 조금 놀란 듯했다.

이런 자리에 딸아이를 데리고 온 링베르가 공작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링베르가 공작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불렀네. 그래도 구색은 좀 맞추어야 하지 않나? 아들을 데리고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은 나올 수가 없어서 말이네.”

그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주안이 치안청에 집어넣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주안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미네아 영애를 보았다.

그리고 미네아 역시 이런 주안을 흘깃거리며 보다 눈이 마주치자 잽싸게 시선을 돌려 버렸다.

이렇게 놓고 보면 마치 혼담을 나누기 위해 각 집안의 아들딸을 데리고 나와서 상견례라도 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두 아이를 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자신을 소개하였다.

“이런 식으로 보게 되어 유감이구려. 링베르가 공작가의 가주, 블라드 링베르가라 하오.”

“저희 역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군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가주인 주레인 마르티네스라고 합니다.”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손을 내밀자, 그 의도를 알아차린 주레인 공작이 조용히 그 손을 잡아주며 인사를 하였다.

같은 공작가의 가주들이긴 하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나이는 주레인 공작의 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완전한 아버지뻘이었다.

그 연륜도 있어서 그런지 주레인 공작이 말을 조금 높여주었고, 이런 주레인 공작의 행동이 썩 마음에 드는 듯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주레인 공작의 작은 부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꼼꼼하게 살폈고, 그것도 모자라 주안까지 눈에 담고 있었다.

이런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을 보며 주안이 조용히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주안 마르티네스라고 합니다.”

“외모나 말투, 하는 행동이 마르티네스 공작, 그대를 무척이나 닮았구려.”

“하하……. 과찬이십니다.”

기본적으로 그저 상대방에게 해주는 립 서비스와도 비슷했지만 그래도 아들이 자신과 닮았다는 소리는 듣는 아버지 입장에선 매우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주레인 공작의 입가에는 나름 심각한 자리에 온 사람과는 달리 즐거운 미소가 맺혔다.

이런 주레인 공작의 모습에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이 말을 해준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작은 변화를 눈치챈 미네아가 조심스레 나서서 주레인 공작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링베르가 공작가의 미네아 링베르가라고 합니다, 공작님.”

“아, 자네가 우리 아이와 혼담이 오갔던…….”

주레인 공작의 말에 미네아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첫인상이 썩 나쁘지는 않은 듯, 곁에 있는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과는 달리 순한 인상에 차분하고 얌전한 모습이 주레인 공작의 마음에 쏙 드는 아이였다.

아무래도 드센 아내에게 좀 많이 시달리다 보니, 이런 여성스러운 아이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앉도록 하지.”

“그러지요.”

링베르가 공작의 권유에 따라 주레인 공작과 주안이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대 공작가의 가주와 그 아이들도 자리를 잡고 앉자, 시종과 시녀 하나 없는 장소인지라 미네아가 대신 준비된 차를 찻잔에 채워주었다.

이런 미네아의 행동과 거기에서 느껴지는 기품, 그리고 배려에 주레인 공작이 왠지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며 아들을 흘겨보았다.

아들인 주안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보면 볼수록 참한 아인지라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을 끌 것 없이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도록 하지.”

“하하, 화통하시군요.”

깐깐하고 냉정해 보이는 링베르가 공작의 직설적인 행동과는 달리 주레인 공작은 꽤나 부드럽고 유들유들했다.

상반된 두 아버지의 모습이 참 신기했지만, 두 공작은 눈으로 서로를 끝없이 탐색하고, 머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벡브란 전대 공작에 대해선 크게 경계하던 것과는 달리 주레인 공작을 조금 아래로 보고 있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전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만 하였다.

온화하고 다정해 보이는 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한 가문의 공작이고 제국의 재상이었다.

그럼에도 가문은 벡브란 전대 공작이 지키고 있고 이름뿐인 가주라는 것에 조금은 아래로 보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접어야 할 듯했다.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이며 빈틈이 넘쳤지만 긴장되지 않은 모습이나 자신을 똑바로 지켜보는 저 눈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는 듯 바로 본론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 아들을 치안청에서 빼낼 수 있게 해주게.”

“그에 앞서 약속을 이행하셔야 할 듯합니다.”

“사과와 배상 말인가?”

링베르가 공작이 주레인 공작을 보다, 곁에 앉아 있는 주안에게 시선을 주었고 주레인 공작 역시 주안을 슬쩍 지켜보았다.

이 부분은 마치 주안의 답을 바라는 듯했다.

두 어르신의 시선에 주안이 조금 긴장하긴 하였지만,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무엘 경에게 말씀드렸듯이, 그 부분이 먼저 이행되지 않는다면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공작님.”

“그렇군. 오늘, 아니, 지금이라도 연락을 넣어 피해를 보았던 그 사람을 치안청으로 보내도록 하게. 고개를 숙이라면 숙일 것이고 무릎을 꿇으라면 꿇을 것이니까.”

“이미 이야기가 다 되신 듯하군요.”

“시간을 끌 필요가 있나?”

“…….”

냉정해 보이는 그 외모와는 달리 행동은 정말 화끈한 링베르가 공작의 말에 주안이나 주레인 공작도 티를 내려 하지 않았지만, 짐짓 놀란 듯했다.

무엇보다 주안은 그 제멋대로인 제이미를 이렇게 쉽게 다루는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참 대단해 보였다.

제이미를 그렇게 다룰 수 있는 것은 그가 아버지이자 가문의 주인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주안은 무릎까지 꿇고 용서를 비는 것까지 바란 게 아니었다.

단지 ‘그 정도로 경고를 했다’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니 진짜 그렇게 요구를 하면 무릎을 꿇을 듯했다.

‘……미네아 영애의 안색이 안 좋은 걸 보니, 확실하군.’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이미의 비뚤어진 분노가 오롯이 마르티네스, 그리고 주안에게 향하는 게 아닐지 참 걱정이 되었다.

‘불쌍한 녀석…….’

처음으로 제이미 링베르가가 안쓰럽게 느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링베르가 공작이 참 무서운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정말 대하기 어렵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정말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이제 남은 것은 배상과 거래라는 부분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둘을 한꺼번에 하도록 하지. 배상할 것과 거래할 것을 하나로 해서 말일세.”

“예? 그게 무슨…….”

갸웃하는 주안을 보며 링베르가 공작이 말했다.

“말 그대로이네.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네만, 우리 링베르가 공작가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네. 그것은 폐하께서도 아시는 일이기에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과 마찬가지이고.”

그 말에 주안이나 주레인 공작도 조용히 그의 말뜻에 담긴 속내를 생각하기에 바빴다.

거래할 것에 배상금을 포함한다는 것은, 결국 꽤나 큰 것을 헐값에 넘겨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링베르가 공작가가 원하는 것을 이쪽이 이미 파악을 하고 있는 이상, 그만한 값어치가 나와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링베르가 공작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부자가 그런 생각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멜파스.”

“……예?”

“그 땅을 넘겨주도록 하지.”

“…….”

링베르가 공작의 거래 조건으로 내건 그 이름을 듣고는 주레인 공작과 주안, 거기다 이 사실을 듣지 못하였던 듯 미네아 링베르가마저 놀라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멜파스는 링베르가 공작가의 영지의 동쪽 끝에 위치한 아주 작은 지역의 명칭이었다.

하지만 외곽이라고는 하나 상당히 중요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땅이 제국 중부와 남부, 서부를 이어주는 가도의 중심에 있는 지역으로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서부의 관문과도 같은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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